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92쪽)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회개입니다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늘 회개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회개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 회개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죄에 대해서 알고 회개를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인생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회개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 회개를 합니까?
그저 죄를 지어서 인생이니까 신에게 회개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참 이런 말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등이 가렵지도 않은데 자기 생각으로 가렵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등을 긁어 주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인생들은 그것을 회개라고 하고 있고 성령을 받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회개라는 단어입니다
지난 시간에 구원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인생들이 성경에서 보고 아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회개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안 아니 다른 종교인들 역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제가 4편의 성경말씀으로 강해를 마치고 이제 다시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어려운 문자를 쓰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한글을 아는 사람들이 이 설교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석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성경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할 수 없어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인생들의 언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왜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당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를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기를 원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근심으로 그러니까 자기들의 철학으로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사망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경계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기초는 바로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그저 성경에서 이 회개라는 단어를 보고 있고 그 단어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그대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누가 방해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실상은 복음에 방해를 하고 있고 진리에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성도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그 때가 지나자마자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타락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인생의 언어를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은 다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고 그것을 근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제가 이 말씀을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일을 했다면 성경은 절대 이렇게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분명히 회개를 이렇게 하라고 가르쳤고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서 아들을 증거를 받아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이 세상 철학에 따라 회개를 하고 그것이 사망을 이루는 것이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세상 근심입니다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헬라어를 보면서 그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세상은 바로 지금 이 시대 종교라고 하는 그곳을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세상 사람들은 이 성경을 안 본다는 것을 알면 제가 하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마치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이 보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교회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기 위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보이는 교회라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근심을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는데 그것이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근심이 되고 있고 그 결과가 영생을 얻지 못하는 사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국어사전을 보면 사람이 죄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으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의 사전을 보면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 회심하다 등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제 그에 따라 행위가 따라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역시 그 안에서 이렇게 자기 죄나 그리고 행위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그것을 뉘우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종교인들은 늘 교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먼저 회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도리어 세상 철학에 따라 근심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을 사도 바울이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을 하는 성도는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기 위해서 근심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증거를 받을 수 없으니까 금심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를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법에 대해서는 늘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 근심을 하고 있고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지난 시간에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얻는 회개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입니다
베드로후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86쪽)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성경입니다
강조를 하고 계속해서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저 역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입니다
강건하면 팔십을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발달을 해서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의 개념 안에 살아가고 있는 인생에게는 그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죽어 이제 흔적조차도 없는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 실감이 나지만 또 멀쩡하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창조의 개념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면 또 자기도 모르게 진화론적인 사고로 인생들은 성경을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진리의 성령이 오신 성도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 말씀을 우리 성도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서 계속해서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주의 말씀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에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우리 피조물은 비췸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비췸을 받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일이 아닙니다.
보이는 교회도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성경은 교회를 비유로 해서 세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거의 모든 인생들은 철학적으로 보고 진짜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종교를 대표로 해서 유대교에 대해서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유대교만 세상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 역시 세상의 철학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세상 근심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근심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그때에도 벌써 교회 안에 세상 근심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세상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회개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은 다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고 그 일을 근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강조를 하다 보니까 아마도 이 말씀까지만 보고 자기는 아들을 보고 믿는다고 하면서 더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앞에서도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고 그 세상 근심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를 근심하면서 세상 철학에 따라 회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모두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생을 얻는 일을 한 사람은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회개는 죄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를 하고 있고 그 회개로는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아들을 보고 믿는 성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아들을 증거를 받기 위해서 근심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회개를 세상 철학에 따라 자기가 세상에서 짓는 죄나 그리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이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세상 근심이라는 말씀이고 그럼으로 해서 사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정말 계속 강조를 하고 있지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경계로 하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인데 이렇게 회개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라는 단어입니다
지난 시간에 구원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게는 너무도 강하게 각인이 되어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라는 말씀을 보면서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저 자기가 종교 안에 표면적으로 있는 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회개를 합니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회개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그것이 회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그저 자기 철학에 따라 세상에서 살면서 짓는 죄를 그리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생각을 하고 회개라고 하면서 고백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역시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약속을 지키는 데 더디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회개를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지금 회개를 하면 지금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성경은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인생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저지른 죄를 깨달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회개에 대해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그 개념에서 회개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개인이 회개를 하고 이제 뉘우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저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이 회개라는 단어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종교 안에서 회개 기도를 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회개를 즉각 회개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바로 인정을 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회개는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어떤 이는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인생들에게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이 회개를 그저 인생의 단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철학적 지식으로 회개를 하고 있고 종교는 교인들에게 그저 그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회개를 하라고 강요를 하는데 그런 죄나 잘못을 뉘우치는 일을 고백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종교의 회개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죽은 자가 고백을 하는 회개를 하는 것으로 멸망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서는 우리는 반드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멸망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다 멸망을 당해야 합니다. 종교 안에서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내가 회개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영생을 얻어야 하고 이 영생을 거듭남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위로부터, 처음부터 있는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어떻게 회개를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회개라고 말씀을 하니까 인생들이 자기가 회개를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거듭나는 일도 구원도 모르는 사람은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사람이 저지른 죄를 깨달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회개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의 삶입니다.
