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8강/ 은사

윤주만목사 2017. 9. 25. 09:49

은사

 

고린도전서12:4-11절을 보겠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성경적인 접근이 필요 합니다. 교회 안에 은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만 있으면 되지 무슨 은사가 필요하냐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잘 못하도록 막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말씀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는 말씀만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데 더 이상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은사가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그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은사를 무조건 부정만 해서도 역시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입니다. 이 은사가 신약에서 말씀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신약에 보혜사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이 은사가 주어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특정한 은사는 신약에 와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이 은사가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처음부터 주셨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이 은사는 주어졌지만 다만 그것을 은사라고 말씀을 한 것은 신약에 와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제사를 행했던 것도 역시 은사를 통해서 그 일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가 있었기 때문에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은사가 보혜사가 임할 때 함께 나타나는 것을 여러 곳에서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치 이 은사를 보고 보혜사가 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교단에서는 이 은사가 있어야 구원을 받은 성도라 말하고 있고 이 은사를 마치 구원의 표징과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은사는 재능입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은 생명입니다. 보혜사가 임하면 새로운 생명이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것이고 은사는 그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은사를 보고 마치 자기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아무리 많은 은사가 나타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질시를 할 만큼 좋은 은사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의 표징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은사를 마치 구원의 표징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할례를 받은 그 표징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했던 것과 같이 이 은사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좋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을 못하는 것보다는 방언을 하면 사람들이 그를 더 신령하게보기 때문에 방언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 기도를 하면 병자가 고침을 받는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사라는 것은 눈에 보입니.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더욱 사모하고 있고 자기가 원하는 은사를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은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은사가 없이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은사가 있어야 하고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이 은사가 있습니다.

 

재능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은사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이것만 은사입니까? 분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것만 은사입니까? 여기에 기록이 안 되어 있는 것들도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사실 다 은사라고 해도 맞습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율법 말고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은사를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찬양 은사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역시 은사입니다. 예배를 은혜롭게 하는 것 역시 은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역시 은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은사가 주어졌기 때문에 자기들이 원하는 교회를 건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부정해서도 안 됩니.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하고 또 찬양을 하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들이 이 은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은사에 대해서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문제는 이 은사를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은사는 재능입니다.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아들과 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재능이 없고 종은 재능이 많아서 그를 일꾼으로 쓰고 있습니다. 재능이 그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가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본문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은사가 있다 해서 그것이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재능은 재능이고 그것이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이 재능이 있다 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종이 아무리 재능이 많다 해도 그 주인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4:10절을 보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주신 목적입니다.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각자의 분복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먼저 바로 이해를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를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셔서 그 은사를 통해서 청기기 같이 봉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주었습니까?

나에게서 나타나는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먼저 복음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해서 이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는 성령의 뜻대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누가 주었습니까?

내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구나 이 은사는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 은사를 통해서 자기를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치 자기 것같이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은사 자들이 자기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선한 청기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자기 것같이 행세를 하고 있다면 그는 악한 자이지 선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은사는 잘 사용하면 선합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는 순간에 그것은 악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를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바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은사는 어떻게 사용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선한 것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하지만 또 악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은사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자기들이 경험을 한 은사를 얼마나 자랑을 하고 있고 그 자랑이 실제 그들의 믿음의 표징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분별을 해야 합니다. 실제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고 그 은사를 서로 자랑하는 것을 보고 사도바울이 경계를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은사는 청지기가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입니다.

