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10강/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윤주만목사 2017. 9. 25. 09:54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8:18-25절을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로마서8장은 놀라운 영의 비밀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 로마서8장을 말씀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의 비밀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되는 가를 이 로마서 8장에 기록을 했습니다.

 

교회는 이미 타락했습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목사가 도덕적으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서 타락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문제는 이 시대 목사들이 전하고 있는 성경말씀에 대한 설교가 완전하게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교인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잘못이 된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 영의 일이 잘못이 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너무도 태평하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잘못되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것은 잠깐의 고통입니다. 인생이 80년을 산다 해도 지나고 보면 마치 총알과 같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고통이 너무 심해 하늘을 보면서 탄식을 하고 있다 해도, 그것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4:14)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고통도 너무 크면 견디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영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세전부터 영원까지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우리 인생의 시간은 한 정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별이 수십 억 광년이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냥 수십 억 년이라고 해도 생각하기도 힘이 든데 그것이 빛의 속도로 그렇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간에서 80년은 정점입니다.

어느 한 순간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과 같이 고통이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면 차라리 포기를 하는 것이 낫겠지만, 그러나 썩지 않고,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그런 부활의 생명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누려야 합니다.

 

물론 내가 누릴 수 있다고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그 우리는 80년을 사는 우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우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그저 종교의 행위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왜 계속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 시대 구원을 받을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서 1%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굳이 저 같은 사람까지 나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어느 한 부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거의 거꾸로 해석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고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서 마음껏 연락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율법에 대해서 압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 압니까? 내세에 대해서 압니까? 솔직히 이것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저 종교의 행위만 있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바르게 알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다른 것을 알아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시대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어느 한 가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알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7)에서 세상에 미련한 자를 택하사 세상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부끄럽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를 자랑하지도 마시고 또 내 행위를 자랑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다 버리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을 하게 하시는 역사가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을 좇는 자는 육신을 좇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 안다고 하지 마시고, 이 영의 일을 알기 위해서 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새번역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고난이 육적일 수도 있고 영적일 수도 있습니다. 육체가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일로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사람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고난은 그런 고난이 아니라, 초대 교회에 있었던 여러 가지 핍박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위로가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의 고난입니다.

그리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똑같이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이 말씀을 거의 다 그렇게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현재 고난을 당하는 우리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지만 나중에 부활을 하면 마치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고난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우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나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장차 영광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의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서 막혀서 다시 육체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 육체는 고난만 당합니. 그리고 성령으로 난 영은 영광만 받습니. 나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거듭남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으로 난 내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가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나는 죄만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나는 의만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거듭남의 비밀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3:6)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고난을 받는 육체를 주셨는가 하면, 그 육체를 매개체로 해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이 나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80년 살다가 썩어지는 것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오시고 난 후에 부활을 해서 신령한 몸을 입는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80년 동안 받는 그 고난은 장차 우리가 영광을 받을 그 영원함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로 알고 영의 비밀을 바로 아는 성도라면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영의 비밀도 그리고 천국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고, 누가 천국에 가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썩는 이 육체가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이 썩는 것이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영의 일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듭남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 육은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 육에는 내 육체와 정신 그리고 혼까지도 다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육체는 썩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이 영은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육체의 어느 일부분을 가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으로 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으로 난 영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비밀이고 영의 비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헛됩니다.

그래서 육체는 헛된 것이라고 전도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 세상에서 살던 윤주만이라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이 납니. 고난을 받다가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윤주만이라는 우리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거듭난 그리스도의 사람이 장차 나타날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영광이 있기 때문에 윤주만이라는 사람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새번역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정말 모르겠으면, 아니 너무 어려우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꾸짖지 않고 주신다(1:5)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제까지의 성경적 지식으로는 너무 어려울지라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피조물입니다.

로마서8장은 영의 놀라운 비밀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피조물이 누구입니까? 이 피조물이 바로 윤주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아담의 씨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은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연히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피조물이 한계입니다.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 피조물은 진리를 가진 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이 고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고대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피조물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피조물은 아담의 씨로 태어난 윤주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령으로 난 거듭난 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에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1:13)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윤주만이라는 사람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으로 변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내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난 영이 하나님께 로서 난 자이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윤주만이라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썩어 없어집니다.

