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1강 합당치 못한 일

윤주만목사 2017. 9. 14. 06:45


로마서2:1절을 보겠습니다. (240)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순리를 따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치 못한 일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두어서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순리를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순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역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을 하면서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역리를 따르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얼마나 쉽게 종교가 되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셨지만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나서 아주 빨리 종교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그랬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불의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순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율법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어느 누구도 진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형에 해당이 됩니다.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사형을 당하지 않으려고 정말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기 위해서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렇게 지킨 그 율법이 도리어 이 같은 일을 행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보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일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실제로는 교회에서 이 같은 일을 다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일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다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십계명을 하나씩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못 지키면 죽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기 때문에 그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교회 안에서 온갖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사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정말 복음이 내 안에 계시가 되기까지는 우상을 섬긴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가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까 전부 우상을 섬겼습니다. 저도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도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을 옳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심을 내고 있고 다른 사람도 이 같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또 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옳다고 칭찬까지 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들은 예전에 우리가 복음을 듣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들이 성도라고 하고 있고 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이 같은 일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지만 아니 할 필요성도 느끼지를 않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짐승이라는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합니까?

우상을 섬기면서도 사람에 이성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해야 하는 마땅한 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하지 않지만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것이 성도가 해야 하는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는 다 복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에게 복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4중 복음, 5중 복음이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복음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성경을 보고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복음이 있습니까? 이미 우리나라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파가 될 때부터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상태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 복음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장로교가 복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감리교가 복음이 있습니까? 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라도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복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복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교인들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을 도리어 판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판단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무엇에 대한 판단입니까? 불의를 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의가 문자적으로 보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알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보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부모를 잘 공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이성에 따르는 판단입니다 자기는 이만큼을 하는데 어느 사람은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적으로 보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15절을 보겠습니다. (158)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여자를 주님께로 데려와서 율법의 판단 대로 돌로 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여자에게 하시는가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끌고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보고 이렇게 판단을 하고 율법에 있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생각할 때 죄가 없는 자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이 여자를 남겨두고 다 물러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가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남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그 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율법을 보고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육체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내 이성에 도저히 용납이 안 되더라도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이성입니다

어느 사람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1장에서 말씀을 한 그대로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은 저 역시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육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육체와 영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육체입니다

동성연애도 역시 육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판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님 앞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끌고 온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남의 육체를 판단하게 되고 그것이 나를 다시 정죄해서 사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동성연애는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동성연애에 대해서 심하게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입니다

이 일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스라엘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이방의 교회도 성경을 보니까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그들이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알았으면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다고 하는 그들이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판단을 하는 그가 교회 안에서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판단을 했으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판단하는 그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간음을 하지 않을지 몰라도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육적으로 간음하는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온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 그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해서 판단하는 그것으로 정죄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간음을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로 판단을 해서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한 그가 영적으로 간음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판단하는 그것을 안 하려고 율법을 지킨 그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영적으로는 간음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율법에 따라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까? 그 율법이 그렇게 판단하는 그 사람을 정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정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판단하는 것으로 정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정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2:4절을 보겠습니다. (372)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판단을 합니다.

누구는 율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율법을 잘 못 지키고 있습니다. 왜 판단을 하는가 하면 구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십일조를 하는 사람 중에서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리 아니라 해도 율법을 보고 그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외모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과 이성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외모는 분명히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도 있고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순간에 그것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겉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은 보이지도 않고 이성으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판단을 하지 못 합니다 물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서로 하는 말로서 그 믿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한 성령 안에서입니다.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그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사람의 행위를 보고 누구는 아름답다 하고 누구는 더럽다고 하는 그 자체가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이 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악한 생각입니다.

왜 악한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율법을 폐하셨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악한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하고 있는 그 행위를 이제 처음 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되어 있고 또 누군가 새로운 행위를 해서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옳게 생각이 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거의 문자적으로는 육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왜 그렇게 쉽게 율법주의에 빠지고 그것을 판단하는가 하면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판단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셔도 판단을 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에게 정죄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누구는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는 분복을 가지고 태어났고 누구는 가난한 사람으로 살게 태어났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노력에 따라 극복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고난 분복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마도 자기에게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그것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는데 또 다시 그 일을 해본 사람만이 제가 드리는 말씀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네가 판단하는 그것을 네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상을 숭배한다고 판단하는 그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 시대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십계명을 보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고 있고 세상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판단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의 일로 판단하는 그가 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육으로 판단을 받는 그보다 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더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에서는 같은 일일지 몰라도 형벌을 받는 것에서는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합당치 못한 일입니다

