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허물과 죄
에베소서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11쪽)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1쪽)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죄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든지 안 지었든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죄인이냐면 죽어야 하는 만큼의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자기가 어떤 죄인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경중을 따집니다.
내가 진 죄와 다른 사람이 진 죄를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마치 저울에 달아서 그 죄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세상에서는 살인자와 도둑질을 한 사람을 다르게 취급을 합니다. 또한 거짓말을 한 사람을 전혀 다르게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통이 죄가 되지만 외국에는 이미 그것은 죄가 아닌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내 죄가 다른 사람의 죄 보다는 가볍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상쇄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법을 지키면 죄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법을 잘 지켜도 죄를 진 것은 죄를 진 것이고 법을 잘 지킨 것은 법을 잘 지킨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살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를 내 목숨을 걸고 구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살인을 한 죄가 상쇄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 내 죄가 그만큼 가벼워집니까? 내가 열 사람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했다 해도 살인을 한 것은 살인을 한 것입니다 열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을 구했어도 살인죄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죄가 없어집니까?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한 번 살인을 한 것은 아무리 선을 행했다 해도 그것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작은 죄를 지었어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죄는 내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없어질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죄인입니다
자기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거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율법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들어가 자기 죄가 어떤 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은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법정에서 사형을 당해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죽어야 할 만큼 죄를 지었느냐고 따질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형을 받아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안 질 수 있습니까?
아마 교회 안에서 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노력을 하면 아니 마음에 의지만 강하면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의 마음을 감동을 해서 아니 율법을 잘 지키게 해서 죄를 안 질 수 있을 것 같이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원수가 무엇입니까?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이 원수라는 것을 안 믿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그 원수에 굴복을 해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문에 쓴 율법을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문이 무엇입니까?
글로 기록해 놓은 법을 의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글로 기록되어 있는 율법이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원수입니다 제가 율법이 원수니까 전혀 보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정의를 하고 있는 율법입니다 여기서 흔들려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무조건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다가 결국 그 율법에 의해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키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가는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리고 살인을 안 했습니다. 나는 살인을 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가 거짓말을 했느냐 그럼 살인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에 시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기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시기를 했다면 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바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살인을 안 했지만 시기를 한 내가 얼마든지 살인을 해서 사형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시기를 했다면 나는 살인을 합니다.
아니 이미 살인을 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왜 그런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율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사형을 받을 만큼 큰 죄를 지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사무엘하22:18절을 보겠습니다. (구 502쪽)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원수가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 원수가 나보다 힘이 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 보다 강하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것은 내 원수가 나보다 강하기 때문에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내가 살인을 안 할 수 있습니까?
내 원수는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살인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인을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원수는 언제든지 나를 살인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나 보다 강하기 때문에 살인을 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산울로 두름 같이 보호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살인을 안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아벨을 죽였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은 가인은 원수보다 너무 약했기 때문에 그것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이 그에게 없어서 아벨을 죽이는 살인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인을 할 수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내 원수보다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 때문입니다 원수가 나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살인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이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주일도 지켰는데, 내가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을 하는데 살인? 나는 절대로 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이 지혜롭습니다.
사람이 원수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서 원수보다 강하다는 것을 오해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원수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해서 타락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심으로 율법을 어겨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게 해서 원수가 누구인가를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강합니다.
자기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마음을 갖게 만들고 있고 그런 마음이 자기가 무슨 죄인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하고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약합니다.
우리는 살인자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편 강도보다 더 한 살인자라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바로 깨닫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기를 그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가식입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는 이 말씀이 내 가슴에서 절절히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것이 받아들이지 않고는 오늘 말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이것이 인정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죽을 만큼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은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내 허물과 죄가 어떠하길래 주님께서 죽은 우리를 살리셨는가를 바로 알아야 오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죄를 용서하셨는데 어떤 죄를 용서 하셨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제각각 많이 있습니다. 어떤 죄를 용서하셨으며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 또한 용서하셨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사야44: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2쪽)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도말 했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사라지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 십자가로 살아났습니다.