그 재능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재능이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이지 내 육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하고 그것이 절대로 내 믿음의 확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은사주의가 만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교회 안에서 서로 자랑을 하느라 고린도교회 보다 더 은사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혜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기도 중에 응답을 받았거나 환상을 보았거나 꿈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았어도 그것은 하나의 싸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또 기도 중에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했는데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일들이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12:1절을 보겠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무엇이 무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진짜 자기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보았지만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은사 자들이 과연 이 말씀을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기도 합니다. 기도 중에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이 시대 누가 있겠습니까? 아마 제가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은사를 부정한다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무엇이 무익하다고 말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12:2-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이 천국에 갔다 왔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천국에 갔다 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하는 말씀은 거짓이 아닙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천국에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가 환상과 계시를 본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기도를 하다가 음성을 들으면 그것이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음성을 듣는 것과 천국에 갔다 온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강하겠습니까? 당연히 천국에 갔다 온 것이 더 강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은사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도 중에 음성을 듣고 또 기도 응답을 받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하는 것이 너무도 소중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도 경험을 하라고 하면서 기독교는 이런 체험의 종교라고 하면서 이런 은사를 맛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갔다 오면 뭐합니까?

제가 그것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물론 성도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은혜로 천국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또 기도를 하는 중에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참으로 기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했어도 그가 구원을 못 받는 다면 그것은 무익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것 때문에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천국에 갔다 왔지만 그것은 무익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음성을 들은 것을 자랑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만 그런 체험을 합니까?

은사가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은사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일반 사람에게도 이런 은사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장의 은사가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만 나타납니까?

그리고 기도 응답을 기도 중에 음성을 듣는 것을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만 나타나고 또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하는 것을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만 나타나는 은사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무당에게서도 그것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중에 음성을 듣는 것 기독교의 전유물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 것 하나님만 믿어서 받습니까? 무당이 기도를 해도 응답을 받고 있고 무당이 기도를 해도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기도 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런 것을 주장하고 있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런 현상과 은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샤머니즘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청지기가 되어 사용을 하면 선한 일이 되지만 그것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에는 이 세상의 샤머니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은사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선한 청지기에게서 나타나면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재능이 되지만 같이 교회 안에 있어도 은사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면 그것은 샤머니즘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성령을 통해서만 역사를 합니까? 아마 이 시대 교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은사를 비록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그것을 누가 사용을 하느냐에 따라서 선한 청지기가 되기도 하고 악한 독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사람의 눈에 좋게 보이고 있지만 그렇기에 영적으로는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4:24절을 보겠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은사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제일 쉽게 속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은사이기도 합니다. 사실 방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능력을 행해보기 바랍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다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파코스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체험을 한다고 하면서 기도 중에 방언을 하기를 연습을 하고 있고 또 그들의 집회를 가보면 그 인도자가 기도를 하면 다 쓰러져서 입신의 체험을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쓰러 집니다.

그들이 한번 옷을 흔들어 버리면 다 쓰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라고 하면서 훅 불면 모두가 쓰러져서 마치 간질병을 앓는 사람과 같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이 성령의 은사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집회에 사람들이 수만 명씩 모여서 그런 체험을 믿음의 확증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자랑합니다.

그런 집회가 가서 방언을 하고 또 그런 체험을 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까? 성경 어디에 그것이 나와 있습니까? 설령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것을 자랑합니까?

자기가 체험을 한 것을 왜 자랑합니까? 그것부터가 진리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천국에 갔다 왔지만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는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은사적인 체험이 내 믿음의 표징을 삼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은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잘 사용을 해야 하지만 은사가 얼마나 무익하다는 것을 모르면 그것으로 믿음의 표징을 삼으려고 하고 있고 그 은사로 인하여 사망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4:16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무익합니다.

여러분이 이 은사적인 체험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행위나 은사를 자랑하는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악한 것을 체험 신앙이라고 하면서 자랑을 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을 하면서 스스로 믿음의 표징을 삼고 있습니다.

 

은사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 중에 음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자기가 꿈에서 어떤 현상을 보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언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을 체험을 하게 되면 자랑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천국에 갔다 온 그것도 무익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익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무익한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 자체가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기독교는 체험 신앙이라고 하면서 그런 은사적인 체험을 해야 마음이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쁨이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그런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사실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체험을 이야기 하면서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스스로 믿음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체험하게 해 주셨다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영의 기쁨입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육의 기쁨이지 영의 기쁨이 아닙니. 그런 기쁨은 이 세상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도 다 누리고 있고 그들도 그런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용하는 언어가 틀린 뿐이지 천주교나 불교 무당들도 다 그런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는 순간에 그것은 악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익한 것을 자랑하는 순간에 그것이 악으로 변해 맹독을 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은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사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은사는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도 사용합니다.

