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령에 대하여

제4강/성령세례

윤주만목사 2017. 9. 25. 09:36

4, 성령세례

 사도행전 1:4-5절을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늘은 성령세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시대 성령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직접 구원론과 연결이 되는데 성령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구원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의 일이다 보니까 육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입니까?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일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공부를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일도 평생을 공부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바로 알아야 하느냐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아니 오해를 한다는 것은 진리를 바로 알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영이 내 안에 임재 해야 내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데 영을 오해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의 탄생입니다.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영이 탄생으로 되는 역사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는 진리를 알 수도 없고 또 구원도 받을 수 없는데 성령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고 또 이상하게 성경을 해석을 해서 성령에 대해서 혼동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리를 분별을 못 합니다.

그리도 이단들에게 쉽게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바로 성령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아니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성령이 내 안에 임재 할 수 있고 또 성령이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령 세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일을 했는가를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으며 복음을 전하면서 능력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10: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많은 권능을 행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복음을 전하면서 능력을 행하여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제자들이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전하면서 이런 능력을 가지고 행했습니다.

 

누가복음10:17절을 보겠습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능력을 받아서 전했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병도 고치고 그런 권능들이 나타났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런 능력을 행하면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0장이나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능력을 행했으며 그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받아서 제자들이 행사 했습니다. 실제 제자들은 두루 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도 고치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 하다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나 병 고치는 능력을 받으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평범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산에 가서 기도해 가지고 이런 능력을 이런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 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는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전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의 말씀이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셔서 이제 승천을 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기다리면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전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이전에는 성령으로 세례를 못 받았으니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 세례를 제자들이 이미 받았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이 문제는 성령론 가운데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이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제자들에게 그런 권능을 주셨고 나가서 그런 권능을 행사 했습니다. 병도 고쳤고 귀신도 쫓아내고 예수님 살아 계실 때 그런 일들을 다 했습니다.

 

만약 이것인 성령 세례라면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말씀은 잘못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면서 너희들은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이미 받은 능력들은 성령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했던 것은 성령 세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세례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 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범한 교인들이 와서 입신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이런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뒤집어 져야 그것이 성령세례다 그래서 그런 능력이 많은 교회에서는 평범한 교회에서 그렇게 있지 말고 자기들에게 와서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세례가 아닙니다.

성령세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성령세례가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알기 전에 세례의 의미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받은 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성령 세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나 우리가 교회에서 받는 세례나 같은 것입니다.

같은 것이기 때문에 육적으로 세례 받는 세례의 의미를 깨달으면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의미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6: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의 의미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는 것은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되고 그와 함께 살아나는 것이 세례의 의미라고 말씀합니다. 세례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세례는 능력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하나라는 것을 세례를 통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었고 예수님께서 장사 지낼 때 우리도 함께 장사되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때 우리도 함께 살아났다고 하는 그와 같은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세례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세례를 주고받고는 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령세례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되고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2:1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것이 이것이 세례의 의미라는 말씀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내가 그렇게 세례를 받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입니다.

 

세례는 무엇과 관계가 됩니까?

베드로전서 3:21절을 보겠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물로 세례 받는 의미는 물은 구원하는 표라고 말씀합니다.

세례 받는 것과 구원 받는 것과 관계가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하는 것은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어 버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함께 살아나는 것을 예표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의 더러운 것은 씻어 질 수도 없고 또 죽을 때 까지 점점 더 더러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양심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율법적으로 선한 것을 선한 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선한 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여 가지고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이것을 찾게 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와 연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골로새서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 세례 받는 것이 그냥 세례만 받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례 받을 때는 어떻게 받았는가 보겠습니다.

 

마가복음16:16절을 보겠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러므로 세례는 믿는 것과 연관이 되고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믿음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이고 또한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믿음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없이 그냥 물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 물 세례는 받아도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마가복음에서 말씀하는 세례는 그런 물 세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은 무엇과 관계됩니까?

사도행전 2:38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서 얻어지는 성령의 역사가 곧 세례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성령세례는 반드시 죄 사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죄 사함을 모르면 그는 아직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속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 사함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은 성도만이 성령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를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로 죄 사함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만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을 수 있는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 가지고 받게 되는 성령을 성령세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받는 성령의 역사는 성령세례가 아닙니다.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죄 사함을 받는 역사를 통해서 얻어 지는 것이라야만 성령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을 때는 반드시 믿기부터 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믿지도 않고 세례 받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것과 세례 받는 것은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8:12절을 보겠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듣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죄를 씻어 주고 우리를 구원할 자라는 것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에 대해서 전도함을 듣고 그것을 믿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믿는 것과 세례 받는 것은 항상 연관 되어 있습니다.

