열왕기상17:1-7절을 보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라고 하니까 인생이 알고 있는 단어의 뜻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신 것을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예 거절을 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아들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성자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다른 표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아들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길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모형을 이 세상에 오셔서 그대로 보여주시고 있고 우리는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성경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는 보았어도 거기에 자기들의 생각을 가능한 집어 놓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거의 난도질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에 따라 좋은 말은 성경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
성경을 이용까지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래도 성경을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자기들의 종교에 이로운 쪽으로 성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합니다. 성경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와 같이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다가 그들은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영접을 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의 아들에 관한 말씀을 증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 말씀인데도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율법을 그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주님이 오셔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 문자에 사로잡혀서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범한다고 하면서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우직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는 성경에 있는 말씀의 문자를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종교인들의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론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이 되어 대대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을 택하시고 거기서 또 아론의 자손으로 대제사장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대로 규례로 삼으셨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고 실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들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아론과 같은 제사장이 있습니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도 베드로가 우리 성도들에 대해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에서 성전을 섬기던 제사장과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는 제사장이 같을 수 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제사장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아론과 같은 제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비유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고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어는 같을지 몰라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들 역시 그 의미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종교인들이 이런 말씀들을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장들을 대대로 하라고 하는 말씀을 보고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난 후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가 거대해지고 재산화가 되니까 이 말씀을 이용을 해서 세습을 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모든 기구 하나하나는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나타내고 있는 그림자로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성막론에서 보았지만 그 성막의 모든 기구는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저의 육체입니까? 아니 교회는 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전에서 일을 하는 제사장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고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 역시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에 있어서는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입니다
이스라엘에 단 한곳에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무너뜨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성전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성전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장성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세습입니까?
저는 물론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성령을 받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만 한다면 그가 누구든지 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복음이 있습니까?
이 시대 누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를 성장시켜 놓고 그것을 남을 주기가 아까 우니까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습합니까?
자기들을 제사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자손이 대대로 제사장 직분을 행한 것과 같이 자기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말씀을 자기들에게 이용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유다의 왕은 다윗의 자손으로 대대로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역시 아론의 자손으로 이어져 갔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성경에서 문자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고 교인들은 그저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내가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다고 해도 성경을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이용을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남 유다입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입니다. 열왕기서는 두 나라의 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선지자를 대표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17장은 북 이스라엘의 왕이 가장 악하다고 하는 아합 왕이 되고 난 후에 엘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의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남 유다에 왕이 있었고 북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들은 지난번에도 한번 말씀을 했지만 교회의 별을 그리고 니골라당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입니다.
그의 아내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세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이세벨은 교회를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는 교회를 이세벨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그 아내가 그러니까 교회가 음행이 심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성경도 아합을 가장 악한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입니다
그 교회가 어떠한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이세벨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다 쫓겨나고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로 채워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바알을 섬기게 하는 대표적인 교회를 이세벨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요한계시록에서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육체적으로 음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있어서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바알을 많이 섬겼던 왕이 아합이고 그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입니다
그 교회가 음행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육적인 음행이 아니라 영적으로 바알을 섬겼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바알은 부자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일에 있어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을 바알의 사상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 바알입니다.
지금 이 시대 사라졌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바알에 지금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한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하고 있고 그들이 부자와 같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지금 북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왕이 아합이고 교회가 이세벨이 되었습니다. 그 이세벨을 요한계시록에서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우상의 제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북 이스라엘이 왕이 이세벨로 인하여 율법주의로 가고 있고 그것을 바알의 제사장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합 왕과 그 아내 이세벨을 통해서 영의 일을 보아야 하고 교회를 보아야 합니다. 그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우상의 제물 그러니까 율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때 엘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입니다.
