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교회에 대하여

제4강, 교회

윤주만목사 2017. 9. 27. 07:58


두 짐승(2)

 

요한계시록13: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본 것을 또 비유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 이 말씀을 바로 해석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이 시대 요한계시록에 13장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자기들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절까지의 짐승을 다니엘서와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서 나온 열 뿔을 보면서 마치 다니엘이 사도요한과 같은 환상을 본 것으로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 뿔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 열 뿔은 이미 로마 시대가 끝이 나면서 나타났던 왕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열 뿔은 전혀 다릅니.

왜 다른 가를 이제 여러분이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열 뿔이 다니엘이 본 환상과 같은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저도 요한계시록의 열 뿔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열 뿔 보다는 짐승을 정확히 분별을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새끼 양 같은 짐승이 나오는데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한다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에서도 이 두 뿔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니엘에서 나오는 두 뿔이 만약에 사도요한이 본 두 뿔을 가진 새끼 양 같은 것과 같다면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열 뿔도 다니엘이 본 환상과 같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두 뿔을 가진 양이 다르다면 열 뿔도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니엘8: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을 가진 숫양이 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는 열 뿔을 말씀을 하고 있고 8장에서는 두 뿔을 가진 숫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는데 용같이 말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양이라고 정확하게 말씀을 하지 않고 새끼 양 같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두 뿔을 가진 양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다니엘8:20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메대와 바사의 왕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다니엘이 본 두 뿔을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 두 나라의 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메대와 바사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 민족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 왔는데 그 바벨론을 무너뜨린 나라입니다. 바벨론이 이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은 이미 지나간 환상들입니다. 물론 그 중에 아주 지극히 일부만 미래를 본 환상이고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까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형성이 될 때 까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열 뿔을 가지고 이상한 주장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은 세상의 실제 왕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본 것은 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환상과 신약의 환상은 전혀 다른 의미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바로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왕이 아닙니다.

이제는 영의 싸움이 있는 시대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열 뿔을 이야기 하면서 그것이 유럽 연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아시아에서 열 뿔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은 육의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지만 신약은 이제 영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영의 싸움을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은 구약에서 다니엘이 본 것과 같이 어떤 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이스라엘의 열 뿔과 일곱 머리에 대해서는 해석을 할 수 없지만 짐승만은 분명히 주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스라엘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9절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구원의 뿔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편에서도 이 뿔을 구원의 상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본 환상은 영적인 싸움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다니엘이 본 것과 같이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육적인 싸움과 영적인 싸움을 분별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짐승이 나옵니다. 앞에 말씀을 드렸던 짐승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짐승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짐승을 말씀을 하면서 두 뿔을 말씀을 하는데 앞에서 말씀을 한 열 뿔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 짐승은 열 뿔이 있고 일곱 머리가 있습니다.

그 열 뿔과 일곱 머리는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인데 열은 사람의 숫자로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안에서 나타났던 정파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뒤에 나오는 짐승은 앞에 짐승과 다르고 새끼 양 같은데 두 뿔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뿔입니다.

이 뿔은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뿔은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열 뿔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뿔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 용처럼 말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은 새끼 양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다른 번역에서는 어린 양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은 누구를 상징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라고 하지 않고 어린 양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짐승은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용이 말을 하는데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짐승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서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짐승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길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서 구원을 받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짐승입니다.

이 짐승은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린 양이라고 하면 그것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뿔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뿔은 구원을 상징을 하고 있고 이 짐승이 어린 양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가 타락을 한 짐승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구원의 길을 다 가르쳐 주고 있는 짐승입니다.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두 가지를 다 요구하고 있는 교회가 바로 이 짐승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양 같은 짐승은 두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 구원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뿔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를 보면 정확하게 환상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진리가 있는 성도님들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에 대해서 오직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어린 양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 같습니다.