그것을 육으로 하는 사람이 악합니까? 영으로 하는 사람이 악합니까? 사실 이 시대 교인들은 육으로 하는 것은 판단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을 보고 남을 판단하고 있는 그것이 영으로 자기를 정죄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육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고 가셨습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판단을 받을 수 없고 설령 판단을 받는다 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그가 영적으로 같은 일을 해서 정죄를 받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그것이 영적으로 자기를 스스로 정죄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정죄를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판단하는 그것을 그가 영적으로 그대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간음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음을 한 사람을 보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체적으로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한 그가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간음을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있는 그 사람이 실상은 영적으로는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는 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간음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청년과 같이 어려서부터 다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지키면서 살아온 그는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율법을 함께 두 남편을 함께 섬기면서 간음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판단하는 그것이 영적으로 그가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보았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을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그것이 두 남편을 섬기는 간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청년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는데 실상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지만 부자청년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육체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판단하고 있는 그 사람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면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하고 있는 그 자체가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폐하여 졌으면 판단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 간음을 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진 성도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자체가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 두 남편을 섬기는 간음을 하는 것이고 그 판단하는 것이 네가 너를 정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저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은 이 정도 말씀을 드리면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으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는 그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절대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고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영적으로 우리가 다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을 함께 지켜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보고 판단하는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2:2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런 일입니다

어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지극히 적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그 불의로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를 해서 그가 사망에 이르고 있고 왜 사망에 이르는가 하면 정죄를 하는 그가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문자적으로 보고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체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하고 또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비유와 은유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이것을 안다는 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해서 사도 바울이 네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했습니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들이 살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육체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이 판단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성경은 우리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우리 영이 살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도적질한 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만 그가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모르면 모든 사람이 다 종교에 빠져 이런 일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알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압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지만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9:4절을 보겠습니다. (1040)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선지자들이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을 하는 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가 무엇입니까?

공평한 도리를 공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하는 도리가 공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절대로 공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공의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가 없습니다.

공의대로 소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것에 있어서 공평해야 공의대로 소송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공평하게 소송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아도 각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갔던 모든 것은 다 달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대도 다릅니다.

환경도 다릅니다. 그리고 분복도 다릅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도 다릅니다. 모든 것이 다 다른 상태에서 공의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의대로 소송을 하려면 이 모든 조건이 같아야 공의대로 소송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 공의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진리대로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공의가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는 것이 공의입니다 이 공의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미칠 때 진리대로 판결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공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공의를 모르다보니까 하나님의 판단이 어떻게 진리대로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공의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의가 공의입니다 그러니까 동일하게 미치는 공평한 도리가 공의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가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대로 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반드시 진리대로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리의 성경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세상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왜 판단합니까?

율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쳐 주고 있고 무엇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고 믿지 않으면 그는 죄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죄입니까?

믿지 않고 있는 죄가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체가 믿지를 않기 때문에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안다는 말씀은 그가 믿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판단합니다.

누가 판단을 합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죄를 짓고 있는 그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판단을 받는가를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죄인입니까?

율법은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죄인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을 왜 하고 있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를 모르기 때문에 남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대로 판단이 됩니다.

그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죄를 묻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을 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를 정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대로 판결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진리대로 판결을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판결을 해야 진리대로 판결을 하는 것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 진리대로 판결하는 것입니다

누가 믿지 않고 있는가 하면 남을 판단하면서 그 판단하는 것으로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판단을 하십니다.

그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면서도 복음을 알지 못해서 믿지 않는 사람이 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위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3절을 보겠습니다. (240)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이런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어느 일부의 사람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나쁜 것은 거의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꾸로 보다보니까 성경을 전혀 다르게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풀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이 일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을 다시 보고 내가 혹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장에서 모든 불의를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판단을 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육적으로 행하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이 있다 보면 실제 육적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전히 누구의 기준입니까?

율법주의자의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성적인 기준으로 추악하고, 탐욕이 있고, 시기가 있고, 악독이 있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고, 교만하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 이러한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살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대부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분쟁이 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만 겉으로 표출이 되지 않을 뿐이지 사람의 이성에는 다 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 자 뿐입니까?

