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60강,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윤주만목사 2019. 8. 17. 07:28


16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누가복음 18:28-30절을 보면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경은 전후 문맥이 중요합니다.

전후 문맥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 어떤 문장을 해석을 하다가는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가 없이 성경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다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한절을 보아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일은 신앙생활의 연조도 많지 않고 또 성경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이 남을 가르치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두려움이 없이 그런 일들이 성행을 하는가 하면 성경을 표면적으로 보면 일반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쉽게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성경을 해석해서 가르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의 하나라도 내가 혹시 잘 모르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구역 예배입니다

구역장이라고 하는 그들이 심지어는 성경 일독도 하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교제를 나눠 줘서 가르친다고 하지만 과연 그 교제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는 그런 교제냐 할 때 저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인은 만들 수 있어도 성도는 만들 수 없는 그런 교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설령 그 교제가 오직 예수를 전하는 바른 교제라 할지라도 인도하는 그가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딴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한 것과 같이 그 교제가 아무리 바르다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는 자는 반드시 복음을 방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집사로 있을 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솔직히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교회에서 교제를 주고 가르치라고 하니까 남전도회를 인도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 때는 성경을 읽는다 했어도 완독도 하지 못했는데 그저 제가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겁 없이 가르쳤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딴에는 하나님께 열심을 한다고 한 그 일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던 가를 새삼 뉘우치게 됩니다. 지금은 설교 한편을 작성하더라도 제가 이해되지 않는 설교는 절대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 열심이 지나칩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아는 지식으로 마치 모두를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안다고 하면 오히려 조심을 할 텐데도 모르기 때문에 겁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인용을 합니다.

자기의 생각의 틀에 갇혀 있으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아주 쉽게 자기 편리에 따라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않고 그저 이 세상의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을 해서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세계는 더 합니다

아주 짧은 더구나 편협 된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을 해서 그것을 가르치겠다고 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배운 그 지식에 갇혀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이 글을 써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1818-30절 말씀입니다

복음의 말씀에 18-25절 말씀은 해석을 해서 올려놓았습니다.

그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인데 사실 저도 쉽게 생각을 했는데 이 설교를 작성을 하면서 많이 생각을 했고 또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설교를 다 작성을 하고 그것을 보다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아서 다시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9장에 그리고 마가복음10장에도 나오는 동일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따로 떼어서 해석을 할 수 없고 1818-30절 말씀을 전체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어 보면 단 한 가지만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안 따먹었다면 아담은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서 영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행위 언약에 실패를 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영생을 할 수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행위 언약입니다

바로 이 율법을 다 지키면 누구라도 영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실패한 이후로 어느 누구도 이 행위 언약을 온전히 다 지켜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율법을 다 지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거저 얻는 은혜입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은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택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가 대적을 하기 때문에 이 둘을 함께 취해서 영생을 얻으려 하다가는 영적으로 간음하는 자가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까지는 이스라엘이 잘 몰랐습니다.

물론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방법을 모르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 부자 청년도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질문을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율법을 지켜서 얻는 방법만 알고 있었고 그 방법 외에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네가 계명을 알지 않느냐고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대답을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런 율법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기 때문에 당연히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다 지키면 의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의롭게 산 자기는 분명히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자부 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가졌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전도서7:20절을 보면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성경의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서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사람들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율법의 기능에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부자 청년을 만나 이런 대화를 하시고 이것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는가를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영생을 얻는 두 방법이 있습니다. 이제가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율법을 지키는 그 방법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까 예수를 쫓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 앞에 와서 영생에 대해서 물으면서도 율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22절 말씀에 나를 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부자 청년이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안 주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사실 예수님을 쫓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이 청년은 예수님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가 어려서부터 지켜왔던 그 율법을 쫓기 위해 돌아 간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리지 못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절대로 자기의 의를 버리지 못 합니다

어려서부터 정말 힘들게 지킨 그 율법의 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부자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가 행한 율법의 의를 절대로 버리지 못 합니다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입니다

자기 율법의 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으라고 했지만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사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안 주고는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이 부자 청년이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 하니까 그래? 그럼 얼마나 할 수 있는가 보자 그럼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줘 봐라 하니까 못한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 세상에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이 아주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핵심은 율법을 버리고 예수를 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율법주의 사고에 갇혀 도저히 자기가 지키던 율법을 버리고 예수를 쫓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28,“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는 육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율법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쫓을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실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버렸습니까? 베드로가 지혜가 있어 예수님을 알아보고 스스로 버렸다고 생각합니까? 베드로가 버렸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베드로를 제자 삼으시기 위해서 버리게끔 만드셨습니다. 베드로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버렸다기보다는 주님의 역사로 인하여 버렸다는 것이 맞습니다.

