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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윤주만목사 2015. 7. 8. 14:10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갈라디아서5:13-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얼마 전에 우연히 교회사를 보았습니다.

90분짜리 두 개의 영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서 교회사에서 배웠지만 영상으로 보니까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기독교사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반 성도님들에게 이 교회사에 대한 영상을 보는 것은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내가 성경을 보는데 있어 도움을 얻을까 해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제 막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님들이 그 영상을 본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교회사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교회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사가 아닙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별로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신학교에서는 자세히 배웠지만 이 영상은 일반 교인들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게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별이 안 되는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교회사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교회사가 아닙니다.

그 영상에서 나오는 시작 부분 약 5분 정도를 빼고는 교회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교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성도라면 그것을 교회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5분 정도 교회사 어떻게 태동을 했고 또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파했는가 하는 정도만이 바른 것이고 나머지는 교인들이 미혹되기에 딱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시작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을 비판하는 쪽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더 많이 전하기 위해서 율법과 규례에 대한 것을 이방인들에게 너무 관대하게 전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자기의 실적을 위해서 아니 이방에 더 많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율법에 대해서 관대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기록을 한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사라고 하면서 시작부터 사도 바울의 사상을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성공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으로 나갔습니다.

 

율법에 관대했습니까?

그것은 그 영상을 제작을 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 시대는 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영상들이 얼마나 믿음을 갖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 만들어지고 있는 영상을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 영상을 만들면서 저명한 신학자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이 영상을 보고 정말 교회사가 이렇구나 하고 있고 자기들이 보고 있는 교회를 정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진리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를 했다고 굳게 믿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미디어를 통해서 진리를 외곡을 시키고 있지만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영상으로 거짓을 진짜로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기록을 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얼마나 이 복음에 대해서 단호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모든 수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그런 사상을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솔직히 그 영상을 만든 사람과 관여한 모든 사람은 성경의 권위 자체도 부정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것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기록을 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비하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니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그는 성경을 안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맞습니다.

 

고린도전서15: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입니다

이 시대 이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단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가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외에 자기들이 제작을 한 여러 가지 책들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단 이단 뿐 아니라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서도 자기들이 만든 성경 공부 교재를 통해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성경 공부 교재를 마치지 않은 사람은 직분도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그것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제가 볼 때는 교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성도를 키우는 교재가 아니라 이 시대 아주 모범적인 교인들을 양산하는 교재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른 교재라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성경공부 교재라고 나와 있는 모든 책들을 보면 그것은 종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 신뢰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것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직분도 주지 않는 것은 이미 그 책이 성경의 권위를 넘어 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책도 성경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그런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체도 문제입니다 누가 성경에서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서 공부를 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없는 것은 가능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기 영혼을 보존하는 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도 옳게 보인다 해도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하는 자체가 이미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고 또 부활을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대로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 된지 사흘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정말 성경을 왜 우리가 보아야 하고 또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보아서는 안 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기록을 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면 사도 바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도 성경을 안 보다 보니까 아니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지 마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다 보니까 성경이 그저 이 세상의 도덕책과 다르지 않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성경을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성경을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못 외워도 됩니다.

 

그 뜻을 알면 됩니다.

성경 외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물론 머리가 좋아서 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있으면 정말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메타포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머리 좋은 것을 자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것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 역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는 종과 아들입니다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구인가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종이고 성령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성도는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종과 아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종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한 가지라도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종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들이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고 거기에 모든 사람이 다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이 육체의 모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정말 교회 안에서 이 문제와 철저하게 싸워야 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곧 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육체의 모양이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300년 간 지속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300년이 넘어 가면서 이 복음은 급속하게 타락을 하고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소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진리에 든든히 서 있다가도 한 순간에 이렇게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진리가 전해지지 못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통제를 하고 싶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어서 그것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다 보니까 교회가 타락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답은 성경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 이성적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까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을 보다 보니까 진리가 변질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만 보고 성경대로만 하면 우리는 타락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폐하여졌다고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교회가 육체의 모양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성경대로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왜 성경대로 못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명히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에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지만 성경대로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사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면 성경대로 하겠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니까 성경대로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을 바로 알아야 성경대로 할 수 있는데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율법 폐하여졌습니다.

아마도 신학을 공부를 한 사람이 이것을 모를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을 한 성경에서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조차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타락을 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해도 정도에 지나칠 정도로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종교 개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천주교의 타락만으로 일어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 상황과 맞아 떨어지면서 천주교의 타락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감히 천주교에 대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로 보지 않습니다.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도 역시 교회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사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것은 교회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나서 300년 동안의 교회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의해서 국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325년에 니케아 공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미 이전부터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니케아 공회에서 만든 교리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는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이 니케가 공회에서 채택이 된 교리가 진리라면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저는 절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리 문제로 사람을 죽인다면 그 교리는 잘못된 교리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초대 교회에서 누가 사람을 교리문제로 죽였습니까?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5:13절을 보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죽이라고 했습니까?

교회 안에서 악한 자들이 있으면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과는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세 천주교는 어떻게 했습니까? 종교 재판이라고 하는 것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까?

