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4강 은혜와 평강입니다

윤주만목사 2017. 9. 11. 17:53

로마서1:8절을 보겠습니다. (239)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은혜와 평강입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온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위로 보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말씀의 기초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기초가 이사야 96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두고 있는 성도는 로마서에서 아니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같이 기록을 했다 해도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이라고 했다 해도 그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오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보시면 됩니다. 특히 내세의 일과 하나님과 그 외에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은 성경에서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가를 알고 그것을 기초로 두고서 성경을 보면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마치 서로 다른 위를 가지신 두 분이 은혜와 평강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을 한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으면 내가 받는 은혜와 평강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무엇인가 찜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성경의 감동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믿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자 하는 인물이 아니라 믿어야 하고 믿는 성도에게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주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강을 주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홀로 한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에 따라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입니다

그것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아들이 있는데 그가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누가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만 주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해 주셨지만 그 말씀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는 그들에게 그런 말씀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주님이 자기들에게 오시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이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썼더라도 아니 아들이라고 말씀을 했더라도 이사야에서 한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위의 두 분에게서 은혜와 평강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 역시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위의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로마서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했어도 그것은 이사야의 말씀대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교회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으니까 그들이 성경을 보고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다른 신을 만들어서 거의 1700년 동안 믿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해를 해야 하겠지만 영의 일을 이해하려고 하다가는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는 믿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가 하면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믿음에 대해서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고 또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나는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아브라함을 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까?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를 그의 자손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의 자손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음을 모르고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3:2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로는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배제가 되어 있는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너희 믿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이 시대와 같이 종교적인 활동을 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것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이 시대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행위를 하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으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되어서 믿었던 것과 같이 지금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듣고 믿음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안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국어를 모릅니까?

아니 글이 이해가 안 됩니까? 국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어떠한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하면 한 가지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믿음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다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가 믿는다고 해도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할 때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든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을 해도 성경은 그들에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 행위가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마귀의 자식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죽은 자입니다 그저 종교적으로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율법을 버리는 믿음이 그에게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말씀은 성령으로 난 영이 그의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누구의 믿음을 따르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켰고 이방의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믿음을 따를 것인가는 여러분의 자유지만 이스라엘의 믿음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직 믿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은 율법의 행위가 포함이 되지 않은 믿음 그 자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에게 없다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9절을 보겠습니다. (377)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너희 믿음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믿음의 결국 곧 영혼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영혼 구원을 받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반드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믿음 하나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던 그들이 아니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한 그들을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저주를 하셨습니다.

 

왜 저주를 하셨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안 믿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렇고 이방인이 보아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안 믿는다는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제발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제사법과 시민법만 율법입니까? 성경은 이 시대 도덕법이라고 하는 십계명도 율법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율법이 아닙니까?

야고보서에서는 율법을 범한 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나누지 않고 있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나누어서 그것을 신학이라는 곳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솔직히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제사법과 시민법에 속한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사법 시민법이 폐하여졌고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는 그들이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 안에서 축복을 받는 자와 저주를 받는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교회 안에는 천국의 축복을 받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가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믿음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야고보서 강해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믿는다고 해서 다 영혼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이 두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버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율법의 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를 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너희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너희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자기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 사람입니까?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마태복음2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저주를 받을 자들아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은 믿는다고 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실상은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누가 많다고 생각합니까? 양은 지극히 적고 염소는 바다 모래 같이 많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교회 안에서는 축복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축복과 저주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 해당이 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교회에서는 축복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짓을 해도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안 지킬 수 있습니까?

나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말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이미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고 그 날에 11시에 종교적인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떻게 잘 믿을 수 있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그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누가 십일조를 하고, 누가 주일이라는 날을 지켰고, 누가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리고 누가 오늘날과 같은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까?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을 계속해서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우리 성도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73:28절을 보겠습니다. (85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믿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대상을 믿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대상을 믿을 때는 그의 행사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교회에서 종교적인 생활을 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그런 것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전파가 되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전파가 된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이 인간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것을 제가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번역이 되었고 비록 다른 복음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성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우리에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지켰고 또 종교의 형식에 맞추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했고 더구나 성경에도 없는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을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율법입니다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은 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수고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씀을 드려서 그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믿었던 기독교라는 종교에 열심을 내서 그것을 전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종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313년 이후로는 기독교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종교가 유럽에서 전파가 되었다가 미국과 캐나다의 신대륙을 유럽인들이 점령하고 난 이후에 남미와 그리고 아시아로 전파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역시 그들과 같은 열심으로 자기들의 종교를 전하느라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습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주의 모든 행사를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주의 모든 행사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영혼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각각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기독교를 전하고 있고, 천주교를 전하고 있고, 통일교를 전하고 있고, 여호와증인을 전하고 있고, 안식일 교회를 전하고 있고, 구원파를 전하고 있고, 다락방을 전하고 있고, 신천지를 전하고 있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전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그대로 따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를 받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전파됩니다.

