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기초 강해

10-1, 예정에 대하여

윤주만목사 2025. 12. 29. 07:15

에베소서1:3-5절을 보겠습니다. (31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정입니다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 예정하다는 헬라어의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을 보아도 미리 결정하다는 거의 비슷한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단어적으로 보면 운명론과 같이 철학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실제 헬라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만 사용을 하는 것으로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단어를 보고 아는 것으로 인생들은 그 단어에서 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기초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식으로 그 교리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전혀 성경과는 다르게 말을 하고 있고 이 예정이라는 것 역시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 중에 대표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초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보고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이런 교리를 만들고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한번 종교 안에 들어가는 순간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인생들은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거듭남입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남도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있는 생명, 처음부터 있는 생명으로 나는 일을 믿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지난 시간에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주의 형제 야고보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편에서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담에게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입니까?

혼입니까? 이분론, 삼분론 등의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그 피조물을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시간에 충분히 말씀을 했듯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고 예정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해석했던 기초가 되는 말씀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도 인생의 철학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나름대로는 그래도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을 했고 사람들도 보고 이런 말씀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그 말씀 역시 신학적 사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기에 새로 다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인생의 철학으로 상상을 해서 혼으로, 영혼으로 등 신체와 연결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철학적 사상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아니 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고 그래서 성경의 문장과 단어를 아는 것으로 초등학생과 같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헛것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부정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인가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지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신령한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육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든 것을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누가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다 언어적 표현입니다 

그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지 마치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복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 역시 우리라고 하니까 그저 막연하게 사람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까

에베소서13-5절까지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같은 단어도 있고 다른 단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리라는 단어에는 실제 우리 사람을 말씀을 하는 단어도 있고 자기의 아들들이 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언어로 말씀합니다

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을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은 예수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절은 우리가 받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누가 받는가를 정확하게 말씀을 하기 위해서 4절 시작을 곧 이라는 부사를 사용을 하면서 3절의 복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성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복을 누가 받는가 하는 것을 4-5절까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 번역에서는 같은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다른 단어로도 사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우리지만 전혀 다른 우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우리는 우리 복음을 듣고 믿는 신체를 말씀을 하고 있고 뒤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자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우리라는 말씀입니다 

 

신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우리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지 마치 인생의 언어로 같은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같이 보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예정에 대해서 전혀 이상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정입니다 

우리 인생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난 시간에 우리 사람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정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체의 구원의 주장을 하기 때문에 이 예정을 말을 하면서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11절을 보겠습니다. (310)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예정입니다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정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는다면 이미 성경은 일관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다 보니까 무조건적인 선택이냐 아니면 인생은 그래도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는 것으로 끊임이 없이 신학적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협력설이냐 단독설이냐 하는 것으로 1500년 이상의 논쟁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사실 결론이 나지 않고 종교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중 예정론입니다 

그리고 운명론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가지고 인생들은 끊임이 없이 토론을 하고 있고 서로 이단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볼 때는 그들의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변증입니다 

그런 것을 여기서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변증가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 역시 다 인생의 철학적 사상에서 하고 있는 말인데 그것을 말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인생들은 예정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자기의 학문을 주장을 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변증가들이 누가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종교인들이 변증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왜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인생들이 그렇게까지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어서 그렇게 논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를 따른다 하고 나는 누구를 따른다 하고 있고 그래서 정통이라고 하고 있고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무엇입니까

종교에서 말을 하는 예정론도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운명론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역시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이 인생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변증가들의 그리고 신학자들의 논쟁을 보고 자기도 인생의 철학으로 그것을 보면서 자기에게 이해가 되는 것을 취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기는 누구의 사상을 따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변증을 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정이라는 단어를 보고 아무 쓸모없는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운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중 예정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단지 예정이라는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생들은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가 아무리 철학적 지식이 많다 해도 역시 인생인지라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철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철학적 지식을 얻기를 원하고 있고 그래서 성경을 보고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마치 대단한 말을 듣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철학입니다. 위대한 변증가들이 말을 하고 신학자들이 말을 한 것 역시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자기가 공부를 조금 많이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주장들을 인용을 해서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인생들은 철학적 사고에 잡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마치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지입니다 

인생의 철학적으로는 분명히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는 무지함의 극치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인생들은 그런 철학을 듣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철학적 사상을 변증을 하는 것이 대단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 예정론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말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를 해 보아야 오히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예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제가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그것을 연구를 하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까? 정말 스스로가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그런 철학에 의지를 하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된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는 것이고 이미 성경에서 말씀을 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면 됩니다. 성경을 보고 인생의 철학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늘 성경을 보고 있고 말씀을 해석을 하지만 예전에 해석했던 말씀들을 보면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정의를 내려 버리면 그 후에 사람들은 그 사상에 따르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했지만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 인생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종교인들을 비유로 해서 이 세대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래도 인생이기 때문에 늘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 에베소서3장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깨비 방망이입니까

