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99강
로마서 10: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성경이 필요로 하고 있고 이 시대는 굳이 성경을 없어도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있어서 더욱 성경을 사람들이 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성경을 보더라도 이미 그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서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성경이 많이 훼손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헌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명령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것이 명령이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일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재능을 우리 인생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자도 이 명령을 지킬 수 있고 고아도 과부도 그리고 나그네도 명령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고 부자만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 명령을 지킬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함으로 해서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명령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을 지키려면 반드시 성경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면서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아주 쉽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믿으면 됩니다. 물론 이 복음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이 복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누군가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그 사람도 역시 성령이 오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하루아침에 이것이 이루어집니까? 그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성경 전체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육체의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이 복음을 듣기를 사모해야 하고 그런 성도만이 믿음이 역사를 해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입니다
이 복음이 내게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힘써 거절하게 만들고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없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과 복음을 함께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복음만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절기에서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시기까지 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믿음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았습니까?
그것이 믿음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 율법에서 복음을 보아야 하고 그 말씀이 믿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그 말씀에서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믿음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질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이 복음을 볼 수 있게 하시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의 문자를 보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 의미를 알 때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누가 믿음의 말씀을 전파했습니까?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믿음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행위에 의지하다가 부딪칠 돌에 부딪쳤고 이방의 교회 역시 로마서의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보고 전혀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냥 믿어진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말씀을 많이 보면 볼수록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말씀이 안 보이면 그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그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쫓아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행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은 행위가 전혀 포함이 되지 않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을 때 오직 믿음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 믿음의 말씀을 듣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킹제임스번역을 보겠습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는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의 번역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단어의 선택하나가 성경에서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게 하고 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보고 있는 성경 가운데서 한글개역성경과 킹제임스번역만이 시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다른 번역은 다 고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백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한다고 사전에 되어 있습니다. 시인, 어떤 사실을 옳다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백이라는 단어와 시인이라는 단어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입니다.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은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도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네게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과 신인을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백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을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입니다.
고백을 하든 시인을 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생명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백은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그 사실에 대해서 옳다거나 그러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고백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어느 것이 편하겠습니까? 고백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기 때문에 편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인을 합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고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 자기들이 다 주님이라고 부르니까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0:32절을 보겠습니다. (신 16쪽)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성경을 아주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그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한 것으로 자기가 시인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입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 시인을 한 것으로 시인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시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하고 자기들끼리 시인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종교가 삶에 전부인 사람입니다 종교가 하는 일을 국가도 함부로 못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있고 더 강했지만 워낙 종교도 강해서 가능한 국가는 종교가 하는 일에 관여를 하지 않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지금입니다
만약에 누가 우리를 채찍질 한다면 아마 국가가 당장에 그 사람들을 잡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너무 강한 교회는 국가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채찍질 하고 죽이고 할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시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시인하는 것으로 아니 자기들이 고백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시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을 할 때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의 시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는 시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자기 생명을 걸고 주님을 주로 시인하는 그런 상황이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안에서 그들이 하는 것과 같이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들끼리의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채찍질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십에 하나 감하는 채찍을 때렸습니다. 거의 반은 죽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채찍을 맞다가 죽는 사람도 간혹 가다가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 생명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시인이라고 합니다. 내 육체의 생명이 죽을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라는 말을 써야하는 것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시인이라는 말은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국가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다수에 속해 있으면서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런 시인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시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인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몸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하는 시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면서 자기들이 시인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62쪽)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시인입니다
그것은 법정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시인을 하는 그것으로 어떠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시인하는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유대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유대교인들만 구원을 해 주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 소경은 나면서부터 소경이라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모들이 생각할 때도 자기 아들이 소경으로 났는데 그 눈을 뜨게 해 준 것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셔서 주님의 능력은 믿고 있지만 아직 그들은 육적으로만 주님을 보고 있을 뿐이지 영적인 주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모들은 자기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는 해 주셨지만 그것은 엄연히 육적인 일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서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천국 복음에 대해서 다 전파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주셔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들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설령 자기 아들을 눈을 뜨게 했어도 유대교를 안 믿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인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도 그렇고 지금 이 시대 유대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어도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교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교회를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큰 교회에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사실 다른 교회에 나가도 그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이 교회를 대적해서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는 종교가 삶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내 놓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 부모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법정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가 출교를 당할 수도 있고 그가 그대로 유대교인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면 그는 지역 사회에서 거의 매장이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 부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 부모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막상 이런 처지가 오면 시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부모는 당장 죽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을 자기 영혼이 죽는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부모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그것으로 인하여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있었다면 아니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한 것을 믿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록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는 했어도 그리스도로 믿지를 않아서 시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나 시인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시인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시인을 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에 대해서 걸고 물을 때 그것을 시인할 수 있어야 시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모입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을 어떻게 얻는지를 몰랐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몰랐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유대교 안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잘못 알고 있지만 자기 영혼의 구원의 문제가 걸리니까 이 부모는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에서 지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말씀을 하고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았습니까?
