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교회에 대하여

제3강, 교회

윤주만목사 2017. 9. 27. 07:26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언6:24-29절을 보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영의 싸움입니다.

전쟁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입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육의 전쟁보다 더 치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방법을 통해 우리가 그 영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집니다.

이 싸움에서 무조건 진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이 영의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영의 싸움을 가르쳐 주고 있고 이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줌으로 해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우리는 육을 가지고 있고 사단은 영입니다. 싸움의 상대가 처음부터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에덴에서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과 하와도 그 싸움에서 졌는데 죄악 중에 탄생을 한 우리는 아예 싸움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 사람들은 사단과 싸우겠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인간과 지렁이입니다.

지렁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지렁이는 인간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숨는 그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숨지도 못 합니다. 사단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숨든지 다 찾아낸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아예 숨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단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이길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호를 해 주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아직 사람이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지 만약에 그 보호가 사라지고 나면 이 세상은 망하고 맙니다.

 

내 육체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영의 비밀을 우리에게 주셔서 사단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지고 있는지 이기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비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의 비밀을 알고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영의 싸움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싸움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로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사실은 육의 싸움에 불과한 일입니다. 영의 싸움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듭니까?

바로 음녀가 그렇게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음녀를 만들어 놓고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음녀와 음행을 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는 것 같이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음녀와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음행의 행위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은 음녀와 음행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지식으로는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욱 음행을 많이 하게 되어 있고, 그 음행에 한번 빠지면 거기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음녀가 생명을 사냥하고 있는데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 음녀를 음녀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거의 모두가 이 음녀로 인하여 사망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음녀가 누구입니까?

음녀로 보이기 전까지는 아주 정숙한 아내입니다. 너무도 순결한 아내인데 그 아내가 음행을 하게 되면 음녀가 됩니. 그러나 음행을 하고 있어도 그 음행이 밝혀지기 까지는 자기 아내를 정숙한 아내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상식으로 볼 때 음녀가 자기가 음녀라고 밝히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아주 정숙해 보입니다.

너무도 깨끗한 아내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음행을 하는 순간에 음녀가 되고 그 음녀가 음행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바로 영의 음녀가 그렇습니다. 이 음녀가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아니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지혜로는 이 음녀가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언제 압니까?

자기가 열심히 음녀와 신앙생활을 하고 나서 죽은 후 주님께서 오셨을 때 내가 음녀에게 속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음녀를 알 수 있다면 참 좋은데 사람의 지혜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이 음녀를 분별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야(16:13) 이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이 그것을 지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으면 이 음녀를 도무지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음녀의 겉모습을 보고 다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음녀가 음행을 하기 위해서 자기를 얼마나 아름답게 꾸미겠습니까?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지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교회와 같이 보인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음녀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누구라도 그 음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6:20-21절을 보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내 아들이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음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비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명령을 알고 지키고 있는 성도는 음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비의 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 있으면 그는 무조건 음녀에게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영생입니다.

음녀는 어떻게 하든지 영생에 대해서 모르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음녀는 이 명령에 대해서 전혀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는 정도입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성도는 음녀에 대해서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영생입니. 이 영생을 지키면 아니 영생을 얻으면 당연히 음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영생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영생에 대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영생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생만을 생각하는 성도는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은 성도는 음녀에게서 자기를 지켜 보호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명령을 지켰습니까?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영생을 얻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면 영생을 얻을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녀는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은 것 같이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만 다니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또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은 미혹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물론 이것을 명확하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 어미의 법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아비의 명령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 어미의 법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잠언은 6장은 음녀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어미의 법은 분명히 믿음의 법이 되고 있습니다. 음녀는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면 어미의 법은 믿음의 법으로서 믿음을 가지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비의 명령이 영생이라면 그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의 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 믿음의 법을 모르다 보니까 교회에만 나오면 거의 다 율법의 행위에 빠져 음녀와 행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이 믿음이 떠나게 되는 순간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순간 사단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4:1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믿음에서 떠나면 미혹이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믿음에서는 떠나 있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를 너무도 잘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다는 확증이 없으면 그는 반드시 미혹케 하는 영과 사단에게 의해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오직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그들이 오직 믿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고 말하고 난 바로 뒤에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고 또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들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구원에 대한 확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내 생명이 죽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아비의 명령과 어미의 법에 대해서 이렇게 중요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율법의 행위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6:22절을 보면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아비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어미의 법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새겨 있고 내 목에 달려 있으면 그것이 내가 다닐 때에 나를 인도할 것이고, 또 내가 잘 때에 나를 보호해 주고 있고 또 내가 깔 때에 나와 더불어 이야기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을 가지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이것이 확증이 되어 있어야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안전하고, 또 내가 잠을 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도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비의 명령을 지키려 하지도 않고 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는 있지만 어미의 법에서 떠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것은 오직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데 있어 방해를 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든 말든 아무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자기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누가 구원을 방해를 합니까?

