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죄를 자복 하고 버리는 자는

윤주만목사 2019. 1. 14. 21:20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잠언 28:11-14절을 보면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성경은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이 성경이 아니고는 어디에서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타락을 합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타락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을 보고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진 것이 어디 세상의 육법전서를 보고 빠진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율법주의에 빠져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고 마귀의 종으로 살아갔습니다,

 

마귀입니다,

그가 무엇을 가지고 우리 인생들을 죽이고 있습니까? 물론 세상의 문화와 그리고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도 죽이고 있습니다, 또 본질적으로 죄를 짓게 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이 육적인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죄를 이미 주님이 지고 가셨습니다,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죄로 우리를 사망에 이끌고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는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고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마귀가 하는 일을 모르고 이스라엘과 같이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설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율법을 잘 지킨 이스라엘을 향해서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제가 지금 똑같이 말하면 저를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 시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교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뭐 정신 이상한 목사가 하나 나왔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 너무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바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주 지극히 일부의 사람 중에서는 이 십일조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단지 십일조를 반대 한다고 해서 그가 진리를 알고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악한 일이라고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은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찬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바릅니까? 아니 성경에서도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제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마귀입니다,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망에 빠뜨리고 있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사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찬식을 한 자기와 이 세상에서 성찬식이라는 것도 모르고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성찬식이라는 것 단 한 가지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그것을 믿음의 행위로 생각하면서 도리어 그것을 하면서 주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그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게 하는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인생을 죄로는 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인생이 마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주시기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게임이 안 됩니다

죄를 안 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아담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사람이지만 사단이 미혹을 하니까 그냥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로는 못 죽입니다,

그것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육체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사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사망에 찾아오는 우리 육체를 구원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버리시고 새로운 것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기초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믿음이 있는 성도는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이 시대 천만 명 중에서 200명 정도 되면 감사합니다,

 

그 숫자도 많습니다,

최대한 많이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곳에 성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발달을 한 시대에서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 교회를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 말씀을 보아도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은 못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려면 사단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도 사람들은 그 말씀을 보고도 이 세상에 재물이 많은 부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모르면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이 자기는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19절을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이런 비유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저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자기를 무조건 거지라고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어떻게 가난한가도 모르면서 그냥 가난해야 천국에 갈 수 있으니까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부자라고 할 사람은 단 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이 가장 많은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다 가난한 자이기 때문에 자기는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가난하다고 하면 가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주님의 비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은 우리를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는 한 부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대표하는 한 사람이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이 한 부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부자입니다, 이 한 부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에 비해서 다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한 부자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예표로 하는 한 부자라는 말씀입니다,

 

성찬식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성찬식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것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교회 안에서 성찬식을 한 사람이 세상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재물이 부자가 아니라 행위가 부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성찬식을 합니다, 그리고 누구는 성찬식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누가 믿음이 있느냐를 떠나서 교회 안에서 성찬식을 하는 사람은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로 하겠습니다,

누구는 십일조를 합니다, 그리고 누구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누가 더 부자가 되겠습니까? 이 부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빠지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두 사람이 같이 있다면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이렇게 설명을 드려도 이해를 못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이 시대는 누가 부자라는 것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부자를 만들어 놓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부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다는 것은 자기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행위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그리고 성경에 문자 그대로 행위를 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는 부자가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경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새번역입니다.

부자가 자기 보기에는 지혜롭지만, 가난하나 슬기로운 사람은 그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본다.”

 

부자입니다,

교회 안에 이 부자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부자라는 것을 모르고 점점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얼마나 지혜롭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지혜롭게 생각하니까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왜 합니까?

성경을 보고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하는 성찬식이 틀리다고 하면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성경을 보니까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성찬식을 보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성찬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자입니다,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성경을 안다고 하니까 이 시대 모든 사람이 다 성찬식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지혜 있는 하나님의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혜가 없다고 하면 절대로 성찬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성경을 보니까 성찬식을 하는 것이 너무도 맞으니까 하고 있습니다,

 

자기 보기에는 지혜롭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자기가 얼마나 지혜가 있어 보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지헤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있고 또 지혜가 없어서 주님의 떡과 주님의 잔에 참여도 하지 않고 있는데 나는 성경을 알고 주님께서 이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했으니까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지혜가 있습니까?

 

부자는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찬식이 율법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입니다. 구약에 613가지만 율법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문자 그대로 자기 육체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찬식 삼가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의 만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그것을 성찬식이라고 만들어서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율법이 무엇인가를 먼저 배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성찬식이 율법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가 지키고 있다면 성찬식도 율법입니다,

 

지혜 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찬에 참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자기들이 지혜가 있어서 주의 살인 떡을 떼고 주의 피인 잔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입니다,

백만 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십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라면 부자입니다, 물론 천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가난하겠지만 어찌되었든 백만 원보다 더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분명히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한 행위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부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면 다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합니까?

