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24강, 나중 된자

윤주만목사 2019. 3. 13. 15:34


24, 나중 된 자

 

마태복음20:16절을 보겠습니다. (33)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성경 참 어렵습니다.

특히 본문의 말씀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이 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인지 바로 분별을 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바로 해석이 안 되면 구원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먼저 되어야 합니까?

나중에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에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먼저 된 자는 나중 된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가능한 나중에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믿음을 바로 알면 참 쉬운데 지금 한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교회가 요구를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보통의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저도 부엉이 과입니다 밤잠은 늦게 자는데 새벽에는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제가 모태신앙입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나간 적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보통 마음을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새벽 기도를 나가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때로는 부러운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스스로 정죄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차라리 교회에 나가지 않고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나중에 죽을 때 쯤 돼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서 구원을 받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법을 무척 싫어합니다.

교회 안에서 규례로 지키고 있는 그런 행위들이 너무도 싫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가려야 하는 것이 많고 또 지켜야 하는 것이 많은지 저 같은 사람은 도저히 체질에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늘 내가 굳이 이렇게 어렵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한때는 심하게 방황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굳이 먼저 와서 먼저 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을 하니까 솔직히 나중에 와서 먼저 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먼저 와서 나중이 될 바에는 먼저 와서 고생할 필요가 무엇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즐길 것 다 즐기고 천천히 나중에 와도 주님께서 먼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법에 의해서 구속이 되어 있는 신앙생활을 굳이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아니 나중이 될 것이 뻔한 자기를 보면서 나중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지만 사람들은 이 비유를 바로 이해를 못하다 보니까 잘못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비유는 그 안에 분명히 메타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 메타포를 찾아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너무 성경을 쉽게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비유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모르면 이상하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그 영혼을 망하게 만드는 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387)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를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더러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경을 볼 때 마다 어려운 말씀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때로는 성경을 해석하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아니 앞뒤가 맞지를 않아서 포기를 할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멸망입니다

성경을 억지로 해석을 하다가는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성경을 너무 억지로 풀고 있고 또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보면 모든 말씀이 다 율법의 행위로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면 또 모든 말씀이 믿음으로 보여 집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어느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경을 율법적으로 해석을 하고 또 믿음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품꾼과 같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식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 이성으로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이 무식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보고 억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석을 하는 말을 듣게 되다 보면 같이 무식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굳세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사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해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은 한 마디로 살인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세상에 있는 살인자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세상의 살인자는 최소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지만 영혼의 살인자는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조금 아는 것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고 있고 아니 믿음도 없는 그가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굳세지 못한 자들이 구역 예배를 한다고 하면서 구역장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안에서 카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곳에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들이 자기만 멸망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소자들을 칼로 찌르는 살인을 하고 있는 영적 행위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그들이 더욱 열심을 내서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가깝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말세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살인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살인자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살인자는 주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굳세게 서 있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그런 일에 열심을 내면서 천국에서 상을 많이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0:1절을 보겠습니다. (33)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비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이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포도원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포도나무는 구원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실 때는 그 지방에 그때 있는 풍습을 가지고 비유를 하셨습니다.

 

실제 품꾼이 아닙니다.

실제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실제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포도원의 일을 비유로 해서 천국에 대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마치...

이렇게 시작을 하는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만 9번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천국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비유를 거의 다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또 억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성경을 해석을 하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생각들이 잘못된 구원론과 연결이 되면서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비유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가 쉽게 이해를 하게 풀어서 말씀을 해 주시면 참 좋은데 예수님께서는 거의 모든 말씀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천국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말씀이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같이, 같으니 이런 말씀들이 성경에는 수도 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성경은 비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이 나오면 그것이 비유라는 것을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오해를 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히브리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우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하는 자기들이 대단한 신앙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 세상의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행위입니다 좀 심한 말로 꼴값을 떤다고 말 합니다 그 말이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해석을 하고 전하는 것이 정말 잘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안 해도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영어 예배, 그리고 히브리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우는 그것도 행위를 자랑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포도원의 주인입니다

