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5강/성령훼방

윤주만목사 2017. 9. 25. 09:38


성령훼방

 

요한일서5:16-17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이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하고 있고 더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는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진리가 가려지고 있고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가 하면 교회 안에 들어와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을 하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실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만약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을 한 가지라도 거절을 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들이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심각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사람의 생각으로 좋게 보여 지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 같이 보여 지면 영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육적으로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훼방을 하고 있느냐 하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로 그리고 은사를 통해서 성령을 훼방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

 

사실 역설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생각과는 아주 역설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으면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선한 일과 의로운 일로 인하여 성령을 훼방을 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도서1:16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위하는 너무 좋은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있고 성령께서 전해 주시는 것을 모르고 자기 생각에 따라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5:18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분명히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부인을 하면서 성령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감동을 주시면서 율법 아래 있지 말라고 책망을 하고 있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시인을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실 성경 안에는 이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을 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행위로 부인을 하면서도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면서 그것에 취해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성령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무엇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면서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사실 성령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또 오해를 하다 보니까 스스로 성령을 훼방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에 대해서 바른 정립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과 은사를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마치 모든 것이 다 하나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은사도 성령, 보혜사도 성령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실 은사는 은사라고 해야 맞습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성령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려서 내게서 은사가 하나도 안 나타난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아주 쉽게 설명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는데 있어 필요한 것들입니다. 저도 산부인과를 안 가봐서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가 탄생을 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산모가 되어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그 필요한 것이 많이 있고 또 준비를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는데 있어 필요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준비물들이 아이가 태어나는데 있어 도움을 주는 것이 있으면 아이가 탄생을 하는데 조금 편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이가 태어나는데 있어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엄마입니다.

아무 것이 없어도 엄마를 통해서 얼마든지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은사라는 것이 그렇습니. 물론 그것이 있으면 아이가 태어나는데 있어 좀 편하게 태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은사가 아이가 태어나는데 있어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은사가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이 은사가 없으면 아이가 안 태어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은사를 보고 아이가 태어났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탯줄을 잘라주는 가위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고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고 해서 아니 그것이 내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런 은사를 보고 마치 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혼란을 줍니다.

성령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하니까 이런 은사를 보고 마치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은사에 취해서 아니 분별을 하지 못해서 성령을 훼방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누구입니까?

우리가 보혜사라고도 하고 있고 또 진리의 성령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은 은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은사와 이 성령을 정확하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은사는 아이를 태어나는데 곁에서 도와주는 필요한 준비물들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진리의 성령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은사를 행하느냐 안 행하느냐 하는 것을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에 대해서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은사는 겉으로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느끼고 감정으로 알고 지적으로 알고 하는 것이고 진리의 성령은 오직 진리를 믿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책망을 하십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것 자체가 성령의 책망을 거절하는 일이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사람을 그렇게 감동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거절을 하면 성령이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책망하심을 듣고도 거절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 훼방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초로 삼고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마태복음12:31-3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로 예수를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하고 이 말씀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성령 훼방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 합니다.

 

자기가 성경을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치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를 거절을 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감동이 되지 않아서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하지 않으려고 하면 마치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설교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한다고 성경을 비추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말 합니다.

 

그리고 반대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 방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방언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그 방언하는 것에 대해서 들으려 하지를 않으면 성령을 훼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은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에 대해서 따라가려고 하지를 않고 그가 행하는 은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기도를 하다가 감동을 받았는데 그래서 그 감동을 받은 것을 상대에게 전하는데 상대가 전혀 그것에 대해서 들으려 하고 있지 않으면 마치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 중에 분명히 음성을 듣고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은사 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기도를 하고 난 후에 자기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기도 응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응답을 받은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 되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행위에 대해서 전혀 하고 싶지가 않아서 무시를 하면 마치 성령을 훼방하는 것 같이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모두가 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 거절을 하면 그를 보고 성령을 받지 않아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령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사와 성령에 대해서 서로 혼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은사와 행위를 거절하는 것을 마치 진리의 성령을 거절하고 훼방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더 성령을 훼방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은사나 율법은 행위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 것을 내 마음에 감동이 없어서 거절을 하는 것은 성령 훼방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성령 훼방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전혀 감동이 안 되어서 기도를 하고 싶지 않다면 기도를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본인은 찬송을 부르고 싶지를 않아서 그 자리에서 나온다 해도 그것은 성령 훼방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훼방 성령 거역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로 예수님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끝까지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받아 들여야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성령을 훼방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 이전에 말로 예수를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먼저 해석해야 합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해석하고 뒤에 있는 말씀을 해석해야 하는데 앞에 있는 말씀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은 덮어두고 성령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 합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 있는 말씀을 해석하고 해야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거역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안 받아 들이고 거절하면서 구원 받을 수 없으며 사함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말씀을 먼저 해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그 다음 말씀이 바르게 해석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서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금방 한번 거역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거역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끝까지 거역하고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거역해서 사함 받지 못하는 것이나 성령을 거역해서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나 똑 같은 것인데 여기 본문은 예수님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고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에 말씀이 해결 되어야 뒤에 성령 훼방이 해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사함 받지 못하는 죄 하면 성령 훼방 성령 거역이라고만 말 합니다. 앞에 있는 구절이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 예수님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말로 예수를 거역하는 것부터 해석을 해야 합니다.

