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윤주만목사 2019. 2. 5. 12:15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아가2:10-17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곧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원어를 보고 있게 때문입니다, 원어를 안다는 것 물론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전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어도 가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원어를 아는 것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원어가 문자주의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원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을 원어로 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성경을 보는 눈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데르 산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원어의 뜻을 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향기라는 단어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향기라는 단어의 원어의 뜻을 아는 것은 오히려 성경을 보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꼭 필요한 원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원어가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비유와 은유와 의인법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어의 여러 가지 문법들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그저 원어의 뜻만 알려고 하다가는 결국에는 그 원어를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 중요합니다.

비유와 은유와 의인이라든지 문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평생을 공부를 해도 이스라엘 사람만큼 언어 구사를 할 수 없는 히브리어 헬라어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고 그것으로 성경에서 오묘한 말씀들을 깨닫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지만 도리어 그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외국어는 쉽게 말해서 방언입니다, 성경에서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영어 등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방언의 은사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은사가 조금 있다고 해서 설교 때에 일반 교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면서 자기 유식을 자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글개역성경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등은 다 방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글개역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최소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글개역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방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방언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일천 마디의 방언을 한다 해도 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내게 있다는 것을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히브리어라 해도 방인입니다,

 

제발 자기 분수를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천마디의 방언을 한다 해도 이 한글개역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저에게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것 역시 세상 지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것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저 역시도 그것을 더 많이 공부하면 어느 정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한글개역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더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국어입니다,

그 시간에 국어를 아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어느 것을 더 많이 공부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국어를 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그 단어의 뜻 정도만 사전에서 찾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어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시대 목사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원어를 구사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할지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습니다. 설교를 작성하다 보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하지 않고 있고 또 하나는 국어만으로도 충분히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여러분에게 계시해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지혜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 세상 지혜입니다, 그리고 원어를 아는 것 역시 세상의 지혜고 또 방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아무리 유창하게 한다 해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목사들은 마치 유행이나 되는 것처럼 설교에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의 뜻 한 가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지혜는 미련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세상 지혜를 알기 위해서 보고 있다면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 지혜가 비유와 은유 그리고 의인법으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어를 아주 잘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유식한 척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히브리어의 원 뜻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을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지도 고아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아가서를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아가서에 대해서 강해나 주석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가서는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의인화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의인법입니다,

국어에서 말씀하는 의인법을 모르다 보니까 이제까지 한국에서도 수많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의인, 은유, 비유 등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사실 다른 성경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원어의 뜻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성경이기도 합니다,

 

먼저 정립을 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을 언어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보이지 않은 무형의 교회지만 그것을 의인화해서 마치 사랑하는 두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는 것처럼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에서는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했다면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새번역입니다,

,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속삭이네. (남자) 나의 사랑 그대,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그대, 어서 나오오.”

 

1절부터 계속해서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누가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게 번역이 되어 있지만 새번역에서는 남자가 말을 하면 남자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여자가 말을 하면 여자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서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속삭이네

누구입니까? 이 아가서는 솔로몬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가 당대의 왕이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로 하고 있고 그리고 아가서에서 나오는 여자를 이 세상에 진짜 여자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아가서를 통해서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많은 설교에서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다보니까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을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주님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또 교회를 통해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절대로 무교회주의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주님께서 속삭이면 깨우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거의 잠자는 여자와 같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 구약에서는 교회라는 말씀이 나오지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깨우시고 있습니다, 언제 그 교회를 깨우시기 시작을 했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세우셨지만 그 교회는 계속해서 음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가 많이 있지만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주님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주님의 어여쁜 그대인 교회를 자기들이 사랑하는 음행을 하면서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주님께서 내 어여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여러분이 사랑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성도라 해도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의 행위로 말미암아 교회는 음녀가 되고 결국 그 음녀와 함께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구약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사랑합니까?

나의 어여쁜 자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를 이 아가서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어여쁜 사랑을 이 시대 교인들이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죄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주님의 교회라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들이 사랑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표현은 못했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사랑스러우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이 교회가 반드시 주님의 아내가 되어 있을 때입니다, 누군가라고 이 어여쁜 사랑과 음행을 하게 되는 순간에는 주님께서 질투를 하시고 분을 내신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를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이 아가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교회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교회는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주님의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깨우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함께 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서 성도가 탄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아내인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나눔으로 해서 탄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어서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교회가 있어야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안에 성도가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교회를 깨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주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음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 교회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고 난 이후에 교회를 깨우셨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함으로 해서 삼천 명이나 되는 성도가 예루살렘 교회에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교회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 교회 안에서 우리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밖에서 혼자 있는 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 교회가 음녀가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교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있는 그 교회에서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교회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아세라가 되어 있는 교회에 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육의 말씀이 아니라 영의 말씀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새번역입니다,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비구름도 걷혔소. 꽃 피고 새들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소.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리오.”


