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7강/사도행전 8장

윤주만목사 2017. 9. 25. 09:45

사도행전8

 

 

사도행전8:14-16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사도행전8장의 말씀은 성령론에 있어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너무 쉽게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있어 성령론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면 절대로 성령에 대해서 알 수 없고 또 정말 자기에게 진리의 성령이 임했는가를 분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과 이 세상의 샤머니즘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내게 외적으로 와서 느끼게 하는 것은 모두가 샤머니즘 적인 것으로 보면 맞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배우고 있는 성령은 그런 외적으로 역사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를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령이 오고 난 후에 성경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에 대해서 성경에 철저하게 기초가 되어 있지 않고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성령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 진리의 성령의 역사인가 아니면 은사나 샤머니즘적인 것인가를 정확하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은 분명히 말씀을 통해 역사를 하고 있고 나로 하여금 성경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고 딱딱합니다.

 

 

그래서 더욱 은사에 빠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영의 일을 쉽게 자기들이 느끼고 감동을 하고 이해하고 볼 수 있는 방법이 은사이기 때문에 딱딱한 영의 말씀으로 성령의 책망을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그것을 믿음의 확증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직 말씀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재를 해서 역사를 하는 것은 성경 말씀 안에서 진리를 알아가도록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너무 딱딱하고 이해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은사주의로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 은사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성령은 이 시대도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남이고 성도는 당연히 아무리 어렵고 단단할지라도 이 말씀을 배우려고 하고 있고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은 감성이 아닙니다.

감성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방대한 분량의 성경을 그리고 비유와 은유로 해서 일반사람들에게 열리지 않게 감추어 두신 목적은 바로 철저하게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성입니다.

이성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감성은 은사나 어떤 신비적인 현상이나 자기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는 것을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알려고 하는 자체가 샤머니즘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찬양과 예배와 기도와 그리고 여러 가지 은사와 또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을 알고 잘 믿고 있다고 증명을 하려고 하고 그것으로 표징을 삼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것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라도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은 바로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고 있지만 그 외에 내가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신앙생활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와 율법의 행위는 감성을 자극을 해서 자기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는 것 같이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는 것은 그냥 보통 말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다고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말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영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기 스스로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빌립이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오순절이 있은 후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19:1-7절을 보겠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고린도에 있다가 에베소에 왔습니다.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임하고 난 후지만 아직 이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자기들에게 임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를 요한의 세례라고 말 합니다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말씀합니다.

 

 

사도행전19장에는 성령 세례를 몰랐다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모르고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대답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믿기는 믿는다 하지만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요한이 전하는 육적인 회개의 세례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의 세례인 믿음으로 받는 회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말씀합니다. 그때에 예수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19장에 나타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성령 세례를 안 받고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를 믿어야만 성령을 받으니까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의 세례를 받는 성령 세례를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8장은 조금 다릅니다.

 

 

사도행전8:16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세례 받은 자체가 다릅니다.

사도행전19장에 나오는 세례는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행전8장에서 받은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은 세례입니다. 그럼 이들이 성령을 받았을 터인데 왜 성령을 한 사람도 못 받았다고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서 먼저 어떻게 성령을 받느냐 성령의 세례를 어떻게 받는가 하는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령 세례를 보고 사도행전8장에 나오는 예수를 믿었어도 성령을 못 받느냐 하는 문제를 보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를 믿었는데도 한 사람도 성령을 못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도 성령을 못 받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씀하는 가 어떻게 하면 보혜사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15:2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보혜사가 오시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보혜사가 오면 예수를 증거 한다는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보혜사가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속에 있는 사람은 보혜사가 오셨기 때문에 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또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예수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그 심령에 있기 때문에 보혜사가 오신 것입니다.

 

보혜사가 나를 증거 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은 바로 보혜사 성령이 임재한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보혜사가 하는 말씀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혜사는 다른 것을 말씀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에 대해서만 말씀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증거 합니까?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혜사가 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보혜사가 임한 사람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증거 하고 있다면 그는 보혜사가 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 진리의 성령이 보혜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보혜사는 예수를 증거 합니다.

