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97강 하나님의 의 2

윤주만목사 2017. 12. 4. 14:59


로마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를 알려면 반드시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그 율법을 누가 지키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을 때 그 율법이 주님이 지키신 율법이 되어야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는데 도리어 율법을 보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 문자를 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없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몰랐는가 하면 율법을 보고 그것을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일을 모르고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9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여러 가지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0장에 와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말씀을 왜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에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아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초가 되는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국어만 알아도 그리고 자기의 의라는 국어만 알아도 되는데 그 쉬운 국어를 몰라서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를 어느 정도 모릅니까?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하고도 그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의 의를 세우느라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오셔서 하실 일을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대표가 되는 것이 바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입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들이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의고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습니다.

의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 분이 영으로서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의로우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의로운 영이 거함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가 하면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에 대해서 의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죄가 따라오고 그 율법을 지키면 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의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게 반드시 의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의를 세우지 않으려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율법을 안 지키면 의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의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복종치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이 둘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이 복음을 대적하게 해서 복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똑같은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의가 서는 순간에 복음에 복종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적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서 있어서 복음에 복종을 하지 못 했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복음에 복종치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이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못하게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신학자들 중에는 율법이 복음을 복종치 않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시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 나쁘다고 생각이 되면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 대해서 굳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입니다

이 의에 대한 문제를 바로 정의를 해야 합니다. 그냥 쉽게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계속해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로마서를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두 가지를 가지고 성경에서 비교를 해서 말씀할 때는 반드시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믿음이 좋으면 율법도 잘 지킨다는 성경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모든 사람이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를 얻었고 이제는 율법의 의를 더 이상 얻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끝이 났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어 주셔서 이제 더 이상 율법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 못지않게 아니 기독교인들보다 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복음에 복종치 않게 해서 믿음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3:39절을 보겠습니다. (210)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의를 얻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성경은 의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분명히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반포를 한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인 율법을 가르쳐 모세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하면 우리 인생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법이 모세의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고 하니까 마치 하나님께서는 법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고 사랑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법대로 하십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 이면에 있는 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모세의 법대로 하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말씀과 같이 모세의 법입니다. 이 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30:15절을 보겠습니다. (129)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디모데전서2:6절을 보겠습니다. (338)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입니다

우리는 왜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말씀대로라면 이스라엘이 인구조사를 할 때 온역을 당해서 죽지 않으려면 은 반 세겔을 내면 됩니다. 이것을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속전을 드림으로 해서 온역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받는 성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 때 그 백성을 계수를 하면 반드시 은 반 세겔을 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정해 놓으시고 부자라고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덜 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은 반 세겔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정도의 돈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이 시대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한 끼 겨우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반 세겔도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으로는 우리는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은 반 세겔이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온역으로 죽지 않고 생명이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거하고 있는 생명은 이 지구를 다 준다 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모세의 율법으로는 안 됩니까?

모세의 율법으로는 생명을 속하는 속전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의 속전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생명의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그림자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그림자를 걷어 내고 사도 바울이 생명의 속전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께 단번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이 생명의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출애굽기의 말씀과 같이 은 반 세겔을 드려야 합니다. 부자라고 더 내지 말고 가난하다고 해서 덜 내서도 안 됩니다 모든 율법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이 속전만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이 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냅니까?

부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고 가난한 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우리는 육적으로도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 생명의 속전을 낼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이면을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전으로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많은 율법을 인용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모세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에는 그 이면에 담긴 뜻이 있는데 그 율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꾸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 한 가지도 못 합니다 가난한 자가 와서 꾸어 달라고 하면 누가 넉넉히 꾸어 줄 수 있습니까? 나부터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데 누가 누구를 꾸어 줄 수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도 지키지 못하고 그 이면의 율법도 우리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면에 있는 뜻을 알면 더욱 더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는 주님께 꾸어 달라고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손을 펴서 넉넉히 우리가 쓸 것을 그 요구하는 대로 꾸어 주시고 있습니다.

안 꾸어 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반드시 꾸어 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에 우리 가난한 자의 쓸 것을 반드시 꾸어 주시게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루고 있는가 하면 율법에 그렇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율법에 우리 가난한 자가 꾸러 가면 주님은 반드시 손을 펴서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주셔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믿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면 꾸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꾸어 주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 주셔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마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을 다 지킨 부자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부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자이신데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니까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 주셔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는데 또 율법을 지킵니까?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또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주님은 또 다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신 율법이 유효하지 못하다면 주님은 계속해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또 의를 이루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가 하면 우리 안에 있는 약속의 씨는 의를 이룬 씨입니다. 그 씨가 있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 씨는 우리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우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가 의를 세우려고 율법을 지키면 이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의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면 복음에 복종치 않아서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복종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끝이 났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도 율법은 이제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 성도는 이제 의를 얻었기 때문에 굳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가 도리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겠습니다. (307)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꽤나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식에 자라 가는데 있어 너무 게으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의가 없다면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고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함으로 해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영의 일입니다