 

사실 이 해석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간단한 것입니다 지금 언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말로 나를 거절하면 사함을 받지만 뒤에 오시는 성령을 거절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있을 때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참람하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외치는 소리를 거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전달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을 거역했던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 전하시는 말씀을 거역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때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은 베드로의 설교가 유명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전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자기의 피를 먹고 자기의 살을 먹지 아니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살이 참된 생명의 떡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다 가버렸습니다.

다 가버릴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말씀하니까 생명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 대답 하면서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오다가 예수님을 거절하고 다 떠난 것입니다. 떠난 후에 베드로가 설교할 때 이 사람들의 일부가 참석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에 보혜사를 보내셔서 성령의 음성을 전달 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거절한 사람은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는 사람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무엇 하러 오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통해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기 스스로 몸을 십자가에 달리셔서 대속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도로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전도로 나타내신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일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 예수님께서 저쪽 마을로 가자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노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몸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구속을 이룬 사실을 전도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성령도 역시 오시면 똑 같은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14: 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가 오시는데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셔서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보혜사 진리의 영은 무엇을 하십니까?

 

요한복음14:25-26절을 보면,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던 말씀을 다시 성령께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구원 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 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얼굴을 보았던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거역했지만 다음에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말씀을 하실 때 받아들이면 진리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역한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시고 난 후에 보혜사가 오시는데 그때 성령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십니다.

똑같은 말씀인데 예수님이 계실 때는 그 말씀을 안 받아 들였을지라도 뒤에 오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전하는 그 말씀을 들으면 살 수 있는 것이고 그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무엇 입니까?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구속하시고 전도로 나타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성령을 거절하는 죄입니다.

 

은사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행하는 어떤 행위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성령을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사를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 거역, 성령 훼방은 성령이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이루신 구속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거절하는 것이 성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훼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을 누가 훼방합니까?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이 일을 훼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거절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 말씀을 거절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가장 반대를 했던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

 

성령 사역을 거절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거역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 주어질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외치는 소리를 거절 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외치는 소리, 제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거절하고 훼방한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 훼방은 십자가의 도, 구원의 복음을 훼방하는 것을 말씀하고 거절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다른 어떤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은사나 행위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

 

말로 인자를 거역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고는 해당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로 인자를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인자를 거역한 사람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 후에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음성을 들은 사람도 있고 듣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을 거역한 사람들은 구원함을 받지 못하고 멸망 당 했습니다.

 

성령 모독, 성령 훼방 죄는 복음을 거절하는 죄입니다.

히브리서10:26-27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 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히브리서에 말씀합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알면서 행하는 죄라고 말 합니다. 그것은 한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 합니다. 알면서 지는 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면서 짓는 죄는 용서를 못 받는다고 말 합니다.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알면서 계속적으로 죄를 지면 용서를 못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알면서 계속적으로 죄를 지면 용서함을 받겠습니까? 못 받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알면서 계속적으로 짓는 죄입니다.

성경은 알면서 계속 죄를 지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모르고 짓는 사람이 있을까요? 죄를 질 때 몰라서 죄를 짓습니까?

 

다 알고 짓 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는 극히 일부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90%이상이 이것이 죄다는 것을 알고 짓는 것입니다. 다 알면서 짓는 죄지 모르고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일반 도덕적인 죄는 거의 다 알고 짓는다고 보면 맞습니다.