 

마태복음7:22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은사가 다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들을 보고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아무리 많이 행했어도 그가 거짓 선지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가 나탄다고 해서 그가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인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은사는 아무리 많은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 자들이 가장 간과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은사를 통해서 악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자랑하는 것 자체가 악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사용이 되면 그것은 선한 청지기의 일이 되지만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에게서 사용이 되면 그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믿음의 표징을 삼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은사,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가 아니더라도 이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에게서만 이 은사가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에게도 똑같이 이 은사가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분별을 하지 못하면 결국 은사주의에 빠져 그 은사를 자랑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말씀을 하고 있는 은사 꼭 성도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은사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 또 이런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구원과 상관이 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지만 이 은사를 얼마든지 사단도 함께 이용을 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은사를 이야기 하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지혜의 말씀을 가르친다 해도 또 지식의 말씀을 가르친다 해도 또 그에게서 믿음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도 아니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리고 그가 기도를 해서 병을 고친다 해서 또 어떤 능력을 행한다 해도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또 통역을 한다 해도 그것으로 구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입니다.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은사입니다. 은사는 무엇이냐면 더 연약한 지체를 세워주는 재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식도 없습니다. 실제 공부를 못해서 성경을 보아도 잘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가르친다 해도 지식의 말씀을 가르친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이 다 구원을 얻을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것 같이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 지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적인 측면에서 지혜와 지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얻을 믿음이 있는 것과 일반 신앙적인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은사에 믿음을 주셨다고 하니까 마치 구원을 얻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말씀을 하고 있는 믿음은 쉽게 말씀을 드려서 이렇습니다.

 

내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반드시 들어줄 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도를 하면 실제 음성이 들려지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구원 얻을 믿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고칩니다.

그런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실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 뿐 아니라 타 종교에서도 그런 병 고치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해도 그것이 구원을 받았다는 표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누가 줍니까?

기도를 한다고 해서 집회를 참석을 한다고 해서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 자에게서 기도를 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은사가 나타났다 해도 그렇게 해서 은사를 받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11절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물론 성경에는 기도를 해서 안수를 해서 은사가 나타나는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은사를 주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나타나고 있다가 안수를 통해서 방언이 터지고 예언을 하고 또 병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시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것이 기도나 안수를 통해 또 집회를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은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9:6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사도행전 8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안수를 하니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장에서도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하니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함과 동시에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은사가 함께 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능력입니까?

지금 이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하기 전까지는 이 사람들은 분명히 방언도 예언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은사가 나타났을 뿐이지 이 은사를 사도 바울이 주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아니라도 됩니다.

다른 똑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안수를 하면 이 사람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안수를 함으로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도 안수를 합니다.

그들이 안수를 해도 똑같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도 고치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은사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들이 안수를 하면 입신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음성을 듣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은사적인 체험을 가지고 마치 보혜사가 임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가 은사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자기들끼리 자랑을 하고 있고 또 간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은사적인 체험이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진리를 알아 가는데 힘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은사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는 구원의 표징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은사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은사를 통해 체험을 한 사람들이 쉽게 거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6:4-6절을 보겠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다시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한번 은사주의에 빠지게 되면 성경은 분명히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주의도 율법주의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은사를 조금 자랑하는 것이 어떠냐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인데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 합니다.

은사도 많이 행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또 잘 믿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 합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아주 좋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은사를 자랑하게 되는 순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은사가 그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 무엇이 문제입니까?

더구나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주신 은사라고 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은사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은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은사를 행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은사로 인하여 은혜가 가려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이 바보인 줄 압니까?

