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3:6-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인생의 철학이 아닙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면서 그것을 안다고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듭나는 일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일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 없어서 인생의 언어로 최대한 말씀을 하시고 그것도 안 되니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이미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니고데모는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대답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일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입니다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인생의 지식이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인생들은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그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성경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도 주님의 말씀은 너무도 기이한 말씀이기 때문에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너무도 기이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무 느낌도 없이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기이히 여기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는 너무도 기이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성경을 전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다 압니다.
주님께서는 기이히 여길 것을 아시고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어떻게 말씀을 해야 하는지 때로는 단단한 벽에 대고 말씀을 전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기이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도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대답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거듭나는 일이 기이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거듭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 인생들이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제 이 거듭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역사입니다
그 역사에 대해서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존재입니다
존재라는 표현도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두 존재라고 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만 성령으로 난 영은 존재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를 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라는 표현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처음 듣는다 해도 그 말씀에 대해서 아니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이 말씀에 대해서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렇게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으로 난 육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육으로 난 것에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이 거하실 수 있게 되고 그 영이 헬라어로 같은 프뉴마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지만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그리고 영입니다. 같은 헬라어의 단어 프뉴마를 사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그런 단어를 아는 것과 어느 단어를 사용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은 같은 단어를 사용을 했어도 그것은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의 생명과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조에 속한 것이 있습니다. 이 창조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창조는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 창조에 속한 것임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없어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환상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고 새 성 예루살렘이라고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창조에 속한 것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에 속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창조에 속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어느 것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없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 창조에 속한 것이 영으로 변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내세에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고 무신론자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무당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듭나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기이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면서도 거듭나는 일을 모르니까 기이히 여기지도 않고 있습니다.
아니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일을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말씀을 제가 하면 인생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 사람이 미쳤다고 하고 있고 성경만 본다고 하더니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이히 여기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다
창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창조된 세상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잘 살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종교의 교리에 따라 살았느냐에 따라 자기들이 말을 하는 내세를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알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거듭나는 일을 믿고 영생을 얻은 자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거듭나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영입니다. 아니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너무도 기이하게 들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인생들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철학적 지식으로는 너무도 기이한 말씀이 되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에게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에 속한 세상에서 살다 죽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 역시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 창조에 속한 피조물이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합니다.
경이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거듭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일이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일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에 대해서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입니다
그는 언제 계셨습니까? 창조 전에 계셨던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것과 같이 우리가 거듭나는 일도 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사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는 일입니다
그 일이 언제 일입니까? 창조를 하시기 전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씀도 우리 인생으로는 받아들을 수 없는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이 창세전에 있다는 말씀은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기이하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난 영입니다
성령으로 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 거듭나는 일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창세전에 있는 생명이라면 어떠하겠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는 헛것이고 창세전에 있는 것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 생명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엇이 먼저입니까?
창세전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인생의 철학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인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으로 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죽으면 그 신체가 영혼과 재 연합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창세전에 있던 주님과 아버지가 가지셨던 영화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창세전에 있는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철학으로는 거듭난다는 말씀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창세전에 있는 일을 믿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전혀 기이한 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도 기이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고 전혀 기이하게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고 그저 종교인으로 사는 것으로 자기들이 거듭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거듭나는 일도 정말 기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아도 이 거듭나는 일을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기이한 일은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창세전에 있던 영화를 증거를 해 주고 있고 그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너무도 기이한 일입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 인생들에게는 너무도 경이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도 이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인생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를 대표로 해서 이 경이로운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적 사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일이라서 이 말씀을 하는 저 역시 너무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 창세전에 있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이 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창세전에 있는 생명을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실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체입니다
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전에 있던 주님과 아버지가 가지셨던 영화가 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그 일을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도 경이로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 시대 종교인들이 이 말씀을 전혀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께서는 이미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이 아닙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루신 영광에 대해서 우리 피조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피조물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면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그들은 스스로를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는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볼 수밖에 없었고 또 선지자들이 예언으로 하는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말씀을 하시는 것을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만 거듭나는 일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거기까지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이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엇이 기이한 일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한 혈통이 되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기초적인 일도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다 내세를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비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라는 것은 둘 중에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을 하면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고린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혈과 육은 그러니까 아담의 자손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그 육체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혈과 육이고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는 그 혈과 육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사도 바울이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은 인생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 육체가 영과 연합을 해서 아니 영으로 변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무당도 그렇고 무신론자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받아들이지를 않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에서 나는 일이 언제 일인가 하면 창세전에 있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에게 있는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 같은 생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입니다
우리 육체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것은 창조에 속한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창조에 속한 것을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입니까?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영의 일을 깨달을 수도 없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를 못하니까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영어로 life입니다. 이것이 인생들의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는 생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생명과는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고 그리고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정말 기이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기이한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생들이 주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도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라고 그러니까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에게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자녀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는 말씀을 모르니까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를 보고 그것이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썩어 없어지는 인생이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일을 이 세상의 철학적 상식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도 요한도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이 거듭나는 일도 모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방법 외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창세전입니다
그리고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철학에는 그 일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그저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인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피조물을 성경에서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우리가 믿어야 합니까? 그리고 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는 일을 3장에서는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그리고 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듭나는 일은 바로 육체의 생명을 가진 우리 피조물이 창세전에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의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다고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우리 피조물들에게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하는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는 인생의 언어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도 거듭나게 하사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4-1
'성경의 기초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2 구원에 대하여 (0) | 2025.11.17 |
|---|---|
| 4-1,구원에 대하여 (0) | 2025.11.17 |
| 3-1, 거듭남에 대하여 (0) | 2025.11.09 |
| 2-2, 창조에 대하여 (1) | 2025.11.03 |
| 2-1, 창조에 대하여 (1) | 2025.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