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예레미야 2:29-37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이스라엘
그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진 것이 있으면 우리도 역시 똑같은 죄를 짓고 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으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이 시대 역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결코 기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너무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지만 그들은 육적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어느 민족이라도 역시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고 이 시대를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거의 육의 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의 문자가 그대로 맞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막과 율법 그리고 모든 구약의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어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을 보았기 때문에 사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구약을 보면서 어두움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은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믿어야 자기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을 보면서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 못 믿었을 때 어떠한 일을 겪었는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잊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 성경을 보면 아니 신약에 와서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대화를 보아도 거의 다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대화가 그랬는가 하면 바로 영의 일을 육의 일로 보는 이스라엘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경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성경을 육의 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영의 일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려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자적인 지식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참 빛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참 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빛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문자로 보아서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문자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고 그 문자가 가르쳐 주는 그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을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문자라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를 모릅니까?
내가 보고 있는 문자가 바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림자로 나타나는 사물은 실체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 실체가 그대로 보여 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림자라고 할 때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만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 죄가 무슨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성경에 죄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죄를 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죄를 보고 믿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더 죄를 많이 지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이슬람 국가를 보아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얼마나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살려고 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가 아닙니다,
그들의 육적인 죄를 가지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영적인 죄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런 성경말씀을 보고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간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도덕적인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지키는 그 율법이 영적인 죄를 범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바로 영적인 죄를 지었습니다, 성막을 보고도 그들은 끊임이 없이 율법을 추구하면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체 율법을 지키는 일에 힘을 썼다면 이 시대는 성막이 없어졌음으로 해서 자기들의 종교에 필요한 율법을 지키는 일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에게 믿음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것이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거절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는 육체의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죄는 영혼이 사망합니다, 육적인 죄를 육체가 연약해서 질 수 있다 해도 영적인 죄는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영적인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고 이 시대 역시 영적인 죄에 흠뻑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 줄 모르고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안 보입니다, 지금 예레미야에서도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따라 가서는 안 되는데도 이 시대는 이스라엘을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죄인입니다,
육적으로는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흠 없는 율법의 의 때문에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역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어떻게 나와 변론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모두 나를 배신하고 떠나갔다.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의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의 수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레미야 시대에 우상을 섬겼습니까?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까? 예레미야 시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억지 주장과 같이 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아무리 강대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의 수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의 신들이 너의 교회의 수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무슨 봉창을 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따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역시 정말 교회의 수만큼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방의 교회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 신을 버리지 않으면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가고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이 모든 것을 당했지만 이방인은 영적으로 당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알이 없습니까?
아세라가 없습니까? 이 시대도 그대로 교회 안에 바알과 아세라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우상들이 교회 안에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자기들의 교회 수보다 더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그저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합니다,
기복주의가 바알입니다,
제가 기복주의라고 말씀을 드려도 자기들이 기도하고 바라는 것은 기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건물의 교회가 아세라입니다, 아마도 그것을 아세라라고 하면 저에게 화를 낼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신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지켜지고 있는 율법들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록펠러의 십일조는 이미 신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신을 따라가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킨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그것을 자기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다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누군가 더 좋은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나타내고 있고 그것을 자기도 하고 싶어 하면 그것이 우상이요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배신했습니다.
그러한 행위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안 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각이 없이 그저 종교가 시키는 대로 수많은 우상과 신들을 섬기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배신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남들의 행위를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이 다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신이 되어서 그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을 해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르고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렸으나 헛수고였다. 옳게 가르치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희의 칼은 사람을 삼키는 사자처럼, 너희의 예언자들을 죽였다.”
징계는 다 받습니다,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들로 생각해서 때렸습니다, 어느 정도 때렸는가 하면 잠언의 말씀과 같이 자식을 채찍으로 때려도 죽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면서 때렸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정말 때로는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그 채찍을 맞고 돌아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때릴지라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징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에 징계가 있습니까? 어느 교회가 징계를 받고 있습니까? 그래도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징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에 무슨 징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생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부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질의 부자도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부자로 넘쳐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부자가 되어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교회를 징계하지 않은 것은 다 사생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59:7절을 보면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릴 때마다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선지자를 보내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입으로 악을 토합니다,
그 입술에 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처럼 울며 성을 두루 다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율법주의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이 복음을 전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말함으로 해서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실제 죽이지는 않지만 이 시대는 그 입술로 선지자들을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이스라엘과 같이 이 시대 거대한 교회는 이렇게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새번역입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아, 너희는 그래도, 나 주의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막막한 광야가 되었느냐? 어둡고 캄캄한 땅이 되었느냐? 어찌하여 나의 백성이 우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다시는 주께로 돌아가지 않겠다' 하고 말하느냐?”
