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56쪽)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를 해야 합니다.
성도는 예배를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를 해야 하는가 하면 예배를 통해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배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하는 자가 없고 모두가 종교의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를 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행전에서도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하러 왔지만 당시 예루살렘에는 예배를 하는 자가 없어서 그냥 돌아가다가 성령이 빌립을 감동을 해서 그를 만나 예배를 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경은 진행형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름대로 예배를 한다고 했지만 예루살렘에는 예배를 하는 자가 없어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예배를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비슷한 환경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거의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이 시대 예배를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마다 가보면 수많은 예배 시간을 간판에다가 광고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예배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예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하고 있는 예배는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예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해진 율법에 의해서 자기들의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반드시 구원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예배는 그 자체가 율법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보다는 도리어 진노를 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그런 형식이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 합니까? 중요한 것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광야면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물가면 어떻습니까? 물론 건물이 있고 그 안에 모여서 차분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제가 건물 안에서 하고 있는 예배를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예배를 드리는 그 자체가 율법에 의해서 드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복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복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마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거기에는 작은 누룩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아주 작은 누룩 한 덩어리가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사도 바울이 11장에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긍휼을 입은 성도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배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직접 교제를 하는 성도는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예배라는 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성도의 교제, 주의 만찬을 나누지 않고 있다 보면 넘어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지방에 계신 분들입니다
혼자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편지를 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 이상 말씀을 안 보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정말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면 물론 그들이 예배를 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역시 성도가 모여서 교제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가능한 모여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도 모여서 예배를 했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문서나 영상이나 음성으로 설교를 전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이 말씀을 보는 지방에 계신 분들은 정말 한 달에 한번이라도 아니면 두 달에 한번이라도 그리스도편지에 오셔서 예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붙잡아 주시면 영상과 문서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가끔 한번이라도 교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배를 통해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결론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으로 저주를 받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성도는 정말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이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는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다가 멸망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우리 몸으로 드려야 합니다. 나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외식의 한 모양이라도 있는가를 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즐겨 하시지 않고 번제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우리 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순종치 아니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성도만이 이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이 예배를 우리 몸으로 드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그가 자기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는 반드시 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성경말씀을 거의 모든 목사들이 교회 밖으로 생각하면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정말 이 세대 기독교인을 본받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까지도 함께 공유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영에 있는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다르고 그들과 우리는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으로 원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복음을 가진 성도는 늘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모르고 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 것은 우리가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가 지금 진리 안에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부딪치면 그들은 우리의 원수가 되지만 그러나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민수기32:13절을 보겠습니다. (구 251쪽)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하신 고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
신명기1:35절을 보겠습니다. (구 261쪽)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이 세대입니다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대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광야에서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세대입니다
어느 세대가 그렇게 했습니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스라엘만 그렇게 했습니까?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이 시대 역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시대는 악을 행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이 성경을 보아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우리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다가 광야에서 소멸이 되었다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도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소멸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표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몇 명이 들어갔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그대로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광야라는 교회에서 60만 명이 악만 행하다가 소멸이 되고 단 두 명이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이스라엘만 악을 행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악을 행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상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보다 더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입니다
어느 세대입니까? 이제까지 성경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대라고 할 때는 어느 한 세대를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한 세대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이제까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세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7장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악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악한 자가 누군가 하면 은혜를 주었는데 그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 악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율법의 의를 주셨는데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 의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가장 악한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입니다
그들은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도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합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와서 어느 일부의 사람이 악을 행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악을 행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어느 일부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항상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왜 악을 행했습니까?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그들이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었고 믿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좋은 땅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습니다. 그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악을 행하면서도 지각이 없어서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이 세대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2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셨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입니다
그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자기 몸을 드리셨습니다. 어느 악한 세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부르시고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 할례를 행하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도 악한 세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그것은 온 율법을 대표하는 율법입니다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인 할례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내가 믿음으로 그 율법을 지킨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율법을 지킨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전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빠지게 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고 있고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은 악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는 정통이나 이단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율법을 지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정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다 율법주의고 다 악한 세대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악한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세대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아니라 악한 세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한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 시대 역시 악에 모두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따라하지 말라는 사전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를 따라하지 말라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악한 세대를 그대로 본받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세상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도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일을 가지고 그것을 판단하면서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본받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나는 몰랐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적인 능력도 주셨고 또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있는 재능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혜를 구하지 않고 종교에 빠져 포승으로 묶여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문자적으로 성경의 단어를 외우는 것으로 자기가 성경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를 본받아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보고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9절을 보겠습니다. (신 341쪽)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이 세대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왜 성경에 바알을 말씀하고 있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바알을 섬기는 것을 성경에 기록하셨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진짜 바알의 우상을 섬기지 않은 것으로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모든 것이 바알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입니다