육적으로 세례 받는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것을 이것을 받아들이고 받아 들였다는 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세례 받을 때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세례 받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것을 믿는 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이 성령세례는 받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물세례는 하나의 표지만 성령세례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령세례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받아야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그럼 방언을 못 받은 사람은 지옥 간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떤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마치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은사와 성령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서 아무리 좋은 은사가 나타난다 해도 그것이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표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하는 그것을 마치 성령세례를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구원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중적으로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서 방언이 동시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이 성령세례는 아닙니다. 모 교단에서는 이 방언이 마치 성령세례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억지로 방언을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이 방언이 나오니까 방언 받는 것이 성령세례라고 착각하는데 성령세례는 오직 구속사를 말씀합니다. 구속사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고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그때 까지 제자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못 받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못 받은 이유가 무엇 입니까?

 

구속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또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믿지 못 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믿지를 못하고 있었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도 못 했습니다.

 

마가복음 16:13절을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증거 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후에 보고 믿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으로 보고 믿은 것이지 성령의 감동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까? 그것을 보고는 믿었지만 그것은 실제 본 것이고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내가 함께 장사 지내고 내가 함께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전체적으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 믿음은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에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진리를 알게 해 주시니까 그때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 받아들여지다가 후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 했다가 앞으로 받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후에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구속사를 완전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세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갈라디아서 3:27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천국에 갈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옷은 구원의 옷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옷을 입는 것같이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표현을 한 말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옷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깨끗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한 것이 우리 안에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더러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깨끗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것을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있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뼈를 취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때 하와는 아담과 같이 아주 깨끗한 존재였습니다. 죄가 없고 깨끗했기 때문에 에덴에서 아담과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은 마치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내 육체는 더러운데 이것을 가지고는 천국에서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된 영이 하와입니다.

내 안에 새로운 하와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아담의 뼈에서 하와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탄생이 된 하와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어려운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로 내가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에게서 하아와 탄생이 된 것같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 것입니다.

 

한번은 아담으로부터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고 말 했습니다. 하와라는 존재가 새로 탄생이 되었지만 그것은 아담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새로운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새로운 피조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몸입니다.

내 육체가 한 몸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그 영이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와가 아담일 수밖에 없는 것같이 우리 속에 새롭게 탄생이 된 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옷 입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새롭게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지 않았으면 하와는 아담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탄생시키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탄생된 하와는 아담과 똑같은 존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다릅니까?

똑같은 존재로 탄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고 옷 입는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이고 그 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담으로 만든 하와가 에덴에서 산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께서 계시는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것 같이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한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이런 영의 신비로운 일을 이해하고 깨닫는 다는 것은 택해진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아담에서 하와가 탄생이 된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영이 새롭게 탄생이 되는 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사실 이런 성령세례의 의미를 모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하며 그것은 구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들입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넬료의 생애 가운데 성령세례가 나옵니다. 고넬료가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전해줍니다.

 

고넬료가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천사가 내려 와서 기도 응답을 합니다. 고넬료와 천사가 대화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가 내려와서 대화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받았다고 하겠습니까?

 

사도행전10:4절을 보겠습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천사가 직접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런 정도가 된다면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세례가 아닙니다. 응답을 많이 받고 여러 가지 체험을 많이 할지라도 그것은 성령세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고넬료가 천사의 응답을 받고 베드로를 청해 왔습니다.

베드로를 청해서 들은 말씀은 사도행전10:42-43절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10:42-43절에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0:4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바로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통하여 죄 사함 받는 다는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자들에게 내려왔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1:15-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고넬료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이 죄 사함 받는다는 말씀을 증거 하니까 고넬료와 그 가정이 듣고 믿으니까 말씀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죄 사함 받는 말씀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말씀을 전할 때 죄 사함을 받는 말씀을 듣고 그 사람들이 믿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는데 그렇게 성령이 임한 것을 가지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고 죄 사함 받는 것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고넬료가 언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 기도 응답 받을 때가 아니고 말씀을 믿을 때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두 가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는 천사가 내려와서 응답받는 기도의 응답 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믿어서 성령 받은 것입니다.

