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산상 수훈의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이제 경계를 해야 하는 사람인 바로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 문을 막고 있는 사람이 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합니다.
선지자
미리 아는 자를 선지자라고 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꼭 성경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서 어느 분야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자기 지식을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은 그가 말하는 대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정보가 공유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일도 아무리 정보가 발달을 해서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도 그 정보라는 것이 꼭 맞는 것이라고 말하지를 못 합니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신뢰를 하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일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또 어느 일은 도무지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분별이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치 이야기만 해도 서로가 비판을 하다 보니까 사실 어느 말이 맞는지 그것을 바르게 판단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누가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누가 바른 정치를 하는지 일반 소시민들이 그것을 정확하게 분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일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본능을 따라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잘 판단이 안 서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있는 것입니다 지역의 감성을 자극해서 정치적으로 서로 이용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다 이 지역주의가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을 해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우리 소시민은 정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물며 영의 일인 성경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고 거기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을 사람들은 인정을 하고 있고 또 그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경 심오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고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오묘한 것은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얼마든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또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최고의 학부를 공부한 사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영의 일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세상 적으로 최고의 학부를 공부를 한 신학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 학부를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공부를 많이 한 그들이 자기들의 지식이 올무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물론 목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또 신학이라는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반대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이 되어서 자기를 높이게 되는 순간에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3: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66쪽)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이라고 하는 것 역시 이 세상의 지혜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이렇게 세상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고 거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미혹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릅니다.
사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성경을 연구를 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진 자들을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교인들은 평생 성경을 몇 번 읽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많이 읽는 교인들도 있지만 그렇게 읽는다 해도 그 역시도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데 있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유명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회심을 하고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 마다 강연을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얼마나 읽었고 또 성경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강연을 하러 다닙니까? 제가 그 분을 비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저명한 학자 역시 성경을 아주 쉽게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혜입니다
워낙 저명한 학자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빠르게 이성적 지식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이성적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그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도 쉽게 해석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큰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거짓이 거짓을 낳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은 역시 거짓 선지자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배워서 모두가 거짓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거짓으로 변해 있을 때 주님께서 오셔서 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간요법이 있습니다.
물론 상당수는 다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요법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믿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각에서 그것이 너무도 타당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두는 거짓 선지자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군가가 잘못된 것을 가르치면 그것을 배운 모든 사람들은 다 거짓 선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만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그렇게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있는 그 사람도 아니 교회 안에 먼저 들어와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 그 자체가 거짓 선지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 선지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선지자입니다. 세상 사람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있어서 나는 선지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지자가 되어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먼저 나와서 이 세상에 대해서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우리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고민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장 본문 말씀은 천국을 가는데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말씀이 복음적 해석이 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누가 들어가게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불법을 행하는 자는 못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자기들은 다 아버지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은 불법을 행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법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그 행위들이 거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명확합니다.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또 불법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전혀 다른 해석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교회에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이단들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이단을 향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실 때는 자기들이 예수를 아주 잘 믿고 있고 또 천국에 들어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주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주라고 불렀지만 실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불법을 행하는데 있어 아주 열심을 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29: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00쪽)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가까이 하여 존경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입술로 존경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입술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조차 부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왜 천국에 못 들어가느냐면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그들은 믿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믿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민족이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였지만 실제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는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시대 역시 모르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데 안 믿습니까?
믿으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 있을 것 아닙니까? 바로 이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믿음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그는 그저 종교적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뭐와 같습니까?
불교에서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가 부처를 믿고 있다고 하는 것과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부르면서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종교적인 의식으로 자기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주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을 부르면서 살아왔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왔지만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같이 행동을 했지만 실제 그들은 믿지를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교회에 나와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천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아주 적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적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또 성경을 본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그 뜻을 완전히 행치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 갈수가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노력해서 천국에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천국은 노력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6:38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주님의 뜻을 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셔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서 구원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을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는가 하는 뜻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성경은 거의 시적인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고 그것이 누구의 뜻인가를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장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육정으로 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로서 난 성도가 있습니다. 이렇게 난 성도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살리는 그것입니다.
부활입니다.
만약 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42절을 보겠습니다. (신 135쪽)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십자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되는 분입니다 사실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몸을 그대로 입고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그대로 당해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자기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서 죽음을 택했지만 주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교회 안에서 샤머니즘에 빠져 이상한 행위들을 하고 있고 또 주님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주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주님이 하나님의 어떤 뜻을 행하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 뭐 합니까?
