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교회에 대하여

제5강, 교회

윤주만목사 2017. 9. 27. 08:51


교 회

 에베소서5:32절을 보겠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교회,

성경은 이 교회를 주님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여자를 의미하고 있는 4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생리적으로 탄생을 한 여자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여자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회를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대 보이는 건물을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을 이야기 할 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신부들의 연합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모여 있는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달을 하다 보니까 예배를 드리는 건물들이 아주 잘 지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하는데 그것은 예배당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교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교회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건물을 아무리 교회같이 지어 놓았다 해도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의 건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세속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마음대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0장에서 사도 바울이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락방을 교회라고 칭하지 않고 다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임을 갖는 장소를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그냥 다락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장소에서 강론을 듣고 있었지만 교회라고 말씀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거기서 한번만 말씀을 전했겠습니까?

 

아마도 모임이 있을 때 마다 그곳에서 전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을 듣고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누군가 내어 주었습니다. 사도행전16장에 나오는 루디아의 집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모임을 갖는 장소로 제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곳에 지금과 같은 건물이 세워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사실 초대 교회는 교회라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어디에도 교회라는 건물을 지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교회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어디에서 모이든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모음이 있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를 건축을 했습니까?

제가 이 시대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반대를 하고 싶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교회를 건축하지 않아도 되는데 억지로 교회라는 건물을 짓는 다는 것은 솔직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근사한 건물이 없더라도 그 안에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입니다.

 

에베소서1:23절을 보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을 그의 지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도 그의 몸이고 교회도 그의 몸입니다. 단수 그의 몸이라고 할 때는 성도 되는 것이고 복수 그의 몸이라고 할 때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그의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그의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있어야 그의 몸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을 하셨을 때 과연 지금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건물이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건물로 지어 놓은 교회가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까?

 

성도는 언어 사용을 잘 해야 합니다.

교회가 아닌 것을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차라리 예배당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습니다. 성도의 잘못된 용어 하나가 결국에는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잘못된 언어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냉정하게 생각을 하고 지금이라도 고칠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쳐 나가는 것이 개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자기들이 현대식으로 지어 놓은 건물이 어떻게 성전이 됩니까? 구약에 성전은 분명히 율법에 따라 지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편리에 따라 지어 놓은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하나가 결국에는 종교화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 자랑스럽게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 몸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실 자의 충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교회는 그의 아내이기 때문에 만물 안에서 그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있고 그 충만한 영광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18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몸과 머리는 한 몸입니다. 머리가 없이는 몸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한 몸이 없는 머리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입니다.

창조주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 교회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마치 아담이 잠들어 있을 때 하와가 탄생이 된 것같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난 후에 그 교회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입니다.

 

머리입니다.

그리고 한 몸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이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성도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있는 그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몇 명이냐를 따지지 않고 또 그곳이 어떤 장소냐를 따지지 않고 성도들이 모여 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고착화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 교회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주 작은 틈이 결국에는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교회를 타락하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라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 지역에 모여 있는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 건물과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여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칭 했습니다. 또 교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교회가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 되어야 하는데 주님과 별개의 존재가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타락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시느냐면 자기를 주시면서 까지 이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이기 때문에 자기를 주면서 까지 이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종교화가 되는 순간에 타락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라는 간판만 내 걸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는 줄로 이 시대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자기를 주시면서 까지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그 교회가 급속하게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교회를 너무 좋게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교회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회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또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내 영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시고 있는가를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26-27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시고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재를 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여야 합니다.

 

말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 속죄를 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거룩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들이 단번에 속죄된 것을 믿을 때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셔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그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 속죄를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받아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티가 없을 수 있습니까?

율법으로는 반드시 티가 있습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입어야 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을 입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 아니 거룩한 모양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지어 놓은 대형교회를 보면 너무도 거룩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교회가 어떻게 우리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또 교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주님께서 사랑을 하시고 또 물로 씻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교회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가를 이 시간을 통해서 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잠언6:26절을 보겠습니다.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음녀가 되고 있습니.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음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교회는 음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음란한 계집을 너무도 신뢰를 하고 있고 이 음란한 계집을 너무도 믿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음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귀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다 음녀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교회가 세워지는 순간 예외 없이 음란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에덴에서부터 보여 주었습니다. 아담의 아내인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 그 선악과를 주면서 같이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니라고요?