이 짐승에게 구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교회와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구원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오직 예수를 말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린 양 같이 생긴 짐승이 이 시대를 다 미혹을 하고 있다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 합니다. 구원의 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또 다른 구원의 길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것을 반대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 앞에 짐승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짐승은 오직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정말 구원의 뿔이 있는 것 같이 믿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짐승은 또 다른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른 뿔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를 반대를 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리고 또 율법을 안 지키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까?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본 짐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린 양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어린 양으로 보입니.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쫓겨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을 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단이 그렇게 지금 교회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지 못하면 결국 그 영혼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직 예수라는 그 말만 듣고 마치 어린 양과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은 또 다른 뿔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교인들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이 짐승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짐승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어린 양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들어가면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통이라는 교회는 오직 예수를 전하기 때문에 꼭 어린 양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이 또 다른 뿔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우리가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사단 못 당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단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있다고 내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두 뿔을 가지고 있는 짐승에게 모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또 다른 뿔이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나온 짐승은 두 뿔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린 양과 같이 보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 양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이 짐승에 의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비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어떻게 타락을 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일곱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제가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늘 음녀가 되고 짐승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교회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승이 되어 버린 교회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정상적으로 진리가 있는 교회를 비판한다면 저는 주님으로부터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짐승이 되어 있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또한 여러분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12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처음 짐승은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모르고 율법에 빠져 지독한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가게 해서 거의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하시고 또 오래 참으셨지만 역시 그들은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짐승입니다.

이 짐승은 지금 이방에 세워지고 있는 교회를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되는 가를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나온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를 하니 곧 죽게 되어서 상처가 나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권세를 행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천주교가 얼마나 큰 권세를 행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천주교인들이 그 신부들을 얼마나 성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지금의 교회를 보면 역시 권세가 막강하다는 것을 진리가 있는 성도님들은 충분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짐승이 먼저 있던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먼저 있던 짐승이 이스라엘을 다 율법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교회들이 역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을 이스라엘과 지키지는 않을지라도 이 시대 교회가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가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보고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는데 이 시대 교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 형제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지 순례를 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다녀오는 것을 너무도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형제입니까?

그들은 원수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2:9 3:9)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던 것을 보면서 자기들도 이스라엘이 되려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짐승입니다.

왜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 시대 교회도 짐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짐승들끼리는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 교회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배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풍요를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자긍심을 보면서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그리고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민족을 보면서 경배를 하고 있고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축복해 주신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이스라엘과 같이 그런 축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경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그들을 얼마나 경배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그들을 형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짐승이 되어서 먼저 있던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짐승이 이스라엘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이 시대 교인들이 보고 마치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탈무드라는 책을 마치 성경과 같이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둘째 짐승이 그렇게 첫째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를 아는 성도라면 절대로 육적 이스라엘을 따라 되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있다 보니까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 합니다.

 

로마서11: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은 망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지를 잘라 버리셨습니다. 그들이 짐승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원 가지를 아까워하지 않고 그들을 잘라 버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참 감람나무를 심었는데 그들이 돌 감람나무가 되었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다 짐승에게 잡혀서 구원을 받을 성도가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경배를 한다고 하니까 섬기고 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그것을 갖고 싶어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육적으로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어 축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요한계시록13장입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바로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짐승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잘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음녀입니다.

그리고 짐승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얼마나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음녀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짐승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13절을 보겠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또 다른 짐승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는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참으로 어려운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해석을 하기 힘이 들고 사도요한이 본 환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3장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면 됩니다. 이 모든 말씀이 환상과 비유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다 알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13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짐승입니다. 처음 나온 짐승과 그리고 뒤에 나오는 또 다른 짐승에 대해서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다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라는 말씀을 합니다.

앞에 내용보다 더 심해질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있던 짐승보다 더 심해질 때 사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 짐승이 행했던 것보다 또 다른 짐승이 행하는 것이 더하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는 단어라는 것을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앞에 짐승은 큰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짐승 역시 권세를 받았는데 그 보다 더 해서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땅에 떨어지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짐승도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또 다른 짐승이 하고 있습니다. 앞에 짐승은 이스라엘이고 또 다른 짐승은 지금 이 시대 교회라는 것을 깨닫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불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불이 내려오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볼 수 있는 불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그것이 실제 불로 나타났지만 신약에서는 다 그 의미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레위기9:22-24절을 보면,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이스라엘이 성막을 짓고 첫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그 아들들과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나니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에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을 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불이 나와서 번제물을 사른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제사를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사실 제사를 드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들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렇게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왔습니다.

자기들이 드린 제사의 응답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난 후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이스라엘이 직접 본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렇게 자기들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으로 보여 지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응답입니다.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제사 응답을 받은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제사를 다 받으신 것 같이 그렇게 이 시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받는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짐승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이단의 종교가 아닙니다. 정통이라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정통의 교회가 어떻게 타락을 하는 가를 사도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짐승은 전에 있던 짐승보다 더 해서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야 하는데 하나님과 같이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속습니다.