살인을 해서 사형 판결을 받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속죄 제물이 되셔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를 도말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죄 입니다 아담이 진 죄부터 해서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진 죄를 지고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43:2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0쪽)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죄도 역시 허물과 죄를 하나로 말 할 수도 있고 이것을 구분해서 말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와 이사야에서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허물과 죄 2가지를 기록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아니면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하면 좋은데 허물과 죄로 죽은 2가지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죄를 한가지로 말씀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로 나누어 구분하여 말씀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허물과 죄를 어떻게 구분 하십니까?
하나로 말 할 때는 허물도 죄고 죄도 죄 입니다 이것을 둘로 말 할 때는 허물은 원죄를 말하는 것이고 죄는 자범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로 말할 때는 허물도 죄 입니다
그러나 둘로 나눌 때는 죄와 허물로 나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 가운데 허물과 죄를 어떻게 하셨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원죄에 대한 문제부터 우리는 해결해야 합니다. 원죄를 말하는 것은 그것은 아담이 지은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인이면 그 자손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왜 죄인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죄를 안 져도 죄인입니다 아담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의인의 자손이 태어난다면 죄를 져도 의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자손이 죄를 안 져도 죄인이라는 것은 믿습니다. 그런데 의인에게서 나서 죄를 져도 의인이라는 것을 믿지를 않습니다. 오늘 이 문제를 바로 정립을 해야 합니다
왜 아담의 자손이 죄를 안 져도 죄인이냐는 것입니다
이사야1:4절을 보겠습니다. (구 968쪽)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라고 말씀합니다.
왜 아담의 자손이 죄를 안 져도 죄인인가는 종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죄를 안 져도 언제나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종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종자라는 것은 그것이 절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는데 아담이 죄를 안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와가 죄를 졌는데 아담이 받아먹지 않았다면 하와만 죽고 아담은 삽니다. 그럼 하와는 안 먹고 아담만 먹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죽습니다.
경우가 다릅니다.
하와만 먹었을 때는 하와만 죽는데 아담이 먹었을 때는 둘 다 죽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종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와를 종자로 보지를 않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드릴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거의 모든 것에 상징성을 두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의 뜻은 사람입니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여자라는 뜻입니다 여자와 사람은 다릅니다. 여자와 사람이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말씀은 여자는 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니라고 정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지만 씨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비유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가와 여자의 염색체에 의해서 자녀가 탄생이 되는 것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남자가 무엇인가 여자가 무엇인가를 통해서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종자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지 여자가 영향을 안 준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담은 진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종자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집에 콩을 하나 심었습니다. 걸음도 잘 주고 잘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자라고 보니까 밭에 자라는 콩보다 작은 것입니다 아주 정성을 드려서 가꾸었는데도 집에서 기른 콩은 밭에서 자라는 콩과 다릅니다.
그것은 밭에 있는 콩의 종자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종자가 다르면 아무리 잘 가꾸어도 그 종자 밖에 안 됩니다 행악의 종자라는 말씀을 합니다. 인간을 왜 행악의 종자라는 말을 붙였느냐면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종자를 바꾸어야만 간다는 뜻입니다 같은 종자로는 거름을 잘 주어도 안 되고 잘 가꾸어도 안 되고 정성을 드려서도 안 됩니다
종자를 개량해야 합니다.
콩나물 콩을 아무리 거름을 잘 주고 가꾼다고 해서 그것이 완두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콩나물 콩이 100%노력을 한다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완두콩이 열리게 하려면 반드시 종자를 완두콩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렇게 종자를 통해서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종자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노력을 해서 해탈의 경지에 오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죄악 중에 탄생한 인생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종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종자를 개량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 입니다.