이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고 이 포도원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주인이 이른 아침에 나갔습니다. 품꾼들을 구하려고 이른 아침에 나가서 품꾼들을 구해서 포도원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품꾼은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바로 그들을 일을 시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교회고 또 이 시대 교회도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0:2절을 보겠습니다. (33)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데나리온은 은화입니다

그 당시 품꾼의 일일 노임에 해당이 되었고 로마 병졸들의 하루 급여에 해당하는 액수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이 데나리온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주인은 품꾼들에게 당시 일꾼들의 하루 노임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을 하고 그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나온 품꾼들에게는 주인이 분명히 한 데나리온을 약속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키가 어디에 있는 가를 주의 깊게 보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천국을 비유하면서 한 데나리온을 예수님께서 약속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데나리온이 무엇인지 말씀을 보다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입니다

하루 품삯을 비유로 해서 우리가 평생에 일을 한 것에 대해서 삯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삯은 데나리온입니다. 주인은 품꾼들에게 하루 일하는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의 그 당시 품꾼들의 일상적인 품삯을 말하면서 그들을 포도원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인력 시장이 있습니다.

하루 일을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경기가 좋으면 일을 다 나갈 수 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아무리 아침 일찍 나갔어도 일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곳에는 아직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나가면 자기들이 필요한 사람들을 뽑아서 하루 일당을 이야기 하고 데리고 간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지런 합니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들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얼마나 부지런하게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인력 시장이 서는데 보통 새벽에 5-6시면 그 인력 시장이 끝이 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 좀 늦게도 일을 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6시가 넘으면 거의 인력 시장은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럼 아침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이 세상의 인력 시장에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품꾼들이 아침 일찍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비유로 해서 아침 일찍 주인도 나가서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아침 일찍 품꾼으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 장터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들이 아침 일찍 나와서 포도원의 품꾼으로 일을 하려고 있는 것이지 게으른 사람 같으면 그 시간에 나오지를 못 합니다. 아침 일찍 품꾼으로 쓰임을 받은 사람은 부지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0:3-4절을 보겠습니다. (33)

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주인이 또 장터에 나갔습니다.

포도원에는 할 일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아침 일찍 나가서 품꾼을 다 구하지 못하고 또 삼시에 나가서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하고 있습니다.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늦게 나왔기 때문에 하루 일을 하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은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기 보다는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고 하고 그들을 품꾼으로 쓰고 있습니다. 삼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하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9-12시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최소한 9시는 넘어서 품꾼으로 쓰니까 아침 일찍 품꾼으로 쓴 사람들과 같이 품삯을 말하지 않고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품삯에 대해서 정확하게 하지 않고 자기가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하고 일을 하라고 하면 사실 일꾼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주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주인은 약속한 대로 상당하게 주리라는 것을 믿고 포도원에 들어갔습니다.

 

마태복음20:5-7절을 보겠습니다. (33)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제 육시와 구시에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또 제 십일 시에도 나가보니까 섰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희가 어찌하여 하루 종일 놀고 여기 섰느냐고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십일 시에 누가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에 이것이 세상의 일이라면 안 씁니다.

일을 다 마칠 때가 되었는데 그때 품꾼을 써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쓰지를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일은 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에는 아무도 써 주지 않자 주인이 와서 왜 놀고 있느냐고 하니까 우리를 써 주는 이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고 품꾼을 그 시간에 써 준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일이라면 다 갔을 것입니다.

인력 시장에 가면 보통 9시가 넘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 날은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다 갑니다. 그런데 여기 장터는 이상하게도 이제 일을 마칠 때가 되어 저녁이 되어 가고 있는 그 시간에도 일을 찾아 장터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주인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언제까지 합니까?

아침 일찍부터 시작을 해서 해가 있을 동안에 일을 했습니다. 비유로 포도원의 일이지 실제 포도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이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실 것 같으면 굳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원의 일을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또 삼시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육시와 구시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이제 일을 마치려고 하는 제 십일 시에 와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포도원의 주인은 참으로 마음이 좋은 사람 같습니다.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일을 하게끔 해 주고 있습니다.