 

어떤 것이 성령세례입니까?

기도의 응답은 성령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믿을 때 받아 지는 성령의 역사 믿어지는 역사가 성령세례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언 받는 것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다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구속사를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방언을 합니다.

 

이런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으면서 방언을 안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으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을 때 일어나는 외적 역사를 보고 방언 받는 것이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하는 모든 것은 외적인 역사지 성령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안 받아도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구속사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데 구속사를 받아들이기 전에도 집회나 예배 참석을 통해서 방언을 받습니다.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성령세례만 일어날 수도 있고 성령세례 없이 방언과 환상과 예언과 그런 은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어떤 사람입니까? 경건하고 기도가 응답된 사람입니다. 기도 응답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넬료는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경건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왜 오라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1:13-14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기도 응답 받을 때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을 받을 때는 구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구원 얻을 말씀을 베드로를 청해서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은사냐 성령세례냐 하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고넬료와 같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이 구원을 못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못 받은 상태에 있는 고넬료를 구원 받게 하려면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낸 것입니다.

 

고넬료를 하나님께서 칭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는 이 사람에게 베드로를 부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10:1-5절을 보겠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어서 응답하셨고 고넬료를 인정하셨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구제를 하고 기도한 것이 상달할 만큼 철저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를 불러서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까?

이 사람은 이런 은사와 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구원받지 못 했습니다.

구원 받지 못했기 때문에 1114절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와서 네 온 집에 구원 얻을 말씀을 들으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구원 얻을 말씀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것을 천사가 전달해 주었습니다.

 

네 집에 구원 얻을 말씀을...

구원은 기도하다가 응답 받고 환상을 보고 이런 체험으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구원 얻을 말씀을 들어야 얻어 집니다. 아무 말씀이나 듣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을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반드시 구원 얻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안다 할지라도 구원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 얻을 말씀은 세례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곧 구원 얻을 말씀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이 구원 얻을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가서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사도행전 10:43절을 보겠습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이것이 구원 얻을 말씀입니다.

베드로를 청해서 구원 얻을 말씀을 들으라고 했는데 구원 얻을 말씀은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이 구원 얻을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때 받는 성령을 가르쳐서 성령세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착각 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은사를 받을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믿어져야만 마태복음 7장에 나타나는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나타내고 많은 은사를 행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 얻을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이전 상황과 이후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이전 상황은 구원을 얻지 못한 상태고 이후 상황은 구원 얻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의 겉모습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구원 얻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을 베드로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언 하는 것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유업을 줄 수 있는 아들에게만 사장이 일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원에게도 같이 일을 시킵니다. 아들과 종의 차이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 믿음은 구원 받을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원 받을 믿음은 100%를 믿는 것입니다 100%를 믿는 다는 것은 여러분이 만약 돈 10억이 있는데 99%만 믿고 은행에 갖다 맡길 수 있습니까? 100% 믿어야 은행에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99%를 믿는 것은 은행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려면 100% 믿어야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된다면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받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을 100%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때 그 사람에게는 성령세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 받은 것과 성령세례 받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응답 받는 것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넬료의 가정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넬료 하면 101절부터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경건하고 응답 받은 사람이라서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왜 구원 받지 못했느냐면 1043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 받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죄 사함 받는 것을 모르면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경건하게 살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구제하고 경건하게 하고 깨끗하게 살면 구원 받을 것이라 생각 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구원 받지 못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죄 사함 준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가 와야 그 가정이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베드로를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계실 때는 못 받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절에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승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성령세례를 못 받고 하늘로 올라가시려고 준비할 때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으리라 하시고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고 올라 가셨습니다.

 

올라가신 날은 성령 세례를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 살아 계실 때 성령세례를 못 받았지만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치고 능력을 행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령세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성령세례는 오직 구속사를 받아들일 때 임합니다.

사도행전 10:4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 받는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할까요? 찬송을 부르고 있을까요?