그 뜻을 모르고 있다면 그가 믿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다른 종교를 믿는 종교적인 행위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종교화 되어 있어 자기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쪽)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있지만 인생들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소자를 실족케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로 인하여 소자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소자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을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다니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소자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 문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천국 문을 막아서서 자기도 들어가지를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자기들의 손으로 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천국 문을 막고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기 행위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천국 문을 막고 소자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행위가 좋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자부하던 그 시대가 가장 악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사람만이 은혜가 넘치게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위가 좋으면 좋을수록 참으로 묘하게도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행위가 좋으면 은혜가 더욱 넘쳐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은혜가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산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최고의 부자가 천만 원씩을 준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지에게는 은혜가 될 수 있지만 중산층에게는 자존심이 상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거지인 줄 아느냐고 하면서 부자가 주는 것을 거절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을 싫어할 사람이 없겠지만 아마도 다른 것을 준다면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존심이 구겨져 그것을 거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합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다 소자가 되어서 주여 주여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기의 행위가 보이기 시작을 하면 주님의 은혜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들이 행하는 율법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까지도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20: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3쪽)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천국은 누구 것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이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면 먼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대가 악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들의 뜻을 따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인정을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시가 되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있지만 칼뱅주의의 5대 강령이 사라져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9: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는데 이 자식들이 아직 낳기도 전에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는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무엇을 더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말이 안 됩니다.
심각한 도전이 됩니다.
그럼 선이나 악을 막 행해도 되겠네 하면서 그런 하나님이라면 자기는 인정을 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도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구원해 주셔야 맞는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의 뜻이 잘못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을 행하고 있는 것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의로운 것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의롭게 살아가는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시편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분명히 선이라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선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은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 가 찾아본즉 하나도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말이 맞는가를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에서는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과 같은 사람은 자기의 의가 도포와 면류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더러운 옷과 같은 그 옷이 욥의 눈에는 도포와 면류관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대비가 되는 말씀이 있을 때 어느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기준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비유하면서 거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초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이성의 눈으로 행위를 보면서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다 거지입니다
다 선을 행한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서게 한 사람은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 너무 억지 같아 보이기 마련입니다 아니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그 주권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에서도 썩었고 야곱도 썩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의 눈에는 하나는 썩었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덜 썩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의 출발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신기루에 빠져 들면 어느 누구도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는 분명히 십일조도 잘 내고 있고 주일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때 분명히 자기의 의가 더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그래도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 그것에 반하는 말씀을 있을 때는 어느 것이 기초가 되는 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쉽게 믿음의 비밀을 알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무엇이 기초가 되는지를 모르고 아니 그런 말씀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에 나가서 맹목적으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어리석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이미 초대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나와서 성도라고 서로 말하고 있지만 실제 교회 안에는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너무도 똑똑하고 교회 안에서 누구나 인정을 하는 그 사람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아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다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리석습니다.
갈라디아서3: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주의 뜻을 모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해서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가 벌써 어리석음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바울이 안타까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주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어리석은 자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로서 주님의 뜻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으니까 이제 구원은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구원 받았으니까 이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이냐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를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뜻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믿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율법을 지키면서 주님의 뜻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의인이 되면 뭐합니까?
욥과 같이 자기에게서 어떤 죄도 찾지를 못하며 뭐 합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었으니까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믿지를 말지 누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이 함부로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의 뜻을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마치 그런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은 오직 영혼 구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인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의인을 만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교회와 같이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교인들은 다시 율법의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대입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내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의 뜻을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이 사람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성경을 보아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처절할 정도로 싸워야 하는 것이고 이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육체로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로 빠져 있는 사람을 사도바울이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어리서음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사실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믿음이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냐 믿음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만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4:3절을 보겠습니다. (신 331쪽)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거룩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거룩해 질 수도 없고 육체적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한가지입니다
음란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과 음란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거룩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음란을 버리라고 말씀하겠습니까? 바로 이 음란은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두 남편을 섬기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남편을 섬기는 음란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필수입니다
우리가 거룩해 지려면 반드시 음란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닌 율법을 지키고 있는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거룩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 질 수 있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거룩해 지는 방법입니다
한 가지는 완전하게 율법을 지켜서 거룩해 지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가져가심으로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해 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는 율법의 거룩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룩함 두 가지를 다 쫓고 있는 음란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인데 이 시대는 음란에 빠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어떤 음란에 빠져 있는 줄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드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음으로 깨끗해 졌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로 자기 육체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된 영혼이 거룩해 지는 것 말고 육체가 거룩해 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음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된 영이 거룩해 졌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영혼이 거룩해 지는 것인데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자기 육체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는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음란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그 방법이외는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성도를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서 음란을 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36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거룩해 지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을 행한 사람은 반드시 약속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뜻을 행하다고 하니까 무슨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마음으로 믿는 것도 역시 뜻을 행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입니다
약속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해 지는 것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에서 그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해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바로 이 생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행위에 속한 첫 언약을 실패를 해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담의 자손은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생명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다른 것 탐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분복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행하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마치 다른 약속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만을 우리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해 지는 그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해 진 성도를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는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그것 말고 하나님의 뜻은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물론 성도가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롭고 선하게 산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그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자기가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3:1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5쪽)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안 믿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만 육십 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기적을 보고도 그들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이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행위로는 아주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비밀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주시고 난 후에 바로 성막을 주셨지만 그들은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아주 잘 믿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은 믿지를 않았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천만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여 주여 하고 주님을 부르고 있고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실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노아 가족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도 롯과 두 딸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다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갔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다 믿는다고 하지요.