종자를 안 바꾸면 안 된다는 이 말씀은 예수가 없으면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안 되고 마음을 닦는 것도 안 되고 최선을 다해서 죄를 하나도 안지어도 안되고 그 어떤 것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됩니다 이것은 영의 비밀입니다
세상의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를 변화 시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악의 종자를 완전히 개량을 해서 다른 종자로 만들어서 우리를 천국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자가 행악의 종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서도 선해 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콩이 팥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교회 안에서 콩을 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얼마나 강하게 세뇌가 되었는지 콩을 보고 팥이라고 하는데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자는 죄악의 종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그 종자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해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그들이 처량하기만 합니다.
이 세상은 세속에 물들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어느 시대에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정화되어 깨끗해 질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본질은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종자 개량을 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탄생이 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와가 왜 아담이 범죄 하면 죽는가는 하와는 아담에게서 낳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종자는 아무리 개선을 한다 해도 좋아 질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강아지를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강아지를 아무리 잘 가르치고 훈련을 시킨다 해도 그것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화는 안 됩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사람들이 혼미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사람에 가까운 동물이 있다 해도 그것이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만약에 진화론이 맞는다면 지금 이 시대에 분명히 사람에 가까운 동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반은 사람이고 반은 동물인 그런 존재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람과 비슷한 동물이 없다는 것은 진화론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종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사야7:14절을 보겠습니다. (구976쪽)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의 탄생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3장에서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자의 후손입니까? 남자의 후손입니까? 우리는 남자의 후손입니다 남자에게서 난 행악의 종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분이 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종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남자의 후손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여자는 자녀가 태어나는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을 설명을 하기 위해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4-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여자에게서 낳게 하신 이유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방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영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데 물론 그것도 전혀 아니다 고는 말 못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자가 다른 종자에게서 난다는 말씀입니다 여자는 씨가 없습니다. 종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여자는 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종자가 죄의 종자입니다
이 종자가 밭에 들어가서 낳으면 죄인을 낳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자가 와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하늘의 새로운 종자가 이 세상에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종자를 바로 이해를 해야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입니다 의의 종자가 밭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밭에 콩을 심었는데 콩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의인입니다 천주교에서 무염시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죄가 없는 상태에서 낳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마리아는 누구의 종자입니까?
아담의 종자입니다 행악의 종자이면 마리아도 역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상관없는 자녀가 탄생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가 죄인이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새로운 종자가 어떻게 탄생이 되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자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냥 하늘에서 내려오실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굳이 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라의 박혁거세처럼 알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종자가 되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또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밭은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나는 것입니다 밭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종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밭의 역할을 한 것이지 종자 역할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에게서 온 씨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씨 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영향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이 우리 육체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아가 행악의 종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을 시킨 것 같이 우리 역시 행악의 종자이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탄생 시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것 같이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우리 육체와 상관이 없이 거룩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종자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새로운 생명도 우리에게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리아가 행악의 종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한 것 같이 우리도 비록 죄인이지만 우리 안에 탄생이 된 그리스도의 영은 거룩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인 바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종자의 비밀입니다
고린도전서15:45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은 행악의 종자요 예수 그리스도는 의에 종자입니다
아담은 산 영이 되었지만 그는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우리 인생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새로운 종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살려 주는 영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각 사람 안에 탄생을 지켜 주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종자로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5:46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아담은 신령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자입니다 이 말씀은 종자가 전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우리가 입은 있는 육을 말씀을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새로운 영입니다. 이 둘을 종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우리도 신령한 영을 우리 안에 탄생을 시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은 신령해 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영만이 신령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또 이 신령한 것을 우리 안에 두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신령한 것이 내 안에 없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5:47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낳은 것이 다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낳고 두 번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말씀합니다. 종자가 다릅니다. 난데가 다르기 때문에 씨가 다르고 종자가 다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낳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탄생이 된 우리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으려면 어떻게 낳아야 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결론은 이 영의 비밀입니다
육으로 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낳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낳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고 자기 육체를 신령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48-49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첫 사람은 땅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습니다.
