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스가랴 3:1-5절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말씀을 그저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 영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와 은유와 그림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말씀들은 우리가 더 조심스럽게 보아야 합니다,
육체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으려고 하는 그 자체가 육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있는 문자를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자체가 육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고 특히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보려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영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 영의 비밀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으로 낳기 때문에 육으로 살았습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사람이 있고 성령으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육으로 난 사람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겉모습은 사실 육으로 난 사람과 성령으로 난 사람을 도무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성령으로 난 사람과 같이 보이겠습니까? 육으로 난 사람이 사람의 이성에는 성령으로 난 사람과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사람의 눈에는 육으로 난 사람이 성령으로 난 사람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음으로 해서 자기가 성령으로 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입니다,
아니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성령으로 난 사람은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보인다 해도 그가 성령으로 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이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모릅니다,
아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 시대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니 성령으로 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난 사람과 육으로 난 사람의 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육으로 난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령으로 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이 하고 있는 육체의 행위를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외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수많은 외식을 하면서도 그것을 외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외식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외식을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런 외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낳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낳는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령으로 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성령으로 난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고 또 외식을 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버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기 까지 성경을 알아서 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대표적인 외식입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식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저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난 사람은 이렇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내 육체의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육체로 난 사람이 이 설교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식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외식을 했는가 하면 행위로 외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행위들을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이 시대 식사를 하지 전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똑같은 육체의 일인데도 사람들은 바리새인은 외식을 했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믿음으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했든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고 또 그것을 통해서 성도라고 인정을 하고 있다면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자기 육체로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영이 있는 성도는 그런 외식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 외식을 왜 하겠습니까? 그러나 육체로 난 사람은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이렇게 영의 일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저주를 받았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런 육체의 외식 때문에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육체의 외식을 이 시대도 똑같이 하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육체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으로 난 사람입니다,
그는 외식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입니다, 외식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면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체의 사람은 이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육체로 하는 외식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믿는 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다 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역사하는 힘이 있어서 내 안에 썩지 않는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이 생명이 자기 안에 탄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외식의 모양이 한 가지라도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종교에 미혹을 당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생명이 있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확증도 하지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내가 보니,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주님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그를 고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다.”
영의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천국의 일, 내세의 일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달리 소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글을 몰라서가 아니고 또 문자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못 보고 있다면 그는 소경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세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치 이 세상에 있는 일과 같이 보고 있다면 그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해도 소경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세의 일에 대해서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들을 보면서 마치 실제 있는 일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다 그렇게 보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지혜의 한계고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육의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 주시는 환상입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를 그대로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영의 일을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천국에 갑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스가랴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서 마치 우리가 죽으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의 사자와 그리고 사단이 있어서 우리를 두고 싸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사상이 다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판대 앞에 서 있고 그것을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천국에 들어가거나 기옥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스가랴의 말씀은 여호수아가 죽은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모두 기록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다 예표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8:26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여호와의 사자가 거의 천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 와서는 주의 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이 모두 기록이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 또는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역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아닙니다,
이미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주의 사자가 나에게 온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천사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그냥 천사라고만 기록이 되어 있지 그것의 형상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까지는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 주의 사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의 일에 있어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주의 사자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돕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형상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여호와의 사자라고 이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자입니다,
쉽게 언어적인 표현으로는 그렇습니다, 윗사람의 명령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사자라고 말 합니다, 지금 마찬가지지만 윗사람이 직접 가지는 못하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사자가 옵니다, 그리고 그가 윗사람의 권세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이성으로 알고 있는 사자가 그렇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지금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있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편을 생각할 때는 늘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직금 사단이 무엇에 대해서 대적을 하고 있는가 하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구원에 대해서 대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일입니다
그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구약에서는 다 그림자라는 것을 먼저 아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에서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나타났을 때도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개의 내세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빌립에게 가라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대적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구원에 대해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단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여호수아를 대적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사단은 나쁘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막연하게 여호수아가 사람이니까 죄가 있어서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4절을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주의 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서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일입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성경을 보고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의 구원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의 우편에 있어서 우리를 대적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사자와 같이 서서 우리를 중간에 놓고 싸우는 형국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대적 의문에 쓴 증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편에서 그것을 내밀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우리의 대적이 되어서 우리의 우편에서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환상을 통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우리 옆에 서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단도 영의 존재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치 사단이 우리 우편에 서서 여호와의 사자와 함께 서서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는데 대적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우편에서 가로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께서 반포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이 시대도 지키고 있습니다,
시편16:11절을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편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 대적하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이 우리가 우편으로 가는 것을 막아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대적이 되는 율법을 가지고 완전한 율법의 의를 내 놓으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바로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막아서 있습니까?
