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4:1-8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때 아주 잠시 동안에 세상으로 복음이 전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도들이 죽고 나자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이스라엘과 같이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이제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정말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지만 이방인들은 급속하게 종교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과는 너무도 다른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능력까지도 상실을 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문자는 그래도 잘 전해져 내려왔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는 잘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종교가 편집을 하면서 그리고 번역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고 그러나 그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는 것이 이 시대 현실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 종교가 1700년 이상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문자만큼은 인생들이 건들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주를 달아 놓은 것과 그리고 성경에 제목을 붙이는 일을 하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건들지 못했어도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일을 했고 그것이 지금 보는 성경입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제가 그래도 이 시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온전히 잘 보전이 되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인생들의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성경의 문자를 건들려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막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그때 잠시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그때 전해지던 복음이 이 시대까지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방인들은 종교가 되었고 복음이라는 것은 그들의 종교 안에서는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조차도 없는 것이 이방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해석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문자는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정도를 가지고 복음이라고 하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지금의 종교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히브리어로 헬라어로 안다고 해서 마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철학입니다
철학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논어를 말씀을 하고 또 니체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 역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철학은 바로 성경을 인생의 지혜로 보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을 모세의 율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기본적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말을 하고 있고 인생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을 하는 것이 철학이고 성경을 그렇게 인생의 지혜로 보는 것을 사도 바울이 철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잘 하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어떻게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철학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 믿음으로 사는 일을 그러니까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 교리적 사상이 인생의 철학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장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거의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해석을 해서 이야기를 하는 말씀 중에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라고 하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성경입니다
종교의 교리로 인하여 성경을 이상하게 보고 있고 심지어는 번역 자체도 이상하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이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인생들의 철학입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제가 왜 이 성경을 보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잘 번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번역을 보고도 인생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성경을 보고 있고 종교의 교리 때문에 영적인 감각마저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그 차이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그래도 한글을 독해를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은 심판과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리고 그의 나라를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그래도 담아 번역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번역을 했고 독해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18절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자기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그리고 이제 내가 죽고 난 후에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이 시대 종교의 교리는 인생의 철학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의 말씀이 어렵게 번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우리가 언제 심판을 받는가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처음 오실 때도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셔서 심판을 하신다는 것이 성립이 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으로 변해서 하나님 앞에서나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의 철학은 마치 심판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초가 안 세워져 있기 때문에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인생들이 이렇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복음이 말씀이 심판에 대해서는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진짜 믿음의 비밀대로 역사를 하는 성도는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지금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못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에서 보면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믿지 않는 자는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는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다른 말씀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게 말씀을 해야 믿을 수 있지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말씀을 하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심판에 대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종교의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 말씀인가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후서4장1절의 말씀은 어떻게 번역이 되어야 하는가를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심판에 대해서 바로 생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서9:11절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기초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도 안 되고 종교의 교리도 안 됩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성경에서 그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그 말씀이 누가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창조를 생각을 해야 하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입니다
창조에 속한 것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비교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우주와 하나님 나라를 비교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를 히브리서에서는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시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사는 우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그냥 제목만 보았고 그 내용까지는 볼 필요도 없어서 패스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찾았다고 하면서 우주의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성경도 안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종교인들이 그런 말에 미혹을 너무 쉽게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기초입니다
심판이 무엇인가 그리고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어디에 나타나시는가를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기초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다음 절부터의 말씀이 해석이 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끌려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부탁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종교 안에는 사람들이 바다 모래 같이 많다 보니까 누구나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전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1:28절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남 유다가 멸망을 당하기 전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을 보고 마치 그 시대 일로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와 비유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한 사람도 없다면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입니다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는 것은 그들이 복음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사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안에 많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힘이 듭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때를 못 얻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복음입니다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를 것이며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으려고 그들에게 모여들 때가 올 것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까?
이 시대 바다 모래 같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표면적인 일을 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보낼 때는 그래도 복음이 전해졌지만 이방에는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사욕에 빠져 복음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는 보면 그들이 얼마나 사욕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구하는 그런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기도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의 기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기도나 불교에서 하는 기도나 그리고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기도나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다 사욕이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없으니까 종교는 마치 이 세상 복을 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인생들이 다 사욕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의 교리를 보면 인생들의 귀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종교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고 그렇게 종교가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미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도서1:14절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의 교회가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어 이렇게 진리에서 돌이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저는 아직까지는 그런 교회를 못 보았습니다. 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전에는 그래도 세상에는 그런 교회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이었는가를 이제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들이 죽고 난 후에 이렇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디도서에서도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럽고 믿지 않는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이 시대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사람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방의 교회가 종교가 되어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도 바울입니다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사욕을 좇다보니까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니까 종교 안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그것을 보고 자기들이 대단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입니다
그가 이 시대와 같이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었다면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겠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자제하며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맡겨진 직무를 완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고난이라는 것은 그저 고난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복음을 전해도 때를 못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벌써 때를 못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쉽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욕을 좇아간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의 삶에 어떤 개임도 안 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사욕이 먼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편지에서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미 종교가 되었고 초기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서 너무도 멀리 왔으면서도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선한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착할 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지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초로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죽기 전까지도 디모데에게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믿음을 지켰는가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좇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같이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를 보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만난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요한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욕을 이긴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세상의 것에서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이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라고 하는 말씀은 바로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표면적으로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사는 것은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생을 사도 요한이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 영생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입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를 보고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주님께서 나타나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기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위엣 생명으로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 생명을 얻는 자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때를 못 얻더라도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0) | 2026.02.04 |
|---|---|
| 1285,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0) | 2026.01.31 |
| 1283,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 | 2026.01.24 |
| 1282,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0) | 2026.01.22 |
| 1281,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1) | 202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