부자는 그것이 부자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성경을 보니까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이렇게 부자가 되어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왜 부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 나중에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언15:21절을 보면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명철한 가난한 자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명철한 자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왜 부자가 되지 않는가 하면 부자가 되는 순간에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자를 살펴 압니다,

명철하여 가난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합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명철하여 가난한 사람은 그 길을 바르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부자가 하는 일이 어떠하다는 것을 살펴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면서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가나한 자는 부자를 살펴서 그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바리새인이었을 때는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지만 자기가 율법을 알고 나서 가난해 지니까 그 부자를 살펴 알아서 자기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립니까?

부자를 살펴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었을 때는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명철하여 가난하게 되어 보니까 자기를 살펴 알게 되어서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버렸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를 살펴 아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는 모든 행위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로 절대로 부자가 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버림으로 해서 가난한 자로 주님께서 주시는 부요함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고 있고 그 결말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종교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새번역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이기면 많은 사람이 축하하지만,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숨는다.”

 

의인이 득의하면 영화가 있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의롭다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득의 하면 영화롭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이름을 빛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모릅니다.

의인과 악인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 악인에게 가까이 가서 함께 그 악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어야 세상의 이치인데 도리어 악인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악인이 누군가를 모르면 숨지를 못하고 그 악인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악한 자들입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자기 육체로 행하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다 악인입니다, 하지만 이 악인을 더 의롭다 하고 있고 그 악인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나타나면 사람이 숨어야 하는데 도리어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있고 너무도 쉽게 미혹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악인에게 붙잡히는 순간에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명철하여 가난한 자입니다,

그가 의인입니다, 그리고 부자입니다 그가 악인입니다, 이제까지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에서 이 부자에 대해서 수많은 말씀들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새번역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사람은 잘 되지 못하지만, 죄를 자백하고 그것을 끊어 버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11절부터 계속해서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누구고 명철하여 가난한 자는 그 부자를 살펴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단어에만 집착을 하지 마시고 반드시 그 문장의 연결을 살펴 알아야 합니다,

 

단어만 보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짓는 죄를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다고 말씀을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의 죄를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알파코스라는 것을 하면서 이제까지 자기가 살면서 지은 죄를 다 고백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수치가 되고 반드시 숨겨야 하는 죄까지도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죄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다 끄집어내서 고백하는 아주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입니까?

 

이사야43:25절을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잠언의 말씀을 보고 천주교 같은 경우에는 고해성사를 하고 있고 기독교에서도 알파코스라고 하면서 자기 죄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말씀이 맞습니까?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라면 기억지도 않은 죄를 숨기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억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숨긴들 어떻고 그것을 밝히 드러낸들 어떻겠습니까? 정말 성경을 모르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기초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십니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지 않는 죄를 사람이 기억해서 끄집어내서 그것을 밝힌다는 그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정말 이상한 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자기 죄를 끄집어내서 그것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숨기지 않든 숨기든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죄를 다 지고 가셨는데 그것을 왜 다시 이야기를 합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 죄를 숨겨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종이에 써서 심지어는 그 종이를 태우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주님께서 그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다시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의 죄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짓는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은 참으로 이상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이사야에서는 기억지도 않는다고 했다가 잠언에서는 그것을 숨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때는 이렇게 말씀하고 저때는 저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죄입니까?

지금 잠언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가 아니라 영적인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짓는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방해하는 영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5: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입니다.

이 야고보서를 보고 거의 모든 사람이 육체의 병으로 생각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 병을 고치겠다고 하면서 샤머니즘적은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씀하고 있는 것을 육체의 병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제 그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함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지혜를 알았으면 육체를 따라 행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행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육체로 행하는 것이 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킨다든지 외식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 병이 되고 있습니다,

 

병이면서 죄입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영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는데 아직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병이 든 사람이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를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병입니다,

그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그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들었는데 자기가 그런 죄에 빠져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숨기면 결국에는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그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 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그런 죄가 있다면 그것을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죄를 지었는데 그것을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죄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도덕적인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가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이 말씀을 오해를 해서 죄를 다시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역시 자기가 자복한 죄를 다시 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죄입니다.

그것을 다시 안 지을 수 있습니까? 물론 어느 것은 다시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의 죄를 다시 짓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다시 지어도 된다고 조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어느 부분에서는 약한 그 사람은 다시 또 그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자복하고 그것을 버렸다고 장담을 해도 역시 그 죄를 다시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버립니다,

어느 것을 버립니까? 십일조가 영적인 죄라는 것을 알면 그것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복하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영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이 죄가 되어 부자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자복하고 버리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죄는 이미 우리가 짓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기억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영적인 죄를 생각하고 그런 죄가 나에게서 나오면 그것을 자복하고 버리는 성도가 되어야 불쌍히 여김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새번역입니다.

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재앙에 빠진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부자는 나도 모르게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부자가 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행위의 의를 가지고 마음에서 부자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무엇이 의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행위의 의를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그것에 열심을 내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거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자기 마음을 강퍅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거절하고 스스로의 행위로서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면서 죄를 짓고 있고 그것이 죄라는 것 조차 깨닫지를 못해서 자복하지도 않고 있고 버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로 빠지고 있습니다, 종교에 미혹이 되어서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믿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