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6강/오순절 성령 강림

윤주만목사 2017. 9. 25. 09:41


오순절 성령 강림

 

사도행전2:1-4절을 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 성림 강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 강림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성령을 받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강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령의 강림이 처음 나타나고 있는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 합니다.

제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해서 받았다고 말하면서 힘써 기도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많은 무리가 모여 기도했다고 말하면서 모여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열심히 회개하는 가운데서 성령을 구하니까 받았다고 말 합니다. 오순절 성령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을 받았습니까?

오순절 날 성령 받은 말씀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성령 임하셔서 나타난 현상들만을 말 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힘써서 기도함으로서 받았다고 말하면서 열심을 내라고 말 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 받은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오순절이 되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오순절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오순절이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심령에 오순절이 와야지 성령이 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오순절이 어떻게 와야 하는 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오순절 날이 되었기 때문에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말씀합니다. 거의 모든 성경이 오순절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임했다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고 오순절 날이 되었기 때문에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열심을 내어서 기도해서 받았다고 말 한다면 첫날에 열심을 냈겠습니까 아니면 열흘 후에 더 열심을 냈겠습니까? 당연히 처음에 더 열심을 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열심을 내어 기도해서 받았다고 말 한다면 한 2-3일후에가 가장 열심을 내어 기도 했을 것입니다. 열흘이 지나가니까 이 사람들도 지쳤을 것입니다.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계속 기도하지만 성령이 며칠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열심을 내어서 받는 성령이라면 아무리 길어도 4-5일 이내에 가장 열심을 내었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받았다고 말한다면 어느 날이 많았겠습니까?

 

처음부터 모인 사람들이 끝까지 있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처음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때도 처음에 성령 받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120명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실 때 그 모습을 본 사람이 500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는 모습을 500명이 보았다면 적어도 처음에는 수백 명이 모였을 것입니다 10일정도 지나니까 줄어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에 올라가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자기 눈앞에서 하늘로 떠서 올라가는 장면을 본 사람이 500명이라면 아무리 적게 모여도 300명이상은 모였을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120명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숫자가 많이 모이고 열심을 내서 기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회개해서 받은 것이라면 예수님이 직접 올라갈 때 그 장면을 보고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여기모인 사람들은 첫날부터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럼 왜 오순절 날이 되어서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받았습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오순절 날이 이르매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사도행전2장의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이 계실 때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와는 조금 다릅니다. 예수님 계실 때도 제자들이 능력을 받고 귀신도 쫒아내고 병도 고치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의 역사는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왜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순절이란 절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유월절은 114일입니다.

오순절이 어떤 날인가는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단위가 되는 절기입니다. 이 중간에는 칠칠절 맥추절이 있고 그런 절기가 마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이날 성령께서 강림을 하셨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절기들도 다 중요 합니다. 오늘은 유월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12:5-1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애굽기 본문은 유월절에 대해서 설명한 말씀입니다.

[逾越節]한자로 말씀을 드리면 넘을 유자에다가 넘을 월자를 써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Pass over로 넘어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유월절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유월절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유월절 양을 잡아서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라고 말씀합니다.

문설주에 피를 바를 때 양 먹을 집에 바르라고 말씀합니다. 양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의 집에는 피를 바를 자격이 없습니다. 양 먹을 집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양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우리의 유월절 양되신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이십니다. 출애굽기에서 양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집의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의 집에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있는 사람의 문에만 피를 바를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양을 먹지 않는 사람은 피를 바를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 이십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그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를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도 모르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4: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양의 고기를 먹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죄를 모두 사해 주신 분이다. 그 말씀이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예수를 먹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먹은 사람의 집에는 피가 발라집니다.

양을 먹을 집에 피를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과 애굽 사람의 집이 있다면 이스라엘의 집은 양을 먹은 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기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아담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양의 피가 있다고 애굽 사람의 집에 바르면 어떻게 됩니까?

효과가 없습니다. 양을 먹을 집에만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먹을 집에 피를 바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입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십자가가 믿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먹지 않는 집에는 예수의 피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모두 내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내 것이 안 된다면 십자가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은 집만이 양의 피로 인하여 죽이는 사자가 넘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모두 받아들여진 사람의 마음 문에는 이미 피가 발라져 있습니다. 그 구속의 은혜는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의 집에 피를 바르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같이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입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집에만 피를 바릅니다. 무교병을 안 먹으면 그 집에는 재앙이 임합니다. 반드시 누룩이 없는 떡을 만들어서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유월절을 잘 모르고 있고 누룩이 무엇인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재앙이 임합니다.

