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61강,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8. 18. 07:37


161,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서7:19-22절을 보면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전도서는 철학서입니다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으며 또 우리 인생이 얼마나 덧없고 헛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 인생이 그렇게 노력하고 열심을 내는 모든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곳곳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로워지려 합니다.

아무리 천하에 몹쓸 깡패라 해도 의롭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하고 또 선하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할 수만 있다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누가 강도가 되고 싶겠습니까?

누가 살인자가 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강도도 있고 또 살인자도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두둔하고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도 저보다 더 선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인터넷을 보았습니다.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군인들이 열병을 하는데 여자 군인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다 정신이 나갔다고 하고 어떻게 세뇌를 시키면 저 정도가 될까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들은 정말 마음에서 감동을 해서 눈물을 흘리고 자기 나라를 생각하는 정말 충성된 마음을 그 사진 한 장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사상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체사상에 세뇌가 되어 있는 여자 군인들에게는 그 날의 행사가 너무도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들을 욕하기 이전에 그리고 딴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혹시 안 그렇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세뇌나 종교의 세뇌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저에게 욕하실 분도 있겠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세뇌가 되어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세뇌되어 있는 그 여자 군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나 감동을 합니까?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리고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 여자 군인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 나라에 있는 종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내가 종교인으로서 감동을 받는 그것을 공산주의자의 감동과 같이 비교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들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내가 교회 안에서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나도 세뇌를 당했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세뇌를 당하고 있었다면 북한 여자 군인이 흘리는 눈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는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북한 여자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감동을 받아 눈물을 저절로 흘리는 것을 보면 아마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미쳤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를 하고 또 숙청을 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내가 북한 여자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북한 여자 군인이 내 신앙생활을 바라보는 눈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정을 합니다.

tj로가 서로를 부정하면서 어떻게 내 감동과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뇌이고 이것이 바로 사상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의 눈물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 눈물이 북한 여자 군인의 눈물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내가 기도를 하고 또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흘리는 감동적인 눈물이 세뇌가 되어서 북한 여자 군인의 눈물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면 나는 북한 여자 군인보다도 더 불쌍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더 불쌍합니다.

그 여자 군인은 처음부터 버려진 자이기 때문에 억울할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눈물이 그저 종교라는 집단의 세뇌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 흘리는 눈물이었다면 그것은 가장 불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당연히 옳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북한 여자 군인과 같이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의심을 하기보다 그것을 폄하했다가는 자존심이 상하고 심지어는 공격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그 사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옳을 수도 있지만 거의 다수는 진리를 알아서 옳은 것이 아니라 세뇌에 의해서 옳은 것임을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진리가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옳아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종교 생활에 점점 빠져 들어갑니다.

 

마치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듯이 그렇습니다.

종교라는 집단과 공산주의와는 너무도 흡사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인들을 폄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진리 안에 있는 분들에게는 이 말씀이 전혀 걸림이 되지 않겠지만 진리 밖에 있는 종교인들에게는 아주 기분 나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종교는 자칫 하면 공산주의와 같아집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라고 한 것과 같이 또 종교인들은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유사한 방법으로 세뇌를 시키면서 서로가 독점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이 같이 세뇌 당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세뇌 시키면 반드시 또 다르게 세뇌 시키는 집단을 공격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형태가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여러분이 공산주의에 세뇌를 당하는 것 같이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에 세뇌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분별하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상은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사상이 깊은 말씀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종교라는 집단에서 세뇌를 시키는데 있어 가장 방해가 되는 말씀이 바로 이 전도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거의 설교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서를 설교하게 되면 세뇌를 시키는데 있어 이중적인 잣대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전도서를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다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신앙생활이 헛되지 않다고 하는데 전도서는 해 아래서 하는 그 신앙생활까지도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아주 싫은 말씀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안 헛되고 교회 밖에서 하는 모든 것에 다 헛되다고 이상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다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신앙생활도 해 아래서 하는 수고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헛되지 말아야 열심을 내게 할 수 있는데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하면 열심을 안 내고 그러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말을 살짝 돌려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해 아래서 하는 수고입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있을 때나 교회 안에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를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율법주의에 안 빠질 수 있습니다. 하긴 보아도 눈이 가려 버리면 해 아래서 하는 수고가 교회는 해 밖인 것으로 해석이 되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전도서는 심오한 철학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런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면 모두가 다 율법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19,“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 교회 안에 있는 사람 백이면 백이 모두가 자기는 지혜가 있다고 말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성경을 보면서 살았지만 그들이 지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혜를 얻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안 무너진 성읍이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성읍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마천루를 세우고 있는 현대 도시도 어제 또 어떻게 무너지고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이는 성읍은 모두가 무너졌다는 것을 과거를 통해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합니다.