 

이 포도원은 어디입니까?

포도나무 열매는 구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분명히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포도원에 들어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한 품삯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천국에 가는 일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품꾼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낮에 이 품꾼 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332)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낮에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품꾼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그들이 근신하여 믿음을 갖기를 바라고 있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구원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 그것을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비록 시간이 늦었을지라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일할 시간이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들여보내 일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생이 하루입니다 주님께서 이 하루의 일을 우리 일생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온 자들이 누구입니까?

물론 이스라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30대에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고 50대에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고 또 이제 황혼기에 들어서 70대에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천국에 가기를 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아니 세상 상식으로는 도저히 품꾼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지만 그래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서 1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품꾼으로 일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장터에 나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늦게 왔느냐 먼저 왔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먼저 된 자가 나중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한 나중에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되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또한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그 구원에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먼저 품꾼으로 썼습니까?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품꾼으로 썼습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살아왔고 포도원에서 아주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장 포도원에 먼저 들어온 자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1:3절을 보겠습니다. (968)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주인이 누구를 처음으로 썼습니까?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을 하시기 전에 19장에서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오늘 말씀과 똑같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품꾼입니다

복음을 먼저 받은 품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 이방인에 비하면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포도원에 품꾼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을 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시고 난 후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이방의 빛을 비추실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품꾼 들입니다 그것도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 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아침 일찍 온 품꾼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인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실제 오늘 말씀도 이스라엘은 주인을 알지 못해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주인을 바로 알았다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불행한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아서 먼저 되었지만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아 나중 되고 말았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주인을 모르면 주인에 대해서 주인의 속성을 모르면 나중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나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나중이 되어 이스라엘과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인을 모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급속하게 타락을 했는가를 출애굽을 통해서 배웠고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 사사시대를 살면서 타락한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타락을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성경에서 주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소도 임자를 압니다.

또한 나귀도 주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포도원의 품꾼으로 아침 일찍 들어오는 은혜를 입었지만 그들은 주인을 너무 몰랐습니다. 포도원의 품꾼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일을 잘 했지만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에는 나중 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20:8절을 보겠습니다. (33)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일은 언제 합니까?

낮에 해야 합니다. 저녁이 되면 이제 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과학이 발달을 해서 저물어도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옛날에는 저녁이 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낮에 해야지 저녁이 되어서 저물 때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저녁이 되자 주인이 품꾼들을 모아 부르고 일한 품삯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상하게 품삯을 주고 있습니다. 당연이 처음에 온 자들부터 품삯을 주어야 하는데 나중에 온 자들부터 품삯을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품삯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서 품삯이 얼마인가 그 품삯을 얼마를 주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유이고 이 품삯은 비유에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삯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일을 했으니까 품삯을 주인은 약속을 한대로 모두에게 주고 있습니다. 주인으로서 일을 시켰으니까 품삯을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마태복음20:9-10절을 보겠습니다. (33)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주인이 약속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품꾼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다음 부터는 품삯에 대해서 약속을 하지 않고 상당하게 주리라고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보니까 한 시간 일한 사람들부터 주는데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이 데나리온이 무엇입니까?

저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만약에 이 데나리온이 천국을 약속한 것이라면 먼저 되나 나중 되나 모두가 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실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말씀을 하는 것이지 별 의미 없이 말씀을 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비유입니다

만약에 이 데나리온이 천국이라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데나리온이 천국이라면 그 역시도 천국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예수님께서 포도원을 비유로 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모두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된 자가 먼저 되어서 구원을 받고 먼저 된 자는 나중에 되어서 구원을 못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데나리온이 천국이라면 모두가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모두가 들어갔다는 결론으로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데나리온이 무엇을 말씀을 하는 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분명히 201절에 품꾼들에게 약속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데나리온은 약속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2절을 보겠습니다. (311)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가르쳐서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또 언약에 대해서 외인들이라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품꾼으로 온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약속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그냥 너희가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면 상당하게 주리라고 했지 반드시 한 데나리온을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외인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중에 온 자들에게는 약속을 하지 않고 그냥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약속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상호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주인이 일방적으로 들어와서 일하라 하고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까?