절대라는 말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가능성이 99%이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음녀, 음부, 음행, 간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만큼 교회는 음녀가 될 가능성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 생명을 사냥하고 있습니까?

바로 사단입니다. 그 사단이 이 세상 사람들은 그냥 놓아두어도 죽기 때문에 굳이 건들지 않아도 됩니다. 사단은 교회를 타락을 시켜서 음녀로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음녀가 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게 말 합니다. 나만 예수를 잘 믿으면 되지 교회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만 잘 믿는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음녀에게 걸려드는 순간에는 자기가 어떤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그리고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하는 사람도 절대로 음녀를 분멸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인생들은 그 사단을 절대 이기지 못 합니다. 사단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같이 만들어서 귀한 생명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죽습니다.

음녀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 안에 십만 명의 교인이 있으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믿음이 있는 누군가는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그렇게 이 시대 교회를 음녀로 만들어서 그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여서 귀한 생명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아주 쉽습니다.

십만 명을 죽이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 교회를 음녀로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죽습니다. 아니 앞으로 그 안에 들어올 사람까지 모두를 죽이고 있습니다. 개인을 미혹하는 것보다 그렇게 음녀를 만들어 놓으면 너무도 쉽게 생명을 사냥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단은 아주 잘 알고 있고 지금 이 시대도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언7:22-23절을 보겠습니다.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음녀에게 미혹이 되었습니다.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이 전혀 모르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음녀가 얼마나 지혜롭게 아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같이 소년을 미혹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소년은 음녀를 진짜 교회로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음녀에게 한번 걸리는 그 순간에 사망입니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 까지 이를 것이고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음녀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뛰어 난다 해도 이 음녀에게 걸리는 순간 그 영혼은 이미 사냥을 당해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만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아니 어느 교회라도 음녀가 되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음녀가 됩니다.

모든 교회가 음녀가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음녀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를 천주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만이 음녀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언제든지 음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음녀를 창세기에서 이미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음녀가 어떻게 성도를 미혹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음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음녀가 얼마나 지독하게 성도를 미혹하고 있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39:4-6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종으로 왔습니다.

그 집이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이었는데 요셉이 온 후로 그 집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고 보디발이 요셉으로 하여금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소유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보디발의 가족만은 간섭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요셉의 손에 맡겼는데 그 가족만은 요셉이 간섭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주제로 말씀을 하다가 왜 뜬금없이 요셉의 말씀이 나오는 가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교회와 상관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성도들을 미혹할 것인가를 이미 창세기에서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셉의 말씀과 교회가 상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은 앞으로 있을 교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39:7-10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같이 우리는 아무리 예쁜 여자가 미혹을 해도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마치 요셉을 대단한 사람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성경을 기록했을 때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겨우 한 여자가 미혹을 하는 일에 있어서 그것을 이긴 것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요셉이 주인의 부인과 통정을 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잘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솔직히 요셉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요셉이 이 여자와 통정을 했다 해도 그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육적인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고 요셉이 육적으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낸 것이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성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인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신분이 노예입니다. 만약에 그 일이 주인에게 발각이 될 때에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주인이 죽인다 해도 아무도 법적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기 부인과 간통을 했다고 하면 아마 모든 사람이 잘 죽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보디발의 부인과 통정을 해도 좋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도덕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더 깊은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요셉이 그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너희도 요셉과 같이 육적으로 그렇게 누가 유혹을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도덕책입니까?

이 보디발의 아내 사건은 이 세상 책에서도 나오는 그런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이치로 생각을 해도 자기 주인의 아내가 아무리 유혹을 한다 해도 그와 통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 유혹을 자기가 이겨 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것은 요셉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그렇게 할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예쁜 여자가 미혹을 해도 지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요셉의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세상에는 지성이 있어 죄라고 생각을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차이입니다.

