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47,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윤주만목사 2023. 10. 14. 08:34

마태복음10:34-39절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방인들 역시 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인생의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은 늘 그렇게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지난 2000년 동안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고 이제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 필요에 따라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령 필요에 따라 믿었다고 해도 이왕 믿는 것이라면 잘 믿어서 자기 필요한 것도 얻고 또 하나님 나라도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생각을 하면 맞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믿고 있고 아브라함을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아도 잘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시는데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자기 땅에 오셔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네 라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만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약속을 해 주시고 야곱을 구속해 주시면서 가나안을 비유로 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천국을 모형으로 해서 그들의 자손을 인도하셔서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400년이 흐르고 나서 그들이 생육이 중다하고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옴으로 해서 그들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노역을 시키게 되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시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광야라는 교회로 인도를 하시고 그곳에서 율법을 반포하시고 성막을 짓게 하시고 약속을 하신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가나안입니다 

이제 그곳은 다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잘 믿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은 도리어 탐욕을 부리면서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기는 악을 행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우리가 사사기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온 사람들이 죽자 바로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시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그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다스리게 하면 그들이 잠시 하나님을 믿는 것 같다가도 그 사사가 죽으면 다시 또 바알과 아세라는 섬기는 길로 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언제 한번이라도 스스로가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주변 국가를 섬기게 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사사를 세우시기를 반복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무엘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치리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함으로 해서 더 이상 주변 국가들로 침략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나이가 드니까 이스라엘이 자기들도 왕을 세워달라고 해서 먼저 사울 왕을 세우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 그를 폐하고 다윗을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왕이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고 다윗은 선지자로서 시편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르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정 시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갈 때까지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말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해서 바벨론의 포로까지의 모든 말씀은 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지금 우리 이방인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거울로 비춰볼 수 있고 그들이 한 그대로 우리가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큰 잘못을 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믿지 않아서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포로가 된 것은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만 잘못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못 믿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울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거울입니다. 성경에서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으면 우리 역시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이 바벨론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거울로 비춰주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도 아니고 이 시대 이방인이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자손들을 육적으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는가 하면 바로 그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벨론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바벨론이 무엇인가를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 바로 모세가 반포한 율법을 보고 그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니까 예표로 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입니다 .

율법을 대표를 하는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조상들에게 언약을 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켰고 그것을 예표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율법을 대표하는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들을 포로로 가게 하셨습니다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구해야 하는데 스스로가 지혜 있다고 하면서 율법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대로 자기들이 행위를 했고 그것이 바로 포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아서 모세의 율법을 보고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포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우리 인생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말씀을 한 그대로 우리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그러니까 모세의 율법과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고 영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 복음을 전해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입니다 

우리는 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요한계시록에서도 이 바벨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포로가 되어 있는가 하면 율법의 포로가 되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죄의 종이라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로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포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래서 자유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것으로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거울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스라엘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 들어오기 까지는 천국을 모형으로 하고 있지만 이제 들어와서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결과입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율법의 포로라고 하고 있고 주님께서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실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그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냥 돌아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학사 에스라가 율법을 해석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전에는 그들은 율법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위로 했는데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게 해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손들입니다

지금 마태복음의 유대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포로에서 돌아와서 학사 에스라 시대를 지나고 나자 또 다시 율법주의로 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욱 더 율법을 지키는 일이 열심을 냈고 그 정점에 있을 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28:9절을 보면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입니다

제자들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제 앞으로 가실 곳에 미리 가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내시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우리는 먼저 알아야 주님께서 지금 왜 이 말씀을 하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저 이 문장의 단어만을 보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합니다.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만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것을 죄의 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라고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는 평화를 예언을 했고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그 평화가 응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말씀을 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그 후손들은 또 다시 율법주의로 갔고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점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본성입니다 

인생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후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어서 또 다시 율법주의로 갔고 그것을 주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화평입니다

어느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너무 오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아니 성경에 문자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마치 진짜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초기 교회에 세상에 의해서 믿는 성도들이 탄압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 자체가 교회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치는 것을 예표로 하면 천국을 모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와서는 다시 교회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세상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화평을 주러 오셨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에 그들이 생각하는 옳지 않은 일을 하셨고 그럼으로 해서 유대인들은 주님을 죄인이라고 까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시고 또 제자들이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 비벼서 먹고 있습니다

 

화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과 같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유대인들의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더라도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온 청년이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이 시대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성도로서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같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온 청년에게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그 청년과 같이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까지 그것을 외우게 하고 있고 상을 주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9:2절을 보면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검을 주러 왔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지금 종교가 되어 있는 인생의 본성에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신다고 하고 있고 6절에서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시는가 하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본성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평입니다 

물론 평화는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검을 주어서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주어서 그 본성을 거스리게 함으로 해서 집 안 사람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지만 그럼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좋습니다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인생들이 알고 있는 그 평화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마태복음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뒤에 말씀을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다 소경이 되어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갈라디아서4:17절을 보면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을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한번이라도 네! 하고 들었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왜 그들이 주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 단 한 번도 네! 하고 듣지 않았는가 하면 주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원수와 같이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데 주일이라는 날을 잘 지키고 있는데 주님께서 그 날을 지키지 않으니까 불화가 되어서 결국에는 원수와 같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불화입니다 

이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물론 단어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마태는 아람어로 기록을 했고 사도 바울은 헬라어로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고 성경은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단어보다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불화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불화가 되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해를 전파하심으로 해서 종이 율법의 종이 이제 도망을 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불화가 됩니다

성경에서 율법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 주님이 오셨으니까 은혜의 해가 임했으니까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율법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서로 불화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율법주의자가 들어온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라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유대인들이 다 율법주의에 있을 때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이제 하늘에 올라가시고 나서 성령을 받은 후에 이방에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듣고 믿었는데 유대로부터 거짓 형제가 와서 다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의 문제로 서로 원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입니까

그들이 원수입니까? 물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원수가 누군가 하면 바로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포도원을 맡기시는 것을 비유로 해서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안 식구입니다 

실제 집안 식구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성령을 받은 성도가 그 본성을 거스리게 되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게 되고 그럼으로 원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7.“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사무엘하1:26절을 보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성경입니다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고 있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나단입니다 

사울 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사울이 죽으면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윗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비유로 요나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합니다

아마도 사무엘하의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요나단은 기이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윗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을 했는가 하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4절을 보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누가 합당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합당치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누가 합당한 자인가를 요한계시록에서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입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분명히 그는 사울 다음에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왕을 버리고 오히려 다윗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기이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십자가입니다

요나단은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버리고 다윗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십자가라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정말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와서 영생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가를 묻고 있지만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의 왕권 까지도 버리고 다윗을 더 사랑했다고 해서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능합니까

왜 성경에 요나단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기이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쉽게 요나단에 대한 말씀을 보고 지나가지만 그를 통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입니다 

그가 왕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종교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하는 행위가 조금 힘이 든다고 해서 마치 그것을 자기 십자가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목숨입니다 

인생은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산 자는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빛을 얻은 성도는 자기 육체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잃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성적으로 가능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에 올라가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든든히 서고 있고 그것이 실상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성도는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신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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