의를 이룬다고 하니까 내 육체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 썩는 것을 가지고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 썩는 것으로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심으로 의를 이룰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의로운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들의 행위로 의를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외식으로 자기들의 겉을 회칠하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것을 보고 의롭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썩는 것입니다

아니 냄새가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서 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분이 아니고는 우리에게는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의가 이루어지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의로운 씨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씨는 의로운 씨가 아니라서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거하는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 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 장로를 세우고 다시 다른 지방으로 가서 또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떠나 있는 상태에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할례의 타당성을 이야기를 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613가지를 대표하는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한 것이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할례를 행하지 않고 율법을 지킨다 해서 자기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게 하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거짓이라고 할 때는 그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거짓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라고 할 때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면 거짓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가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 형제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무엇을 하게 했는가 하면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할례는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가고 나니까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이 왜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 하면 성경에서 할례의 당위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왜 주일을 지킨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에서 주일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각종 헌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서 당위성을 말하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의적으로 풀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라는 율법이 들어옴으로 해서 내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같은 말씀인데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데 할례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 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면 이 두 가지의 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들이 저를 비난하고 또 욕을 해도 좋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다보니까 지금은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 누구입니까? 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유의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9절을 보겠습니다. (35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왜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까? 율법으로는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어 주심으로 해서 더 이상 율법이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사람들은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모세를 통해 반포를 하셨다고 하니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막연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온전케 되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율법은 온전케 하기 위해서 지킨다고 말씀을 하는데 나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입니다

너무 감성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문제는 성경을 성경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이미 자기들의 이성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자기들이 배운 신학의 기초를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신학에서 배운 그대로 율법의 제3용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온전케 하지 못 합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분명히 율법은 온전해 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늘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입니다

온전해 집니까?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 합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어느 정도 온전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있어서는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온전케 못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왜 지켜야 합니까? 생명에 대해서 온전함을 줄 수 없는 것을 왜 지켜야 합니까? 온전함은 고사하고 그 율법으로는 온전케 되지 못해서 도리어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지 않고 저주 받게 하는 율법을 주님께서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여러분이 이 율법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면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아예 보지도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던 그리고 초대 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보이는 그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지 율법에서 우리는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입니다

의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 율법의 마침입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왜 의를 이루지 못하는가 하면 율법이 아무 것도 온전케 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입니다.

거짓+거짓=거짓입니다 그런데 참 +거짓=거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이 무엇입니까? 참이 있으면 거짓이 그 참에 묻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참이라 해도 거짓이 하나라도 있으면 거짓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9절을 보겠습니다. (308)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왜 구약에서 무교병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출애굽을 할 때 너희 집에 누룩이 있지 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빵이 어느 것이 맛있습니까? 누룩을 넣은 빵이 맛있습니까?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 맛있습니까? 빵은 당연히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이 더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합니다.

왜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을 하는가 하면 그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율법 한 가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 한 가지가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거짓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이 99개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어쩌다가 아니 이것만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이라고 하는 그것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같이 너희 집에 누룩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누룩 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누룩이 있고 그 누룩이 섞인 빵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의 할레라는 율법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가 이 시대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다 누룩이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당연히 반문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왜 나쁘냐고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합니까?

그것이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이 누룩이 아닙니다. 그 외에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누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씨가 여러분에게 거하려면 그 전제 조건이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씨가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반드시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적은 누룩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저 막연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 라고 말씀을 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문자적으로 그렇구나 하는 것으로 끝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마침이 되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가려면 반드시 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자가 없이 다른 나라에 가려고 하면 그 나라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탔다 해도 그 나라에서 허용이 되는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입국 자체가 안 됩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 나라에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가 아무리 일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일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려면 먼저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리스도의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지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를 이루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표현을 하나님께 하고 있는 행위의 표시입니다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를 이루라고 하시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를 이루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악하다는 것을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의를 이루지 못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애써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치 않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12:19절을 보겠습니다. (99)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면서 유월절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칠일 동안만 누룩이 없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칠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육일 동안 창조를 하시고 칠일에는 안식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칠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숫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3,7,12,24 등은 다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의미의 숫자를 그냥 칠일 동안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입니다

유월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은 사람에게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이 일 년씩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일직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칠일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오순절이 오기 까지는 집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온통 누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집에 누룩이 있으면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교물이 무엇입니까?

누룩이 있는 떡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누룩이 없어야 하고 누룩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누룩이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칠일 입니까?

그 동안만 율법을 안 지키면 됩니까?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이제 오순절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 오순절에 받는 성령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칠일 동안에 누룩이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우리 집에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누구의 집입니까? 이 시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누룩이 있으면 반드시 끊쳐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은 누룩이 아니라 아주 많은 누룩을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누룩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빵에는 누룩이 들어가야 맛이 있습니다. 우리가 빵을 사 먹어 보아도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빵은 정말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러나 누룩만 넣어도 그 빵에 맛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입니다.