 

거짓말 하는 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하는 것입니다.

알면서 짓는 죄, 알면서 짐짓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전부 지옥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자기가 무슨 나쁜 짓을 하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잘못을 해서 부모가 아이를 때리려고 하면 아이는 울면서 잘못했다고 빕니다. 왜 비냐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잘못하는 것을 아는데 어른 들이 몰라서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전부 알고 짓는 죄입니다.

목사가 되었든 전도사가 되었든 성도가 되었든 전부 알고 죄를 짓 습니다 몰라서 죄를 짓는 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모르기는 왜 모릅니까? 몰라서 죄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다 알면서 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알면서 반복해서 짓는 죄 짐짓 죄를 범한다는 이 죄는 무슨 죄입니까? 이 죄는 일반적인 죄가 아니라 십자가를 거절하는 죄입니. 짐짓 범하는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거절하는 죄가 짐짓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그것에 대해서 받아들이지를 않는 죄입니다.

 

해석이 나와 있습니다.

해석이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다른 곳에 해석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해석이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10:26-29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말씀 합니다.

 

무엇을 거절하는 것입니까?

언약의 피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피를 거절하는 것을 가르쳐서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거절하는 죄가 언약의 피를 거절하는 죄입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율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늘율법을 범한 자도 돌로 쳐서 죽였는데 예수님의 피를 거절하면서 어떻게 살겠느냐 예수님의 피를 알면서 거절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율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 말씀하기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용서를 못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입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가 죽임을 당한 것은 과거 역사입니다.

 

과거 역사를 지금 말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이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진리를 알고 진리를 안 받아 들이는 그 사람이 용서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도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람 이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알고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람이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했는데 나 예수 안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를 모르고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서 너희들이나 믿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안 믿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모르기 때문에 안 믿는 것입니다.

몰라서 안 믿는 사람은 죄를 범하면서도 다시 기회가 있습니다. 다른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후에 나오면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잘 압니다.

십자가의 구속도 잘 압니다. 잘 알면서 나도 잘 안다고 하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잘 압니다. 이것을 알고 타락한 자입니.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타락을 한 자를 보겠습니다.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십자가의 피가 무슨 내 죄를 용서하는 것이냐 이것을 부정해 버린 사람, 십자가의 피를 부정한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점도 흠도 없이 깨끗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언약의 피가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행위를 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히브리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사람들은 구약에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제사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가 죄를 속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로 죄를 대속하는 것을 알았는데 무슨 예수가 죄를 용서 하느냐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려야 용서 되지 무슨 예수의 피가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냐고 하면서 십자가를 거절하고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용서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만 깨끗해 질 수 있느냐고 하면서 율법도 지켜야 깨끗해 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의 피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전체 내용은 십자가를 받아들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양 잡아서 제사 드릴 것이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은 합당치 않고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이 양 잡아서 드리는 것은 지금으로 하면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은 예수님의 피 인데 그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버리는 것입니다. 아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되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성령이라는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거저 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저 주는 것을 받으려 하지를 않고 자기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 십자가의 대속을 가르쳐 주시는 이가 보혜사 성령입니다. 이 은혜의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짐짓 죄를 범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옛날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은 행위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은 자기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가 양을 끌고 가서 죄를 용서 받는 제사를 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해야 용서 받지 어떻게 공짜로 용서 받을 수 있냐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내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쓰는가 하면 처음에 제자들이 십자가의 도를 전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니까 이 십자가의 도를 받아 들였습니다. ! 그래 예수로 말미암아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 그것을 알지만 거듭난 사람이 못된 것입니다.

 

