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64강, 마 24장 강해(豫言4)

윤주만목사 2019. 4. 13. 07:52


64, 24장 강해(豫言4)

(prophecy)

 

마태복음 24:17-18절을 보겠습니다. (41)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로마의 1차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포위 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가 로마의 내부 사정으로 군대가 물러갔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려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보거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씀입니다 또 밭에 있는 자도 겉옷을 가지려 돌이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급합니다.

아주 다급하게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피를 자기들이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예언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성도들은 실제 이렇게 로마의 포위가 풀리고 성문이 열리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실제 육의 일입니다

우선 성도들의 생명을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군대가 에워싸이는 것을 보면 예루살렘의 성전이 로마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죽을까를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예루살렘에 대해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때는 육체의 생명을 보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생명이 보존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실제 역사를 통해 나타났던 예언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말씀이 종말의 때로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붕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가지 말고 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겉옷이라는 것은 재산과도 같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옷이 풍부하던 때가 아닙니다. 당시 겉옷은 재산입니다

 

출애굽기 22:26-27절을 보겠습니다. (117)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물론 겉옷은 구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겉옷이 얼마나 귀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동 지방에서는 겉옷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실제를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겉옷이 없으면 잠을 못 잡니다.

종동 지역의 날씨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겉옷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 겉옷은 마치 재산과 같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집에 있는 재산도 생각하지 말고 겉옷도 생각하지 말고 빨리 너희 생명을 보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도 당시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했던 성도들도 다 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제자들에게 하시고 로마가 쳐 들어오면 어떻게 피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용을 합니다.

종말론 자들이 아주 잘 이용하는 말씀입니다 봐라 성경에 종말의 때가 얼마나 급하게 오는 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지붕에 있는 자도 자기 물건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도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빨리 산으로 피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산이 교회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종말론을 주장하던 이장림이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휴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 재산들을 다 가지고 교회로 와서 그것을 교회에다 다 바치고 휴거를 기다렸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정말 주님께서 오시는 마지막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피해야 한다고 믿고 자기 재산을 빨리 다 정리를 하고 교회로 들어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종말론 자들이 일어나면 이 마태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이용을 하고 교인들을 미혹을 했습니다. 종말의 때라고 하면서 우리가 뒤도 안 돌아보고 피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렇게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30-31절을 보겠습니다. (125)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며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416-17절 말씀과 누가복음 1731절 말씀은 똑같아 보입니다. 아니 누구라도 이것에 대해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고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루살렘이 망할 때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실제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7장은 비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마태복음24장의 말씀은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은 실제 예루살렘이 멸망을 할 것을 예언을 하고 있고 누가복음 17장은 종말의 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같은 말씀이 아닌데 같은 말씀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은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를 그대로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고 하나는 종말의 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하는데 거의 같은 말씀과 같이 보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맞습니다.

마태복음 2415-20절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 2120-2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720-37절 말씀은 마태복음 2423-4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우리가 바로 분별을 해서 보아야지 마치 모두가 종말의 때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예언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군대가 잠시 물러간 틈을 타서 성도들은 모두가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정세가 안정이 돼서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재차 포위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들이 승전을 했다고 축제를 즐기고 있는 예루살렘에 갑자기 타이터스 장군이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기 시작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4:19절을 보겠습니다. (41)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실제 일들입니다