물론 사단이 우리 우편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것은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우편에서는 생명이 있는데 그 길을 사단이 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대적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우리를 대적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없는 곳에서는 범함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를 율법이 대적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3절을 보면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단 한 가지 할례를 받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그러면 너희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지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못 지키면 어떻게 됩니다.
지금 여호수아와 같이 율법이 우편에 서서 대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율법이 대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모든 제사에 관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지금 누가 대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대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 의무가 주어진 사람은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율법이 대적이 되어서 우편에 서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아무 생각이 업이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대적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아무 생각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율법이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이 왜 대적하고 있고 율법이 대적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 단 한 가지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지고 그것을 행하지 못하면 율법에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우편에서 대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한 나 주가 너를 책망한다.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다."”
실제가 아닙니다,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환상입니다, 그 환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는 말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십니까?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실제 사단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문자가 아닙니다,
지금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율법을 지키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가를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서 우리도 율법을 지키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8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사단을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율법의 요구를 다 내 놓으라고 요구를 하면서 그의 우편에서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대제사장에게 율법이 대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우편에 서서 막고 있는 대적에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구원을 하시는데 네가 왜 우편에 서서 막아서고 있느냐고 하면서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다,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의를 내 놓으라고 하면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내 놓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신다는 말씀은 의가 그것이 아니라고 책망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성도는 대적이 그 우편에서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성도의 의는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의가 되어서 율법의 요구를 믿음으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사단을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의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의 의가 아니라는 것을 성령이 오셔서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사단을 책망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율법으로는 우리를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새번역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표면적인 율법을 다 지킨 자입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 율법을 볼 때는 그는 하나도 지키지 못한 자입니다, 그렇게 지키지 못한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 모두는 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거지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지만 나사로는 거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지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다 이렇게 거지와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인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대제사장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더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경건의 모양을 내고 율법을 지키고 있다 해도 역시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도 더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깨끗한 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그가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 해도 대제사장 여호수아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더러운 옷을 입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다가 대적에게 막혀서 우편으로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더러운 옷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다 더러운 옷입니다, 이 옷은 아무리 해도 깨끗해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옷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종교이며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옷을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옷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벗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옷을 벗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이 옷이 자기들이 이성에 너무 좋아서 벗으려 하기 보다는 마치 보화가 되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옷입니다,
비유입니다, 실제 옷이 아니라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옷은 사람의 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대적하는 것을 보시면서 책망하시면서 이 옷을 벗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옷을 벗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의를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내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에서는 그것을 벗기라고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내가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렸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그의 의의 옷을 벗겨 버려서 죽어 버리고 그 안에 새로운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고 있습니다, 실제 옷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옷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내 육체의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스가랴서에서는 옷을 벗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의 생명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는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만이 죄과가 제하여 진 사람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죽은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은 옷이 아니라 아름다운 생명 영원히 썩지 않고 살아가는 천국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자기 옷을 깨끗하게 하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옷이 아니라 그 옷은 벗겨 버리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옷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새번역입니다.
“그 때에 내가,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워 달라고 말하니, 천사들이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우며, 거룩한 예식에 입는 옷을 입혔다. 그 동안 주님의 천사가 줄곧 곁에 서 있었다.”
구원의 관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옷을 깨끗하게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옷을 입기를 거절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일입니다,
이 시대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구원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를 보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반드시 율법이 대적이 되어서 우편을 막아서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만세 전부터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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