구약에는 직접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누룩 있는 떡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룩이 있는 떡이 맛이 있겠습니까? 누룩이 없는 떡이 맛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누룩이 있는 떡이 맛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누룩이 없는 떡만을 먹으면 맛이 없어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전해지는 말들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모두가 누룩을 썩어서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만 전하면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도 오직 예수를 전하지 않는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약에 오직 예수를 전하지 않고 다르게 말을 하는 목사가 있다면 금세 사람들로부터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오직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더욱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을 썩습니다.

문제는 교인들이 그 누룩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 중에도 누룩이 있고 또 이 세상의 말도 누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 중에는 누룩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마치 모든 진리인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집에만 피가 발라졌습니다.

누룩 없는 떡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떡을 말씀하시는 줄 알고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수군거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수군거림을 아시고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합니다.

 

바리세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교병은 바리새인들의 주장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 다른 것이 섞인 것은 그것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무교병이 아닙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율법과 복음이 함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룩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누룩을 썩은 부풀린 떡을 먹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6:11절을 보겠습니다.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율법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아주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율법주의 사상이 바로 누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누룩을 썩고 있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한 가지라도 섞이면 안 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만 율법주의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주의고 자기들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자기는 율법을 폐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폐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 합니다.

율법 전체를 지켜야 율법주의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율법은 단 한 가지만 지켜도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썩는 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물질에 다른 물질을 썩는 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99%에 납 1%를 썩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잘 표시가 안 납니다. 그러나 일단 아주 적은 1%지만 그것이 섞이게 되면 그 물은 이미 오염이 된 물입니다. 물론 그 물을 먹는다고 당장은 죽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 물에 납이 포함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죽지 않을지라도 빠른 시간에 그 납으로 인하여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과 육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일과 육의 일에 대해서 전혀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자기 육이 당장 죽지 않는다 해서 마치 그것을 괜찮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납에 오염이 된 물을 계속해서 마시면 그 납으로 인하여 생명이 빨리 끝이 날 수 있습니다.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은 그마나 납이 섞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의 양식에 누룩이 섞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납이 든 물을 먹는 것 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바로 누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릅니다.

아주 교묘하게 오직 예수라 말하면서 거기에다가 작은 누룩을 썩으니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누룩이 육의 생각으로 보면 너무도 좋게 보이고 맛있기 때문에 자기 영혼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적은 누룩은 사람들에게 있어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지고 또 맛있습니다.

 

납이 1%들어가 있는 물을 마신다 해도 당장 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다 버리고 단 한 가지를 지킨다 해서 그것이 당장 죽음으로 보여 지지도 않고 또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오묘한 것은 육이 납이 들어 있는 물을 마시면 점점 그 육체에 이상이 생겨서 죽게 되는데 영에 누룩을 썩으면 오히려 점점 더 좋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은 나빠집니다.

그런데 영은 육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점점 더 좋게 보여 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은 납을 썩으면 썩을수록 금세 나빠지는데 영은 누룩을 썩으면 썩을수록 점점 더 좋게 보여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누룩을 썩으면 그것이 나쁘게 보여 져야 되는데 오히려 더 좋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아마 납이 섞여 있는 물을 먹으라 하면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누룩을 섞여서 먹이면 더 맛있어 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똑같이 죽이는 것인데도 육의 것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지만 영의 것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것을 안 썩으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사상이고 또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육은 독이 있으면 금세 나빠집니다.

그러나 영은 일은 독이 있는 그것이 더 좋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누룩을 더 맛있어 하고 있고 또 누룩을 썩어야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잘 지키면 얼마나 그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까? 육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아름답고 하나님의 영광과 같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8:1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헤롯의 누룩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율법이라면 헤롯의 누룩은 이 세상의 사상과 지식입니다. 성도가 가장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보면 바리새인의 누룩 못지않게 헤롯의 누룩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세상의 샤머니즘 적이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그토록 정치에 관심이 많이 있고 참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롯에 동조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입니다.