아니 미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땅에 불이 내려오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미혹이 안 될 수 있습니까? 이 시대 또 다른 짐승의 그런 이적을 보고 아니 자기들이 응답을 받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그렇게 못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짐승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하늘에 올라 가셨기 때문에 웬만한 것으로는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게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은 응답의 불입니다 자기들이 구원에 응답을 받은 여러 가지 표적을 보고 미혹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대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또 기도 응답을 받고 하는 것을 체험을 하면 안 믿을 사람이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누가 주고 있는가 하면 바로 짐승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땅에 불이 내려왔다고 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도 영입니다.

어떤 능력도 다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은사를 행하게 하는 것 역시 사단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마치 하늘에서 자기들에게 응답을 주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사단은 더 지혜롭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율법만을 가지고 얼마든지 그들을 미혹할 수 있었지만 이 시대는 그것으로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은사와 여러 가지를 통해서 마치 하늘에서 응답을 주는 것 같이 미혹을 해서 사람들을 멸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실제 불을 보았지만 이 시대는 여러 가지 환상이나 꿈이나 기도의 응답이나 그리고 음성을 듣는다든지 은사들을 통해서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을 행하시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합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응답과 같이 믿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그런 표적들을 보면서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모르고 그저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는 그런 것에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면 뭐 합니까? 아니 그런 체험을 한다 한들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그런 것을 보면서 마치 믿음의 증표나 되는 것 같이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 나면 사람들은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파코스를 합니다.

그리고 빈야드라든지 관상기도라든지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마치 하늘에서 땅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고 번제물에 내린 불과 같이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설령 그 불이 내려온다고 해서 그것을 보았다 해서 그것이 구원과 연결이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불을 보았지만 결국에는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13:14절을 보겠습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또 다른 짐승입니다.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이 짐승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미혹이 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모르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짐승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고 있는 교회라는 것 깨달아야 합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고 또 저를 공격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을 모르게 되면 다 미혹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교회가 진리에 서 있는 거룩한 교회라면 굳이 미혹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짜는 진짜 같이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진짜 같이 보이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짜는 자기가 진짜이기 때문에 남들이 가짜라고 해도 굳이 미혹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자기가 가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진짜 같이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와 은사적인 것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 것을 나타내야 진짜로 볼 것 아닙니까?

 

진짜는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진짜 이기 때문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어떻게 하든지 진짜 같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진짜 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 짐승에게 그런 권세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권세와 이적을 보고 마치 진짜 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4:1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사단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그가 무엇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아마도 거의 대부부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단은 죄를 짓게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것들을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이 세상적인 생각이고 초보적인 생각인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죄를 짓게 해서 죽게 합니까? 그렇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방해를 해서 죽게 하고 있습니까?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초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미혹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우리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지 못하게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고 행위로 빠지게 만들어서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심각한 율법주의가가 되어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첫째가 바로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들을 통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은사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들을 통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오히려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고 교회 안에서 은사를 행하려고 하고 있고 또 체험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자기들을 죽이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또 사단이 그렇게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은사적인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미혹을 당해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아는 성도는 땅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일서3:6절을 보면,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어디에 거합니까?

우리 성도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의 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거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육체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땅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아무리 그가 교회 안에 있다 해도 역시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만들었지만 이 시대는 수많은 우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짐승을 위해서 우상을 만듭니다.

사실 교회 안에 우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보는 교회도 우상이고 또 목사도 우상이 되고 있고 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행위와 은사들 역시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 그 모든 것이 용납이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짐승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다 해서 다 그 안에 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을 통해서 두 짐승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짐승은 정통이라고 하는 이스라엘과 그리고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우리 교회가 혹시라도 짐승이 되어 있지 않나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늘 깨어 있어야 내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 짐승이 됩니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교회가 정통이라서 짐승이 안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보이는 눈과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교회를 보고 또 성경을 보다 보니까 짐승을 보고도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로 보고 있습니다.

 

시편49:20절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스라엘은 존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시고 그 자손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존귀한 백성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짐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으면 그가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민족이라 해도 역시 멸망하는 짐승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의 교회 역시 짐승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 합니다.

 

세상이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에 청해서 존귀에 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짐승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너무도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교회 안에서 들어와 믿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짐승에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 그것은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보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이스라엘을 따라가려고 그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짐승으로 보지 못하면 그는 짐승에 의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짐승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정통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에게 미혹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에게 얼마나 미혹이 되어 있는지 제가 교회를 짐승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공격을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해도 저를 공격을 안 할 사람들이 교회를 짐승이라고 하면 저를 이단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것을 비판을 한다고 아예 진리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장로교가 무엇이고 감리교가 무엇이고 침례교가 무엇입니까?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그것부터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장로교인입니까? 내가 김리교인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그 안에 있다고 요한일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다.