보혜사는 진리를 증거 하는데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 되는 진리를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니까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진리를 증거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진리의 성령, 보혜사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다 알게 하시고 그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장래 일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진리의 성령께서 성경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심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깨달아 지는 이성적인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4:26절을 보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보혜사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진리를 다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진리를 보혜사가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역사를 하는 은사적인 감동이 아니라 말씀으로 깨닫게 하는 내적인 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 집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확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성령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깨달아야지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확증을 하려고 하다가는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만약 은사적인 역사로 인하여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있다면 굳이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천사가 꿈 중에 나타나거나 아니면 기도 중에 나타나서 이야기를 해 주면 되지 무엇 하러 우리가 이 어려운 성경을 통해서 알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한 이 성경을 통해서 지식으로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령이 그것을 지금 이 시대 우리 가운데 임재를 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0:21-2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리라 말씀하시면서 성령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리라 하신 성령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보내시려 하니까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예수를 바로 증거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재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예수를 증거 할 수 없습니다.

 

 

보낸다고 하는 말씀은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을 받는 것이 어떤 방법으로 받아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을 받는 방법을 보겠습니다. 사실 가장 기초적인 것인데도 은사와 진리의 성령을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성령을 어떻게 받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성령을 받는 방법은 듣고 믿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을 지킴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듣고 믿으면 됩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그는 잘못된 성령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듣고 믿으면 받는 것이지 어떻게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또 내가 무엇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으면 받는 것입니다. 듣고 믿어야 하는데 무엇을 듣고 믿어야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2:13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속에서 역사 합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 말씀입니다. 이 증거를 바로 받는 성도가 믿음이 있는 성도고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 성경 전체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메타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2:13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성령이 우리에게 임재를 하면 진리를 믿게 감동을 해 주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해서 그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믿음은 나를 통해 나타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성령이 감동을 주어 믿게 하는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진리를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임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 어떻게 거룩함을 입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 속죄를 드림으로 해서 우리가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1:4-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말씀합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능력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이 성령을 통해 믿어지게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를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하고 그것이 우리 가운데 이성으로 확신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확신됩니까?

 

 

빌립보서1: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고 그 십자가의 은혜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루어 주실 줄을 확신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해서 확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하셔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것이 확신이 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보혜사가 오시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선하신 일들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누가 이루는 가를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것에 대해 확신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역사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영의 일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감성으로 느끼는 것이 절대 아니라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만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1:13절을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약속의 성령은 보혜사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라고 말씀하신 성령입니다. 이 약속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침을 받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사실을 믿을 때 약속의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데 그 진리가 어떤 말씀이냐 하면 구원의 복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약속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보혜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약속에 도장을 찍는 것 같은 확신을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확신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성령의 역사를 해 주심으로 해서 믿어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약속을 알아야 하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니까 이렇게 성령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37-38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받습니다.

문제는 사도행전8장에 나타난 그들이 예수를 믿었는데도 왜 성령을 못 받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죄 사함을 말씀하는 것인데, 그들은 빌립이 전하는 모든 말씀을 받아들였는데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세례 받는 자체가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죽었다고 하는 것은 나의 일평생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일평생이 죽은 것은 죄에 대해서 죽어 버린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여 버리고 이 죄를 장사 지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으로 죄 없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다른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내고, 다시 사는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었으면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는데도 성령을 못 받았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는데 왜 성령을 못 받습니까?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성령은 그냥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 조건이 없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럼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행전 8장에서는 성령을 못 받았다고 합니까?

 

 

우리가 받는 구원의 성령은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 사함을 못 받았으면 그 사람은 성령을 못 받은 사람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만 받을 수 있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장사 지내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다 우리가 살아난 것은 죄악된 것은 죽고 새로운 생명이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것이 조건입니다.

실제적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는가를 보겠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건들이지 않아도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굳이 다른 것을 안 해도 성령이 임재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믿는다는 자체가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10:40-4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심판 주라는 것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 하니까 이 사실을 믿으니까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8장은 왜 믿었는데도 성령을 못 받았다고 말씀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분명히 빌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고 그것을 믿었다면 성령이 임했어야 합니다. 그럼 성령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 가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2:1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죄 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임하고 그렇게 된 사람은 예수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왜 한 몸이냐면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된 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었기 때문에 한 몸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는 육체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난 후에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 생명이 탄생이 됩니.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담의 자손인 것 같이 우리 영이 하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탄생이 된 영이기 때문에 한 성령 안에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보혜사를 내려 보내 주셔야지 그 보혜사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야 한 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한 육체인 것과 같이 우리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1:4-5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으리라 하신 이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가셔서 보내실 보혜사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은 성령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성령 받는 방법이 사도행전10-11장에 나타난 역사입니다.