그러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예언을 하고 있고 실제 그렇게 되는 것을 성경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11: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비입니다.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비입니까? 성경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은 적당히 내려 주심으로 해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라고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설교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심으로 해서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물론 실제 육적인 것을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양식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포도주는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을 그리고 기름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들의 교회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합이 그 아내를 이세벨을 얻었고 그럼으로 해서 바알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입니다
여자 이세벨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 북 이스라엘에서 이세벨이 나타나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세웠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이 우상의 제물이고 그것을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음행을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을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생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세벨로 인하여 북 이스라엘이 음행을 하고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영생을 얻을 자가 없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엘리야가 내 말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입니다
제가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그 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 이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누구라도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일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아 모른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영의 일을 깨닫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의 일을 알려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일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알고 있고 그리고 기적과도 같은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을 자기들에게 좋은 쪽으로 이용을 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입니다
그가 왜 이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이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다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똑같이 예언의 말씀이 되고 있고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엘리야 시대의 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입니다.
지금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실제 보이는 모든 교회가 여자 이세벨이 되어서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도 않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지도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며 우리 교회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서 그저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그리고 종교 안에서 행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스스로를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눈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성령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바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비가 아닙니다.
물론 엘리야는 실제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 육의 일이다 보니까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심지어는 자기들이 기도를 하면 비가 오지도 않고 또 내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종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입니다.
이 시대도 실제 이와 같은 일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실제 이 시대도 육체로 똑같이 그러한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가뭄이 심하게 들면 마치 무당이 굿을 하는 것과 같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 그런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성경은 다 기록이 됐고 우리는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체의 일입니까?
그것을 바라는 것이 바로 이세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알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보는지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대로 행위로 하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선지자입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의 아들입니다.
더 이상 기록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제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무당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요한계시록까지 다 보고 있고 더 이상 기록할 성경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당 짓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서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 율법을 정하셨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무당 짓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정하셨지만 종교 안에서 무당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고 그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이 예언의 은사가 있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을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특히 이런 말씀을 보면서 이 시대도 똑같은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무당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우리는 정말 진리를 따라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내가 가면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입니까?
그리고 생각이 나게 합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생각나게 하는 것 역시 무당 짓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생각이 나게 하셨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다 무당과 같은 짓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에스겔34:13-14절을 보면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비가 오지 않는 예언을 했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는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비가 오지 않아서 아합과 그의 장관이 물을 찾으려고 하다가 엘리야가 오바댜에게 보이고 바알의 제사장들을 다 죽이고 난 후에 기도를 하고 비가 내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입니다
우리 인생을 양으로 비유로 해서 그 본토 시냇가에서 좋은 꼴로 먹이시겠다는 것을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의 영의 일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냇가입니다
좋은 꼴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야에게는 물을 마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언을 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2:24절을 보면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종교인들입니다.
참 이런 말씀을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마치 엘리야와 같은 심정을 가진 것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이 말씀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궁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까마귀를 보내셔서 도와주게 하셨다고 하는 말을 참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육적인 일입니까? 그저 엘리야의 육적인 음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까마귀가 먹고 사는 것을 주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역시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까마귀를 명하여 너를 먹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단지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까마귀도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이 이 지구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창조를 하셨는데 우리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너희는 까마귀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육체의 궁핍함을 보고 까마귀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절대 이러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 비유의 말씀이고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5,“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요한복음6:55절을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떡과 고기입니다.
떡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기입니다. 이 고기의 히브리어를 보면 살, 육체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살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떡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시냇물을 마셨고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가져와서 먹었습니다.
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이용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곤고할 때 그리고 무슨 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 사상입니다
그리고 무당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먹이신 것은 영생의 떡입니다. 그런데 문자를 보고 그저 실제 떡과 고기로만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필요한 것을 얻었을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그 말씀의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성경을 안다고 하면서 이 시대 종교인들은 거의 무당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엘리야의 예언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해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예언을 하고 있고 실제 북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양과 가축까지도 다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엘리야가 있는 그릿 시냇가는 괜찮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곳까지 다 말라버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비가 내리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가뭄이 심했는가를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피할 수 있습니까?
그가 예언을 했어도 그도 역시 이스라엘에 있기 때문에 그 시내가 다 마르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시냇물을 마실 수 없으니까 엘리야를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 집으로 보내서 거기서 공궤를 받도록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에 아합이라는 왕이 있고 이세벨이라는 아내가 있음으로 해서 영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이 먹이는 우상의 제물이 율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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