그래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 나온 사람들이 다시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갔습니다. 히브리서는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돌아간 사람들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성령 거저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노력에 의해서 구원 받으려고 하는 사람,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는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사람들 말고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는 다는 것이 전파되었는데 이것을 알면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은혜의 성령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으면서도 계속적인 율법주의, 율법을 지켜야 천국 갈 수 있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다시 속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6:4-6절을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본문에 성령 받은 사람도 타락한다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말씀 합니다. 성령을 받았던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것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한번 비췸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비취는 참 빛 곧 우리에게 비취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은사는 통해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예언, 방언, 통역, 이런 은사를 맛봅니다.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성령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안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그저 지식으로만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천국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그런 능력을 체험 했습니다. 이런 능력은 환상가운데 기도 가운데 체험 하면서 천국에 가면 정말 좋겠다. 하는 것들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천국은 참 좋을 것이다 하는 것을 다 체험한 것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타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적인 타락이요 하나는 복음적인 타락입니다 도덕적인 타락은 언제든지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타락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복음적인 타락은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 자체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 자체를 거절하면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버리지 않는데 자기가 약해서 술을 먹는다든지 노름을 한다든지 방탕 한다든지 이런 타락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타락은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못하는 타락은 예수 자체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회개 하지 못하는 타락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타락은 예수 자체를 거절하는 타락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타락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만약 도덕적인 타락이 전혀 돌아 올 수 없다면 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무슨 타락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6:6절을 보겠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체험해보고 십자가를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체험해보지 못하고 십자가를 부인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체험해보고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올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참 많이 있습니.

 

왜? 구원받을 길이 없냐면 복음을 말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이 너무 크니까 복음을 말해도 어리석은 소리한다고 오히려 핀잔을 줍니다. 사실 이런 은사를 맛본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기 구원에 대한 확증을 삼으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은사들이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성경적 해석으로 인하여 한번 타락을 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해지지가 않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 은사주의자, 그리고 잘못된 성경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타락을 하고 한번 타락을 하면 절대로 복음을 안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잘 모르는 사람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하고 또 열심을 많이 낸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일서5:16절을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에 대해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용서를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는 구하라 하지 않겠노라 말씀 합니다. 사실 교회에 나와서 사망에 이르는 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무슨 죄입니까?

도덕적인 죄입니다.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회개하면 용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회개하라고 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도 안 믿는데 도덕 적인 죄를 회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구하라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없어야 되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그 사람이 육적인 죄를 회개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씀입니다. 구하라 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은 도덕적인 죄를 회개하라고 할 필요성이 없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믿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믿는 것부터 해야지 믿지 않는 사람이 믿지 않는 상태에서 밤낮 회개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회개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죄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죄요 하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일서5:17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어떤 죄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입니까?

율법을 범한 죄입니다. 율법을 범한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이 사망은 둘 째 사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둘째 사망을 말씀 하느냐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한번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는 말씀은 두 번째 죽음입니다. 두 번째 죽음은 영원한 지옥에 가서 죽는 것을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20:14-15절을 보겠습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둘 째 사망을 당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거절하면 생명책에 기록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예수를 안 믿는 죄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짓는 죄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 성령 훼방, 성령 거절, 성령 거역, 이런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 이런 죄를 세상 사람들이 짓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짓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은사를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주신 은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또 전도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은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은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성령 훼방이 아닙니다.

누군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떤 음성이 들렸다든지 아니면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그것을 이야기를 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하는데 누구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모두가 협력을 해서 헌금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성령이 말했기 때문에 성령을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사함 받지 못하는 성령 거절, 성령 모독은 구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해당되는 것이지 그냥 일반적인 훼방 거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전해 받은 말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역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말씀한 것을 거역할지라도 지옥 가는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성령이 말씀하는 것을 거역해서 지옥 간다면 지옥 안갈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럽니까?

죄를 범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믿는 자들이 죄를 범할 때는 속에서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그것 하면 안 된다! 그것 하면 안 된다! 역사합니다. 그렇게 성령이 역사하는데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이 역사해도 죄를 범할지라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입니다 도덕적인 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한다 할지라도 사함 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사함 받지 못하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훼방하는 것이 곧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닌 도덕적인 문제나 아니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행위적인 문제에 대해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아닙니다. 사실 그런 것은 진리의 성령의 역사라고 하기 보다는 은사라고 해야 맞습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나 한번 비췸을 받았다가 다시 타락하는 죄나 이런 죄들은 십자가의 구속을 거절하는 죄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이 세상의 어떤 죄도 사망에 이르는 죄는 없습니다. 오직 믿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복음16:8-9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짓는 도덕적인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죄 지은 것은 용서 받지 못 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적으로는 떳떳하게 살았지만 용서 받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나에게 과실이 있는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 줍니까? 하고 물으니까 일흔 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죄 용서는 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용서가 끝이 없다 말씀하시고 일반적인 죄, 은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성령 훼방을 했다고 하면서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말이 안 맞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죄가 아니고 복음을 거절하는 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는 어떤 죄라도 용서 못 받을 죄가 없습니다. 은사를 통해서 전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안 듣고 하는 것과 이 세상에서 용서 못 받을 죄는 하나도 없습니.