성경에서 유대교에 대해서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들을 주님께서는 화가 있다고 말씀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늘 성경을 보고 있고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가를 그리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 일에 대해서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과 같이 회개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회개를 한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임을 우리 성도는 깨닫고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은 자 되어야 회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그저 오늘 예배에 참석을 해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그저 쉽게 오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아는 회개입니다
내가 오늘 직접 죄를 깨닫고 고백을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기를 이루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2:25-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회개입니다
그저 회개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회개를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가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런 성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초기 교회는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줌으로 해서 믿을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가 초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와 같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리고 초기 교회를 통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이미 초기 교회 안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고 성경에서도 증거를 해 주고 있고 그가 기록한 성경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디모데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지금의 교회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와 같이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씀에 가능한 거부감이 안 들게 하려고 정말 순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도리어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입니다
그것이 그저 교회 안에서 조금 더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좋냐 나쁘냐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성경은 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조금 좋냐 나쁘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나쁜 의미의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이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면서 조금 좋고 나쁜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라면 성경은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다 영생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저는 가능한 순화된 말씀으로 하고 있는데도 영생의 문제를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도들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때에도 벌써 이렇게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입니다.
저 역시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을까 정말 순화를 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를 받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게 하셨는가를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이런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0
스트레스가 너무 큽니다.
제가 정말 인간적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기에 가능한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하는데 조금 아는 성경적 지식으로 저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영생의 문제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이런 말씀을 기록하게 하지 않았고 저 역시 그런 말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모임입니다.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방에 그렇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디모데후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디모데후서 뿐 아니라 구약 성경을 보아도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얼마나 많은 나쁜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말씀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을 수 없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 안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누가 깨닫고 있습니까?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기 때문에 저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싶지만 이 말씀을 해석을 하고 있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이미 초기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올무입니다
정말 성경에 이 올무에 잡혀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아직까지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힌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자를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역하는 자입니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변론을 하면서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에 빠져 진리를 전하면 거역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에 조금도 의문을 제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보아도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에 대해서 전하시니까 무식하고 어리석은 변론을 하면서 거역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정말 제가 아는 것을 인간적으로 말씀을 하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면서 순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를 대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무식하고 어리석은 변론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고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정말 인간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회개함을 주십니다.
내가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렵기만 합니다. 제가 인생의 철학으로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회개를 합니까?
인생은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자기가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셔서 회개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은 정말 쓰레기로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거역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이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면서 하고 있고 억지로 하지 않으려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석학입니까?
철학자입니까? 사법고시를 패스했습니까? 그것은 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현대 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니체가 성경을 보았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신은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니체보다 철학적 지식이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아무리 철학적 지식이 있다 해도 교회 안에 들어오는 순간 소자, 소년, 어린 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회개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그러니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혹입니다
회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혹이라는 접속사를 써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자기가 회개를 했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거역하는 자들이고 회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이 천만분의 일도 안 되기 때문에 혹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함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혹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렇게 교회 안에는 인생의 철학으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 철학이라는 것이 바로 마귀의 올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그리고 행위를 하는 것으로 다툼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은 거역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회개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기초로 세워야 합니다.
누가 거역합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도 않았는데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신다는 말씀은 그들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진리를 알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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