자기 아들이 날 때부터 소경이었는데 눈을 뜨는 기적을 보았습니까? 그런 기적을 보고도 시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제 참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까? 그런데도 종교에 묶여 있는 사람은 두려워서 이 참 빛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 부모입니다
왜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유대교를 믿으면서 종의 영의 받았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으로 태어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지만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무서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의 영을 받아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안 지키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무서워합니다.
이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했어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아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면 하면 절대로 그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못 합니다
시인합니까?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있습니까?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교회에 나가는 것은 바로 이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무서워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혹시라도 전혀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할까봐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아들입니다 굳이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모는 이렇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아 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주님께서 분명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해도 시인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유대교가 묻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종이 되어 있어서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주입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영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죽어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어 썩어 없어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영을 주셔서 구원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아니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이 시대는 아예 듣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는 초대 교회를 지나자마자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서 더 이상 이 영의 일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흔적조차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으려면 반드시 세상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의 어느 학문을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것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기도 하고 또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것이 그리스도를 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말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이 성경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성경을 보는 것으로 마치 세상 초등학문을 쫓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합니까? 그리고 예수를 주로 받았습니까? 그런 성도는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그 세상 초등학문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그런 그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그것은 거짓에 속는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로 시인을 하고 주로 받으려면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를 쫓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로 받았습니까?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는 세상 초등학문을 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모르다보니까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에 있어서 법적인 용어입니다 지금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교회에서 다수가 있는 그곳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는 전제 조건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사람입니다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로 시인을 한다고 하는 그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을 하려면 반드시 율법이 마침이 되어서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찬송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에 나가서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찬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과 노래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없이 감성에 젖어 노래를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입니다
누가 찬송을 합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찬송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것은 이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찬송이라는 것은 반드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을 때 찬송할 수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과 구원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모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에 대한 기초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압니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히브리어로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복음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자기들이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마치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문자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문자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다 이 문자를 알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 말씀을 문자로 알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그 문자를 통해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을 내 마음에 믿으면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듭남을 모르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우리 역시 거듭남으로 해서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가 거듭나지 않으면 그는 아무리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문자적으로 알고 믿는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그 역시도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남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담으로부터 한번 낳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또 한 번 낳습니다. 그것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두 생명입니다
하나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생명으로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또 다른 생명으로 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 나야 합니다.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거듭남을 모르고 있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듭남을 모르고 아니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아! 그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어! 하면서 그 사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내가 믿어야지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막연한 믿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결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으면 우리 역시 거듭나야 하고 이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그 영이 거하게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거듭남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 중요한가 하면 그것은 우리의 거듭남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아담이 없으면 하와가 없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 살아나시지 않았으면 우리의 거듭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이라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던 사람이 이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거듭남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를 입으로 주로 시인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무슨 새로운 사상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교회는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바로 전하지를 않아서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어려워하면서 도리어 피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그 문장을 안다고 해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말씀만 보면 누구나 다 교회에 나오면 믿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구원을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이 거듭남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뭐 합니까?
그리고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자기 마음에서 믿으면 뭐 합니까? 그것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어서 산 소망이 있지 않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이 거듭남은 마치 아담에게서 하와가 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을 믿습니까?
이 시대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분이 상하더라도 저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다 해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 시대 세례를 받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저에게 무슨 봉창을 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육적으로 종교 안에서 세례를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세례는 그런 세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자기들이 육적으로 받은 세례를 생각하면서 당연하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 세례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이방에 보내신 것은 그런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세례입니까?
그것을 받은 것으로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하는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가 아닙니다. 아니 문자적으로 맞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말로 장사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내가 세례를 받았으니까 장사가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사실 불교인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장사되었습니다.