이 시대는 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재물로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있고 율법의 의로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부자가 되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무엇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 하면 성도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이 세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까? 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 못지않게 율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대입니다
우리 성도는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하면 이미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부요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 얻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그 믿음으로 얻는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악한 세대를 따라 부자가 되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멸망을 당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다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이 세대는 모두가 악에 빠져 그것을 믿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모든 세대가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본받지 말아야 하는데 도리어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세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 세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로 해서 한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아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가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보아도 율법을 지켰고 또 이방의 교회사를 보더라도 모두가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는 일에서는 동일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는 이단이고 정통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세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종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교리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동일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51:10절을 보겠습니다. (구 839쪽)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계속해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볼 때 그 뜻과 의미를 바로 알려고 하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새롭다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다고 사전에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국어를 아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고 국어의 문법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성경을 볼 때는 사전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새롭다는 뜻입니다
사전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새롭다는 단어의 뜻을 거의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전혀 다른 성경 해석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성경의 정의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마음은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입니다
제가 이것도 역시 우리의 겉모습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은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나 복음을 알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 성도의 마음이나 같습니다.
그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롭다는 뜻은 이제까지 있었던 적이 없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이 마음이 변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마음이 새롭게 변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정말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새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국어의 뜻을 모르고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안식일 교회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 다른 것은 다 못 가져가도 새롭게 된 마음은 가져간다고 하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똑같습니다.
거의 안식일 교회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왔다고 보면 맞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에게 있는 마음을 어떻게 해서 좋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의 마음이 변화가 되고 새로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새롭다는 국어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것이 새로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이것을 내 의지로 변화를 시켜서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마음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킬 때까지는 우리에게는 이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약에 와서는 성령을 보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입니다
우리는 원래 이 세대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이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그러니까 우리 육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여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음은 이것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변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과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모든 것은 죽을 때까지 죄와 악과 그리고 거짓과 부패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서 감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를 하시고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복음에 순종을 함으로 해서 긍휼을 입은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이제까지 없었던 것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분별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제까지 없었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줄도 모르고 있고 성령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대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세대가 어떻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새롭게 하심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변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하면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인 우리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 마음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어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속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령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것을 어떻게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야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그것을 분별을 하지 못하니까 모두가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령을 매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는 무지한 목사들이 대형교회의 목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되는 교회의 목사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말에 미혹을 당해서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내가 성령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어떻게 받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행위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이 성령을 매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고 있고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세대를 그대로 본받아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세상 사람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앞에 있는 말씀이 풀어지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가 이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입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34:8절을 보겠습니다. (구 825쪽)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무엘하22:20절 을 보겠습니다. (구 502쪽)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히브리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령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상태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뜻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선한 것이 그리고 기뻐하시는 것이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왜 하나님이 선하신 분입니까? 그분은 우리를 구원을 해 주시기 때문에 선하신 분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선하신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막연하게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을 믿을 때는 주님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이 하신 선하신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율법을 폐하셨는데 이 시대는 순종을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선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맛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솔로몬이 되고 다윗이 되고 사도 바울이 되면 뭐 합니까?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그 기뻐하시는 뜻이 바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못해서 이스라엘과 같이 아직까지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이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자기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해도 먼저 죽는다면 그는 아버지를 슬프게 한 사람입니다
스티브잡스입니다
그가 50대 중반에 죽었습니다. 그를 양부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길렀습니까? 그 양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스티브잡스가 벌어놓은 재산을 바라고 있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스티브잡스가 살아 있는 것을 가장 기뻐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럴진대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혼 구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세상 이치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도 모르고 종교에 빠져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온전하신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온전하게 되셨는가 하면 우리를 구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성경에 왜 이런 말씀들을 기록했겠습니까? 그저 성경 전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만 기록해 놓으시면 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보는 성경이 마치 그와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그 말씀 하나면 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령이 오신 성도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도 안 보아서 아버지의 뜻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성경에 있는 문자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보고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는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 아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어디서 보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보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1장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이 소경이 되어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반드시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어느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는 구약 성경만 있던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까?