 

이 육체의 윤주만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육체의 윤주만이가 고난을 받으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육체의 윤주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영의 비밀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고대합니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만이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성경을 보고 있고 마치 자기가 변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들이 왜 나오는가 하면, 있지도 않은 휴거 같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썩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비밀을 아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이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3-14절을 보면,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정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이 세상의 지나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는 오직 이것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점도 흠도 없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피조물은 점도 있고 흠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은 점도 없고 흠도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힘써도 안 됩니다. 그 피조물을 가지고 힘쓰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자이고 성화주의자입니.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령으로 나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있고, 그저 천국이라는 말만 알고 있고 막연하게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에서 누구를 만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피조물은 다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피조물을 가지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난 영이어야 합니다.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 영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무엇이 점도 없고 흠도 없는지를 모르고, 자기 육체가 의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 피조물은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그리고 더럽습니다. 더럽기 때문에 썩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썩는 것은 썩게 두고, 이제 우리는 성령이 오셔서 영이 난 사람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

 

영입니다.

그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입니다. 육체의 나는 아담 안에 있는 윤주만이라는 사람이고, 성령으로 난 영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나는 더럽기 때문에 썩어 없어지고,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깨끗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의 형상으로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육체의 나는 무엇이냐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썩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썩는 더러운 것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냥 썩어 없어지게 하지 않고 우리 안에 거듭난 생명을 넣어 주셨고 그것이 부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것은 하나님 앞에 못 갑니다.

썩는 피조물은 어느 것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썩는 것을 버리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영을 주셨습니다. 썩는 것을 가지고 가면 그곳은 절대로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마치 유럽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씀하는 것이지, 천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장차 나타날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입니다.

그것을 보일 수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정도 밖에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됩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더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 잘 설명을 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이 들더라도 여러분이 이 말씀을 모르면, 아니 믿어지지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지금은 피조물로 살다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아들들은 피조물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로서 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새번역입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허무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피조물을 생각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야고보(4:14)는 너희는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를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하셨는가 하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드리면 허무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있고, 또 영지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 영의 일을 바르게 전해야 그 중에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있습니다.

 

인생은 허무합니다.

그래서 수에 칠 가치도 없다(2:22)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그 허무한 것에 너무 집착을 하고 있고, 그 썩어지는 것을 가지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려고 율법 지키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성도라고 하면서 성화가 되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난 영의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성도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 육체 윤주만이가 소망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은 썩어진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썩어져 없어지기 때문에 허무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새번역입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이 되었다고 하니까 마치 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었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피조물은 고난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고난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들에게 죽음이 없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아니 참혹한 일이 이 지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방입니다.

다른 말로는 죽음이라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 피조물이 종살이 하는데서 해방이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영광된 자유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문자를 보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썩어짐의 종노릇입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썩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썩어지는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썩어지는 것을 가지고 가서 영광을 받아 자유를 누리려고 하다가는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새번역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은 윤주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기 때문에 지금도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

 

탄식입니다.

왜 탄식을 합니까? 고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이런 말씀들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기 위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왜 탄식합니까?

해산의 고통을 겪기 위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난 영이 있게 하기 위해서 탄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해산의 고통을 겪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해야 하는데, 그저 교회에만 나와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하면 마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 그냥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성경에만 집중을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경에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만이 해산의 고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달음질 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피조물들이 다 그렇게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얻는 성도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라는 말로 밖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이 우리의 열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육체의 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피조물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이 우리 몸이 아니라, 하늘에 신령한 것인 썩지 않는 몸이 우리의 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몸이라고 하면 거의 문자로 보고 마치 우리 육체의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이 썩는다는 것을 바로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몸이 구속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우리까지도 이 몸이 구속이 되기를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을 기업으로 받고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너무 즐겁습니다.

교인들이 신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구원을 다 받은 것처럼 그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로 마음껏 부자가 되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상을 다 받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고, 그들은 자기들 앞에 임할 통곡의 날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새번역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영은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것의 소망입니다.

그것을 믿는 성도는 보이는 육체의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소망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윤주만이가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보이는 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히브리서(11:1)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것의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믿고 있습니. 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면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고난이 있다 해도 이 썩어질 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윤주만이는 피조물로서 썩어 없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이 오심으로 난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 생명이 있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게 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생명을 주셨습니다.

 

은혜입니다.

이 영의 일을 아는 성도는 그저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이 모든 구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것에 소망을 바라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의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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