사단이 무엇을 이용하겠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착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면 모든 것이 가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셨어도 그것을 사단도 얼마든지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는 물론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그 은사로 타락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은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은사에 빠져 진리를 아는데 힘쓰지를 않고 그 은사로 자기 믿음을 확증하려고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은사를 맛보면 사람들은 자꾸 더 많은 것을 체험을 하고 싶어 하고 굳이 진리가 아니더라도 그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바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음성이 들렸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 은사를 통해 찾으려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기도 중에 음성이 들립니다. 그 음성이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음성이 자기 마음에서 감동이 되고 들려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럼 그런 음성이 내 마음에서 감동으로 들렸던 귀로 들렸든 그 다음에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자기가 예수를 믿으니까 이 음성이 들렸고 이 음성이 내가 믿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꿈을 꿉니다.

그리고 환상을 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니까 누군가 나타나는데 꼭 예수 그리스도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를 바로 알고 있는 가 성경을 통해서 그 꿈과 환상이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고 있는 가를 깨닫기를 힘써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구원의 사인을 보여 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 하늘의 은사를 체험을 했으면 그것을 통해서 성경 안에서 내가 바로 진리 가운데 서 있는 가 더욱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면 그 은사 자체가 자기들이 아주 잘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고 그것을 말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해도 그 임팩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

 

바로 이렇게 타락을 합니다.

이렇게 타락을 한 사람은 다시 새롭게 될 수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사적인 체험을 자기가 믿는 믿음의 증표로 삼는 순간에 이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체험을 중요시 하고 있고 그런 체험을 하기 위해서 별의 별짓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독됩니다.

율법도 마찬가지로 중독이 되지만 이 은사도 한번 맛을 보게 되면 그것에 중독이 되어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됩니다. 이 은사는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렇게 교인들을 중독 시키고 있고 그 은사에 취한 사람들은 은사가 없으면 기쁨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은사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내가 잘 사용을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잘못 사용되면 악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악에 한번 맛을 들이면 절대로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은사는 잘 사용을 하면 너무도 좋은 칼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그것은 또 나를 찌르는 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가 왔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 은사가 너무도 좋고 마치 하나님께서만 그것을 나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0:1-4절을 보겠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가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 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천사를 보았습니다. 사실 천사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아마 이 시대 누군가 천사를 보았다면 그것을 자랑하느라 간증을 하고 다니느라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천사를 본 것이 대단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고넬료가 천사와 대화를 했어도 그가 구원 얻을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그는 무익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천사가 와서 고넬료의 기도 응답을 했어도 그가 구원 얻을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천사를 본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이렇게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은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천국에 갔다 왔다고 고린도후서에서 부득불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천사를 보았겠습니까? 못 보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거기서 천사를 보았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 응답을 받고 천사와 대화를 한다 해도 그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은사란 이렇습니다.

고넬료가 이 천사를 통해서 구원 얻을 말씀을 들었으니까 그것이 선한 것이 되었지 만약에 구원 얻을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그저 천사를 본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강한 은사가 나를 통해 나타난다 해도 아니 내 평생을 천사와 대화를 하면서 살아간다 해도 그가 구원 얻을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익한 뿐입니다.

 

은사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집을 짓는데 있어 여러 가지 연장과 또 자제들이 필요로 합니다. 지금 고낼료가 본 천사와 대화를 하는 것은 집을 짓는데 있어 망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망치 보다 못한 것 못을 한번 꽝 하고 나무에 박는 그 순간의 모습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망치질 한번 안 한다 해서 집을 못 짓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은사라는 것은 마치 그런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이 은사를 통해서 서로가 도움을 주는 재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은사가 없다고 해서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고넬료가 천사를 만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서 구원 얻을 말씀을 듣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꼭 천사와 대화를 하고 난 후에 베드로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감동 시켜서 고넬료의 집을 찾게 해서 구원 얻을 말씀을 전하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를 맛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믿음의 확증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넬료와 같이 구원 얻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은사는 나에게 그런 사인을 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사인을 외면을 하고 있고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마치 구원 얻을 말씀을 듣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왜 주셨습니까?