이방인은 하나님과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약속을 마치 우리가 한 약속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우리 이방인은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 같이 이스라엘이 한 약속을 자기들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내가 한 약속이 아니면 내가 지킬 의무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약속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지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밖에 사람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외인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무슨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이스라엘이 한 언약에 대해서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 이방인이 약속을 했다면 삼시부터 11시 까지 들어온 그 사람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너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삼시부터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약속을 하지 않고 상당하게 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얼마를 주든지 주는 대로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 한 데나리온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이 한 데나리온은 그리고 상호 약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과 품꾼의 상호 약속입니다 주인은 일을 하면 반드시 줘야 하는 상호 약속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19:6절을 보겠습니다. (111)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데나리온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택하셔서 언약을 보이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언약의 조건들을 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을지를 모르고 무조건 언약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한 데나리온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기뻐했습니다.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된다고 하시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하니까 이 데나리온을 위해서 그들은 정말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수고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처음에 오셨을 때도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수고를 했습니다.

 

다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주인은 분명히 모든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게 말씀을 하고 있고 이런 말씀을 바로 해석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모두가 받은 한 데나리온은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그보다는 왜 주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다 주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주인은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이나 일할 시간이 한 시간 남아 있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면 먼저 되고 나중 되고 할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 합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성경을 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한 시간을 남기고 일한 사람은 일하는 자체가 달랐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늦게라도 써준 주인에게 고마워서 열심히 했다고 말 합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서 교회에 나왔는데 그것은 주님이 나중에 되었지만 처음에 되게 하려고 불렀다 그러니까 이제 정말 열심을 다해서 이 품꾼들과 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기 위해서 아침에 온 사람보다 더 열심을 일을 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참 그럴 듯합니다.

아니 세상 적으로 보면 분명히 논리적입니다 늦게 나와서 품꾼으로 써 주는 이가 없는데 그를 써 주었다면 당연히 주인을 위해서 아주 열심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이 세상의 일이라면 당연히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루를 벌어야 살 수 있는데 아무도 품꾼으로 안 써줘서 그 시간 까지 놀고 있는데 자기를 품꾼으로 써 주었다면 얼마나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이 세상의 일을 통해서 하늘의 것을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이 세상의 이성적 상식으로 모두 알 수 있는 문제라면 무엇 하러 비유로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냥 말씀을 하시면 되지 비유로 굳이 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상식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정도의 논리는 초등학생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초등학생의 수준의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일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상호 언약을 했지만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삼시부터 들어온 품꾼들은 상당하게 주리라고 하고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한 데나리온과 삼시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상호 약속에 의한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나 3시부터 11시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준 데나리온은 상호 언약의 데나리온이 아니라 주인의 일방적인 약속에 의한 데나리온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같은 데나리온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상호 약속에 의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삼시부터 들어온 품꾼들은 주인의 일방적인 약속에 의해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럼 포도원의 일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이 포도원의 일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오해를 하고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6:28-29절을 보겠습니다. (153)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포도원의 일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주 열심을 내서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수고를 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를 믿으려면 예수에 대해서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포도원의 비유도 바로 해석을 해야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과 같은 비유를 모르고 아니 바르게 해석을 하지 않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문자 그대로 보면 종교적인 행위로 다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포도원의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자기들이 열심을 내서 종교적인 행위를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나중 된 자가 처음 되려고 더 열심을 다 합니다.

어찌 되었든 나중에 되었기 때문에 처음이 되려고 더 열심을 낼 것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다 행위에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이 처음이 되려고 포도원인 교회에 들어와서 열심을 내서 처음이 되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설교를 들어본 사람은 다 그렇게 들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20:11-12절을 보겠습니다. (33)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 왔는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쁨 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맡은 직분이 얼마나 귀한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한 일만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꼭 이스라엘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모태부터 나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간 것이 은혜입니까?

아니면 수고 입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것에 대해서 바로 정립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로는 은혜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말로는 자기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수고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은혜를 받았다면 자기가 수고를 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렵습니까?