다시 광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시 광야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저희가 우상 숭배를 하였고 간음을 하였고 주를 시험하였고 주를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랬습니까?
지금 이 시대 역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우상이 만연하고 있고 역시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고 또 영적으로 주님을 시험하고 있고 또 주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흑암한 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했는가 하면 그들은 어두움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참 빛이 와서 비추고 있었지만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이미 흑암한 땅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지만 자기들이 지키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 합니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종이라고 말씀하니까 이스라엘은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를 종이라고 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아니 사단의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똑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자유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지혜가 아무리 불러도 우리가 가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을 수 있겠느냐
어찌 그렇게 이 시대와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패물이 무엇입니까? 보화입니다. 우리에게 똑같이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잊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자기들이 그 보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릅니다, 그저 성경이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글을 보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이 보화를 장사해서 사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그 보화를 잊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잊고 있습니다, 처녀가 어찌 그 보화를 입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보화는 자기가 혼인을 할 때 꼭 필요한 보화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보화를 잊었고 이 시대 역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녀가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찌 그러한 일이 이 시대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운 옷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입니다, 그 옷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그 옷을 잊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까 자기가 구원을 받은 줄 알고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렇게 잊은 날의 수를 계수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잊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까지는 약1000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우리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지금 2000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00년이 되었는데 언제 잊었는지 그 날을 셀 수 없다고 말씀하는데 이 시대는 어떻겠습니까?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 율법의 행위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율법을 더 열심히 지키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이 시대 교인들도 율법의 행위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율법의 의로 옷을 입으면서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율법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그 말씀이 그대로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내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악한 여자들에게 율법의 행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입니다,
악한 여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사랑을 받으려고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악한 여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이 악한 여자들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의 한 가지 행위입니다,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이 바벨론이 와도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악한 여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공동번역입니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도 아닌데, 가난하다고 해서 죄없는 사람을 죽여 그 피가 너희 옷자락에 묻었다. 이런 짓을 다 하고서도”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한 모든 일들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도 아닌데 가난하다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을 너희가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죄에 대해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을 믿는 성도는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죄를 안 져서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죄를 지고 가셨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죄가 없는 사람은 가난합니다,
왜 가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율법의 의로 가난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자는 부자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가난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죽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부자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가난한 자를 죽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이고 있는가 하면 입에 칼로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만 보면 그 정신이 혼미해져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물질로 가난한 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로 가난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가 되려면 나에게서 율법의 의가 나타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가 되어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렇게 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
이스라엘입니다,
왜 그들이 죄가 없다고 합니까? 죄를 알았으면 죄가 없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죄가 없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보면서 자기들에게 죄가 없다고 말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더 죄가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죄가 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자기들이 더구나 종교적인 활동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까 그래도 세상 사람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그리고 뭐라 합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으니까 자기들은 진노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믿는다고 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너희가 그 믿는다는 그것으로 심판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그것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마귀의 자식들인가 하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새번역입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다니, 너는 어쩌면 그렇게 지조도 없느냐? 그러므로 너는, 앗시리아에게서 수치를 당했던 것처럼, 이집트에게서도 수치를 당할 것이다.”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악한 여자들에게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다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길을 바꾸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과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비유로 해서 너희가 길을 바꾸어 앗수르로 갔다가 애굽으로 갔다가 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가 그것으로 수치를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어떻게 수치를 당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8절을 보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율법의 행위입니까?
그것은 나중에 벌거벗은 수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것으로 인하여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깨달을 지혜가 없어서 수치가 되는 그 율법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행위 한 가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악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 하면 바로 그 율법의 행위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저주를 받는 그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어 결국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너는 거기에서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올 것이다. 네가 의지하는 것들을 나 주가 버렸으니, 그들이 너를 도와주어도, 네가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앗수르입니다,
그리고 애굽입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의지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의지했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는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수많은 우상들로 자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영의 비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앗수르가 아닙니다,
실제 애굽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 비유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실제 그들을 의지했을지라도 그것이 지금 교회 안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게 꾸밈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런 것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도는 영의 일을 믿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역시 예레미야 시대와 같은 일을 하면서 수많은 우상들이 교회 안에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는 보화를 그리고 고운 옷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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