가만히 베드로를 쳐다보면서 그 말씀이 맞으면 아멘! 하는 것입니다. 말씀 듣다가 그것이 맞으니까 아멘! 하는데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지니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세례는 기도 하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들으면서 믿어지면 받습니다. 성령세례는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세례는 기도도 하지 않았고 죄를 자백하지도 않았고 그냥 앉아서 말씀만 들었습니다. 말씀만 듣다가 아멘! 만 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성령세례 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고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령세례 받았다고 성경에 기록 되었습니다. 은사 받는 것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성령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말씀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는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은 어떻게 임재 합니까?

 

이 성령은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말씀합니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병도 고치고 귀신 쫒아 내고 한 것은 성령이 속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면 보혜사를 보내서 너희 속에 성령이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전에는 성령이 속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속에 없었다면 그럼 그 전에 나타난 역사는 무엇입니까?

 

은사입니다.

지금 성령세례는 내적 성령 역사며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외적 성령 역사입니다 외적 성령 역사를 이해 하셔야 합니다. 사실은 은사라 해야 맞습니다.

 

고넬료가 있었고 천사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지금 응답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밖에서 도와 준 것입니다. 그 모습을 가지고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 착각 합니다 성령세례는 따로 떨어져서 응답만 해주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내 속에 와서 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속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보혜사가 하나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보혜사가 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이기 때문에 먼저 보혜사는 누구 입니까? 먼저 보혜사는 예수님 이십니다.

 

요한일서 2:1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대언자에 3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성경 밑에 혹 보혜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언자라는 말은 보혜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대언자는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에게 보혜사는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에게 보혜사가 있는데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 말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보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몸으로 구원을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또 하나는 몸으로 구속을 이룬 것을 전도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몸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전도로 나타냅니다.

성령도 같은 보혜사이기 때문에 성령도 역시 구속에 대한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을 전도로 또 나타내야 합니다. 똑같이 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26절을 보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을 예수님이 계실 때는 믿지를 못 했습니다. 그런데 보혜사가 오셔서 그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그것을 전도로 나타내셨습니다.

성령도 오시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우리 속에 전도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를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성령 보혜사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믿어지도록 하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보혜사가 오셔서 가르치십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가르치는데 무엇을 가르치시느냐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보혜사도 오시면 그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있습니다.

같이 있어도 말씀을 듣고 있지만 지금은 보혜사가 그 속에 오지 않았습니다. 보혜사가 오지 않고 예수님께서 승천 하실 때 너희들이 기다리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보혜사가 오셔서 우리 속에 와서 함께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세례는 다른 것이 아니고 구속사입니다.

성령세례는 구속사를 100%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속사를 다 받아 들였는데도 방언도 받고 그런 것을 해야만 성령세례라고 하면서 와서 성령세례를 받으라 믿기만 해서 되냐고 은사 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말 합니다.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100번을 받아도 지옥갈 수 있습니다.

구속사를 받아 들여야 구원 받는 것이지 외적으로 아무리 받아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몸은 영과 육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성령이 몸에 와서 역사를 합니다. 몸에 와서 역사를 하면 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에 와서 성령이 역사하고 떠나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생각하게도 하고 하는데 이런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성령 세례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특히 모 교단의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집회를 하면서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말 합니다. 물론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당연히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에도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오늘 이 시간에도 또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자주 받는 것입니까?

물세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물세례를 자주 받습니까? 아니 집회를 할 때마다 세례를 받습니까? 아마 그렇게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그 교회를 보고 이단이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세례는 단 한번 받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안다면 당연히 단 한번 받는 것으로 모두가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성령 세례를 자기들이 집회를 할 때 마다 받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령 세례를 또 받겠다고 아멘! 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는 아무리 많이 나타난다 해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은사를 행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과 은사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재함으로 해서 새롭게 영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탄생하는 것 이것을 가르쳐서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속에 탄생되는 것은 왔다 갔다 하지를 않습니다. 성령은 한번 주어지면 계속 있습니다.

 

영원히 함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게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을 가르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났다는 것을 말씀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는 로마서 6:4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새로 나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에 와서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로 세례 받는 것은 우리 몸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구원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성령세례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게 주의 영이 새롭게 탄생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탄생된 영이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만 주어집니까?

구속의 말씀으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새롭게 탄생되는 영은 말씀 없이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으로만 탄생되는 것입니다 구속의 말씀을 들어서 그 말씀이 믿어질 때에 새로운 영이 탄생되어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죽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5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속에 성령이 새롭게 탄생 되는 것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었다 살아나는 그 자체를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안 믿는 상태에서도 성령은 역사를 합니다. 외적으로 은사가 나타납니다.

