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구원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도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입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시고 있고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묻기 위해서 주님 앞에 왔는데 생전 처음 듣는 거듭나라는 말씀을 듣고 놀라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라고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자기 신체가 죽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에서도 문자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사도 바울이 지금 틀린 말씀을 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 역시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거나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는다는 말씀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인생들은 성경에서 그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에는 주 예수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리고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알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주 예수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도 믿음이라는 것에는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특정한 말씀을 가지고 나는 이 말씀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말씀 안에는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아는 것입니다
그저 성경의 언어를 아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정말 문자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가를 선지자들의 말씀에서 보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들은 늘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을 비유의 말씀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간음, 음행 등으로 비유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에 정말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구원을 해 주시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일이지만 그것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바알 사상입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실제 그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구원을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영적으로 진전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도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은 후에 영으로 변화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 여러 가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사용을 하는 것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고 그 구원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거듭나는 일도 모르면서 구원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들이 아는 구원입니다
인류의 죄나 죽음에서의 구원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을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런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저는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평강의 왕이시라는 말씀이 기초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삼고 성경을 보면 히브리서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아들로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구속의 일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 오셔서 구원의 모형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자기를 믿는 모든 자에게 그 길을 따라 오게 하심으로 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진화론적인 사고를 가진 인생들로서는 사실 이런 말씀을 해석을 하고 이해를 시킨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화론입니다
구원을 하신다는 미래형으로 기록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니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히브리서에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씀은 구원이 과거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말씀은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창조에서 보면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구원에 대해서는 거의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문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진화론적인 사고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이 둘이 서로 거스린다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7-8절을 보겠습니다. (구 806쪽)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그리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피조물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미 과학적으로도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우주가 그렇다는 것을 증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자기 존재도 모르면서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가 된 우주는 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참이시라는 것을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인생들은 그저 그런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것으로 그저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인생이 그리고 창조가 된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창조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창조라는 단어를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이 이 창조된 세상에서 주인과 같이 행세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주었지만 아담은 사단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죽은 자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인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인생들은 자기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을 그 단어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을 하는 그런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게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종교의 교리를 보더라도 사람이 죽으면 그 신체가 영혼과 재 연합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창조된 세상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우주가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된 세상의 어느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육은 육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육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위에 있는 처음부터 있는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런 기초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을 이야기를 하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지금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이 기초적인 문제에 대한 답도 모르면서 자기 철학에 따라 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 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인생은 수천 년 전에 이미 그런 사상이 있었고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 시편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편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시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러니까 우리 인생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시는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3편의 말씀은 1절부터 8절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까지가 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인생으로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마지막은 우리 인생들이 그렇게 구원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시는 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아들이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근원을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시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분명히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으로 오셔서 아들로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그 구원을 보여주시는 일을 시편에서 다윗이 선지자로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길로서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시편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 말씀 그대로 유대인들이 주님을 둘러치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악을 행했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해 주신 것은 아들과 같은 인생들에게 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된 세상에서 구원의 근원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구원을 생각을 하면서 직접 적인 구원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시만 우리는 직접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 해도 우리는 거룩해 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피조물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주는 것으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헬라어의 사전에서도 신이 사람이 심각한 위험에서 힘으로 구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전적인 뜻을 보고 아는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헛것이라고 그리고 그림자라고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기초로 세워야 합니다. 그 헛것 같고 무익한 것을 구원을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를 먼저 바로 알아야 하는데 아무리 강조를 하고 또 해도 인생의 철학적 사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초입니다
왜 제가 성경말씀을 시작으로 해서 창조를 말씀을 하고 또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말씀들이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편에서 구원의 근원을 다윗이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로서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인생 그 자체가 영으로 변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했듯이 피조물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그가 잘 안다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도 종교가 되어 그 안에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 인생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는 일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의 본바탕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피조물의 형체로 오셔서 먼저 구원을 받으신 일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하고 직접 우리에게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일을 증거를 받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처음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직접 구원을 받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그 일을 창세전에 있는 일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입니다
그 길이 구원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구원을 생각을 하고 있고 그 길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있고 알지 못하니까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 아닙니다.
그 인생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담에게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의 선진들이 죽었을 때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이 죽은 것을 하나님 나라에 갔다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인생들은 자기들이 상상을 해서 죽은 사람을 보고 상가 집에 가서 천국에 갔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감정입니까?
그들을 위로를 합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경과 반대가 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을 때도 성경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는데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근원입니다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이라는 말씀과 같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5:7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구원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이 구원에 대해서 정말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의 말씀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을 인생의 철학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해입니다
그 오해를 다시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성경에 사도 바울이라든지 욥이라든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의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다 기록하게 하셨고 이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복음을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기회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기회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서 복음을 듣고 믿는 때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는 충분한 시간 80년이라는 세월이 주어지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적 사고에 매너리즘에 빠져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직접 내가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역시 인생의 철학으로는 너무도 좋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창조된 것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의 믿음은 미래의 일을 상상을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창조는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히브리서4장에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우주 공간 어디에 있다면 혹시 그렇게 구원을 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으로는 설명 자체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성경을 통해서 비유와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입니까?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설명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라고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고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도 생명을 우리 인생들의 생명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고 이것이다 라고 말씀을 해서 우리가 아! 그래 하고 깨달아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주입니다
창조가 된 것입니다. 지금 과학이 비약 적으로 발달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인생이 아는 것은 겨우 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가 된 것도 인생들은 겨우 4%를 알고 있고 그 우주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보고 도무지 설명 자체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입니까?
말로 쉽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의 말은 듣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갔다 왔다고 하는 그런 거짓말 장이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그가 이상한 상태에 빠졌을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그저 인생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그 아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것을 그대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지 마치 인생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철학적 지식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깨달을 수 없으니까 구원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까 피조물은 죽으면 끝이라는 것을 그래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혈과 정에 매여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고 이 구원을 미래의 일로 성경을 보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백해무익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헛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습니까? 그러면 성경이 서로 반대가 되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는데 그 안개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성경이 성경을 서로 모순이 되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사라집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죽으면 그 열조에게 돌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의 근원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실상이 되고 있고 그렇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시고 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길이라고 해서 우리가 육체로 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근원이 되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분이 반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구원의 근원이라고 말씀을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들만이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다윗의 시편이지만 그는 선지자로서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그대로 인용을 해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구원을 받으심으로 해서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신 일을 아들이라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바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본바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우리 성도의 구원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계실 때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생으로 오셨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구원을 받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인생으로 오셨는데 이렇게 구원을 받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를 보는 것으로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창조를 알아야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창조 전에 계셨던 분으로 그러니까 처음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 실상이 되고 그것이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는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선지자로서 예언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 그 구원의 근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9장6절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고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영원히 구원의 근원이 되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구원을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자기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구하라고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근거도 없으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종교적 집단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생각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의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해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라도
그분은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해서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다는 시편의 말씀을 응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next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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