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사람입니다
그 신체입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가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입니다
그는 죽어서 무덤에 있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신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윗입니다.
누가 그 다윗의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믿음이 선진들이라고 하는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 중에서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정론입니까?
먼저 이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운명론이든지 이중 예정론이든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자유의지가 무엇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신체가 아니 선지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없고 그 묘가 오늘날 까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모릅니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창조를 말하고 있고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문장을 기억하는 것으로 줄기차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을 하면서 자기가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정을 입었다고 하면서 죽어서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도 만나보고 또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만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의 묘도 오늘날까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 역시 다 그 열조에게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인생들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철학입니다
그것이 예정론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가를 알고 그리고 위로부터 있는 생명,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을 믿었다면 절대로 이중예정론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저 예정이라는 단어에 빠져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고 변증을 하는 것이 이중 예정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스스로가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늘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책망을 하셨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내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욱 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철학을 주장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책을 쓰고 있고 그런 책들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마치 그것이 진리인 것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책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자기가 경험을 한 그리고 철학적으로 상상을 하는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나도 성경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단테의 신곡을 보면서 마치 성경보다 더 신뢰를 하면서 성경을 보듯이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천국입니다.
그리고 지옥입니다. 순전히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책을 사실과 같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정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단어를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서9장입니다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강해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그 말씀을 보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라와 리브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성도들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가 된 성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들을 교회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별이고 이삭도 별이라는 것을 그리고 야곱 역시 별이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입니다
별과 같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 리브가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한다고 하면서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예정론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인용을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체를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이 사람들이 다 비유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약속을 받은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우리 성도들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삭의 어머니 사라를 교회로 비유로 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다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신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인데 무슨 약속의 자녀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이삭입니까?
그리고 인생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라를 통해서 말씀을 하면서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가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를 비유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다고 하는 말씀이 인생 야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가 믿는 예수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거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입니다
그리고 야곱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다 같이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입니다.
누구를 택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가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가 되었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가 하면 썩어질 씨인 육체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나서 산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나는 예수의 생명을 창세전에 예정을 하셔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까?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는 죽으면 끝입니다. 이삭도 야곱도 죽어서 그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이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있는 자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신체가 창세전에 예정을 받아 그 신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자체가 인생들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부정을 하는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그 말씀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정의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해석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다고 해도 역시 인생인지라 완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예정에 대해서 해석을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저도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실수를 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서 그것이 교리가 되면 더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경륜을 아주 편협하게 만드는 악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이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반드시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8:29-3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정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니다.
우리 육체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체는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예정을 주장하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일을 부정하는 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육체입니다. 사도 요한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말 것도 없이 분명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까 단지 예정이라는 인생의 언어를 보고 자기 철학으로 변증을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리고 인생들의 철학이 그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세상의 철학과 같다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자체가 다원주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 스스로입니까?
그 결과는 이미 지난 시간에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데도 인생들은 너무도 담대하고 자기 철학에 빠져 신체를 높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아니고는 어떻게 해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지만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성경에서 언어를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형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조는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성경이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달을 수 있고 자기의 아들들은 신체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창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들의 철학으로 예정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예정을 하셨다고 하지 않는데도 인생들은 자기들이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고 철학적으로 변증을 하면서 그 단어를 정의를 내려 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니다.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역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그 단어에 꽂혀서 자기들의 철학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화성만 생각을 해도 지구와 모든 것이 다르고 화성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행성인 화성도 그런데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는 어떤가를 생각을 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압니다.
인생들은 영, 혼 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그래서 사도 요한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에 대해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 철학이 예정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의 단어를 아는 것으로 예정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차단을 해 놓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기초가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말씀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성경의 단어를 아는 것으로 만든 것이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종교의 교리 때문에 누군가 혹시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아신 자입니다
우리 인생을 미리 아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 있음을 믿는 우리 성도의 믿음이 바로 실상이 되어 미리 아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이 바로 미리 정하신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 정하신 일이 언제 일인가 하면 바로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피조물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고 있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렇게 미리 정하신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창조 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바로 예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이 과거의 일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성령이 오시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변증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창세전에 있는 하나님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 인생이 죽으면 그 신체와 영혼이 재 연합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고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 성도의 믿음이 실상이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변증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깨달을 수 없으니까 자기 철학으로 변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변증을 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위해서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시간입니다
왜 제가 먼저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신학자들과 같이 이 예정이라는 단어를 보고 변증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예정을 했다면 창세전을 말씀을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기초를 든든히 세우기를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3: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을 믿는다고 해도 역시 사람입니다. 성령이 오신다 해도 사람이 바뀌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성령이 오셔서 사람이 다른 존재로 바뀐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론입니까?
성경에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정론이라고 하면 이 말씀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우리가 보는 성경은 모순투성이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고 우리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에베소서3장에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정입니다
물론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단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헬라어를 보더라도 결심, 뜻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창조 전에 예정이 되어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정입니다
이중 예정론이니 운명론이니 하는 것은 다 인생들이 자기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철학으로 변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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