이 누룩이라는 것은 당장 죽지를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니 거의 다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룩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교회는 온통 누룩으로 부풀려 있고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고 또 헤롯의 누룩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 진리를 가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인들입니다.

 

이것은 육적인 일입니다.

육적인 것을 통해서 영적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애굽의 속박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사단에게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인 양을 먹었지만 우리는 영적인 양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인 무교병을 먹었지만 우리는 영적인 무교병을 먹어야합니.

 

오직 예수!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예수를 먹는 사람이어야만 유월절에 해당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 지금도 이런 것을 어기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는 이런 특별한 것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적인 모습의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엄격하게 행하셨던 것은 오늘날 무교병을 먹지 않고 누룩 섞인 떡을 먹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섞여서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순수한 떡을 먹어야합니다.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다 플러스 시키면 전부 누룩 섞은 떡이 됩니다. 현대 교회에서 많은 예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예화가 잘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예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보다 그 사람의 노력과 성공을 말한다면 그것은 누룩 섞인 떡이 됩니다.

 

누룩 없는 떡 무교병을 먹어야합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쓴 나물이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쓴맛이 있습니다. 쓴맛 있어도 먹어 두시기 바랍니다. 무교병과 같이 먹는 쓴 나물은 생명을 살리는 쓴 나물입니다. 이렇게 먹는 집에 피를 바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소를 식물로 주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난 후에 그들의 음식으로 씨 맺는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그들의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게 허락을 하셨고 그 이전에는 씨 맺는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음식으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32:2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채소, 나물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채소를 먹을 수 있는 것이나 나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표현 방법에 따라 채소라고도 하고 있고 나물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 채소를 어떻게 자라게 하시는 가를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이 되어서 채소위에 단비가 되어 그 채소를 자라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채소는 하나님의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랐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먹었던 채소는 하나님의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나물은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6:7절을 보겠습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채소는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으로 자라난 채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땅입니다.

그 땅에 하나님께서 비와 이슬을 내려 주시는데 그것을 먹고 자라서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복을 받습니다. 이 채소는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으로 자라난 채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채소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의 비와 이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채소 맛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애굽에서 이 세상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은 쓸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쓴 나물과 같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을 하고 있는 그 말씀이 그렇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씁니다.

애굽에서 광야로 나가는 길은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아주 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 관점에서 보면 아주 힘든 일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기복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성도의 삶은 고달픕니다.

 

출애굽기12:1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무교병을 허리에 띠를 띠고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급히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급히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는 정말 급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너무도 태평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 영혼에 대해서 너무 태연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인생이 아니라 바로 영혼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그보다 더 화급한 일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일이 급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를 먹는 그 일이 더 급합니다.

 

이것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자기 육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어린 양을 먹고 무교병을 먹고 쓴 나물을 먹는 그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게으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어야 이스라엘에 속할 수 있는데 그것을 먹기를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6: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허리띠를 띠고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반드시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 이십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허리는 인생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무너지면 인생은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 허리에 진리로 띠를 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여러분의 허리에 오직 예수로 띠를 띠지 않으면 여러분의 영혼은 든든히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가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서도 그 예수가 그래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가 여러분의 허리를 든든히 지탱을 해 주고 있는 가 냉정하게 생각을 하고 또 그것으로 허리에 띠를 든든히 띠어야 합니다.

 

신을 신으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6:15절을 보겠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복음은 평안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었는데 그것이 평안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인생들에게 정말로 평안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이어야 복음입니다.

평안의 복음이 아닌 복음을 갈라디아에서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평안의 복음은 진짜 복음이고 평안이 아닌 것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복음을 받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말로 복음이라고 해서 다 복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 정말 평안해 져야 복음입니다.

 

내가 할 일이 있어야 평안합니까?

해야 할 일이 없어야 평안합니까? 내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절대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를 보면 교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이 많은 곳에서는 절대로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쉬어도 평안할까 말까 한데 일이 잔뜩 있다면 그 일 때문에 절대 평안하게 못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생명을 얻는 사람은 평안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얻어야 하는 사람은 늘 불안 합니다. 또 지금 얻었다 해도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것은 늘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평안합니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들의 마음이 평안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이 먼저 알 것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아직 얻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없이는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깨달아 집니다. 성도는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을 신어야 합니다. 무교병을 먹고 양을 먹고 쓴 나물을 먹고 있으면서도 평안하지 않다면 그는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급히 먹기 바랍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급히 먹으라고 하신 말씀은 그만큼 복음에 대해서는 빨리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에 들어설 때 우리는 언제 이 육신이 죽음의 강 요단에 빠져 죽을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압니까?