솔직히 복음을 가진 우리도 이성적으로는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서 믿고 있다 해도 역시 육체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설령 판단을 하다가도 바로 공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다가도 오직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계시가 되기까지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기 전까지는 지금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역시 예전에는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같은 일을 하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같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으로 내어 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왜 모릅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지만 그러나 자기는 영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는 눈이 없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를 않아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러니까 복음을 알아서 듣고 믿지 않는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33절을 보겠습니다. (40)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화 있을찐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7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보면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외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은 남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남이 안 지키면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의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판단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이미 교회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자기들이 이성에 반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이 마태복음23장에서 하고 있는 말씀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하고 있는 말씀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은 판단을 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판단합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외식을 했는가 하면 자기들과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실제 복음서에서 보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손을 씻지 않고 먹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또 제자들이 시장해서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외식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판단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왔습니까?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것으로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하나도 자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역시 이방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율법의 모양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하는 그것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지만 그 판단하는 순간에 영적으로 너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경고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알고 있지 않느냐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강조를 해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고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불의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이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강조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강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 같은 일을 행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으니까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지도 말고 영적인 의미를 바로 알고 같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은 복음이 안 보이니까 율법을 보고 있고 그것으로 판단을 하면서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영적으로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는 살인한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영적으로 영혼을 살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았으면 내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살인한 사람을 보고 판단을 하고 있는 그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을 지키면서 외식을 하고 있고 그 외식하는 것으로 남을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4절을 보겠습니다. (240)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그대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자 하셔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회개를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그것이 잘하는 것인 줄로 알고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는 회개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판단하는 그 사람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 죄를 진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그 죄를 진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십일조라는 율법을 교회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아마 이해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서 믿고 있는 성도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는 거꾸로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은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율법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자기 개인의 일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그 설교를 듣는 사람이 자기가 주일을 개인적인 이유로 지키지 못했다고 하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주일은 율법이기 때문에 회개할 가치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지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지고 가셨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죄라고 해도 우리가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판단하는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판단했으니까 회개를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까?

예전에 70년 대 에는 머리를 기르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통행금지가 있어서 자정이 넘어서 다니면 즉결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다 폐하여 졌습니다. 지금 누가 머리를 기른다고 처벌을 한다고 하면 아마도 그 사람이 도리어 처벌을 받게 되어 있고 자정이 넘어서 밤을 새면서 거리를 다녀도 어느 누구도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거리를 배회하면서 다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판단을 했다면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머리를 기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밤을 새워 가면서 거리를 배회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까? 누가 생각해도 그것을 판단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판단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판단하고 있고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당연히 그것을 판단한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기르고 안 기르고는 이제 어느 누구도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2:15절을 보겠습니다. (312)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싸움은 제가 글을 쓰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으면서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면서 실상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주일 율법입니다 그리고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이 다 율법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70년대 장발을 단속했던 것이 폐하여졌다는 것과 같고 또 통행금지가 폐하여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일부가 폐하여졌지만 성경은 율법 전체가 폐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자들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들이 제사법과 시민법이 폐하여 졌고 도덕법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율법에서 제사법과 시민법만 폐하고 도덕법은 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 폐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폐하여 진 법도 있고 새로 생기는 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주일이라는 날 율법입니다 절기 율법입니다 절기에는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율법입니다 그리고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주일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한 날에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군가 자기 볼 일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 어려운 일이 있어서 십일조를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물론 율법을 지키는 그 사람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이러한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판단한 그 사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정죄를 하면서 회개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소자들은 복음을 모르니까 목사들이 회개를 하라고 하면 자기들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무지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영의 일입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에 대한 문제가 있는 성경을 너무 쉽게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죄를 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회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25절을 보겠습니다. (34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회개입니다

무엇을 회개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합니까? 아직까지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로마서에서 판단하는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함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만 하느라고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는 것을 마치 회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늘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그들이 실상은 누가 회개를 해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회개를 해야 합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회개하라고 하는 그들이 회개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케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상실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회개를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는 자를 기다리시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가지고 다툼을 하다가 주님으로부터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복음을 거역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복음을 거역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복음의 깊은 비밀을 알지 못하면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을 하는 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하는 것이 스스로를 정죄에 빠뜨려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고 악을 행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진멸을 한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넘치셔서 그런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도리어 자기들이 판단하는 그 사람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하면서 복음에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거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판단이 자기를 정죄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을 회개케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보여 주셨습니까? 욥기를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욥의 회개의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죄를 짓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오래 참으셔서 진리로 인도를 하셔서 회개케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에서 진리를 아는 성도만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세상 이성에 따르는 죄를 진 것을 가지고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를 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회개하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죄를 진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다수입니다 아니 이 시대를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회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6절을 보겠습니다. (337)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이 누구였습니까?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자라는 것을 디모데전서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해서 그렇게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뼈 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이유가 바로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에는 옳습니다.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더욱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남을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고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율법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진리로 인도하시고 회개케 하고 있지만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멸시합니까?

계속 율법을 지키면서 멸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율법 외에 새로운 한 의를 주셨지만 그 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생각하느냐고 일깨워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긍휼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깨달아 질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것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것을 자기가 긍휼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율법주의에서 회개케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긍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케 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모르고 점점 더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 누군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그것을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알면 절대로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이 시대 교인들이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면서도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시편10:3절을 보겠습니다. (809)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입니다

누가 감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악인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니까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율법의 의로 자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를 얼마나 자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멸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의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의를 믿지를 않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 의를 나타내고 있다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그 율법을 지키면서도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악인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악인과 의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있는가 하면 악인이 더 많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간증하면서 자랑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악인들을 오래 참으시면서 회개케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회개를 하기 보다는 점점 더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율법주의에서 회개를 할 수 있게 인도를 해 주시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멸시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