누구는 그 부분에 약하고 누구는 그 부분에 아주 강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요셉은 별로 그 부분에 생각에 없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진리가 가려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거의 모두가 시적인 언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는 겉으로 보여 지는 문자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그 문자의 뜻을 모르고 시를 보고 그 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작가에 대해서 모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의 뜻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39: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성경을 봅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종말이 어떻고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요셉과 같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자기의 연약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셉,

과연 하나님께서 요셉의 일을 통해서 요셉이 도덕적으로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지 않은 것을 높이 생각을 해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아예 안 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요.

제가 그런 유혹에 육체적으로 넘어가도 좋다고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요셉과 같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도 그렇게 안 하겠다고 자부하지 마시고 또 자기도 안 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마음에 부자가 되지 마시고 정말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그에게 가슴 깊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 들어왔는데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방해를 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고 또 종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방해하는 것을 다 비유로 기록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거의 맹목적으로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못 믿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나를 미혹하고 있는 세력이 누구고 또 거짓 선지자가 누구고 또 나를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맹목적이고 그런 구원을 방해를 하는 영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 비유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거의 비유로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오히려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이 참으로 오묘한 것은 문자적으로 해도 되는 그 일이 영적으로는 간음을 행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육체가 통정을 안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요셉과 같이 여자가 유혹을 해도 통정을 안 하고 있어서 요셉과 같이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보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면 이제 초보를 버리고 영의 일로 성숙해 져야 하는데 지금 한국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어도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39:7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교회는 아내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 아내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거기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구약은 우리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단지 보디발의 아내가 지금 요셉에게 통정을 하자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육적인 동침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어떤 여자와 동침을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누가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음녀가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주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성도는 요셉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그 아내를 두셨는데 그것이 교회라고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이제 영적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다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이 누구고 또 그 아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우리가 영적으로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5:21절을 보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주인입니다. 이 보디발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 성경은 이방 사람이라도 왕으로 표현을 했을 때는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스에로 왕은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그때마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디발입니다.

그 집 주인은 보디발이고 요셉은 종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주인이고 요셉은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주인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인을 잘 섬겨야 합니다.

 

주인을 화가 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주인이 질투를 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너무도 큰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짓는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주인을 질투하게 하거나 화를 나게 해서는 절대로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늘 강조를 드리지만 성경은 이 세상의 도덕책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그런 도덕은 굳이 성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면서부터 배우고 있고 무엇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아는 도덕적인 것을 성경에 기록하겠습니까? 그것도 성경 몇 장을 이 사건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물이 나왔을 때는 그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도덕적인 것을 보면서 자기도 요셉과 같이 통정을 안 한 것으로 마치 자기가 요셉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오해를 하다가는 결국 자기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요셉이 그 주인집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졌다고 하면 주인이 화를 내겠습니까? 더구나 주인이 그 집의 모든 소유를 다 맡겼을 때는 절대로 화를 안 냅니다. 또 요셉이 그것을 가지고 싶다 할 때는 웬만한 것은 주인도 요셉으로 인하여 부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줄 수 있습니다.

 

아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가 지금 이 시대도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와 동침하기를 청하면서 성도들을 미혹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지금 그렇게 교회 안에서 미혹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침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어떻게 통침을 하자고 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음녀가 자기를 사랑하게 함으로 해서 처음 사랑을 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이 둘이 되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동침을 하다 보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 아름답고 교회가 너무 사랑스러워지다 보니까 그 교회를 섬기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는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정말 이 시대는 교회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교회를 너무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녀는 이렇게 교인들을 미혹을 해서 하나님 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교회는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음녀는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부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유대인들이 얼마나 부요합니까?