 

고린도전서12:22-27절을 보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은사를 통해서 지체를 세우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은사를 통해서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 도움이 되게 그 재능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럼 다른 지혜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시고 있고 또 누구는 지식이 없으면 그를 통해 성경을 연구를 하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지식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럼 믿음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믿음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또 몸이 아프면 기도를 해서 그 사람의 아픈 것을 치유하게 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은사가 바로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은사를 통해서 지체가 든든히 서 가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약한 지체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 은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은사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물론 은사를 주셨지만 그 은사가 잘 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서로 돌아보면서 연약한 지체를 세우기 위해서 이 은사를 주셨지 절대로 그것을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특히 기도원 같은 곳의 광고를 보면 자기들이 어떤 병을 고쳤다고 광고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은사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렇게 하는 자체가 진리를 모르고 있고 그저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독입니다.

자랑하는 순간 은사는 다른 칼이 되어서 자기 영혼을 찌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체험을 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천국에 갔다 온 것도 부득불 무익하나마 자랑을 한다고 했는데 겨우 음성을 들었다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방언을 한다고 예언을 한다고 꿈을 꾸었다고 환상을 보았다고 병을 고쳤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외적인 체험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하는 것을 갖고 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의 기쁨을 마치 영혼의 기쁨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으로 느끼는 기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은사적인 체험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가복음10:2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까?

기도를 하다가 음성을 들었습니까? 또 꿈을 꾸다가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그런 것으로 기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기뻐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을 통해서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너무 기뻐서 예수님께 와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것이 내게서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은사 자체를 전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통해 우리는 감동도 받아야 하고 또 때로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나타났다 해서 내가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은사 기쁩니다.

사실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기도 응답을 받고 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은사가 아무리 나를 통해 아름답게 나타나고 또 모두가 질시를 할 정도로 내 은사가 빛이 난다 해도 그 은사가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은사도 육적인 기쁨입니다.

그것을 영적인 기쁨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육적인 것이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은 육적인 것입니다 육적이기 때문에 이 은사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36:1-2절을 보겠습니다.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모세가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성소를 짓고 있습니다.

브사렐과 오홀리압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성소를 만든 사람입니다. 이들은 성소의 모든 기구와 제사장들의 옷을 지어서 하나님께 제사를 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로 말씀을 드리면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특별 합니까?

성소의 모든 기구를 이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옷을 만들고 그 하나하나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만든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브사렐과 오홀리압은 이 시대로 말하면 대단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성소를 지을 때 이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성소에 쓰는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출애굽기에서 이 부분에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받아 성소를 지은 아주 대단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누가 들어갔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구원을 못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사람도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이 만든 기구를 통해 나타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름이 없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두 사람이 구원을 못 받았다고 제가 단정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너무도 귀한 은사를 행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론과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서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 모형을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아 지었다 할지라도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성소를 아무리 아름답게 지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은사란 이렇습니다.

당시 광야에 있던 사람들이 성소의 모든 기구를 만들어서 지은 이 두 사람을 보고 얼마나 대단하게 보았을 것입니까? 그들의 은사는 너무도 화려해서 하나님의 성소를 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아름답게 나타냈지만 그것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배를 합니다.

그 안에는 많은 은사 자들이 있어 자기들의 은사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도 있고 또 찬양을 하는 자도 있고 봉사를 하는 자도 있고 섬기는 자도 있고 권위 하는 자도 있고 부지런한 자도 있고 긍휼을 베푸는 자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 안에서 그렇게 은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은사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표징은 아닙니.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 이미 출애굽기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소를 짓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성소에 쓸 물건들을 가져왔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져왔다고 해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은사 자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다 해도 그것이 구원과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소를 만드는데 넘치도록 가져왔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마음으로 성소를 지었다 해도 그것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은사를 왜 주셨습니까?