 

 

사도행전11:14-15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구원 얻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 얻을 말씀을 가르쳐 주라 하셨는데 가서 구원 얻을 말씀을 가르쳐 주니까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그 말씀을 듣고 믿으니까 성령이 저희에게 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구원 얻을 말씀을 들어서 그 말씀이 믿어질 때 받은 성령을 성령 세례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이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믿어질 때 받는 것이 성령 세례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만 받으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신 약속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서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이 믿어질 때는 그 사람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사도행전8장에 나타난 문제는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보겠습니다.

 

 

사도행전8:1-8절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이 무엇을 전하는 가를 말씀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복음의 말씀을 전 했습니다.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빌립이 전하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말씀 합니다

 

 

그 말씀은 예수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당연히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못 받았다고 말씀 합니까? 빌립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을 것인데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는 이 문제가 참으로 난감합니다.

 

 

사도행전8:9-12절을 보겠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전도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이 예수 이름의 뜻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으면 성령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았습니다.

 

 

사도행전8:13절을 보겠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이렇게 믿었는데 그 다음에 사도들이 내려왔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분명히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저희가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믿었다면 이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아직 못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8:14-17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예수를 믿었는데도 이 사람들은 성령을 못 받은 사람들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성경에 이들이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한 것같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을 아직 못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와서 전해서 받은 성령은 내적 성령 보혜사 성령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해서 믿고 받은 성령은 내적 성령입니다. 내적인 성령의 역사는 구원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어도 내가 성령 받았다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성령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릅니.

 

 

예수 믿고 확신을 가지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령은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성령 받았는지를 모릅니다. 죄 사함 받은 그 자체가 성령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보혜사 성령은 임했는지 안 임했는지를 자기 자신도 모릅니. 왜 외적으로 나타나는 역사가 없이 오직 말씀만 믿어지기 때문에 성령이 임한 것을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어떠한 외적인 역사가 없고 그저 말씀만 믿어지고 있을 때는 정말 성령이 임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믿어지고 있고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 지고 있다면 그는 보혜사가 임한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내게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 하나이다 하고 답변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천사가 와서 전할 때 처음에는 안 믿다가 나중에 믿으니까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천사가 떠나는 순간에 마리아는 잉태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내가 지금 잉태되었다고 알았을까요?

 

모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배가 부르니까 잉태한 것을 알았지 그 즉석에서는 잉태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마리아에게는 잉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있는 사람에게 외적으로 나타나는 역사가 없으니까 이 사람에게 네가 성령 받았느냐 네 속에 성령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없습니다. 못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네가 성령 받았느냐고 하면 못 받았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안 나타나기 때문에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빌립이 와서 전도할 때는 능력들이 나타났습니다.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빌립에게서만 나타난 것입니다. 빌립에게서 나타난 것이지 믿는 사람에게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빌립이 기도하면 병자가 치유되고 여러 가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빌립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서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럼 왜 시몬이라는 사람이 빌립에게 그 능력을 구하지 않고 사도들이 내려와서 성령이 임하니까 그때 구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은 그냥 복음을 전하면서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와서 너희들이 성령을 받았느냐 하니까 안 받았다고 말 합니다. 안 받았다니까 그럼 성령 받으라 하고 안수 하니까 그 즉시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까지는 빌립이 자기는 능력을 행하면서도 자기가 다른 사람을 안수하면 그 사람에게 성령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때입니다. 사도들이 안수 하니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니까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가 하면 구원 받은 사람이 은사가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아무런 은사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확신하고 있는데 은사가 없는 사람들입니. 이런 사람이 은사 자들의 집회에 가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마음에 충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처음에 구원 받았을 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받고 구원만 얻었을 때는 내가 안수해서 다른 사람에게 성령 받게 하는 그런 마음에 갈등이 없습니다. 자기가 구원 받았으니까 만족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살다가 다른 사람이 안수 하니까 은사 받는 것을 보면 그때는 자기가 충동이 일어나서 나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마리아 사람들이 처음에 구원의 확신을 받았지만 은사가 밖으로 나타나지 않으니까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에 사도들이 와서 안수하니까 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성령 받은 것은 안수해서 성령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원에 확신을 주는 보혜사 성령은 안수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 말씀을 전해서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서 임하는 것이지 안수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안수해서 받는 성령은 외적인 성령의 은사입니다. 보혜사가 임하는 것은 누가 안수를 한다고 해서 임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있는 은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때에 사도들이 와서 안수를 하니까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를 하면 성령론 전체가 다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은사를 받은 것이 보혜사를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9:4-5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저희가 듣고 세례를 받을 때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세례 받는 것은 듣고 믿었기 때문에 세례 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니까 세례를 받았습니다. 믿어진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까 우리는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하니까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세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그 사람은 보혜사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성령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안수한 후에 외적인 성령이 나타났는데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고 말씀합니다.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은 외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외적 성령의 역사는 안수하니까 나타났습니다. 믿고 세례 받고 죄 사함 받는 것은 이런 외적 성령이 아니기 때문에 보혜사가 우리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같은 영을 우리에게 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영은 우리가 받았지만 안 나타나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안수해서 받은 성령(외적성령)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전도했을 때 그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믿어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받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외적인 성령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은사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들에게서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빌립 혼자 능력도 행하고 병도 고치고 했지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빌립이 전도해서 사마리아 성에도 복음이 전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 혼자 사마리아 성에 복음 전하는 자로 둘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은사 집회를 한 것입니다.