다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다수를 따라 그렇게 자기가 어디에서 죽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를 따라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각이 없어서 자기가 율법의 행위를 행하고 있다는 것조차 그것이 음란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즐거워하지 않으시고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물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힘써 행해야 하겠지만 그런 제사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성이 없는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지혜를 자랑하고 있지만 구원을 못 받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7:30절을 보겠습니다. (신 102쪽)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세례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주는 세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또 장사 되고 다시 산 것을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물 세례는 아주 잘 받고 있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 마음으로 믿지를 못하고 있고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사가 그때만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종교화 되어 있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고 율법사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심각하게 바리새인화 되어 가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에 눈이 가려서 진리가 되시는 참 빛을 못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주님이 오시는 그 날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주여 주여 이름을 부르면 마치 모두가 다 선지자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주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들은 거짓 선지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 참 선지자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참 선지자보다는 거짓 선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적냐면 거짓 선지자가 많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적은 것입니다
마태복음24:10-11절을 보겠습니다. (신 41쪽)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지 않을 텐데 자기는 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미혹이 되면 자기가 참을 전하고 있는지 거짓을 전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자기가 거짓을 전하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사람이 미혹이 되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다 맞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북한 사람들은 마치 괴물과 같이 생각을 했던 것과 같이 그렇게 미혹이 되면 자기는 바른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알고 했습니까?
요한복음7: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56쪽)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 노릇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신성 모독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알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잘못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들도 진심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알고 하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합니다.
모르고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실 때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너무도 많은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고 있는 일이 되고 있는데 깨닫지 못 합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지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겁이 없이 너무도 선지자 노릇 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들로 인하여 많은 영혼들이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주여 주여 하는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진리를 전한다고 하면서 사단을 쫓아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렸다고 하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더러운 귀신이 그들 안에 들어와 아주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귀신을 쫓나낸다고 하는 그들이 오히려 더 악한 일곱 귀신에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금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이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육신을 따라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더욱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하는 것인 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성령은 영의 일을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육체의 일에 사람들이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그들이 오히려 더 악한 귀신에게 매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가게 하고 있다면 그는 귀신의 영에 미혹이 되어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성도는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많은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도무지 못할 일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적과 같은 일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또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교회 건축을 하고 있고 또 이웃 사랑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니까 모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일들을 교회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말 합니다
교회가 그런 기적을 아주 좋아하고 있고 그런 일들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주님께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교회를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선교 백년에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었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면서 한국 교회가 성장을 해 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때에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말씀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선지자 노릇을 한 사람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주님께서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는데 자기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냐고 묻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12절을 보겠습니다. (신 43쪽)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다섯 처녀가 나중에 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주님을 부르고 있지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교회 안에 있었지만 이들은 성령을 받지 못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의 최후가 어떻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음성을 듣는다든가 기도 응답을 받는다든가 어떤 집회에 가서 체험을 했다든가 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사적인 체험을 했을 뿐인데 그런 체험을 가지고 평생을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다가 주님께서 오시니까 주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하지 않고는 주님께서 나를 안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새 생명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안에 새 생명이 없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나를 아신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마치 주님께서도 자기를 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내 안에서 성령이 오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고 말씀을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실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거듭나지도 않고 이렇게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왜 모른다고 하십니까?
이들은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지를 않고 불법을 행하면서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너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 불법입니다.
내가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또 많은 권능을 행하는 모든 것이 다 불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불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는 선하다고 의롭다고 하는 그 행위들이 사실은 다 불법입니다. 선지자 노릇을 한 그것 역시 불법입니다
고린도후서6: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92쪽)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리고 의와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율법의 의 은사적인 행위가 다 불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나지도 않고 주여 주여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율법을 지키고 또 은사를 나타내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불법입니다.
마태복음7:23절 공동번역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이라는 것을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태복음7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교회 안에서 많은 행위들을 나타내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행하는 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모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불법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행위 그리고 은사는 다 불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3:2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의 법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믿음의 법을 따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것이지만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불법을 행하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무슨 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또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불법만 행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은 불법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약속으로 얻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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