바로 음녀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물론 이 거짓 선지자들도 이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병법에도 있습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이 세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또 그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닫지 못 합니다.

어떤 교회가 음녀이고 또 누가 거짓 선지자인줄을 사람의 지혜로는 그것을 분별이 안 됩니다. 예레미야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보았습니다. 아니 사도들도 처음에 예수를 전할 때 거짓을 전하는 자들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분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잠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비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비의 명령을 지키고 또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고 있으면 음녀에게서 또 거짓 선지자에게서 자기를 지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이 착각을 합니다.

스스로를 너무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가를 모르고 이 지구 안에서 사고하는 이성적 지식이 있기 때문에 너무 자기들을 높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과 믿음을 가지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지만 자기들의 지적인 수준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잠언6:23절을 보면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명령은 등불입니다.

그리고 법은 빛입니다. 훈계와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과 법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성령이 오셔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훈계의 책망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보혜사가 오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나서 그가 오시면 세상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책망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망을 하고 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을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책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무엇을 책망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책망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령론 자체를 모르고 있고 성령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중요합니까?

성령의 책망을 듣지 않고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무엇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는 가만 알아도 음녀에게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책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성령이 책망하시는 것을 기초로 보고 있지 않다면 그는 책망을 듣지 않고 있는 사람이고 또 성령이 오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책망을 듣고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도 그는 이 세상에 학문을 배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 버리려고 하는 음녀에게서 자기를 지키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것은 아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또 어미의 법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고 훈계의 책망을 듣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음녀에게서 자기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언의 지혜를 모르고 스스로 음녀에게 사로잡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음녀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영혼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악한 계집입니다.

그리고 이방 계집입니다. 이 악한 계집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방 계집은 이 세상의 종교나 사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악한 계집과 이방 계집에서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이 둘에 의해서 죽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방 계집에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거의 다 악한 계집에게 빠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에서 왜 그렇게 이 음녀와 이방 계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이 둘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그리고 이방 계집입니다. 이방 계집은 이 세상 사람들이 빠져 있고 악한 계집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계집이 사람의 눈에는 너무도 좋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의 지혜로 이 여자가 악한 계집이라는 것을 알면 이렇게 잠언에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또 우리가 보는 눈으로는 이 악한 계집을 도무지 분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하면서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잠언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어미의 법입니다. 또 훈계의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우리가 이 악한 계집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고 또 이방 계집이 아무리 나를 미혹을 해도 거기에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악한 계집이라는 말씀입니다.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와 같이 보입니다. 너무도 정결한 아내와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도무지 음녀라고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음녀를 보고 음녀라고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 아름답고 또 눈꺼풀로 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꺼풀이 무엇입니까?

너무 높은 것을 쳐다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 정말 선하고 의롭게 보일 정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든 교회가 다 음녀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가 어떻게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하고 또 그들이 요구하는 율법의 의가 얼마나 높은 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감히 생각도 못 합니다.