그것은 주의 행사를 믿는 믿음이 전파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를 보면 자기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전파가 되었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종교적인 믿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결국에는 그것이 악한 일이 되어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행사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 이 믿음이 전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등 이런 교회는 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받은 직분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만든 교회를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9-10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을 찾아갈 기회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내가 그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전함으로써 성심껏 섬기고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기 때문에 늘 각처에 있는 교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한 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를 하면서 그 교회가 믿음에 굳세게 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종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기도와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하고 있는 기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나면 또 다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수고 했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곳에서는 완전하게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은 상태에서도 또 다른 지방으로 갔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은 목사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굳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미디어가 많이 발달을 해서 굳이 다른 지방으로 갈 필요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삼국시대 이전입니다

사실 삼국 시대 이전의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사람의 말로 전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과 같이 인쇄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책도 일일이 다 써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종이의 질이 나쁘다 보니까 성경을 기록해서 그것을 다 가지고 다닌다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디어가 없습니다.

그저 사람의 말입니다 조금 나은 것이 있다면 그래도 성경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러한 때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사실 성경에서 다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복음을 전해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믿음을 갖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도 믿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까?

이제 교회에 나와서 설교 몇 편을 들었다고 그 사람이 믿음이 있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불과 4-5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때 전했던 복음이 얼마나 부족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 복음을 알고 있다고 했던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복음을 다 깨닫고 나서 이방에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믿음이 있다 할 정도로 복음을 들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나 왔지만 사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된 이방의 교회들은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한 것을 다 안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이방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방에 사도로 직분을 받아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전한 그곳을 위해서 늘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기도를 했는가 하면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이미 성경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는 교회도 없고 종교적인 율법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편합니다.

그 자유가 좋은 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쁜 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교회는 서로 경쟁을 하는 곳이 되었고 서로 자기의 세력을 키우는데 급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장 경제에서 마케팅을 잘하는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정체가 되고 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각기 자기들의 교회가 따로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름도 짓고, 자기들이 건물도 짓고 자기들끼리의 종교적인 모임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치 친목 단체가 되어서 그것을 오래 동안 유지를 하고 있고 그리고 모든 생활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교회가 가는 대로 그저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만 이렇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교회에 자기가 다시 찾아갈 수 있게 기도를 했고 그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서신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종교는 있어도 교회는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아들 복음 안에서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앞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그의 아들의 복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남겨 놓은 책들을 보아도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사실 우리가 기독교라는 교회사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을 지금 이 시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최소한 목사라고 한다면 내가 풀고 있는 이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절대로 전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성경을 풀어서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입니다 더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때에 복음을 들은 사도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사도 바울을 사도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환상의 목소리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을 하시고 자기 안에 이 복음이 계시가 됨으로 해서 자기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십니다.

내가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갈라디아서에서도 말씀을 보아서 알고 있지만 사도 바울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제 주님이 살아 계실 때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도리어 복음에 반대를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하고 있고 야고보는 주의 형제로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과 교제를 한 후에 이방에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그는 자기의 증인을 말할 때 베드로나 야고보를 말하지 않고 나의 증인이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18절을 보겠습니다. (15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저 역시도 인터넷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10여 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7년이 지나고 나서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인터넷으로 제가 감동을 받는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듣고 감동을 받았으면 자기가 들은 그 복음이 성경과 맞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감동을 받았으면 이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감동을 받았으면 저에게 물어오는 것이 목사냐는 것이고 또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느냐는 것을 묻습니다.

 

제가 안수를 안 받았을 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가 안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까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 안수를 받은 것이지 저는 지금도 목사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마음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가 먼저 되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를 증거 해 주는 것이 이 시대는 목사라는 직분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가 아무리 복음이 있다 해도 그저 한번 읽고 말지 그 복음을 더 이상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고 통화를 하는 사람마다 첫 마디가 목사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목사가 아니면 안 듣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그가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누가 증거를 해 주었습니까? 아무도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복음을 들을 때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증거 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사도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영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귀신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요구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허황됩니까?

바리새인들이 지금 예수님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 하니 네 증거가 참되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에 주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 소경이 되어 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주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셔도 그것이 참 되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참되지 않다고 합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은 주님께서 참된 말씀을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잡혀 왔으면 당연히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도리어 나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참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를 보고 있습니다. 그 종교에서 교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그대로 주장하면 참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증거 하실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증거를 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의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때가 거의 없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어느 때에 이스라엘이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습니까? 도리어 그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물어오는 것이 똑같습니다. 네가 참을 전하는지를 증거 하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참을 전한다고 증거를 한다 해도 거짓에 속해 있는, 율법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 말씀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증인이 누구십니까?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의 증거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증인이 되시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복음을 들으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사람에게서 증인을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성령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하지 않으면 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황당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시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육체의 속한 사람은 자기 육체로 증인을 삼으려 하고 있고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는 것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15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교제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사적인 교제가 많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저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서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교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왜 복음을 전했는가 하면 이방인들이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서 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보고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일에 자기 수고를 다 해야 합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어떻게 시간이 그렇게 많아서 일주일에 설교를 그렇게 많이 하고 있고 또 사람들을 만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일주일에 하루 강의를 하고 또 설교 두 편을 올리고 하는 것도 제게는 너무 버겁기만 합니다. 일주일에서 거의 4일은 꼬박 설교를 작성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꼬박 강의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그런 저런 글을 쓰고 성경을 보다보면 정말 시간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역시도 많은 시간을 성경을 보면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말씀을 계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다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는 이 복음을 성경에서 깨닫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까 여러 지방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정말 시간을 아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인간적인 교제를 할 시간도 없었고 자기가 있던 곳에서 복음이 어느 정도 전해지면 바로 떠나서 또 다른 지방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정말 이 복음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은 너무 시간이 많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종교 활동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1:11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심히 보고 싶어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인 아들을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기를 심히 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보고 싶어 했습니까?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기 위해서 심히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12장에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은사는 말씀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라고 하니까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그런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은사가 아니라 종교적인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은사는 모르고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고 그런 표적들을 보면서 마치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7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라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광야에서 목이 말랐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실 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시고 난 후에 이 물을 먹는 자는 목이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먹는 그런 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할 수 있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신령한 은사라는 말씀입니다