방언이 터져 나온다든가 기도를 한다든가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방언도 육의 입술을 지배하면 진리의 성령이 없어도 방언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언도 할 수 있습니다. 육에만 와서 성령이 역사를 해도 방언도 할 수 있고 예언도 할 수 있고 일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와서 역사를 한다고 해서 성령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와서 나를 감동시키고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성령과 내가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이라는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영접이 아닙니다.

연애를 하는 것은 손을 잡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는 것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서로가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느끼지만 그냥 헤어지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다릅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연애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힘도 주고 능력도 주고 이렇게 같이 동행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같이 사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시면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속에 있다는 말씀은 사도바울이 겉은 날마다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과 육체는 별개입니다.

성령이 육을 지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성령과 우리 육이 같은 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내적 성령의 역사와 외적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내적 성령의 역사는 구원과 관계있고 외적 성령의 역사는 구원과는 관계가 없이 사역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내적 성령을 받은 사람이 외적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일을 못 합니다.

일하는 것은 내적 성령의 역사가 없어도 외적 성령의 역사가 강하면 일은 잘 합니다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것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 성령의 역사와 외적 성령의 역사가 동시에 있을 때 그 사람에게는 많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구원 받는 내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증인이라는 것은 내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아야만 구원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했을 지라도 외적인 성령의 역사로 일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까지 들어오게 합니다. 병 고치며 방언을 하며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은 구원 받지 못 합니다.

 

구원 받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역사와 내적인 역사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혼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적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지만 외적으로는 잘 안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역사가 적은 사람은 외적 역사가 크게 나타나는 사람보다 일을 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지냅니다.

성령의 외적 역사가 강한 사람은 저 사람 구원 못 받아 그렇게 지적 합니다 가서 기도 하다가 체험을 해야 구원 받는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런 것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방언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성령세례 받은 사람들이 거기서 머물러 버리면 안 됩니다. 외적으로 강한 역사가 나타나야만 일하는데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은사는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무기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주어집니다.

 

구원도 못 받았는데 왜 외적인 성령의 역사를 많이 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은사를 또 어떤 사람은 저런 은사를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은사에 따라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돈이 많은 사람이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구원 받는 것은 오직 십자가를 100% 받아들일 때 구원이 주어집니다.

아들이 되려면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합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100%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라도 사람들 심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한 사람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저 사람 하는 것을 보니까 나도 갖고 싶은 것입니다 복음이 없을지라도 십자가를 통한 100% 구속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나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은사가 참 문제가 됩니다.

물론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 은사가 역설적으로 진리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은사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고 자기가 기도를 하면 은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01절에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능력 행함을 누가복음 101절에 70인이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까?

 

요한복음 7:38-39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영광 받기 전에는 아직 성령이 없었습니다.

성령이 없었어도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성령이 아직 저희 속에 없다는 말씀은 바로 내적인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외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외적으로 와서 우리를 도와서 쫓아낸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해준 것이지만 와서 우리 옆에서 해준 것이지 우리 속에서 산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그 영광은 십자가 사건을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2:20-23절을 보겠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니까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합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십자가 사건 이전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 이후입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방인들이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찾아오니까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2:2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죽어서 많은 열매가 맺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영광을 얻을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저희에게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 진리의 성령이 역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역사했던 것은 외적 성령 역사로 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는 믿어야만 주어지고 일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사원은 일을 아무리 잘해도 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일하고 월급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은사가 많으면 구원은 못 받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일한 대가로 그가 풍족해 집니다. 사원의 월급입니다 자기 기술이 좋으면 월급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 아닐지라도 일을 시키면 그것에 대한 보수는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가진 사람이 일하면 풍족해 집니다. 그러나 풍족해 진 것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세례입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이 말씀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앞으로 나타 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내적인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계실 때도 외적인 성령의 역사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 내적인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에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 했습니다. 성령세례는 구원과 관계있고 내적 역사이며 능력을 행하고 병 고치는 역사는 외적 역사요 은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구원도 받아야 하지만 은사도 있어야 합니다.

은사를 있어야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능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이런 외적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고 또 사람들의 생각으로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은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오순절 임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완전하게 믿어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셔야지 내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복음을 들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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