그런데 누룩이 섞이지 않은 빵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맛이 없습니다. 찬양도 안 부르고 있고 그렇다고 교회에서 하는 어떤 절기도 안 지키고 있고 율법도 하나도 안 지키고 도무지 무슨 맛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지금 기독교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영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그 무교병은 정말 아무 맛이 없습니다. 특히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은 먹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룩이 있어야 맛이 납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맛이 있어야 사람들도 자기들이 느끼는 그 맛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면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에게는 그것이 더 맛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무교병입니다.

이것을 먹는 사람은 유교병을 먹지 못 합니다 또 유교병을 먹는 사람은 무교병을 먹지 못 합니다 성경을 참으로 오묘하게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아무 맛도 없는 그 무교병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유월절을 먹게 하고 있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의를 이룬 영이 거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믿는 성도는 율법의 맛을 느끼면 안 됩니다 그 맛에 한번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무교병은 이제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칠일 동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이미 출애굽기에서부터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무교병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무교병을 먹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시니까 정신이 혼미해 져서 자기들이 율법을 다 준행하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먼저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유월절을 먹었다면 절대로 율법을 자기들이 다 준행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적으로 유월절을 먹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들어오기 전에 유월절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광야에 들어와서도 유월절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부터 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을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는 온갖 누룩으로 가득 차 있어서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먹을 기회조차도 주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기회도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래도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육적으로나마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유월절을 먹을 기회도 없습니다. 유월절을 먹은 사람이 없으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고 율법이 마침이 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회조차도 없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유월절을 먹는 시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의가 없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비교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육체가 살아 있습니까?

우리 성도는 이 육체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죽었는데 왜 또 율법을 지킵니까? 저주를 한번 받았으면 되지 또 저주를 받기 위해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또 다시 저주를 받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는 율법이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죽었는데 왜 지킵니까? 죽는 사람에게는 법이 적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어도 그가 죽으면 공소권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가 죽으면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공소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법이 우리를 관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법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세계 2차 대전 전범인 히틀러가 있습니다. 그를 법정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어 버리자 그에 대한 전범 재판은 열리지 못 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었습니다. 죽는 그 자체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율법이 관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다시 공소권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율법이 이제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는 공소권이 없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는 공소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믿어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공소권의 문제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이제 율법은 공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송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서 율법을 지키면 이제 율법은 그에 대해서 공소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공소가 되기 때문에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공소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소권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어 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성경말씀을 모르고 감성적으로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으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살고 싶습니까?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향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소권이 없어진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서 약속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래도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공소권이 살아 있는 그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율법의 공소권이 사라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공소권이 있어서 나중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0:5절을 보겠습니다. (253)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모세는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를 이룬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거짓에 미혹을 당해서 율법주의로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폭주 기관차입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기관차와 같은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도 이 율법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감히 율법을 폐한다는 것조차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주의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주의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공소권이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공소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공소권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지키면 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우리에게는 공소권이 있게 됩니다. 그 공소권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면 그 의로 사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그 의로 삽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의가 없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가 이루어져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데는 반드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지를 않으면 율법에게 공소권이 있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지면 율법이 고소를 해서 사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보고 억지로 풀다가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45절을 보겠습니다. (152)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율법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그렇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분명히 율법이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로서 세상 사람과 구별이 되게 살아가는 행위를 말씀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죽고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율법을 죽고 사는 문제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율법의 제3용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제3용도입니까?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덕법이 필요해서 성경에 율법을 기록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면 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면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씀이 따라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산다고 했으면 죽는 것이 반드시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는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죽는 것은 안 보고 사는 것만 보고 막연하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나는 진심이라는 추상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그런 추상적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거의 추상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죽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이미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실제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그런 감성적이 말씀이 아닙니다.

왜 죽었다고 합니까?

죽어야 공소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인을 한 죄를 지었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법이 강하다 해도 죽은 사람을 고소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고소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소권이 살아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리새인들을 고소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모세가 율법을 반포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너희를 고소해서 재판을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율법이 너희를 고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너무 담대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 율법이 자기들을 고소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고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지켜서 의가 있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고 죄가 나타나면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 내가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이미 기독교라는 짐승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줄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이 자기들을 고소하겠다고 하는데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면 도리어 분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은 고소를 합니다.

여러분이 이 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갈라디아에서 율법을 하나 지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행할 의무가 그에게 주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야고보서에서는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살인 안 했습니까?

간음 안 했습니까?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십일조라는 율법을 지키고 주일이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에서 하나라도 거치면 여러분은 살인한 자며 간음한 자며 우상 숭배한 자가 되어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31:15절을 보겠습니다. (131)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삽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 하나를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죽을 때 뭐라 변명을 하겠습니까? 성경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문자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짐승과 행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면 이 모든 율법을 다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가 안식일을 대신해서 주일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아니 설령 그것이 맞다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안식일에 불을 안 피웠습니까? 출애굽기에서 불 피운 자를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도 율법을 지키고 싶습니까?

성경을 보면서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어떠한 결과가 자기에게 따라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의로 여러분은 살아야 합니다. 나는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분명히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되지도 않는 말을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도 같이 죽었다는 것을 믿은 성도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살지도 못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감성에 젖어 하나님을 위해서 성도로서 살겠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하나라도 거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고소를 당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