두 번째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에 속한 형상을 입고 왔고 두 번째 사람은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고 왔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우리도 두 번째 사람 같은 형상을 입어야 갈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속한 자의 형상을 입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사역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53: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33쪽)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는데 두 가지에서 다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조금 더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드신 후에는 음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잡혀가셔서 심문을 받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채찍으로 로마 병정들이 때렸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을 받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채찍으로 맞습니다. 40에 하나 감하는 채찍을 맞으면 몇 번이나 기절을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가죽에 유리와 납을 달아서 때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매를 맞았습니다. 심한 매를 맞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 후에 골고다로 가실 때 피를 흘리고 완전한 인간으로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대인의 다른 문헌에 보면 가다가 몇 번씩 기절했다고 합니다. 실제 십자가형을 당할 때 사람을 거의 반쯤 죽여야 고통이 덜하고 빨리 죽기 때문에 그렇게 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쫓아가면서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장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당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환경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불타고 굶주려 죽고 십자가에서 죽고 예루살렘이 망할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앞으로 당할 환난을 보시고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면 십자가를 눕혀놓고 먼저 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고 십자가를 들어서 구덩이에 세웁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마리아를 보시고 요한에게 내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리고 피를 흘리며 많은 고통 가운데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모두 당했지만 영적으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상함이 먼저 입니까? 찔림이 먼저 입니까?
예수님께서 아담이 진 허물을 처리하시기 위해서는 운명하셔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옆구리 찔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옆구리 찔린 것은 운명하셨을 때 찔린 것입니다 완전히 죽었다고 확인하는 것은 아담의 죄를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그전에 끌려 다니시면서 상한 모든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없애 버리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죄는 예수님께서 지셨지만 자범죄는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이 문제는 상당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으로 원죄를 용서 받았으며 자범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회개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모두를 한꺼번에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감당 하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처리하신 것입니다 만약 원죄만 처리하셨다면 나머지 자범죄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니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또 죄를 질 때마다 매일 회개하는데 만약에 죄를 짓고 회개를 못하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 하셨는데 찔림을 당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 보겠습니다.
요한일서5:7-8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성령과 물과 피라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찔릴 때 물과 피가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 물과 피는 우리에게 증거가 됩니다. 물론 이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언약의 피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 죄를 사해 주셨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되겠는가 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최초에 아담이 어떻게 자녀를 낳았습니까?
자녀라고 하니까 이상하지만 하와는 아담의 자녀입니다 자녀라는 것은 원체의 한 부분이 자녀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원체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가지고 자녀라고 하지 않고 아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최초에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옆구리 수술해서 하와가 탄생되었습니다.
아담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하와가 탄생되었습니까?
깊이 잠들게 하시고 탄생시켰습니다. 수술할 때 마취 하는 것과 같이 하시고 하와를 탄생 시켰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입니다
두 번째 아담도 십자가에서 깊이 잠들게 하시고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때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아내 하와를 탄생 시키셨고 두 번째 아담이 깊이 잠들었을 때 옆구리를 찔러서 그 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이 교회를 가르쳐서 아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5:28-3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6쪽)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둘이 합하여 한 육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합쳐서 한 육체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 육체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말 합니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인 하와가 아담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 하노라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남편과 아내 사이입니다 그러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하와를 탄생 시킨 것 같이 예수가 잠들었을 때 우리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탄생시키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깊이 잠들었을 때 새로운 종자의 아내가 탄생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온 종자의 아내가 그 때 탄생된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종자의 탄생을 알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깨끗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종자는 신령한 종자입니다
신령한 종자의 아내가 탄생됨으로 그의 아내 된 사람은 종자 개량이 되는 것입니다 종자 개량을 하지 않은 옛날 아내는 모두 행악의 종자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내 신령한 하늘에서 온 종자의 아내는 예수님과 같이 의에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아담을 통해 그의 아내가 어떻게 탄생이 되는 가를 이미 창세기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자기 몸보다 더 사랑을 하는 아내를 아담이 깊이 잠들게 한 후에 탄생이 된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성도도 예수님께서 깊이 잠드는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고 난 후에 탄생이 될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지만 그의 아내가 되는 성도가 탄생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고통을 당한 후에 우리에게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의 탄생입니다
하와는 아담이 잠들고 나서 탄생이 되었습니다. 하와가 스스로 탄생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늘의 신령한 영으로 탄생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깊이 잠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하와가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 육체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난 후에 일어난 영의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아내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죽고 난 후에 탄생이 된 아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면서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하늘로부터 온 신령한 생명이 탄생이 된 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셔서 허물과 죄를 담당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또한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아는 성도만이 은혜를 알 수 있고 하늘의 선물을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누구도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 주었을 때 아담이 하와가 가져온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줄 몰랐을 까요? 아담은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기억이 상실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 육체로 탄생이 된 하와를 너무 사랑해서 그것을 받아먹었습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조금 다르게 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왜 받아먹었을까요? 하와가 볼 때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여서 먹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하와가 주니까 아담이 그냥 먹었습니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 라고 하셨습니다.