자기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 어렵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주 쉽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그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일 수고와 더위에 견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이 그렇게 수고해야 하고 더위를 견뎌야 하는 일입니까? 포도원에 들어왔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과 상호 약속을 한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가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가 한 일이 생각이 나고 그것은 분명히 수고를 했고 또 하루 종일 더위를 견디고 일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이 든다고 생각을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온갖 율법과 규례들을 지키느라고 하루 종일 수고를 하고 더위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99% 이상이 이렇게 자기가 수고를 해야 하고 더위를 견디면서 일을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포도원의 일은 거저 주는 은혜입니다 내가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한 상호 언약을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지키느라고 하루 종일 수고를 하고 더위를 견디면서 살았습니다.

 

마태복음19:20절을 보겠습니다. (32)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가복음10:20절을 보겠습니다. (71)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같은 말씀입니다

이 청년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합니까?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상호 약속을 한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수고를 했고 더위에 고생을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려면 얼마나 수고를 해야 하고 또 더위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바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청년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상호 언약을 한 그것을 지키려고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까?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온 율법을 다 지키려고 또 거기서 파생이 되고 있는 규례를 다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이 자신 있게 예수님 앞에 와서 내가 어려서부터 이것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을 다 지키는 것은 너무도 대단한 일이며 그들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억울합니다.

여러분이라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수고를 한 자기와 이제 죽을 때가 돼서 나온 그와 같이 취급을 하면 주님께 따집니다. 어떻게 그 사람과 나를 같이 취급을 하느냐고 하면서 따지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생각으로는 이 사람의 말이 너무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 포도원의 주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해서 모릅니다.

 

로마서4:4-5절을 보겠습니다. (2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삯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상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삯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일을 했으니까 마치 빚 장이 같이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입니다

천국은 내가 일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은혜로 받았지만 일을 해야 삯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내가 비록 나중 된 자이지만 처음이 되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보다 더 수고를 하면서 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행위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여야지 내가 은혜를 입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하고 더위에 갈증을 견디었는데 왜 저들에게 똑 같이 주느냐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수고해서 받을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아무리 수고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천국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에 언제 들어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런 생각 자체가 나중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수고를 해서 더위를 견뎌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수고와 더위를 견뎠다 해도 그것은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그것은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또 더위를 견디는 일도 아닙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누군가 바른 진리를 전하고 있다면 그것을 들어서 믿으면 됩니다. 문제는 바른 진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지 바른 진리만 듣기만 하면 그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믿는 것이 무슨 수고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의 비밀을 안다면 자기가 수고를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저 얻은 선물인데 수고는 누가 수고를 했다고 말 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원망을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원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인데도 그들은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19:3절을 보겠습니다. (931)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미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상호 언약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미련하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지혜를 구했으면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또 더위를 견디지 않아도 되는데 이스라엘은 너무 미련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 합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미련한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길을 스스로 굽게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굽게 하여 그것을 지키느라 수고를 하고 또 더위를 견디고 있으니까 힘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은혜를 알면 원망을 어떻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면 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를 천국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뿐입니다. 설령 자기가 생명을 내 놓을 정도로 수고를 하고 또 더위를 견뎠다 해도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를 할 뿐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과 환난을 당하면서도 원망을 하기 보다는 천국을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원망을 하고 하나님을 알면 자기가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감사하면서 이 세상에서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0:13절을 보겠습니다. (3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따지고 있습니다.

왜 자기들은 아침부터 수고를 하고 더위를 무릅쓰고 일을 했는데 저들과 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그렇게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자기들이 수고한 행위가 무색해 지니까 기분이 나쁩니다.

 

이제 이 둘이 받은 데나리온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기 말씀과 같이 상호 언약을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을 한 대로 그 데나리온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럼 삼시부터 온 사람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무엇이관데 이들이 그토록 원망을 하면서 따지는 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들은 상호 언약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 일을 수고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들어온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수고할 것도 말 것도 없습니다.