능력을 받아서 복음 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은사 집회를 하고 안수 하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은사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빌립의 말을 듣고 주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외적인 성령의 은사를 받도록 은사 집회를 한 것입니다. 이 은사 집회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분량대로 주신 은사가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시몬이 나도 좀 그렇게 해 달라는 이 말은 외적으로 무엇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말한 것이지 내적으로 복음을 받고 아무리 확신해도 안 보이기 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나타난 것은 외적인 은사였다는 말씀입니다.

 

 

외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몬이 보니까 저 사람도 예언을 하고 방언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을 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돈으로 그것을 할 줄 아냐 너는 이것과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그러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믿고 받습니다.

빌립이 전한 것이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있는 성경 절들이 있습니다. 빌립이 전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 들였는데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사실 이런 성령론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은사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8:26-28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성령의 지시를 받고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납니다. 이 내시를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8:34-39절을 보겠습니다.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없음)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줍니다.

세례는 복음을 듣고 죄 사함 받은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물론 육적으로 세례를 받고 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스스로 청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내시가 지금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복음을 완전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빌립 가는 데로 갔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사마리아 성에서 집회를 해서 안수함으로 받은 성령이 보혜사 성령 받는 것이라면 내시는 성령을 못 받고 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내시가 성령을 못 받았다면 그 말을 들으나 마나 세례를 받으나 마나입니다.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은사를 받지 않았지만 그냥 돌아갔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빌립이 복음을 전한 것은 들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내적인 성령이 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보혜사를 누가 안수를 해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성령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은사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빌립은 지금 이 시대로 말하면 은사 집회를 안 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가는 곳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기는 해도 은사적인 집회는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이 믿게만 했습니다.

 

 

은사 집회를 안 하니까 외적으로는 성령체험을 하지 못 합니다.

은사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빌립이 전하는 곳마다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가는 곳마다 성령 받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성령을 받으라고는 말 안 했지만 세례를 받은 그들에게는 이미 보혜사가 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8:40절을 보겠습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그 후에도 빌립은 복음을 전 합니다.