말로만 장사가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장사가 되었습니까? 우리 성도는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장사가 되었다는 말씀은 율법에 대해서 우리는 죽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었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만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장사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일으키시는가 하면 영으로 일으키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를 다시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일으키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죽은 자 같이 살아야 합니다. 아니 죽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죽은 자로 살아가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누가 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반드시 장사가 된 성도만이 약속의 씨인 영이 거하시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살아서 날뛰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죽은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살아 있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체험입니다
자기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체험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종교의 행위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행위 때문에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장사가 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그렇게 영이 거하는 성도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영의 생각을 해서 생명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10:10절을 보겠습니다.(신 253쪽)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조금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신앙생활 삼년이면 이제 어느 정도 성경에 있는 문자적인 지식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종교에 깊이 빠져 신앙생활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당개는 설령 풍월을 읊는다 해도 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고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는 역사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 마음으로 믿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죽을 때까지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을 모르고 행위에 빠져 열심을 내다가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모릅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서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모두가 다 소경이 되어 있어서 마음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니까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자기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데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음으로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일입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그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 전혀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복음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은 마음으로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믿는다고 하지 마시고 복음을 보고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4:9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서 성경에서 많은 복음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믿음에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약 성경을 볼 때 복음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그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보았으면 이제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의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면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모두가 자기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천국행 티켓을 받아 놓았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마음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문자적으로 알고 있어서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살아서 천국에 가는가를 전혀 모르면서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전혀 다른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었습니까?
반드시 저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의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저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사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리신다고 하니까 죄로 죽은 우리 신체를 다시 살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 신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고 하는데도 그 신체가 살림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막연한 것을 믿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산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영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씀은 의로운 생명으로 살리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는 의롭지 못 합니다 아니 다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는 생명이 의롭습니다. 그 생명은 아담의 씨가 전혀 포함이 되지 않은 씨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육체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자기들이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마음으로 믿으면 우리에게도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마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아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만이 이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수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고상한 척을 하려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사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고 감성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살아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면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와 같은 영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일에 대해서 마음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릅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다 이것을 믿는다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누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까?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어서 모두가 믿고 있습니다.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를 얻을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에게 어떻게 의가 이르는지를 전혀 모르고 마음으로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모르고 영의 일도 모르면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의에 이르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는가 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론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아카데미 강의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기초가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복음으로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어떻게 기초를 세워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기독교 신학에서 배우고 있는 사람이 만든 교리로 기초를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의에 대한 기초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서 우리가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의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론을 본 성도들은 이 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다시 보면 그것은 의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너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론을 할 때 말씀을 안 드린 부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의가 아닙니다. 우리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거기서 만나자고 합니다. 자기들끼리도 만나고 주님도 만나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가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그러니까 베드로나 요한이 주님을 다시 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의가 아닙니다. 아니 그럴 일도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의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럴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제자들이 천국에 갑니까?
천국에 가니까 사도 베드로도 있고 사도 요한도 있습니까? 만약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면 그것은 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못 봅니다.
사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그리고 모든 제자들도 주님을 다시 보지 못 합니다.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에 이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봅니까?
우리는 못 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만 주님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는 것이 의입니다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으로 해서 어떻게 됩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이 대제사장에 대해서는 구약에 이미 예표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면 이스라엘은 죄가 없는 백성으로 일 년 동안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다 보니까 일 년이 다시 옵니다. 물론 우리의 시간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년 다시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시작이 있고 끝이 없는 일직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입니다
일 년 일 차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을 단번에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습니다.
어떻게 올라 가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에 되셔서 단번 속죄 제사를 드린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의에 이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그들이 죄가 없는 백성으로 산 것과 같이 주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죄가 없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릅니다.
그런데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막연하게 자기가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영의 일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의 이스라엘입니다 그 영의 이스라엘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의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신체가 부활을 해서 아니 영과 어떤 결합을 한 신체가 부활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시 못 본다는 말씀은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시고 제자들은 땅에 있어서 다시 못 본다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체도 이제 썩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그 영이 부활을 하기 때문에 다시 못 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명으로는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 생명으로 다시 천국에서 주님을 볼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의에 대해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다시 보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으로서 단번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생명이 구원을 받기 때문에 다시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릅니다.
막연하게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으로 해서 우리를 위한 속죄 제사를 단번에 드리심으로 받으시고 우리에게 의가 왔습니다. 의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시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조를 하기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인은 법정 용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시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번역입니다
다 고백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왜 제가 한글개역성경을 말씀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결정적일 때 전혀 다른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다섯 가지의 성경을 보면 한글개역성경만이 시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머지는 다 고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는 고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의에 이르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릅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의에 이르는 것을 시인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고백으로 됩니까?
반드시 시인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주님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의가 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고백해서 구원을 받습니까? 시인을 해서 구원을 받습니까?
고백이 아닙니다.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시인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어를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시인, 어떤 사실을 옳다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0장10절의 말씀은 고백이라는 단어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버지께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가 되고 있고 우리가 의를 이루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고백을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반드시 한글개역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몰론 다른 성경을 참고를 하는 것을 제가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성경이 바르게 번역이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른 성경을 보는 성도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수 있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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