자기 생명이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탄생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이 이르게 하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급한 일을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하고 또 영혼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시편23: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를 짚는 것은 의지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때리는 것입니다. 갈 길을 인도하는 것이지도 하지만 잘못되었을 때 때리기도 합니다. 주의 지팡이는 주님을 의지하겠다는 표시로 지팡이를 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것이 편하겠습니까?

그냥 걷는 것이 편하겠습니까? 건강한 사람은 그냥 걷는 것이 편안합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를 짚게 하신 이유는 너희는 나를 의지하고 천국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나를 의지하라는 뜻으로 지팡이를 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뜻이 있습니다.

그냥 선지자들이 자기 생각에 따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를 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유월절을 먹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도 이렇게 영적으로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절기가 계속 되어 집니다.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이렇게 유월절을 먹고 애굽에서 나와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가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을 예표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그것으로 먹었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이제 실체를 보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이 유월절을 안 먹고 교회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 보아야 그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이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안 먹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정하신 절기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절기들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를 모르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영생이 없다는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기 폐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지키던 절기는 폐해졌습니다. 왜 폐해졌느냐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림자로서 절기를 지켰지만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절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분별을 하고 이 유월절을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먹어야 합니.

 

유월절을 모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도 이 유월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절기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유월절은 114일입니다. 이날을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절기 안식일입니다.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이 있고 또 절기 때 지키고 있는 안식일이 있습니다.

 

몇 년 지나다 보면 두 안식일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우리나라도 명절과 주일이 겹치는 때가 있습니다.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안식일을 큰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큰 안식일이 되는 그 해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절기를 모르면 안 됩니다.

구약의 절기 그리고 제사제도 또 성막 이런 것은 사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기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그림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것은 실체로 받아들이면서 그런 절기를 지키고 또 율법을 지키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6-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우리의 유월절 양되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습니다.

이 의미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서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자기들의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자랑하고 기도를 자랑하고 찬양을 자랑하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육적인 은사나 행위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희생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현충일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선조들이 희생을 해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존재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날은 그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생각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에 자기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이야기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지금 우리가 세금을 내서 당신들의 자손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면 그는 희생의 의미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설령 자기가 세금을 내서 그 후손들을 돌아본다 해도 희생을 안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모욕입니다.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는 발언입니다. 이런 짓을 교회가 하고 있고 자기들이 예수를 위해서 한 일을 가지고 자랑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모르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욕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사도바울은 육적인 유월절을 영적인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안식일 날 유월절 양으로 운명 하셨습니다. 3일 만에 살아 나셔서 40일후에 승천하셨습니다. 40일 만에 승천 하시고 10일후에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절기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죄를 담당 하시는 사역을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예수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바로 알아야 하는 지혜입니다.

 

이사야9:6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예수님께서는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지구의 왕 사단과 싸워서 이기심으로 왕이 되는 것입니다. 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왕이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왕이 싸움에서 이기면 그 백성 모두가 이기는 것이고 왕이 싸움에서 지면 그 백성 모두가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성입니다.

아담은 우리 육체를 대표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모든 구속의 일들은 우리 영에 대해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어깨에 이 세상의 모든 정사를 매셨고 십자가로서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셨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의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오신 것은 영의 일이지 육의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육의 일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니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만유의 주가 되시고 만유의 왕이 되셨습니다.

 

골로새서2;14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가 되어야만 왕으로서 이기신 것입니다. 왕권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아담은 사단에게 져서 우리 인생들이 모두가 육체가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심으로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의 쓴 증서를 도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의문에 쓴 증서가 아직도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유월절 양을 먹는다는 것은 반드시 이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여 버려야 합니다.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월절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이 의문에 쓴 증서를 제하여 버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의문에 쓴 증서가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오순절이 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는 이스라엘에게는 오순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 시작입니다. 이 절기의 마지막이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순절에는 곡식 단을 제일 처음 거두어서 하나님께 흔들어서 드립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첫 열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고 나서 추수가 시작 됩니다.