100가지보고 있습니까?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성경에 아들에 대해서 1만 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면 그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에서 1만 가지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으려면 최소한 5000가지는 보아야 한다면 100가지를 보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눈은 감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성막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고 율법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막에서 그리고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못보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성막입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성막론에 대해서 쓴 책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지만 어느 누가 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성막에서부터 아들을 못 보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 중에 하나도 성막입니다 왜 성막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저의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입니다
성경에서 그의 육체도 모르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인데 아들의 육체가 성막인데 그 성막에서 아들이 안 보이면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막에서 전혀 아들을 못 보고 있는 그들이 천국에 간다고 객기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문자적으로 성경에서 알면 뭐 합니까?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하는데 아들의 육체라고 하는 성막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성막의 그림과 모형을 보았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막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안 보이고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아야 믿을 수 있는데 아들이 안 보이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2:1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별하지 못하면 그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종교에 빠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분별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입니다 세상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세상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태양계 자체가 법에 의해서 운행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법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영입니다
공자와 논어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영은 법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기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무슨 영을 받았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 어리석음으로 해서 살이 자기 간을 뚫고 들어와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도리어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내 영혼의 구원이 걸려 있는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자기가 받은 영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로도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것으로 순종하는 것과 순종치 아니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람의 지혜로 세상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사람이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정말 금세기에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조차도 법을 지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가 집권을 하고 나서 법을 바꾸면서 그것을 지키라고 강요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않고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해 신령한 일을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 신령한 일을 전혀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사람은 100%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신령한 일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믿음으로 해서 내가 율법을 지킨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 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대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오셔서 이 신령한 일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믿습니까?
율법을 지키지도 않은 사람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킨 것이 된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세상이 볼 때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볼 때 우리 성도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의 차이라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일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신 일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신령한 일은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서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세상에 영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믿어집니까?
사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것을 믿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경에서 이 모든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은 사람의 지혜로 이것을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미련하게 보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세대를 본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 성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정말로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을 못 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일조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십일조는 혹시 드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일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찬송가도 부르지를 않고 있습니다. 또 식사를 하는데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을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고 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미련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있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그들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는 이런 일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6쪽)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그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서 그 지독한 율법주의에서 긍휼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말씀하면서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왜 본받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그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 세대를 본받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한 일이고 순종치 아니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이 세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율법의 문제가 다 정리가 되고 나니까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바로 전하고 나면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심각하게 허무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고 나면 그러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12장에서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에 각 사람에게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입니다
그것을 1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직분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이 세대는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복음을 주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거짓을 전하는 그들도 자기 직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참을 전하고 있습니다.
은사입니다
우리는 각각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한 성도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모든 사람이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직분에 대해서 차별을 두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4:1절을 보겠습니다. (신 266쪽)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이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이제 이 모든 복음을 비밀을 알았으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그 이상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는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까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망각하고 그 이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성경을 보고 풀 수 있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그 이상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어느 때는 너무도 힘들어서 인간적으로는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지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왜 그 이상을 생각하다가 도리어 그것으로 망하는 자의 길로 가려고 합니까?
영생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해도 영생을 받고 저 일을 해도 영생을 받습니다. 영의 일을 아는 성도는 마땅히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처지와 형편을 보면서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영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일을 더 해서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믿음의 선진들도 영생을 얻었고 우리 역시 영생을 얻었습니다. 아니 가르치는 자도 영생을 얻었고 그것을 듣고 믿는 자도 영생을 얻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일입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받은 은사대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또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일을 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0: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3쪽)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한 데나리온입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 모두에게 약속하신 것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내가 일을 더 많이 해서 더 많은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아니 내 생각에 저 일을 하면 더 많은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면 그 일을 해야 하겠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모두가 받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모두가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더 많은 데나리온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각의 은사가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우리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또 다른 분이 더 많은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만 전해진다면 그것은 누가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늘 사람이 모이는 교회 안에는 그 이상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복음의 비밀을 맡는 자로서 교회 안에서 각각의 은사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일이 아니라 영생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생이 중요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사는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이 육체로 각각의 은사를 따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이상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시는 성도님들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오직 영생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사도면 뭐하고 목사면 뭐하고 또 그 이상의 대우를 받으면 뭐 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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