겨울입니다,

시련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비가 오고 구름이 있는 것은 다 어두움을 상징하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어떠한 상태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그랬다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고 비구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햇살이 비추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단어의 의미가 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실상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깨우기 전에는 교회는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겨울입니다,

영적으로 겨울이라는 말씀입니다, 밭에 채소가 나야 하는데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영적으로 겨울입니다, 그리고 비와 먹구름이 있다 보니까 햇살이 비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새싹이 나지도 못하는 겨울이고 또 주님의 참 빛이 비추지 못하고 있는 비가 내리는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교회의 실상이고 또 이 시대 교회의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13:18절을 보면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은 고난을 상징하는 계절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주님께서 예언을 하시고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 예언을 하시면서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나쁜 의미입니다

교회는 마치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깨우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회는 늘 이렇게 겨울과 같이 고난이 계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참 빛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지나갔습니다,

지면에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면에 꽃이 피면 이제 열매가 맺을 수 있는 계절이 돌아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계절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어여쁜 자야, 교회를 깨우고 있습니다,

 

비둘기 소리가 들립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제 성령의 소리가 들려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는 비둘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깨우시는 그때에는 지면에 꽃이 피고 비둘기 소리가 들려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비둘기 소리가 들려져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아직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기초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책망을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령이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받은 것이 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저 자기들의 말로 성령이 오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진리를 몰라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에는 비둘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성령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이 세상의 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이 교회 안에서 들려져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그렇지도 않은데 자기들이 아록 있는 성경의 문자적 지식으로 그리고 보이는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종교적 활동을 보면서 성령이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비둘기 소리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율법의 소리만 들였습니다, 이 시대 역시 비둘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율법을 지키라는 말만 들리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떠한 소리가 들려져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가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새번역입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무화과가 열려 있고, 포도나무에는 활짝 핀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소. 일어나 나오오. 사랑하는 임이여! 나의 귀여운 그대, 어서 나오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주님께서 원하시고 있고 사랑하는 교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무화과나무에서 푸른 무화과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11:21절을 보면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무화과나무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또한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무에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신 이스라엘에는 열매가 없어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저주하신 나무가 말랐다고 베드로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당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습니까? 하지만 주님이 보신 무화과나무에서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구원을 받을 성도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후에 보니까 그 나무가 말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무는 어떻습니까?

무화과나무에 푸른 열매가 익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에는 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이 열매가 없는 교회는 교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로만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진짜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역시 두려움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이 시대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같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율법은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익었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에서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주님께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어떤 교회 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으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열매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의의 열매를 맺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아니가 저주를 받을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새번역입니다,

바위 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 그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 주오. 그대의 목소리,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오.”

 

사무엘하22:32절을 보면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바위 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의 책망이 들려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성령이 충만한 교회를 보고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고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하시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리가 교회 안에 들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건물로 지어 놓은 것을 가지고 교회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거기에 다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은밀한 바위틈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새번역입니다.

“"여우 떼를 좀 잡아 주오. 꽃이 한창인 우리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새끼 여우 떼를 좀 잡아 주오."”

 

에스겔13:4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여우입니다,

포도원에 여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여우를 잡아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여우들이 있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여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우가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선지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이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이 여우 때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도 참 많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으면 이 여우를 잡아 달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교회는 반드시 이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이 여우를 잡지 않으면 포도원이 다 망가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 여우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이 여우로 인하여 다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여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에 다 망가졌습니다. 이 시대도 역이 교회 안에 이 여우들이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여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도리어 이 여우를 참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새끼 여우 떼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있으면 그 교회는 망 합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가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게 되면 그 포도원은 다 망하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새번역입니다,

“(여자)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

 

교회입니다,

그가 의인화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부부입니다, 교회를 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또한 주님도 교회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 안에 있는 양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 안에서 백합화 가운데서 우리 양 떼를 먹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양들이 주님의 것인 교회를 사랑하고 있고 또 교회를 자기들이 세우고 있습니다, 교회와 주님과 그리고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모르면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에서 우리 양들을 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비유와 은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성도와의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교회를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양 떼입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여자도 되고 양 떼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처음에는 이 아가서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로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보았는가 하면 이제까지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어서 당연하게 생각을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교회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모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와 전혀 다르게 되고 또 그 교회를 음행에 빠뜨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교회가 어떻게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 성도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 아가서를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새번역입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돌아와 주세요. 베데르 산의 날랜 사슴처럼 빨리 오세요.”

 

교회가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이신 주님이 교회에 오셔야 하는데 이스라엘에게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양을 치실 주님이 오셔야 하는데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노루가 얼마나 빠릅니까?

사슴이 얼마나 빠릅니까? 그렇게 빨리 돌아와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과 교회와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양 떼를 치시는 목자 되시는 주님이 계셔서 우리가 지금 이 시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목자가 누구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양은 압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압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모릅니다. 이 시대 주님께서는 역시 교회에서 양 떼를 치시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치고 있는가 하면 포도원에서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가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가 지금 이 시대는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주님이 없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그 이름을 자기들의 진심으로 간절하게는 부르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없습니다. 다만 여우 새끼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우들이 양들을 다 잡아 먹고 있지만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교회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도 교회의 것입니다, 그 안에는 오직 주님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가 지금도 주님을 애타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아가서와 같은 교회가 있어야 주님이 양 떼를 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그런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