둘이 한 몸인데 하와만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담은 알면서도 동반 자살 한 것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하와를 너무 사랑해서 동반 자살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죽으실 줄 아셨나요? 모르셨나요? 죽으실 줄 아셨습니다.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남편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기 몸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죽은 것이지 만약에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인을 위해서 왜 죽겠습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예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담으로 인하여 하와가 탄생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하와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물론 순서는 다를지라도 아담은 하와를 너무 사랑해서 같이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죽음의 고통의 맛보면서까지 함께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5: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174쪽)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는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물론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이기 때문에 자기 몸같이 우리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고난을 아시고도 피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어야 사랑하는 신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아가지 못하게 칼로 말고의 귀를 자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귀를 붙여 주시고 베드로에게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못하게 하시고 죽는데 까지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같이 죽어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죽었습니까? 찔러서 죽었습니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견딜 수 있는 분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아직 안 죽었는데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아직 안 죽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서 죽였고 예수님은 죽은 줄 알았기 때문에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달린 결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못 박아서 피 흘려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래서 죽었다면 옆의 강도들 보다 더 오래 있다가 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면 그렇게 빨리 죽지 않고 오래는 며칠씩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안식일이 돌아오니까 시체를 빨리 치우려고 다리를 꺾어서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함께 죽으셨습니다.
스스로 먼저 죽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아내와 함께 죽었을 때 모든 사람이 죄를 가지고 태어 날 수밖에 없는 행악의 종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을 의인이 되도록 의에 종자로 바꾸셨습니다. 의에 종자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10장 17-18절에 있습니다.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말씀을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죽여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신부를 너무 사랑하셔서 스스로 생명을 버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8:9-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산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아니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하는데 아니 앞으로 그렇게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인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입니다.
이런 영의 비밀의 일을 바로 알고 믿을 때 그것이 능력이 되어 하늘의 신령한 생명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줄 믿고 부탁을 하시고 운명을 하셨습니다. 마찬 가지로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믿을 때 그것이 능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영의 신령한 생명이 탄생이 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 수많은 예표를 통해서 우리로 믿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1:26-27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안 되면 이 비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이며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신비스러운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이 비밀을 도무지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내 안에 새로운 하와가 탄생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두 번 난다고 하면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와의 탄생입니다
아담으로부터 탄생이 된 하와는 진토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안에 탄생이 된 하와는 그런 진토가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영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하와는 우리 육체의 허물과 죄와는 상관이 없이 거룩한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의 허물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시고 난 후에 탄생이 되는 새로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만약에 이 생명이 내 안에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탄생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자기 안에 탄생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43쪽)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해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것이 영접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고 그 이름을 믿어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믿어야 합니다.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인정하고 구원할 자로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어떤 죄인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죄를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3쪽)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아담이 사람의 뜻으로 사람을 낳았는데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뜻으로나 육정으로 낳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하나님께로 났기 때문에 그는 의인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나면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낳으려면 남여가 동침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생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낳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서 낳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받아들이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가 잉태된 것과 같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영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가 살아 날수 있는 방법은 육신의 자손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녀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종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레미야13:2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72쪽)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스인은 흑인을 말 합니다
흑인이 얼굴을 희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악의 종자도 의에 종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흑인이 노력으로 백인이 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흑인이 백인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 합니다 이 말씀은 행악의 종자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릴 때 죄인이 자녀를 나면 의를 행해도 죄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종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자녀를 나면 그 자녀가 죄를 져도 의인이다 라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아담에게서 나면 죄를 안 져도 죄인이고 예수에게서 나면 죄를 져도 의인입니다 죄는 육체가 짓는 것이고 새롭게 탄생이 된 영은 그 죄와는 상관이 없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어집니까?
