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3:23-29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한 사도라는 것을 스스로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그 세대가 죽고 나자 이방인들은 종교가 되었고 인생의 본성에 따르는 율법주의로 빨리 갔다는 것을 이방의 종교사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택정함을 받아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면서 로마서에서 복음에 대해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실제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 복음에서 멀어지기 시작을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분명히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른 곳으로 떠나자 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다른 복음을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이 갈라디아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들이 죽고 난 후에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굳이 제가 말씀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서도 이 율법주의로 자꾸 기울어 가는 것이 인생의 철학인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도들이 없는 상태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 율법주의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아니 반드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고 그는 더 이상 복음에 진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 다음의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이방의 종교는 철저하게 인생의 철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인생들의 율법을 비유로 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세 전입니다
그때 이미 정하신 말씀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들의 율법을 비유로 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하고 그렇게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으로 보고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종교인으로 사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실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율법의 행위를 보고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서도 믿음이 무엇인지 율법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법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기초의 문법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고 하는 것은 저는 정말 미안하지만 에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조차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기까지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단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3장에서 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다고 그러니까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의 행위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옵니까?
지금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그 안에 들어가서 믿는다고 하면 믿음이 있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믿음이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에게 매인 바 되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믿음이 오기 전에는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 인생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신체가 구원을 받으려고 하니까 그 신체로 율법의 행위를 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왜 인생들이 종교가 되고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바로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그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차별을 없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믿고 있고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 율법의 의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어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이 각자가 율법을 지키면 그 행위는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은 율법주의기 때문에 이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믿음이 오기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바로 이 차별이 없는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오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바로 이렇게 믿음이 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오기 전에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 아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얻는 의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성경의 인도하심을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계시가 되기 전까지는 인생들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차별이 없다는 말씀을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인들이 자기들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종교 안에서 삼가 지키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해서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매 주일 같은 날을 지키고 있고 그 날에 같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하는 행위가 다 율법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입니다
정말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이 그 문자를 너무 쉽게 보고 성경을 안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가정교사입니다. 개인교사입니다. 성경마다 약간씩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지만 역시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인생들은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레위기25:28절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찌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율법입니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해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찌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아니라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나씩 받으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까지를 몽학선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율법을 많이 해석해서 올려놓았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일을 가지고 몽학선생이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가를 하나하나씩 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속죄소 안에 넣어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속죄소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십계명을 다 지키셨다는 의미로 속죄소 안에 두 돌판을 넣어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의 교리입니다
인생이 지킬 수 있습니까?
정말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문자 그대로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의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다 올려놓았습니다. 그 십계명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지키셨다는 성경적 의미를 깨달아야 그때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인도함을 받지 못하니까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보고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십계명은 분명히 속죄소 안에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몽학 선생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게 율법을 보고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믿음이 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역사하심에 따라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 위해서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은 성도만이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때는 더 이상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아도 이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교 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성경 몇 번을 보는 것으로 그리고 일년 정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형제들에게서 떠나가면서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날에 설교를 듣는 정도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날을 지키지도 않아도 찬송가를 부르지도 않았고 헌금을 내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만 듣고 있었는데도 사도 바울이 떠나가면 흉악한 이리가 그러니까 율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이 오고 난 후에는 더 이상 그런 말씀이 아니라 이제는 영생에 대해서 듣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그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몽학선생 아래입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서 이제 겨우 초보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기본 교리로 삼고 있고 그들이 몽학 선생 아래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5: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율법을 안 지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까지를 몽학선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결과를 사도 바울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단 한 가지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데 그 결과가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 되고 그 생명은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의롭다 하심의 결과가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는 그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기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오려고 하면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도 율법주의로 갔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저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그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세 이후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세례입니다
종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물세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세례는 율법의 행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물세례를 주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는 의식을 만들어서 행하고 있고 마치 그 물세례를 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성령을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옷은 구원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구원에 대해서 주님께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다 같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과거형인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기 때문에 과거형이고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종교인으로 그 안에서 의식에 따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는 반드시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문자를 아는 인생의 철학적 한계입니다.
요한일서2: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율법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 일을 사도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일을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원한 생명을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입니다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저도 이 정도 밖에는 더 이상 말씀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생명을 얻는 일을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아브라함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너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브라함도 믿었고 너희도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면서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입니다. 누가 이기는 자인가 하면 믿음으로 이긴다는 것을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업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누가 가는가 하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생명으로 유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믿음의 나타내는 표적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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