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64, 마 24장 강해 (豫言1)

윤주만목사 2019. 4. 13. 07:44


64, 마 24장 강해 (豫言1)

(prophecy)

 

마태복음 24:1-3절을 보겠습니다. (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언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을 예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시는 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예언을 바로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있는 사람은 많은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예언은 이미 지나간 예언들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3가지 직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선지자, 대제사장, 왕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말씀은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예언을 해 주시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 중에는 이미 지나간 예언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을 사람들은 거의 앞으로 있을 예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예언도 있지만 이미 지나간 예언도 함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말론 자들에 의해서 이용이 됩니다.

아니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을 앞으로 있을 예언으로 보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가 뒤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고 연구를 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언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해석이 안 되는 예언이 있다면 굳이 그것을 억지로 해석을 하는 것은 옳지 못 합니다. 사실 예언은 모르면 안 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푸는 그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람들에게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예언을 잘 해석을 하면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언을 해석을 하면서 오히려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다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유와 은유로 감추어 두신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그 지식이 자기를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를 해 주신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거의 이단성들이 있는 교회들이 성경의 어려운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다 보니까 자기들이 생각한 대로 아니 이용을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예언을 듣게 되는 순간에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성경을 몰랐습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히브리인이고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계시가 되어 있는 비유와 은유를 거의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거의 모든 교회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너무 쉽게 성경을 해석을 하다 보니까 이런 예언들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스가랴, 마태복음, 요한계시록

예언과 환상으로 되어 있는 이런 말씀들을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 시대 거의 모든 해석들이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교인들이 잔뜩 겁을 먹게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18절을 보겠습니다. (392)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예언을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너무 두렵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옥이 왜 두렵습니까? 믿음이 내 안에 있다면 지옥이라는 것은 전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옥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옥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지옥이 대해서 바로 알고 있다면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절대 지옥만은 가지 말아야 한다고 그 지옥에 가는 일이 있다면 끔찍하다고 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언입니다. 그 예언들을 잘못해석을 해서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교인들에게 은근히 겁을 주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이라면 그 말씀을 들으면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서 강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죽어서 지옥에 갈까봐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의 때에 자기가 환난을 당할까봐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벌이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늘 주의를 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가 아니면 거짓을 전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내가 한 설교를 듣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서 교인들에게 형벌을 받게 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성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먼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두려움을 주고 있다면 그들은 거짓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줘서도 안 됩니다. 설령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하늘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런 것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해서 이야기를 하면 누구라도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형벌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서 두려움을 완전히 쫓아 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복음을 듣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런 예언의 말씀들을 해석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교인들에게 겁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교인들은 자기들이 그런 형벌과 환난을 당하지 않으려고 행위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을 줘서 행위에 빠지게 만들고 있고 그 행위로 인하여 반드시 진노를 받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잘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정말 두려워할 만한 말씀들을 이야기 하면서 잘못 믿으면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행위에 빠지고 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우리가 두려워할 만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로부터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실제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봐라 잘못 믿으면 이런 환란을 당하게 된다고 하면 교인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고 잘 믿으려고 합니다. 그 잘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행위를 하면서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들이 잘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다 행위입니다. 사실은 그 행위로 인하여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약간의 두려움을 주다 보니까 행위로 그렇게 쉽게 빠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언을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행위에 빠져 결국에는 형벌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절대입니다

우리 성도는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이 든든한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시고 피할 바위가 되시고 있는데 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아이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아직 확증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나를 든든하게 새워주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시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령 누군가 예언을 해석하면서 두려움을 준다 해도 거기에 미혹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2절을 보겠습니다. (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성전 밖으로 나가시는데 제자들이 성전을 건물을 예수님께 보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바로 전에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성전을 주님께 보이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화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두 번이나 성전이 완전히 훼파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악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무너뜨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훼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는데 그것이 또 안티우크스 에스파네스 왕에 의해서 훼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헤롯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방의 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상징과도 같은 성전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23장에서 7번을 말씀을 하니까 당연히 제자들은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주님께 성전을 보이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보았습니다.

자가들의 눈으로 보이는 성전만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율법주의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솔로몬 성전을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뜨리셨을 때는 안 보이는 성전을 보아야 하는데 역시 이스라엘은 보이는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성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성전 건물을 보고 그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가 있다는 그 말에 제자들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성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헤롯 성전은 사실 이스라엘에 의해서 건축이 된 것이 아니라 헤롯이 왕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 46년 동안 건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성전을 짓고 난 후에 오히려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고 있는 제사의식에 너무도 깊이 빠져 버리고 말았고 또 제사의식을 지키다 보니까 율법이 성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전을 주신 것은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서인데 이스라엘은 보이는 성전을 통해서 자기들의 믿음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을 보겠습니다. (26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보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성전이라고 했고 그 안에서 너무도 의식에 빠져 외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서 그 안에서 외식에 빠져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외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온갖 외식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성전을 짓게 하셨을 때부터 그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전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보이는 성전에서 외식을 하다가 하나님의 전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식이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서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또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또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이방의 왕인 헤롯이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 성전 안에서 역시 이스라엘은 외식에 빠져 하나님의 성전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또 그렇게 외식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외식을 하고 있는 그 건물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다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외식에 빠져 있는 그 건물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사람은 이상하게 건물을 지어 놓으면 외식에 삐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 안에서 외식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역시 똑같이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역시 육적인 이스라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반드시 무너집니다.