예수님께서 40일후에 승천 하시고 10일후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모든 절기는 예수님의 사역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50일째 되는 날 예수님께 상징되는 잘기의 마지막 날이 되어야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로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날은 이 세상 적으로 말하면 취임하는 날입니다.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오순절 날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완전하게 취임하는 날이 오순절 날입니다. 모든 절기가 끝나야 합니다. 끝나는 날 첫 열매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셔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고린도전서15:2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먼저는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이면 첫 열매는 오순절 날 되어야만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계신 곳에 40일째 승천하셔서 올라가셨어도 오순절이 되기 전에는 안 드려지는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오순절이 되어야 드려진다는 말씀입니다.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절기로 정하셔서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순절이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열매입니다. 미리 올라 가셨지만 드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오순절이 아직 안찼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 말은 상징적입니다.

 

하나님계신 곳은 보좌입니다.

왕의 자리입니다. 평강의 왕 자리에 앉으려면 왕으로 임명 되는 그날 앉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취임식이 끝이 나야만 보좌에 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왕으로서 지구는 다시 찾았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날 보좌가 예수님께 넘어 왔습니다. 세상 이치로 상징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상징하시기 위해서 절기들을 만드셨습니다.

이 날에 첫 열매로 드려지는데 첫 열매로 드려지는 날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임명 되셔서 진짜 새로운 통치를 하는 날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왕이 새로운 통치를 하는 날에는 잔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을 임명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이 되니까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혜사가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째 되는 날 승천 하셨지만 그 즉시 보혜사가 오실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드려져야 보혜사가 오시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보혜사는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성령입니다.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의 역사는 은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방언이 같이 오기도 했지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믿음을 그 마음에 심어 주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4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하신 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기다리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난 후에 성도들에게 새로운 열매가 맺혀지는 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령이 임함으로 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천국의 열매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은 오순절이 되어야만 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심령이 오순절이 되어야만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들어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속이 오순절이 되어야만 합니다. 유월절이 지나고 오순절이 되지 않으면 보혜사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습니다.

 

오순절이 되려면 십자가의 사건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 죄를 대속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내 죄가 모두 끝이 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신령한 영으로 새롭게 탄생이 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이 취임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십자가로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는 나의 왕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왕으로 확신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오순절이 그 마음에 임한 사람입니다. 오순절이 임한 사람은 그 마음에 성령께서 오셔서 함께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보혜사께서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임해야 오순절이 임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오순절이 내 안에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는 다니지만 보혜사가 없습니다.

보혜사가 오셨으면 이와 같은 사실들이 믿어져야합니다. 그것은 일부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내 평생의 죄가 끝이 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그 속에 성령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평생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의 죄가 아닌 평생의 죄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오순절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첫 열매가 드려짐으로 해서 이 땅에 열매가 맺혀지게 되고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추수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4:35-3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적인 추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지 아니하느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이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첫 열매가 드려진 다음에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추수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 씨를 많이 뿌리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하시고 베드로가 외칠 때 3천명의 열매가 맺혀졌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설교를 잘해서 하루에 3천명이 5천명이 회개했다고 말 합니다.

 

물론 베드로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설교를 했으니까 그랬겠지만 이 사람들은 씨가 뿌려져 준비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준비 되었던 사람들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회개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 말씀을 듣고 긴가민가했던 사람들입니다. 오천 명이 모였을 때 떡도 먹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적의 현장을 봤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성령께서 오시니까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첫 열매로 예수님께서 드려지고 그 다음 열매로 드려지기 시작되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오순절이 임하기 시작을 함으로 해서 열매가 맺혀지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가 익어 추수가 시작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4:36절을 보겠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삯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삯을 미리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의 일 한다고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나만 한다고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결제하시고 여러분의 삯을 다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힘써 행하시면 하나님은 이자까지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한 것에 대해서는 다 갚아 주십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아무것도 못 받았다고 교회에 또 목사에게 성도들에게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삯을 다 내려 주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어떤 것으로도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천국의 모든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이라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삯을 충분히 주시고 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천국의 가치를 안다고 하면 자기가 받은 삯이 얼마나 큰가를 바로 알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지구를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니 이 태양계를 다 준다 해도 천국과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일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4:37-38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노력으로 열심으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해놓은 것을 베드로는 그냥 거두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에 참예 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복음의 씨는 이미 뿌려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노력 해 놓은 것을 거두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합당하게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문제는 내가 복음을 바로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이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거두게 해 주십니다.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둡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사람은 영적 추수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바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한마디를 전 할지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그 심령을 뒤집어 놓습니다. 첫 열매는 예수님께서 드려지고 그 다음부터는 제자들을 통해서 거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상징하시기 위해서 오순절 날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오순절이 되면 무엇을 깨닫습니까?