아소도에 나타났다는 말씀은 성령께서 이끌어 가버린 것입니다.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에 물에서 올라온 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성령께서 아소도에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만 전 했습니다. 복음만 전하면 복음을 받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는 나타날 수도 있으나 잘 안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듣고 기뻐는 하지만 외적 은사는 안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해서 기뻐할 때는 내적으로 성령이 임하면서 외적으로도 동시에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복음을 듣고 복음이 믿어질 때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개는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으면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임하지만 외적인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확신되어질 때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리라고 하는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행전8장에 나타난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외적인 은사에 대한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외적인 은사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빌립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영접하게 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내적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그 사람들은 천국 갈 사람들로 확정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외적인 성령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와서 안수를 함으로서 은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안수를 하면 은사가 잘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은사집회를 하면 참여한 사람들에게 성령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은사 역시 안수를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안수를 통해 은사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빌립은 자기에게서는 능력이 나타나는데 다른 사람을 은사 받게는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 혼자 능력이 나타나는 것 하고 내가 가진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는 병고치고 예언하고 방언하고 다 하는데 내가 안하면 다른 사람은 못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서 안수만 하면 다른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빌립은 그런 은사는 없고 자기에게만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성령세례는 내적인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1:4-5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을 지금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제자들은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있었으나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아직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 살아나셨지만 이것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예수가 살아난 것은 예수가 살아난 것이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없었습니다. 보혜사가 오시고 난 후에 그런 확신이 안에서 믿음으로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제자라면 우리 중에 예수님이 계시다 죽었다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난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난 것이지 예수님 하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아직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지내고 다시 살아났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이 믿어져야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말씀이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이 문제를 깨닫게 하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리라는 그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 그가 오시면 나를 증거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알기는 알았어도 예수님의 사역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 살아나셔서 부활 승천하셨는데 이것이 자기 안에서 확신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내가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그 말씀을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언제 진리 가운데로 인도되었느냐 하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복음가진 사람들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복음 가진 사람을 멸시하고 훼방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혹 어떤 사람이 어떤 생활 때문에 복음 가진 사람을 훼방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복음을 강하게 주장하는데 제 생활이 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생활이 좋지 않은 것 때문에 저 사람 말 듣지 마 이렇게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1-3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말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이 말씀은 진리에 자리에 앉아서 진리를 전하기 때문에 그 말은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도 말로는 잘하는데 행동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동 때문에 그 사람 하는 말까지 잘못 되었다 해버리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또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진리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외적으로 보면 대형 교회가 다수가 따라가고 있고 진짜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 외적인 것을 보고 진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외적인 것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큰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진리가 바로 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보이는 것을 보고 자기 눈으로 보고 확신을 하고 있고 진리에 대해서는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찬양 좋습니다.

더구나 노래를 정말 잘해서 감동을 주는 찬양을 듣고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근사한 교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곳에서 예배를 하고 있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초대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에 비해 그들은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초대 교회는 어떤 예배당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도들 집 가운데에서 큰 집이 있으면 그것에서 모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찬양을 하고 무슨 통성 기도를 하고 은사 집회를 했겠습니까?

 

 

로마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예배를 했던 장소들은 지금 이 시대로 말하면 아무도 없는 그리고 번화가도 아닌 그런 곳에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숨어서 예배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맞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그렇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그렇게 눈으로 보고 감성적으로 느끼려고 하다가는 망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눈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을 하면 문제가 됩니다. 제가 은사를 전혀 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은사를 부정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자기 믿음의 표징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체가 보혜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은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을 볼 때는 너무도 좋고 육적으로 기쁠 수 있어도 그것이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찬양을 잘 합니다. 그 찬양을 부르고 듣고 하면서 감동을 받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보혜사 성령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을 잘 부르면 어떻습니까?

사실 그 은사는 목회를 하는데 있어 큰 무기가 됩니다. 실제 찬양을 잘 하는 목사들을 보면 교회가 성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은사가 나타나면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 그런 교회들이 너무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은사가 나타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는 분명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혜사가 임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

보혜사가 없이도 얼마든지 은사는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이 임했어도 그런 외적인 은사적인 체험이 전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혜사가 내게 임해서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그것입니.

 

 

여러분이 아직 율법주의의 폐해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한 은사주의에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주의가 은사주의가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분명히 너무도 좋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자기들의 눈으로 보여지고 느끼는 것을 따라가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두 가지 사상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입니다.

다 그 안에 속하는 것입니다. 은사도 따지고 보면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통해서 믿음의 확증을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

성령만 역사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단도 이 은사를 가지고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물론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그 은사를 사단도 이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 이 은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얼마나 가려지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보혜사 성령은 믿을 때 받습니다. 아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믿어지고 또 복음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하지 않으면 제가 복음을 아무리 바르게 전해도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체험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체가 무속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해서 음성을 듣고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해서 응답을 해서 알 수 있습니까? 환상을 보고 어떤 은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이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알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과 같이 힘이 듭니다. 기적입니다. 수천 명 가운데서 1명 나오기가 힘든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구원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사상이 돌아선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은사에 한번 빠지면 또한 진리를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리의 성령은 믿고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면 진리의 성령이 임재한 것입니다. 설령 외적인 은사적인 체험이 없다 해도 성령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정말 진리를 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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