무너지면 그 안에 있는 외식하는 자들은 모두가 다 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인 줄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외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역시 이스라엘의 성전이 무너질 때 죽은 것 같이 그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외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예배, 찬양, 기도, 율법의 행위,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는 행위 등이 모두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그런 것을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이 외식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아주 적은 외식 하나가 결국에는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별것 아니 것으로 사람의 이성으로 충분히 좋다 생각하는 그 외식이 사망으로 급히 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외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진저 말씀을 하시고 나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너무 외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외식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식을 하면서도 외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진리에 대해서 소경이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아서 혹시라도 내가 외식을 하지 않고 있는 가 늘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다 무너집니다.

이 세상에 세운 건물들은 다 무너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전이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보고 있는 건물들 안에서 외식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성전도 무너뜨린 하나님께서 이방의 교회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 안에 외식이 있다면 다 무너뜨립니다. 이 말씀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망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4:3절을 보겠습니다. (41)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키가 바로 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중요한 말씀은 그냥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3절을 바로 이해를 해야 나머지 말씀들을 바로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3절을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성경에서 메타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유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들을 해석을 할 때는 정말 잘못 보고 스쳐 지나가는 그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말씀보다는 아주 자극적인 말씀을 해석하려 하고 있고 또 상징으로 되어 있는 말씀들을 억지로 해석을 해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나와 감람산 위에 앉으셨습니다.

감람산은 우리로 하면 남산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루살렘의 거의 모든 절경이 이 산에 올라가 있으면 다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하면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말씀하시고 성전에서 나와 저녁때입니다 이제 막 해가 지는 그런 때에 제자들과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헤롯 성전입니다

그 성전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는가를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46년 동안 지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지을 때 돌로 쌓아서 지었는데 돌과 돌의 틈이 안 맞을 때는 그것을 금으로 해서 맞추었다고 합니다.

 

돌 위에 돌을 얹습니다.

그럼 아무리 정교하게 돌을 자른다 해도 틈이 딱 맞지가 않습니다. 그런 틈을 다 금으로 메워서 성전을 외부에서 보면 전체가 마치 한 돌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벽을 전부 금으로 칠했습니다. 그 큰 성전의 외벽을 전부 금으로 칠했으니까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임재 해 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감람산에 앉았을 때는 예루살렘에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전에 그 노을이 비추면서 예루살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갔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전체가 노을에 비친 황금빛으로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전을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면서 마지막 때에 될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 일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의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24장을 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모르게 되면 전혀 다른 해석이 될 수 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교인들에게 겁을 주고 있습니다.

 

3가지 질문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보시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세 가지 질문을 예수님께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헤롯 성전을 보시고 나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는 그 말씀이 어느 때에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은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는 일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종말의 예언이라고 하면서 어느 때에 종말의 때가 있겠습니까? 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헤롯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어느 때에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는데 이 모든 말씀을 마치 종말의 때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릅니다.

성전이 무너질 때와 종말의 때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마치 모두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24장의 말씀에는 성전이 무너질 때 일어날 일과 그리고 주님이 다시 임하실 때의 일과 그리고 세상 끝에 있을 징조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말씀을 마치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들로 해석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성전이 무너진 때는 서기 70년경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일어날 일을 가지고 마치 종말의 때에 있을 일이라고 해석을 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헤롯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때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가장 앞에 있는 질문은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마태복음 24장 전체는 종말의 때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 잘못 보게 되면 이렇게 종말에 대해서 이상한 주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게 됨으로 해서 교인들을 겁을 주게 되어 있고 그것이 두려움이 되어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들이 섞여 있습니다.

헤롯 성전이 무너질 때의 일과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와 세상 끝의 징조가 같이 있습니다. 24장은 정말 주의 깊게 보아서 어느 말씀이 어디에 해당이 되는가를 바로 깨닫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말의 두려움을 주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하나씩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4절을 보겠습니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세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14절까지는 이 세 가지 답변을 하시기 전에 먼저 미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일이 있는데 사람들이 미혹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세 가지 질문의 답을 하시면서 사람들이 미혹을 할 것이니까 너희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사람의 미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통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이런 미혹이 좀 덜하지만 이단들에게서는 이런 미혹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데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쉽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의 문제인데도 너무도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그것은 성경보다 사람을 더 신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듣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말입니까? 저 역시도 설교를 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제가 성경에서 아무리 바르게 설교를 한다 해도 역시 사람의 말입니다. 성도는 이렇게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전하는 그 말씀이 성경의 말씀과 같은가를 스스로 지혜를 구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사람의 말을 너무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말을 전하면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 이 시대도 사람들이 보기에 신뢰를 할 만한 사람들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5절을 보겠습니다. (41)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가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말에 너무도 쉽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금 이 시대 신천지라는 곳에서 자기가 보혜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주장에 사람들이 쉽게 미혹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안 보고 사람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자기 영혼 구원에 대해서 지혜를 구하면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실 텐데도 사람들은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눈에 안 보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가를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와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말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미혹이 됩니까?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또 다른 아들도 보내 주실 수 있다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들로부터 해서 또 다른 그리스도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가 생겨나면서부터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혹이 되는 이유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말에 쉽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또 어떤 일이 있습니까?

신사도운동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사도의 계승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완전히 이단이라고 하니까 신사도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성령의 권능을 가진 자들이 탄생이 되고 있고 그들은 마치 사도의 권위가 있어서 그가 말하는 것은 절대적인 권위가 있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과 자기가 사도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신사도운동은 자기들만이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체험을 한다고 하면서 이상한 것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말에 쉽게 미혹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만이 특별한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에는 자기들만의 그리스도의 권능을 가졌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이 신사도운동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령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하는 것을 주장하면서 자기들이 그런 능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능력을 행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점점 이 신사도운동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얼마나 교묘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으니까 이제는 신사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능력을 받은 자라고 하면서 실제 집회를 통해서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사도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사도가 이야기 하는 것을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고 교인들을 그렇게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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