 

그러나 딱 한 가지 예수 믿지 않는 것은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모독한 것입니다. 예수를 거절하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는 십자가를 거절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거절했던 사람들은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 집을 압니까? 모릅니까? 탕자는 아버지 집을 압니다. 아버지 집을 알면서도 집에 안 들어가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집에 안 들어가니까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헤어져 있는 죄에 대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타국에서 눈물 흘리며 회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개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죄는 아무리 울면서 회개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탕자가 밖에서 회개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은 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들이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은 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와서 도덕적인 죄를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 들어오면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끊어 졌습니다.

우리가 율법적인 어떤 죄라도 용서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 앞에 들어가지 않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들어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밖에 없습니. 다른 길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갈 수 없습니다.

다른 길로는 갈 수 없는데 십자가를 부인하면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몸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그것을 전도로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엇을 하십니까? 성령도 구속을 가르치시고 전도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똑같이 구속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 성령의 구속의 사역, 우리가 하는 구속의 사역이 똑같은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하는 이 사역을 거절하면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것이 성령 거역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의 복음 자체를 훼방하는 것 그 복음이 틀렸다 잘못됐다 이렇게 훼방하는 것은 나를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 사역을 전하는 그 사람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고 구원 사역을 거절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거절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 사역을 거절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을 거절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병 고치는 것이나 방언 하는 것이나 예언 하는 것 등을 보면서 예언이 틀렸어 저 방언 마귀 방언이야 이렇게 훼방해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 사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 해도 훼방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는 그것을 훼방하는 사람은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성령 훼방 죄요 성령 거역이요 성령 모독이므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거절했다가 베드로의 말씀을 거절하고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거절한 사람들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서 외치는 사람들을 거절하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

 

이스라엘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복음가진 사람들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복음 가진 사람을 멸시하고 훼방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혹 어떤 사람이 어떤 생활 때문에 복음 가진 사람을 훼방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복음을 강하게 주장하는데 제 생활이 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생활이 좋지 않은 것 때문에 저 사람 말 듣지 마 이렇게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도 말로는 잘하는데 행동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동 때문에 그 사람 하는 말까지 잘못 되었다 해버리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행동은 잘못될 수 있으나 확실한 복음이라면 잘못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 행동과 그 사람 복음을 같이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분별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행동이 나쁘면 복음도 나쁩니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말씀하니까 행동이 나쁘면 복음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동이 나쁘면 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저 사람 말하는 것은 가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열매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행위가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혹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다 보면 혹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 좋아야 하고 다 깨끗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정말 정직해야 하지만 혹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의 행동이 나쁘다 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의 행동을 봅니다.

 

사실 아무리 복음이 있다 해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 쓴 시가 얼마나 복음적이고 은혜롭습니까? 그런데 다윗을 죄를 보고 시편을 안 본다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다윗도 사람이고 또 이 시대 아무리 복음이 있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복음 자체가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육신적인 문제는 육신적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목사님이 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구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어 나냐 안 들어 나냐의 차이지 행동을 가지고 복음과 연결시키려 한다면 이 세상에 과연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으로 오해하면 오히려 복음을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 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데 거절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반대할 때 그 사람이 복음이 있는가 없는 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율법주의의 폐해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복음적이지 못한 것은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사실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는 율법을 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이 조금 잘못하는 것은 사실 그 부분만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고쳐지지를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

 

성경 안에 두 가지 사상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입니다. 다 그 안에 속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종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또한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종말이 오니까 이런 문제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준비하느냐면 예를 들어서 새벽기도 잘 안 나오는 사람이 새벽기도를 하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짓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있는 죄입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거절한 것을 말씀한 것이지 지금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자기가 깨끗하지도 못하면서도 깨끗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끗해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목욕해서 깨끗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교회 들어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서도 율법주의는 고치기가 참 힘듭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율법주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이 힘이 듭니다. 기적입니다. 수천 명 가운데서 1명 나오기가 힘든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구원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사상이 돌아선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은 다시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성령 훼방, 성령 모독, 성령 거절 이것은 곧 복음을 거절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셔서 아직도 사망에 이르는 죄 그런 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서 율법주의 사상에서 복음주의 사상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 복음을 가진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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