 

절대 우리는 못 버립니다.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치 그런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내 의지로 버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지 자기가 지혜가 있어서 자유의지가 뛰어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닫기 바랍니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예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서는 부모도 자녀도 그리고 아내도 버릴 수 있다고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자요 진리에 이르지 않은 자요 믿음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한 자입니다

 

에베소서6: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골로새서3:20절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내 부모에게 순종을 하고 내 아내를 기쁘게 하고 또 아이를 잘 가르치는 일은 주 안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도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없다고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문제가 생깁니까?

베드로가 없으면 또 다른 사람을 세워서라도 주님께서는 복음의 일을 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돌들로서도 찬송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당신의 일을 한다고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또 아내나 자녀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주님은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5:8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사도 바울은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라고 저주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믿음이 있는 성도가 절대로 자기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것을 용납하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실제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아내를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은 율법의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모든 율법의 시작은 바로 이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자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율법을 버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실제 부모나 형제나 자녀나 아내를 버리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부자 청년이 무엇을 못 버렸습니까?

율법을 버리지 못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당시 율법적으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진 자였습니다. 아니 그 당시 거의 모든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율법의 시작이 어디냐면 바로 가족입니다 실제 가족을 버린 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버리라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렇게 율법을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무엇이냐면 이 부자 청년이 버리지 못한 율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0:30절을 보면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실제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집을 버렸다면 어떻게 백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백배를 받으면 축복이 될 텐데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백 명이 생기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것을 다 백배나 받았는데 왜 핍박을 받겠습니까?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그는 믿음을 버린 자라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제 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가장 기초 되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백배나 받습니까?

 

마가복음3:33-35절을 보면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누가 형제고 누가 부모고 누가 자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형제요 부모요 자매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혈통으로 나야 부모요 자녀요 형제인데 그것은 정해져 있지만 믿음 안에서는 내 부모가 백 명이 될 수도 있고 형제가 백 명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백 명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될 수 없고 또 전토도 분명히 자기 조상으로부터 받은 그 땅만이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보았듯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자기 것을 내 놓고 서로 통용해서 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것 네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백배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 안에서 가능 합니다

율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들이 예수 안에서는 백배나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초대 교회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내 부모 내 형제만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부모요 또 내 형제가 되었고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사용했습니다.

 

왜 핍박을 받습니까?

 

갈라디아서4:29절을 보면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믿음이 있는 성도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왜 핍박을 하느냐면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안 지키고 예수를 쫓기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만약 교회에 나가면서 재물이 있는데도 십일조를 안내면 과연 그가 그 교회를 다닐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해진 절기를 나는 안 지키겠다고 하면 과연 그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나가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율법을 버려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킨 그 율법의 의를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버리라고 하면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핍박을 하면서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 합니다 그것은 마치 혈육의 정을 끊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절대 버리지 못 합니다

아마 자기 부모는 버릴 수 있을지언정 자기 아내는 버릴 수 있을지언정 자기 형제는 버릴 수 있을지라도 절대 자기의 율법의 의는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버리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버리는 것 보다 더 힘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이 그것을 버리기 힘든가를 비유해서 마치 부모를 버리는 것으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의 의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느라 간증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0:31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공동번역입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누가 첫째 입니까?

바로 부자 청년이 첫째입니다 자기 율법의 의로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율법을 버리고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을 사람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이 첫 째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나중 된 자는 바로 우리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하다가 실패를 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외인이었던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수많은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를 한 그 율법을 다시 지키겠다고 하면서 율법을 세우고 연구를 하고 있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고 예수를 쫓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쉬운 방법을 모르고 율법과 예수를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취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간음을 하는 행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셨는데도 이방인들이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내가 예수를 쫓으려면 반드시 율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 율법의 남편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신부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죽은 율법을 다시 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못 버렸습니다.

역시 이방인도 다수가 이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모를 버리는 것보다 심지어는 자녀를 버리는 것보다 율법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버리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지키고 있다면 그것이 내 의가 되고 있다면 여러분은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죽은 율법은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 영생을 얻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