이 말씀이 믿어 져야합니다 죄를 져도 의인이라고 하니까 말이 좀 이상 합니다 육체와 영의 비밀을 알아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육체는 죄를 져도 영은 죄를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들과 종이 있습니다. 아들은 죄를 져도 아들입니다 종은 죄를 안 져도 종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예수에게서 난 사람 의인에게서 난 사람을 죄를 져도 의인이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런 뜻을 가지고 한 말입니다 종자가 다른 종자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종자가 의인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는 죽을 때 까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죄악의 종자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종자가 된 것입니다
새로운 종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가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서 거듭난 자들입니다 이 거듭남은 육체의 변화가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말씀합니다.
이 생명입니다
바로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이 생명에 대해서 바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모든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잘 살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육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생명을 우리 안에 주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는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한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생명이 탄생이 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셔서 내가 하늘에 갈 수 있는 생명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0: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64쪽)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난 사람은 다시 멸망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한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어떻게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또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못 빼앗습니다. 어떻게 탄생이 된 생명인데 그것을 누가 감히 빼앗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요한복음10: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64쪽)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자기를 죽이면서 까지 이 생명을 탄생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빼앗게 그냥 두시겠습니까? 다시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인 너무도 사랑하는 그 생명을 빼앗아가게 그냥 두시겠습니까?
절대 안 빼앗기십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 생명이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 태어난 내 아이도 누가 그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가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이의 생명을 지키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빼앗아가게 그냥 두시겠습니까?
믿음대로 됩니다.
빼앗긴다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빼앗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탄생이 되었는가 내 안에 거듭난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를 안다면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영생은 유일 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의 비밀을 안다면 어떻게 자기 생명이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죄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면 꼭 빼앗길 것 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 안에 탄생이 된 생명에 대해서 바로 알면 어떻게 빼앗긴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사단이 빼앗고 싶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와는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다시 빼앗지 못하게 영의 신비로운 비밀로 우리를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하와를 빼앗기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사단이 도저히 빼앗을 수 없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이 영이 신비롭습니까? 사단이 아예 건들지도 못하도록 우리 안에 탄생을 시켰습니다. 죄를 짓게 만들어서 죽게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육체로 하지 않고 영의 신비로 해서 사단이 건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골로새서3:3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생명을 사단이 건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비밀입니다 사단도 모르게 사단이 찾지 못하게 하나님 안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하와입니다
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근심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이미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어떻게 우리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면 맞습니다.
아무도 찾지 못 합니다
내 안에 감추어 둔 것을 누가 찾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하나님 안에 우리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는데 누가 찾을 수 있습니까? 이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사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생명이 있는 가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 이 생명이 자기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두려워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 품 안에 있는 아이는 아니 부모가 감추어둔 아이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를 않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신령한 생명이 그렇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거짓이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종자가 개량 되었습니다.
허물이 있고 죄가 있는 그런 종자에서 하늘의 신령한 종자로 개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종자는 늘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탄생이 된 우리 속에 있는 새로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한 것입니다.
로마서6: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담의 종자인 우리 육체는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이 영의 신비한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제 아담의 종자는 죽었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새 생명을 가지고 산 소망으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무엇을 해서 종자가 개량이 되어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믿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늘의 것으로 입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새 생명이 탄생이 된 성도는 이 세상에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이 생명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로 또 다른 자녀가 탄생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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