은사를 왜 주셨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몰론 연약한 지체를 세우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이 은사를 행하고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도 맞지만 이 은사를 통해서 더 큰 은사를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

 

고린도전서12:3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전서12장은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은사를 주셨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지막 절에 있는 말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보고 있고 그 은사를 통해 기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은사에 대해서 다 말씀을 하고 나서 분명히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모해야 하고 이 은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니까 무슨 은사로 생각을 합니다.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방언을 하기를 사모하고 또 예언을 못하는 사람은 예언을 하기를 사모하고 가르치는 지혜가 없는 사람은 가르치는 지혜를 사모를 하고 영분별을 못하는 사람은 영분별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것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 집회를 합니다.

또 그런 곳을 찾아다니면서 더욱 큰 은사를 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안수를 받기도 하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 보니까 그런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내가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지혜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식의 말씀을 얻겠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 은사는 고린도전서12장에서 말씀을 하는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은사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런 더 큰 은사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안다면 굳이 12장에 나오는 그런 은사를 구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3:1-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방언 합니까?

기도 중에 음성을 들었습니까? 환상을 보았습니까? 꿈에서 천국을 보고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예언을 합니까? 성경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이런 은사가 다 있다 해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 모든 은사가 있다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체험을 많이 하고 또 나를 통해 모두가 질시를 할 정도로 그런 은사가 나타난다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익한 것을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그런 체험을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의 표징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병을 고쳤습니까?

목사가 되어서 성경을 해석하고 또 성경에 있는 모든 지혜를 알고 있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예배를 할 때 연주를 하고 찬송을 하고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 너무도 소중한 것이 되어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아니 오히려 독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은사에 취하면 마치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이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찬양을 하고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화를 내고 저를 보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필요합니다.

제가 은사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싶어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은사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왜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이 은사에 또 다른 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더 큰 은사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13장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모든 은사를 다 행한다 할지라도 더 큰 은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전부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가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면 그가 아무리 은사를 많이 행하고 그 은사를 통해서 많은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내게서 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는 내가 그리고 또 나와 함께 있는 성도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게 하는 도구에 불과 합니다. 은사를 보고도 내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에 불과합니다.

 

은사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또 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큼 하나님의 영광과 같이 보여 지면 뭐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단의 일군이 되어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이 모든 은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이미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그는 은사주의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은사에 빠져 타락한 사람은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가 그 은사가 내 안에 있는가를 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이고 그의 은사는 결국 사단의 미혹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12:5-8절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 모든 것을 다 하면 뭐 합니까?

물론 성도가 은사를 받은 대로 이런 일들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은사가 우리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 해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인가를 확증해 나가야 합니.

 

차라리 은사가 없어도 됩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저는 이 모든 은사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외적으로 나타나는 은사를 사모하기 보다는 정말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가 그 사랑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를 통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은사를 통해서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은사는 무익하므로 성경을 통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인가를 확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은사가 없다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나오는 은사 로마서12장에 나오는 은사를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고 또 그것을 교회 안에서 보았다 할지라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6:23절을 보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은사가 아니라 더 좋은 은사를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여러분들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외에는 모든 것은 다 무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적으로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은사를 생각하지는 않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너무도 아름답고 지적이고 감성적인 그 은사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은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이 은사가 얼마나 무익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 사람의 눈에는 그리고 귀로 듣고 감성으로 느끼고 하는 것에서는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영광과 같이 보일지라도 그 은사라는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도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은사라 해서 마치 모두가 성령의 역사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은사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까 성령론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단도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사단도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대로 나누어 주신 좋은 것이지만 그 은사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모르게 되면 그 순간 사단이 역사를 하고 미혹이 되어서 은사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고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은사를 통해서 성도는 당연히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은사는 영생을 얻는데 있어 하나의 도구입니다. 이 은사를 잘 사용해서 영생을 얻고 또 은사에 취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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