 

유대인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을 동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음녀는 이렇게 유대인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부요함을 보여 주면서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동침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4-1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불의의 삯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렇게 불의의 삯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이 교회인 아내와 통간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면서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복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에 대해서는 복음의 글로 올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안 드리겠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이렇게 성도들을 간음을 하게 만들고 있고 이 여자에게 넘어지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니골라당이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누군가 특정한 사람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아니 지금의 세계 교회는 담인 목사의 의해서 교회의 모든 전권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지배자들이 교회 안에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회가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지만 교회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담임 목사의 말이 곧 법이고 그의 말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모든 교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니골라당의 전형적이 모습인데도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8장에서 우상의 제물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우상의 제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듣는다 해서 그것이 마치 생명의 떡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율법주의가 만연을 하고 있고 은사주의가 성행을 하고 있고 성화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도 자기들은 아주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충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음녀는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해서 또 다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교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데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어떻게 받았는지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타성에 젖어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그 복음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진 그 교회가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녀의 큰 능력과 아름다움을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5-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려면 완전히 지키든지 아니면 성령의 감동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를 정확하게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율법도 지키면서 또 성령의 감동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은 율법을 지켰지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그 눈이 먼 것과 그가 구원이 없어 벌거벗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음녀와 통정을 하게 되면 그렇게 교회들이 자기들이 어떻게 하는 줄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9:8-9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 모든 소유를 다 자기 손에 위임을 했다고 말 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사람이 없어서 주인이 아무 것도 나에게 금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금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라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가 설령 아무리 때 부자가 되게 해 준다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한다면 그것은 참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지만 당신만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이치로 따져도 만약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살아남지를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내를 건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내에게 마음을 주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예뻐도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러분이 그 아내에 마음에 빼앗기는 순간에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예쁜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망 합니다.

그 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모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정말로 안타깝게도 보디발의 아내와 아주 즐겁게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정을 합니다.

아주 마음껏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인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 통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 미련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가 볼 수 있지만 구약은 정말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잘못 보고 있는 성경 하나가 내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도 망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치 물귀신 같이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함께 끌고 가서 죽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39:10절을 보겠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여러분에게 지금 이 시간에도 날마다 통정을 하기를 청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에서와 같이 이 여인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통정을 하자고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이런 요구를 할 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얼마나 괴롭게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음녀와 너무도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늘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에 깨어 있는 성도는 교회가 얼마나 우리를 미혹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그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 아마도 절절하게 실감이 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 나오라고 닦달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못 견디게 만들 정도로 같이 있자고만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요셉이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남의 교회의 일이 아니라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면서 어떻게 하든 통정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교회에서 자기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새 음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난 후에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교인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있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회와 통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충성을 해야 하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교회가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음행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가증한 일입니다.

성도는 신부입니다 또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 두 여자가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증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생명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음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주님이 진노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주인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인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주인을 욕보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아내를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내는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에 주인이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에베소서에서 주님께서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사랑하는 아내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내가 사랑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아내는 주님만이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건물이라는 교회를 지어 놓고 그 아내를 자기들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큰 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반대를 하면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왜 그것을 자기들이 걱정을 합니까? 주님께서 사랑하셔야 하는 교회를 자기들이 사랑을 하면서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말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름다운 주인의 아내를 섬기는 일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근사한 교회를 지어 놓고 그 교회를 유지하느라 정신이 다 팔려 있습니다. 영적으로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중요합니까?

주인을 위해서 교회가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려면 교회라도 내 마음에서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범죄인지도 모르고 교회와 그렇게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교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유지하느라 진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짓기 위해서 빚을 내고 있고 또 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면서 헌금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행위들이 다 영적으로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반대를 하면 교회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견디지를 못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가 그렇게 성도들을 못 견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정을 하게 만들려고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냥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육체의 통정을 이긴 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습니까?

요셉과 같이 주인의 아내가 통정을 하지고 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영적인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에 제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종교화 되어서 보디발의 아내와 같이 통정을 하자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이 시대 음녀에게 유혹을 당해서 다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 보다 주인의 아내를 더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을 하게 되는 순간에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교회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언제든지 이렇게 통정을 하자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습니다. 주인이 그 집을 맡겼으니까 싫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 주인의 종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는 종을 안 하겠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내가 유혹을 하면 정말로 꼼짝도 못하고 통정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그렇게 통정을 하자고 할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넘어갑니다.