 

요한복음14:25-2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르쳐 주셨지만 전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이 안 믿어 졌습니다. 오순절 날 그 마음에 보혜사가 임하시자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것이 믿어진 것입니다. 믿어지니까 그때부터 제자들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막연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된 사람도 있고 수십 년 동안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람에게 어느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이 여러분 심령에 믿어진다면 여러분 심령에는 오순절 날 임했던 것과 같이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모든 말씀이 믿어 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나 바울의 설교를 보면 예수님께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전하면서 우리도 또한 같이 살아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인 것을 집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서든지 전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라는 말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구원 할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 있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오순절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외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새 술에 취한 것 같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외적인 성령의 역사가 없다 할지라도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진정으로 내 마음에 믿어진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보혜사가 임한 사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외적인 증거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무리 외적인 증거가 많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100%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경험을 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방언 하면 뭐합니까?

그리고 환상을 보면 뭐합니까? 기도 중에 음성을 들으면 뭐합니까? 또 기도 응답을 받으면 뭐합니까? 그런 외적인 증거가 아무리 많다 해도 진리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진리를 알고 있다면 그런 외적인 증거를 자랑하지도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체험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은사적인 체험을 가지고 마치 자기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믿음의 확증을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고 또 진리를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는 가를 바로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 은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순절이 왔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본 사람이 500명이나 보고 처음에는 모두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도 보혜사가 오시지 않자 나머지 사람들은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순절 까지 기다린 사람들에게 성령이 먼저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드려졌습니다. 안식일의 의미는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날 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평강의 왕이 우리 심령에 임하시면 진짜 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임해서 안식을 얻은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가도 항상 불안한 사람은 안식이 없습니다. 안식이 있는 사람은 예수가 우리의 왕이 되셔서 임하시므로 마음에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심령에 보혜사가 임하셔서 믿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안 합니다. 왕은 그냥 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국민을 책임지는 사람이 왕입니다. 왕의 임무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왕이 백성들 세금이나 받아먹고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을 잘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것이 왕의 임무입니다. 또한 국민이 다른 왕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지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왕 인줄 믿습니까?

이 세상 왕도 국민들 잘 살게 하려고 동분서주 하는데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다른 왕이 건들지 못하도록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사단이 건들까 염려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확신 합니다. 확신하기에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1-3절을 보겠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유월절 어린 양을 먹고 오순절이 되어야 성령이 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은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오순절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은사나 그런 신비적인 체험을 보면서 자기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드시 유월절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오순절이 임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성령이 임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동시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는 오순절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 오순절 성령의 임함은 내가 유월절을 먹고 기다릴 때 오순절이 임할 수 있습니다. 내 심령에 오순절이 되면 그때 성령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난자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자는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나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이나 겉의 모습은 같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누구는 압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압니다. 본인은 압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말이 변합니다. 복음적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세상 교훈과는 다릅니다. 오순절 날이 왔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절기로 보여주시고 예수님의 사역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표입니다. 그 예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양 누룩 없는 떡을 우리는 먹습니다.

이것을 먹는 사람은 그 심령에 피가 발라졌습니다. 피가 발라진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가 발라졌다는 것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른 집안에 있는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죽습니까? 삽니까? 피 바른 집안에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삽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 있으면 아무리 의롭게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살리는 것입니까? 피가 살리는 것이지 내의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내 영혼이 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저는 오직 예수만을 전 합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분별 하셔야 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닌 것은 누룩 섞인 것입니다. 더해도 안 되고 빼도 안 됩니다. 누룩 없는 무교병을 먹지 않으면 유월절 양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룩 섞인 것을 받아먹지 마시고 순수하게 누룩 없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룩 없는 떡을 전 했습니다.

여러분도 누룩 없는 떡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은 여러분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복음이 바로 전해 질수 있도록 늘 말씀을 묵상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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