 

마태복음26:28절을 보겠습니다. (4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 입니다

그런데 이 피를 누가 흘렸습니까? 품꾼들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그 언약을 피를 믿었습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언약의 피 입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일방적으로 언약을 하셨습니다.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를 해야 것도 아니고 더위를 견디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언약의 피를 믿고 죄 사함을 받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들어온 품꾼들은 이 언약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과 상호 언약을 한 율법을 지키려고 수고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데나리온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들어온 품꾼들이 받은 데나리온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데나리온은 상호 언약의 데나리온이고 삼시부터 들어온 품꾼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해 주시고 흘리신 피 그 언약의 데나리온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20:14절을 보겠습니다. (33)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언약을 다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언약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언약을 받았지만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언약을 주인이 그냥 그들에게 다시 주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아침 일찍 온 이스라엘에게 처음에 하나님과 했던 언약을 지키라고 그 언약을 다시 주었습니다.

 

그 언약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아침부터 더위와 싸우면서 수고를 했다 해도 그 언약은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주님에게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지켜온 첫 언약에 대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수고를 했느냐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방인과 자기들을 같이 대접을 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는 품꾼입니다 그들은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그들이 진 짐을 무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와서 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러나 그들에게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주셨습니다. 이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이스라엘이 받은 데나리온과는 다른 데나리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주님께서 흘리신 언약의 피 입니다

 

상당 합니다.

약속은 같지만 그들이 받은 데나리온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상호 약속에 의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삼시부터 온 품꾼들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은혜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 데나리온은 약속이라는 데나리온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버림을 받았고 삼시부터 들어온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데나리온을 받아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과 약속을 한 것과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과 약속을 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고를 한 것을 생각하면서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했지만 포도원에 일찍 들어간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인들이 거저 은혜를 입는 것을 보고 주님께 부당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는 들어와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서 마치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0:15절을 보겠습니다. (33)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천국 누구 것입니까?

그 기본적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고 있는 재물을 이 세상의 의로운 사람에게 주라고 하면 아마도 화를 낼 것입니다 자기 아들에게 주겠다고 하면서 왜 내가 의롭게 산 사람, 선하게 산 사람에게 주어야 하느냐고 하면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기 아들에게 주겠다고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마음대로 하면 불의하다고 합니다.

자기 것도 자기 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만약에 다른 집 아이가 의롭다고 하면서 그에게 주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왜 참견을 하느냐고 오히려 면박을 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 마음대로 하면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약속이냐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자기들이 약속한 데나리온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잘못 되었다고 말 합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 재산을 내 아들에게 주는 것이 잘못입니까? 내 재산을 내 아들이 아닌 내 아들보다 더 의로운 옆집 아들에게 주어야 잘 하는 것입니까?

 

인생들이 천국이 누구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어떤 약속을 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바로 이 상당하게 주리라고 한 이 데나리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드리면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 합니다.

 

자기도 그렇게 안 하면서 하나님에게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절대로 이웃에 자기 아들보다 선하고 의로운 아이에게 주지 않고 자기 뜻대로 조금 못 나도 자기 아들에게 주면서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면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0:16절을 보겠습니다. (33)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스라엘은 처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약속인 율법의 행위에 빠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약속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위를 이기면서 아침 일찍부터 수고를 했지만 아무리 수고를 해도 그 한데나리온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처음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았지만 그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나중 된 자가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데나리온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데나리온의 약속은 더위를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이스라엘과 같이 수고를 해야 하는 약속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는 그것입니다 그렇게 데나리온을 받은 나중에 된 자들은 구원을 받아 처음 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3:22절을 보겠습니다. (243)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얼마나 미련합니까?

자기들이 지키지도 못하는 그것을 약속을 따라 행했다고 하면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고 또 교회 안에 있는 법과 규례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주인을 원망하면서 불의 하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차별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자기들의 수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데나리온은 다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데나리온을 받느냐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차별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약속으로 받은 성도는 자기가 수고 했다고 절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은혜로 언약을 받았는데 무슨 수고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한 행위를 생각하면서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중 된 자들입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나중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마치 자기가 처음 된 자 같이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된 자들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을 생각하고 감사를 하고 있고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나중에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은 상당한 것 천국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처음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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