장로교가 성경에 있습니까? 감리교가 성경에 있습니까? 그는 장로교인 감리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성도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게바에게 누구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짐승입니다.

장로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짐승이고 감리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장로교도 감리교도 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이 땅에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짐승 반드시 멸망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짐승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짐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짐승과 같이 멸망을 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짐승이 무엇인줄을 모르고 짐승에게 철저하게 미혹이 되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지혜를 구하는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짐승에게 미혹이 되면 마치 자기가 지혜가 있는 줄로 알게 만들고 있고 하늘의 것을 구하기보다는 땅에 것을 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짐승은 철저하게 땅에서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실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해서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청함을 받아 존귀에 처했으나 깨닫지를 못해 멸망하는 짐승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13:15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처음 짐승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짐승은 바로 이방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부터 이 세상에 세워지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도 물론 짐승이지만 성경은 이단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들이 최소한 우상 숭배는 하지 않는다고 자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그리고 일월성신을 섬기면서 살았을지라도 자기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다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짐승에게 미혹이 돼서 우상을 섬긴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5절을 보면,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우상 숭배자는 천국에 못 갑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것은 인정을 할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을 숭배를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고린도전서8장을 강의를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우상의 제물을 교회 안에서 먹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있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고 있는 교회는 거의 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고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얼마나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탐욕에 찌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먹어도 족하지를 않고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탐욕을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탐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을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우상 숭배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것을 탐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제가 강조를 합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 이 세상에서 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탐하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교회 안에서 무엇을 탐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처음 보는 분들은 누가 교회 안에서 탐을 내고 있는 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내고 있는데 무슨 교회 안에서 탐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있을 때는 교회 안에 탐욕을 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있어도 적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탐합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탐욕을 부린다고 말씀을 하니까 우리의 이성적으로 나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탐욕을 낸다든지 재물을 탐욕을 낸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교회 안에서 탐내고 말 것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먹는 장소도 아니고 또 돈을 버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탐욕을 낼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의 의와 은사적인 것입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탐욕에 물들어 있어 무엇이라도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부리고 있는 탐욕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에 얼마나 탐욕을 부렸는가 하면 자기들의 말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찾아온 부자 청년도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의를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문화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 그리고 은사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

 

탐욕입니다.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있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에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특별한 것을 하면 그것이 교회 마다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자기들도 그것을 하고 싶어서 탐욕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그런 행위로 탐욕을 부리는 것을 누가 주는가 하면 바로 짐승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찬송가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다들 노래를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그 노래를 부르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못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두가 다 우상 숭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하고 있는 단 한 가지의 행위에 탐욕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십일조를 정확하게 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지 몰라도 자기는 믿음으로 십일조를 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 역시 탐욕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 그냥 지킵니까?

하나님의 날이라서 지킵니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주일을 잘 지킴으로 해서 사람들로부터 그 행위를 통해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왜 그것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짐승에게 미혹이 돼서 주일이라는 날에 탐욕을 부리면서 자기를 의롭게 보이고자 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 하면 바로 짐승입니. 이 짐승이 교회를 붙들고 있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의를 들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기 위해서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그것이 실제 우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아니 사람들이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우상으로 교회가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또 다른 짐승이 먼저 있던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더라 하는 이 말씀은 율법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이 율법, 우상의 제물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전체적인 율법을 지키지는 않을지라도 자기들이 정해 놓은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에 대해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입니다.

실제로 죽인다는 것도 될 수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가 실제로 죽이지는 모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십일조를 안 내고 또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단으로 정죄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짐승이 되어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면 아마도 견디지를 못하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은 자기를 경배하게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않을 때는 믿음이 없다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일부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안 내고 주일을 못 지키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

 

요한계시록13:16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입니다.

이 짐승에게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짐승이 어떻게 되는 가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 모든 자에게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코드입니까?

정말 정신 나간 말들을 하고 있습니. 성경이 이 세상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 표를 받는 사람은 이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고 남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실제 어떤 표를 받는 것으로 바코드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에게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고 경배를 한 자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이 세상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서 있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코드는 이 세상의 일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실제 바코드를 한다 해도 이 세상 사람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코드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표라는 것이 그렇게 보이는 실제 어떤 형태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에베소서1:13절을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계시록7:3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성도입니다.