이런 음녀를 보고 그것이 음녀라고 생각도 못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와 같이 보입니. 그리고 그 안에는 율법의 의()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보면서 누가 그것을 음녀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들을 얼마나 근사하게 잘 지어 놓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그렇게 잘 지어 놓은 교회를 유지하느라 교회와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교회 안에만 들어가면 아름다운 색을 탐하게 되고 또 높은 율법의 의를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다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음녀입니다.

사람들은 이 음녀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녀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음녀를 도무지 못 보고 있으니까 이 음녀는 남의 일이고 자기는 이 음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음녀가 천주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주교도 음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천주교는 이방 계집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잠언에 이 음녀를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이 음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통입니다.

아니 그 당시에는 오직 이스라엘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사람들만 보고 있는 잠언에 음녀에 대해서 10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 까지 하면 더 많습니다. 이 음녀가 이스라엘 당시에도 생명을 사냥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음녀가 그대로 있어서 역시 생명을 사냥하고 있지만 역시 이 시대도 음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죽습니다.

이 음녀에 한번 걸리면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 한번 빠져 있는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 해도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음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갈등은 하지만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못 빠져 나옵니까?

전도서에서 포승으로 묶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얼마나 독한 여자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아니 이 여자에게 매여서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는 도무지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설령 자기가 음녀를 보았다 해도 아니 음녀라는 것을 알았다 해도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게 이미 음녀가 그 사람을 묶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간관계가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의가 있어서 자기가 아니라고 판단을 해서 냉정하게 그것을 끊지 못하는 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관습에 의해서 살다 보니까 음녀라는 것을 설령 안다 해도 거기서 나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음녀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와서 그 음녀를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다시 시작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에 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진리를 알았습니다.

나 혼자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내 가족이 먼저 걸립니다. 그리고 내 형제가 걸립니다. 그리고 내 학연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연이 걸려 있고 또 심지어는 직장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으로 얼기설기 역겨 있기 때문 자기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나올 수 없습니다.

 

모든 삶이 이 음녀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나오는 순간에는 마치 자기는 무인도에 홀로 남는 것과 같은 그런 처지가 되기 때문에 도무지 그것을 실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경조사도 이 음녀를 통해서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음녀는 도리어 빠져 나오려고 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기 까지 합니다. 왜 잠언에 이 음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생명에 관계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음녀입니다.

사도 요한도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고 기이히 여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이히 여깁니까? 사도 요한이 보았을 때도 그것은 음녀가 아니라 정통의 교회와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내와 같이 보였는데 보니까 그것이 음녀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음녀를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여서 귀한 생명을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너무 당연합니다.

사람이 불을 가슴에 품으면 그 옷에 불이 붙기 마련입니다. 또 사람이 숯불을 밟으면 발이 반드시 데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음녀와 음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구원의 옷이 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평안이 사라집니다. 음녀에 빠져 있으면 그 옷이 불에 타고 마음에서 평안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음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니 음녀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더구나 오직 예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음녀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요즘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습니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까? 커다란 교회를 지어 놓고 그것을 섬기느라 예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를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영생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한번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를 비판하면 싸우자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싸우자고 하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생명을 사냥하고 있는데도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음녀와 깊이 빠져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다 음녀가 지금 더 소중합니다. 교회를 위해서라면 진리도 버리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비유입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자기 옷이 타고 발이 덴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누구의 아내입니까? 에베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5:32)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의 아내와 통간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의 아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와 통간을 하는 자는 반드시 그 옷이 타게 되고 숯불에 발이 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를 만지기만 해도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만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그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성도가 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까? 그것은 남의 아내를 사랑하는 간통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왜 모릅니까? 그러나 지금 교회는 그 아내를 사랑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그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교회를 내가 만지기만 해도 이미 그 교회는 음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교회를 위해서 무슨 짓도 다 하고 있습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음녀와 함께 통간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켜 보호하세요.

그것은 아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훈계의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를 음녀에게서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지켜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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