마태복음 2415-20절까지는 실제 예루살렘이 멸망을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일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제자들이 세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첫 번째 예수님께서 성전을 보시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하신 그 말씀에 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묻고 예수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예언을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타이터스가 침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를 해서 사방으로 토성을 쌓았습니다. 1차 침공 때 로마 군대가 도망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이 착각을 했습니다. 이번 싸움에서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자기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사 항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신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가를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언을 바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깨우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20절을 보겠습니다. (41)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춥습니다. 중동 지방에서 겨울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설령 도망을 가더라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설령 도망을 가더라도 추위와 굶주림에 죽게 되니까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대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예언으로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이 일을 늘 가르쳐 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일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전쟁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식일에 이 일이 되지 않게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만약에 성도들이 알고 그 친족들과 이웃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을 하려고 해도 그들이 전혀 듣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죽어도 안 도망갑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는 자기 생명이 죽어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포위당하는 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가 이차 침공을 할 때가 바로 유월절이었습니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던 사람들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있던 때였습니다. 유월절 안식일에 로마가 갑자기 다시 침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급히 모든 성문을 닫고 그 안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도망 안 갑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해도 더구나 유월절에다 안식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이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차라리 그 안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도망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왜 하고많은 날이 있는데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대적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게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명절인 안식일에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 몸을 일단 피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전쟁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이 요새와 같이 되어서 쉽게 로마 군대가 진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성을 쌓고 완전히 포위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식량이 쉽게 바닥이 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더 많았고 식량이 금세 떨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요세프스의 전쟁사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일들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들을 지금 여러분에게 사실 그대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이제 밖으로 한 두 사람씩 도망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성 안에 있어도 굶어 죽으니까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밤에 도망을 갔습니다. 사방으로 포위가 되어 있는데 도망을 가다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로잡힌 자들을 로마의 군대가 토성 위에다 십자가를 세우고 그들을 매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 피 값을 우리가 받겠다고 한 그대로 로마의 군대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많게는 수백 명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갔습니다. 이렇게 참혹한 죽음들이 거의 육 개월 동안 이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뿐이 아니라 강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들이 다 훼손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밖으로 도망을 가면서 그래도 나가서 살려고 금이나 귀한 보석이 있으면 그것을 삼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밖으로 나가다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붙잡고 보니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연히 강도가 그들을 죽이다가 그 배에서 귀금속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강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을 나온 사람들의 배를 다 갈라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로마 군대에까지 퍼졌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대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붙잡히면 귀금속을 얻으려고 배를 갈랐다고 합니다. 너무도 참혹하게 죽이는 것을 보고 군대 장관이 그것을 못하게 했을 정도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안은 어떠했습니까?

식량이 이제 거의 다 떨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로 훔치는 일이 빈번해졌고 식량을 얻기 위해서 서로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도 식량이 다 떨어 졌습니다. 정말로 성안에서는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군대는 항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하다 보니까 이제 로마도 죽이는 것도 지겨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도망자들을 붙잡아서 포로로 팔았습니다. 그런데 포로가 너무 많다 보니까 아니 밴 자들은 아무도 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밴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다 죽였습니다.

 

신명기 28:68절을 보겠습니다. (307)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실으시고 전에 네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대적에게 노비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포로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살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이 밴 여자들에게는 화가 그대로 임했습니다.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스라엘에 아이 밴 여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을 당했는가를 역사가 그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 값을 자기들이 받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피 값을 자기들이 받겠다고 한 그대로 예루살렘에 안에 있던 자들을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만한 환난을 주셨습니다. 실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노예로 팔려나간 사람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아미 밴 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이 밴 자들 뿐 아니라 노예로서도 가치가 없는 사람은 식량이 아까워서 다 죽였습니다. 그렇게 죽으면서 까지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항전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피 값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당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까 이제 젖먹이는 아이들을 빼앗아서 그 자녀의 고기를 먹기 시작을 했습니다. 젖먹이는 아이를 빼앗기도 했지만 실제 그 부모가 자녀를 잡아서 먹었다고 전쟁사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6:26-29절을 보겠습니다. (189)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실제 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아들들을 잡아먹고 또 그 고기를 빼앗기고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녀를 잡아서 먹다 보니까 집안에서 고기 냄새가 나니까 강도들이 들어와서 그 고기를 빼앗아서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참혹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이 당연히 받을 벌입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를 삼아야 하는 예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성경이 예언을 하고 있지만 그런 화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아무리 강한 군대가 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무지함이 결국에는 이런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천국의 백성이 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화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화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정말 내가 화를 당할 사람인가 아니면 축복을 받을 사람인가를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런 참혹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구나 당시에는 너무도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죄 입니다

그리고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다 받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입으로 한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창세로부터 이런 환난이 없을 정도로 큰 환난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환난은 이스라엘이 성경을 모르고 스스로 화를 자초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성경을 모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이방인들이 당할 영의 일이라는 것을 또한 예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해서 그들이 당하는 환난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입으로 한 말 그대로 자기 자손들이 또 그 피 값을 지불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2차 대전 때 유대인의 학살입니다.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을 합니까? 제가 히틀러를 두둔하고자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한 그대로 돌려 주셨습니다.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를 죽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대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죽였습니다.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자기들 손으로 죽이면서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갚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참 이상합니다.