여러분이 인치심을 받은 것을 믿습니까? 그럼 이 인치심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느끼고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이 인침을 누가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영의 일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그 인침을 보지도 못했고 또 만지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그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이마에 인침을 받았는데 그것을 누가 증명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영의 일을 모르고 있는 무식한 사람들이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고 하니까 그것을 바코드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왜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에 그런 바코드로 인하여 구원을 못 받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거대한 짐승을 만들어 놓고 강제적으로 표를 심어 버리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코드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은 것을 알 수 없듯이 짐승이 표를 주는 것 역시 사람들은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을 그렇게 바보로 알고 있습니까? 사단은 사람들이 죽는 줄로 모르게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환상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입니다. 그것을 실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두 짐승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와 이방의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알면 이 표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코드가 마치 사단의 표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바코드를 받으면 큰일이 나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매매를 합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바코드가 안 찍힌 것이 있습니까? 만약에 이것이 바코드라면 이미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코드가 찍혀 있는 상품을 매매를 하면서 자기가 표를 안 받았다고 말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어린 아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표를 누가 받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자들이 이 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아 있는 자들 중에 표를 안 받고 받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모든 자들이 받았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를 하지 않은 자는 다 죽이고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표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안 받고 받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았는데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 빼고는 모두가 이 표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볼 때 주의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을 때는 그 말씀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기록을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두 짐승이 누구라는 것을 안다 해도 왜 이 말씀을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성경을 모르는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첫 단추가 되는 짐승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13장을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신 이유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17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누구든지...

139절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그 이름의 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9절에 있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13:9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13장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장에서 두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성경을 보는 어느 사람이라도 이 말씀을 보고 바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두 짐승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두 짐승에게 미혹이 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에게 미혹이 되면 누구든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있던 짐승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분별을 하는 성도는 인내와 믿음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또 다른 짐승이 표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하는데 이 표를 받은 자 외에는 누구든지 매매를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9절과 17절의 누구든지는 반대가 되는 말씀이지만 결국은 똑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처음 누구든지는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두 번째 누구든지는 짐승에게 미혹이 되면 누구든지 매매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와 인내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두 짐승에 대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에 권세에 의해서 모두가 굴복을 하고 결국에는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또 교회가 짐승의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게 된다는 것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성도들을 말씀하면서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짐승입니다.

다 죽이고 땅에 살아 있는 자 모든 자들에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가지고 매매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하는 사람은 구원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표를 모두가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13:44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매매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의 소유를 교회 안에서 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 은사적인 의, 이런 모든 것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매매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표를 받은 자만 매매를 합니다.

성도들이 이것들을 매매를 합니까? 성도들은 이 소유를 이미 다 팔았기 때문에 매매를 할 수 없습니. 그러나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매매를 하고 싶어도 자기 소유가 없기 때문에 이미 다 팔아서 천국을 샀기 때문에 매매할 수 없지만 짐승에게 표를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이 의를 매매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짜 사고 파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매매를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매매를 하는 것과 같이 자기의 의를 사고 있고 또 팔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결국 이방의 교회도 또 다른 짐승이 되어서 존귀에 처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 소유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18절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육백 육십 륙...

바코드가 아닙니다. 성경에 바코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육백 육십 육을 정확하게는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비유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완전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짐승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져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그들은 율법에다가 은사가 더해져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그 우상의 숫자가 육백 육십 륙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 우상 숭배가 무엇이냐면 바로 탐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탐욕을 부리고 있는 그것이 바로 이 육백 육십 륙이며 성도는 탐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이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탐심을 부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이성으로 좋게 생각하고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역시 탐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한 행위라도 탐심을 부리고 있다면 그는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또 짐승의 표를 받아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왜 탐심을 부리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탐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사람은 반드시 짐승과 같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이 시대 교회는 사도요한이 본 환상과 같이 모두가 탐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율법 얼마나 지키고 싶어 합니까?

은사 그것을 얼마나 갖고 싶어 합니까? 그것을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온갖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런 것을 탐하지 않고 있습니다. 짐승에게 경배를 하지 않는 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짐승의 표를 받아서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두 짐승입니다.

처음에 있던 짐승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짐승은 이방의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모든 교회가 다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지 않은 모든 사람은 이 짐승의 표를 받아서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물건을 매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매매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지만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과 은사를 가지고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짐승에게 표를 받은 것인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환상과 기도응답 같은 표적을 다 표로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두 짐승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듣지 않은 것 같이 이 시대 역시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듣지를 않고 있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미 우상의 제물만을 전하고 있고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두 짐승을 바로 분별하고 또 사도요한에게 보여준 환상을 통해서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모든 탐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짐승이 만든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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