성령이 오시면 단번에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성경을 보고 정의를 내려 버리면 그가 위대한 신학자라면 그 후세대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정의를 내린 것에서 조금이라도 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칼뱅주의입니다 

그리고 웨슬레주의입니다. 루터주의입니다. 왜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셨어도 죽을 때까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토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의를 해 버리면 그 순간부터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실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도 이단이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설교입니다 

내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면 됩니다. 설령 실수를 했어도 다음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중 예정론이라는 교리를 만들고 그가 수백 년 이상의 위대한 신학자가 되면 그 결과가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된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성이 있는 성도라면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중 예정론입니다 

그가 왜 이중 예정론을 주장을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기초가 되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믿었다면 그는 절대로 이중 예정론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인생의 영역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지 그 말씀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의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에서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정의를 내리고 있고 그것이 이 시대 종교의 교리가 되어 그대로 내려오고 있고 그렇게 한번 정의를 내림으로 해서 혹시 누군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종교의 교리가 거대해져 있어서 그것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정론입니다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정에 대해서만 자기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됩니다. 설령 조금 실수를 해도 다른 사람이 보고 그것을 더 발전을 시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면 구원을 받은 성도가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예정입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말씀과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말씀은 같은 의미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정입니다 

누가 예정이 되어 있습니까?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된 자들이 우리 신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로 예정이라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예정이라는 단어를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운명론이라든지 아니면 이중 예정론이라든지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철학적 사상은 신체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아들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히브리서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처음부터 있는 생명으로 하나에서 난 자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에서 난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우리 신체는 그렇게 아담이라는 하나에서 났습니다. 그 신체는 다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하시는 자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뜻대로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입니까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 인생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예정을 받고 말 것도 없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수에 셀 가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을 예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거듭나는 일을 전혀 모르니까 위에 있는 생명,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 있음을 믿을 수 없으니까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운명론이니 이중 예정론이니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예정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래서 거듭남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인생들은 전혀 모르고 그저 성경에서 예정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고 있고 그것을 말한 사람들이 위대한 신학자들이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포승이 되어 묶여 있으면서도 자기 신체가 예정이 되었다고 하면서 정통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먼저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면 이중예정론이니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성도는 인생의 철학적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셔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인생들이 종교 안에서 자기 철학적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인생의 철학으로 변증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이중 예정론을 그리고 운명론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20-21절을 보겠습니다. (378)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예정입니다 

그 기초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우리 인생을 예정을 하시고 그 인생을 구원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의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아들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신체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까?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서 우리 신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아니 거의 모든 인생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을 하셨습니다. 누구를 예정을 하셨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는 자들이 예정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미리 정하셨는가 하면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일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예정이라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창세전에 있는 일을 창조가 된 피조물들의 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사상입니다

 

우리입니다 

실제 인생인 우리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들을 우리라고 표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구원을 받은 자가 언제 예정이 되었는가 하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들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우리 신체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 생명을 얻은 자가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입니다 

반드시 이 생명이 거하셔야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을 하는 것이지 우리 인생의 신체를 보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다 해도 저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라는 말씀이지 자기의 아들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예정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 예정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그 예정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운명론이니 이중 예정론이니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전입니다 

그리고 창조 후입니다. 창세전에는 하나님의 생명만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 후입니다.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죽으니까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일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예 없었습니다. 아담도 없고 피조물인 우리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아담을 지으시면 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흙으로 지음을 받은 그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셨다는 말씀이고 그래서 창세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입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타내신바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들이 비록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그의 생명이 거하시는 역사가 있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예정을 하셨습니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바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도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정입니다 

우리 사람을 보고 예정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정이고 말 것도 없이 그렇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죽음으로서 끝이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그리고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정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변증을 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이 예정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교리로 만들어졌고 그 철학적 사상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왜 성경에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고 그것을 우리가 알들을 수 있게 거듭나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는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지만 창조의 개념조차도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창조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억지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일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사도 베드로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 났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입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생명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정론입니까

아니 이중 예정론입니까? 정말 유치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신체의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거듭난 생명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바 되셨고 우리를 위해서 이 말세에 나타내신바 되었는데 우리 피조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음으로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이 거듭나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자를 자기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입니까

칼뱅입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저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저는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이 보고 상고를 하면서 지혜를 구한다면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말씀은 우리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사는 우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존재 자체도 그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담이 지음을 받기 전에 창세전에 우리가 예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그 후에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이고 이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아들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는가 하면 그 일이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피조물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자기의 아들들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믿음은 인생의 철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next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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