저는 절대로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교리가 맞는다고 생각을 합니까? 니케아 공회에서 채택이 된 교리가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그 교리가 맞는다면 절대로 그 교리로 인하여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리에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들을 내어 쫓기는 하고 또 멀리 하고 사귀지도 않고 함께 먹지도 않을 수는 있어도 죽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천주교만 비판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들을 교회로 보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은 그 교회들이 참 교회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초대 교회가 언제 종교 전쟁을 일으키고 자기들을 핍박하는 자들과 함께 대적을 해서 싸웠습니까?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고 난 후에 16세기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이 과연 바른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그렇게 배우고 있고 또 교인들에게 이런 영상들이 만들어져서 교회사라고 말을 하니까 그런 교회들이 진짜 교회 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칼뱅주의의 오대 강령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럼 저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칼뱅의 오대강령이 칼뱅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공표를 한 것은 분명히 칼뱅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부터 초대교회부터 아니 성경에 이 오대 강령은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오대 강령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칼뱅이라는 개인이 이 오대 강령을 처음으로 주장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안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 오대 강령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칼뱅 때에 기초로 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칼뱅의 웨스터민스 신앙고백서를 보면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들이 왜 실패를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답은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맞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종과 아들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표징과도 같은 할례까지도 사도 바울은 아무 효력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할례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표징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할례 까지도 아무 효력이 없다고 하면서 육체의 모양을 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표징이라고 하는 할례까지도 아무 효력이 없다고 하면서 오직 예수를 전하니까 이제 문제가 생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자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자유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자유는 주님께서 주신 자유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도는 이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자유가 사라지고 있고 다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늘 이 문제가 걸림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종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서 종노릇 하지 말고 이제는 자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냐면 이스라엘이 선민의 증표로 여겼던 할례에서 까지 자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자유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갈라디아서를 보고 아니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고 자유를 주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주 적습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이 자유라는 것이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 눈에는 반드시 방종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왜 사라진다고 생각을 합니까?

저는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가진 자들을 세우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숫자적으로는 아주 적기 때문에 이 세상의 교회사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볼 때는 이단으로 보여 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사 안에 등장을 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제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를 주신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자유만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 은혜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까지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제 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왜 실패를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칼뱅의 오대 강령이라는 정말 성경의 기초를 세우고도 왜 실패를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 문제에서 역시 천주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이 세상의 종교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유를 주었습니다.

분명히 오대 강령 안에서는 자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주다 보니까 육체의 기회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시 교리를 만들기 시작을 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진리를 깨달으면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려고만 하고 있고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율법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게 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기회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자유하다 보니까 이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도 제가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육체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에서 자유를 하면서도 이 진리를 들었으면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면서 무조건 자유만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그런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빈대를 잡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초가삼간을 태우고 말았습니다. 설령 육체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저는 복음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빼앗는 순간에 모두가 사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는 자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99명이 육체의 기회로 삼는다 해도 저는 한 사람을 위해서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이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듣고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또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도 거짓을 가지고도 그렇게 자기를 헌신을 하고 있는데 복음을 전해서 자유를 주니까 그것을 육체의 기회로 삼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바울은 평생을 복음만 전했습니다.

그가 로마서를 기록을 하고 난 후에 마지막 16장은 자기를 도운 사람들을 일일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리서라고 알고 있는 로마서에 왜 이 사람들을 기록을 했는가를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저를 통해서 성경에서 모든 진리를 아는 지식을 얻었다 해도 그것을 육체의 기회로 삼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루포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내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말을 할 정도면 이 루포의 어머니가 사도 바울의 사역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그를 도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아들과 같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을 하면서 도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할 때는 그녀가 어떻게 사도 바울에게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내 어머니가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들이 있는 어머니가 그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로마서 16장을 잘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자유 했을 지라도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스도 편지에 진리의 말씀으로 설교를 올리고 있지만 역시 육체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까? 저는 그의 십자가만을 생각해도 제 가슴에 기쁨이 넘치고 있고 그 은혜를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에게 이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저에게는 넘치고 있습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으로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자유를 주셨는데 다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위해서 서로 종노릇하면서 이 복음이 전해지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 같이 내 이웃의 영혼도 구원을 받게 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루포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아니 로마서 16장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때로 형제와 같이 자매와 같이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도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는 한 시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르면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듣고 그저 육체의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은 곧 영지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습니다.

물론 저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거의 저와 비슷한 연배입니다. 물론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진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말 나이가 젊은 사람들 중에서 이 복음을 배우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많이 가르쳐 놓으면 그들이 또 다른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키워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 진리가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섭리를 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인간적인 마음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솔직히 저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도 버겁기만 합니다. 정말 은혜를 받은 자 몇 명만 있어도 제가 이렇게 까지 버겁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율법 폐하여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니까 율법이 폐하여졌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고 서로 묻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피차 서로 물고 먹으면 멸망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분량에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무작정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것도 문제고 또 육체의 기회를 삼는다고 그것을 다시 빼앗으려고 하는 것도 역시 문제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 피차 물고 먹으면 멸망을 할까 조심스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은혜에 참여를 하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 자유를 누리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은혜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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