열 유사가 지키는 성읍도 언젠가는 다 무너지고 말지만 지혜는 그 영혼들을 영원히 보존을 합니다.

 

지혜는 능력이 있습니다.

열 유사가 지키는 성읍보다도 더 안전하게 내 영혼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지혜를 얻으려 하기 보다는 해 아래서 수고하는 헛된 행위에 집착을 하고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혜에 대해서 제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합니까?

지혜는 생명나무라 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얻은 자이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지혜를 얻지도 못한 자들이 마치 자기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지혜를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지혜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 행위의 열 유사를 보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혜는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3:18절을 보면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혜는 내가 노력을 해서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얻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노력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보고 마치 원한이 있는 과부와 같이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는 것입니다

성경을 수 백독을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를 가진 자가 반드시 주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수 백독을 하면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지혜를 자기들이 성경 공부를 하면서 찾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를 입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그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오히려 사도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혜를 얻기 사모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혜를 얻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행위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 공부를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자의 모습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열 유사도 못 지키는 그 성읍을 지혜 자는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그는 그 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혜가 그렇게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0,“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지혜의 기초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는 것이 바로 지혜의 기본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이 세상에 아주 없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죄를 알 질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모릅니다.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죄를 안 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면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선을 행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또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기가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는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인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데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선을 행하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죄인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개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개가 조금 주인을 위해 착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개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개가 주인이 시키는 심부름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죄인이 조금 율법을 지켰다고 해서 선을 행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죄인지지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인이 아닙니다.

다만 한 장면의 사진 컷을 보면서 그 사진이 조금 좋게 보이면 마치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것은 지혜 없는 자의 생각이고 지혜 있는 성도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없습니다.

죄를 안 짓는 사람도 아주 없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도 아주 없다는 것이 바로 전도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고 있는 의로운 모습에 도취가 되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간증을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무엇을 자랑합니까?

겨우 사진 한 컷 조금 잘 나왔다고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전도서의 깊은 철학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행위에 도취되어 선을 행하는 것으로 큰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지혜 없다고 떠드는 소리입니다

인생은 사는 것이 죄이며 내가 오늘 하루 온 종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선을 행했다 해도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에 취해서 자기가 죄인인지 모른다면 나중에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지혜 없는 자의 말입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선은 행할 수 있고 또 그런 죄는 안 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고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는 선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생명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복음의 깊은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 해도 그것을 전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줄 수 있지는 못 합니다. 오직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을 주지 못하는 모든 행위는 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이 아니라 세상적인 선입니다

 

세상 사람도 하는 선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한다면 불교인도 그리고 무교인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로는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선을 행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늘 고백하고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아주 작은 율법을 지키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율법에 취하는 것을 성경은 진노의 포도주에 취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이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21,“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누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까?

죄를 짓는 사람이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까?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다.

 

지혜 없는 자의 마음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행하고 있는 율법에 취해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사람들로부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지혜 없는 자는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지혜 자는 자기가 선을 행할 수 없고 죄만 짓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의를 행할 수 없고 내가 행하고 있는 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가 불쌍해서 100만원을 그냥 주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선한 일을 했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괜히 억울하고 나는 왜 안 주냐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저주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100명의 종에게 모두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가다가 그 중에 한 명에게 선을 행한 것이 나머지 99명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한명에게 선을 행한 것을 들으려 했다가는 나무지 99명에게 저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행하는 선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리 진심으로 선을 행했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불평이 될 수 있고 또 그것은 절대적인 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만이 모든 사람에게 아주 공평하게 베풀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행하는 세상적인 선은 늘 차별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거지 10.000명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거지가 만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억 명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도와준 만 명의 선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국 자기 자랑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행하는 선이라는 것은 이렇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22,“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세상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싫어서 저주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 없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이 자기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또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저주를 받을 수 있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가장 깊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얻는 자를 지혜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나무를 얻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은혜에 참여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