그 피를 왜 자기들만 받으면 되지 자기 자손들까지 끼어 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시고 지금 이 시대 이방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6:6절을 보겠습니다. (358)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면 이 시대는 영적으로 못 박아 죽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그 일들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현저히 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타락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유익입니다 타락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현저히 욕을 보인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무지해서 그런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똑같이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타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타락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타락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이 어떤 화를 당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을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믿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초보에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왜 못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어려운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쉬워서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주여, 주여 하고는 있지만 실제 그들은 아직도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역사를 통해서 환난을 당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실제 전쟁사의 참혹한 것은 다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죽인 것이 얼마나 큰 악인가를 아직까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전쟁사는 말 합니다.

포로로 잡힌 사람만 십만 명이 넘는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백만 명이 넘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인구가 이백만명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전이고 우리보다 적은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을 당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성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예언대로 이 성전이 안 무너지고 아직까지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더욱 더 이스라엘에 의해서 율법주의로 빠지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을 성지순례라고 하면서 다녀오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성전을 그냥 두셨다면 아마도 지금 그 성전이 엄청난 우상으로 변해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성전입니다

첫 번째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렇게 까지 참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스룹바벨의 성전은 헬라에서 나온 왕 안티우크스 에스파네스에 의해 완전히 훼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암흑기를 지나 세 번째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이스라엘은 보이는 성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보이는 건물을 지어 놓고 교회라고도 하고 성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이 필요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보여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성전을 다시 지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것입니다

그것은 티끌과 같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로몬 성전도 그랬고 스룹바벨 성전도 그랬고 또 헤롯 성전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 하신 그대로 모든 성전이 다 훼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건물을 짓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실제 유럽의 교회들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타이터스는 이 성전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전쟁사를 보면 타이터스 장군은 이 성전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어떻게 하든지 지키려고 했던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예언을 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로마의 장군이라 해도 성전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사입니다

타이터스는 이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나로 하여금 피로 이 성전을 더럽게 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지도자들은 끝까지 항전을 하면서 오히려 성전을 지키려고 했던 타이터스의 호소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타이터스는 군대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이 성전을 훼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극한 원한을 가진 군인들이 말을 듣지 않았고 또 성전외부와 내부에 금으로 칠해 있는 것을 보고 또 성전에 금은보화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군대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약탈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성전은 순식간에 불타 버렸습니다.

그렇게 헤롯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건물들이 다 그렇게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건물을 보아서는 안 되고 내 안에 성령이 임재를 하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21:23절을 보겠습니다. (13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누구입니까?

분명히 이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5-20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헤롯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해서 그들이 스스로 그 피의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아 주신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종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제자들이 어떤 질문을 했고 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을 하시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종말이라고 함으로 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 밴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시집을 가서 아이를 가지면 안 되는 것으로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헤롯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때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수님께서 예언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특히 주의를 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장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가 기록을 했을 때는 장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다 보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들이 연결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복음 2415-28절까지 연결이 되는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예언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 가지만 한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15-20절까지가 한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헤롯 성전을 보시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어느 때에 그 일이 있겠습니까? 물은 것에 대해서 그때에 있을 일들을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고 그대로 이루어 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절부터는 다른 예언입니다

주의 임하심에 대해서 예언을 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참으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예언이 다른데도 한 제목으로 해서 묶어 버리니까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같은 예언을 하신 것으로 보고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24절을 보겠습니다. (133)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때 죽은 숫자가 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백만 명이라고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로마에 저항을 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항을 한 것도 모두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만 명 이상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웬만한 사람은 살 사람이 없어서 죽였다고 할 정도로 포로가 넘쳐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노인이나 아이는 물론 죽였고 또 아이 밴 여자들도 다 죽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정말 얼마나 처참했는가 하면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갈라서 죽였다고 전쟁사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포로들이 너무 넘쳐나니까 그런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포로가 되었으나 살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이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워낙 굶주리다 보니까 어느 집에서 음식 냄새만 나도 떼로 몰려가서 강도짓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고 그 이름을 불렀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런 악을 행하면서도 그들은 이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들이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을 보이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만이 성경의 예언을 바로 볼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언을 바로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더욱 진보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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