요셉을 통해서 너무도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한번 붙들리면 어떻게 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 이 시대 다 이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전도서7:2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바로 이 여인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이렇게 돌변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주 정상적이라고 보는 교회가 그렇게 요셉과 통정을 하자고 못 빠져 나가게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올무와 같고 손이 포승과 같은 여인은 사망 보다 더 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언제든지 음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음녀에게 한번 붙들리게 되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음녀와 한번이라도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음녀는 절대로 놓아 주지를 않고 포승으로 묶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왜 개인의 통정 관계를 성경에 기록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요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아내가 되는 교회라는 여인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고 그 여인이 요셉에게 아무리 간청을 해도 요셉이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무섭습니다.

거기에 한번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교회를 너무 좋게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바른 교회라 해도 우리는 늘 그 교회로 인하여 타락할 것을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 그 여인의 함정에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망에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창세기39:12절을 보겠습니다.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옷을 붙잡습니다.

이 옷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에서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혀 주신다(61:10)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요셉의 옷을 붙잡아서 빼앗은 것 같이 우리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음녀로 변하는 순간 이렇게 구원의 옷을 빼앗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다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든지 종교화 되면서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내가 되는 교회가 성도들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는 그렇게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종교화 됩니다.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워지면 아주 빨리 그것이 종교로 변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들이 있을 때 벌써 교회는 율법주의 은사주의 경건주의 그리고 영지주의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가면 구원에 대해 방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통정을 하게 부추기고 있고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100명이 있으면 거의 100명이 다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것에 우리는 충성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섬겨서도 안 됩니.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주님 한분입니. 그것이 아무리 교회라 해도 그것을 위해서 주님의 복음이 가려지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 종말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통정을 하자고 합니다.

무엇으로 통정을 하자고 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또 은사 주의로 빠지게 하고 있고 교회라는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연인에게 취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는 일이라고 오해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교회를 섬기고 있고 이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옷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옷을 벗는 순간에 구원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고 종교화 되어서 자기를 섬기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주인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9:20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요셉은 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여인과 통정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과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모두가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예표 합니까?

요셉은 실제 이 여인과 통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통정을 한 것으로 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구원의 옷을 이 여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그것이 증거가 되어 그 주인은 요셉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교회와 통정을 해서 구원의 옷을 빼앗기는 순간에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걸려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을 무고한 것과 같이 이 여인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요셉과 같은 성도들과 통정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 여인에게 걸려들면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있고 그것과 아주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이 여인과 너무도 가까이 하고 있고 너무도 친숙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과 가까이 하는 교인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고로 옥에 갇혔지만 이 여인과 가까이 하여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결국에는 옥에 갇혀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를 외면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여인을 위해서 교인들이 수고를 하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잠언22:14절을 보겠습니다.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깊은 함정입니다.

함정을 알면 누가 거기에 빠지겠습니까? 절대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이 음녀가 음녀라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깊은 함정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다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음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음녀를 보고 진짜 참 교회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릅니다.

함정을 파 놓을 때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 팝니까?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그 함정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하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요셉은 보이는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고 누가 음녀라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더구나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음녀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누군가 음녀라고 하면 싸우자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음녀는 깊은 함정과 같아서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는 음녀라는 것을 도무지 분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7:4-5절을 보겠습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누가 나를 지켜 줍니까?

지혜가 명철이 나를 지켜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지혜와 명철이 없으면 그것을 분별할 수 없고 또 내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를 하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를 인도하셔서 지혜와 명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지혜와 명철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녀에게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아내가 된다 해도 그 교회를 지나치게 섬기는 일을 해서는 결국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큰 음녀의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보이는 교회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그 교회가 종교가 되는 순간에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라 해도 그것과 통정을 하는 순간 그 영혼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깨어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어서 자기 영혼을 보존하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교회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강, 교회  (0) 2017.09.27
제6강, 교회  (0) 2017.09.27
제4강, 교회  (0) 2017.09.27
제3강, 교회  (0) 2017.09.27
제2강, 교회  (0) 2017.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