은사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여러 가지 은사가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은사는 그런 은사가 아니라 영생을 하는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는 신령한 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 은사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입니다

그것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은사를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려고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서 그들이 영생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이 은사를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은사를 너무 모르고 그저 겉으로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인 샤머니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그 은사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은사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은사라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은사가 아니라 실상은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행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꽤나 신령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생명을 얻습니다.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주님이 신령한 은사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은사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샤머니즘을 좇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나눠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빤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도 얻지 못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무엇 합니까?

 

성경은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려 고는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그것이 신령한 것이지 영생도 얻지 못하는 것을 받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있어 신령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이상한 행위들을 하면서 그것으로 표적을 삼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육적인 것이지 신령한 것이 아닙니다. 육과 영을 분별을 못하니까 무엇이 신령한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를 나눠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고도 이 은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로마에 가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면서 도리어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은사가 없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2:31절을 보겠습니다. (278)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로마서는 무슨 신령한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더욱 큰 은사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설교 말씀으로 올려 드렸습니다. 이 더욱 큰 은사가 무엇이라는 것은 아카데미 강의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을 말씀했습니다.

 

더욱 큰 은사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모든 것이 다 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입에 바른 말을 참 잘 합니다. 자기가 눈물을 흘려 가면서 그렇게 사랑을 고백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이미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이 지구는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또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모두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노아 시대에 이미 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았어야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습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나눠 주려고 하는 무슨 신령한 은사는 그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로마에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려 고는 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했다 해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해도 주님이 사랑하시지 않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큰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받아야 제일 좋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이 은사를 받기 위해서 사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은사를 받기 위해서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들을 망하게 하는 것을 받으려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은사라고 하는 것은 실상은 은사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령해야 합니다.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신령하지 않습니다. 물론 율법을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면 그것도 신령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신령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직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신령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알고 믿어서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해 주셔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이 신령한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베드로전서2:2절을 보겠습니다. (378)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령한 젖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신령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신령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이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이 거듭남에 대해서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듭나서 구원을 받는 그것이 신령한 것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은 신령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는 사람 중에서 매일 구원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기가 사는 동안에 이 구원에 대한 말씀만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구원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무엇에 대해서 기록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 듣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야 받을 수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오직 예수를 전하면 도리어 싫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지 나사로면 어떻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면 어떻고,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거듭남이라는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이 말씀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듭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거듭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두 번 낳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씨로 한번 낳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하늘로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 영의 비밀을 모르고 자기가 그저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나눠주려고 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신령한 젖을 나눠주려고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심히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신령한 것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령한 자라야 이 신령한 것을 나눠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 육체에 빠져 있습니다.

 

시편40:2절을 보겠습니다. (831)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말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이 성경을 깨닫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소경과 같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본다고 하지만 그 이성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웅덩이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도리어 구덩이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보았습니까?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고 있다고 하지만 소경이 되어서 구덩이에 빠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만 소경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왜 소경이라고 하셨는가 하면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소경이 되어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못 보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습니다.

 

소경이 달리 소경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소경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주의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뼛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보면 너무도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그렇게 율법주의가 되었는가 하면 그들의 지혜가 우리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태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신학의 기초를 어떻게 삼고 있는가 하면 도덕법이 살아 있다는 것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이방의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렇게 율법을 폐하라는 말씀이 많이 있어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그 웅덩이에서 우리 스스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성경을 자기 스스로 보면 100% 다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율법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에서 사람의 지혜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건져 주셨습니다.

거기서 끌어 올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려 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 모두는 다 거기에 빠져서 스스로는 절대 못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끌어내어서 견고케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둬서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서 견고케 해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신령한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전서1:8절을 보겠습니다. (263)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견고케 하십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책망하시는데 성령의 책망을 받지 않게 끝까지 견고케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책망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과는 거꾸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을 누가 악하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악한 일이고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런 말씀들이 보이지가 않는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책망합니다.

그러나 그 책망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서 그들을 견고케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서 그들을 견고케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율법과 복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신령한 은사를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 율법에서 건져 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신령한 은사를 나눠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