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46쪽)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디모데전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다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초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가를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언어에 대해서 모릅니다. 아니 언어라고 하는 것 역시 우리 인생들의 철학적 사상으로 말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을 하시는 언어도 모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제가 언어라고 하는 것 역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지 실제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사용하시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아주 조금만 성경을 상고를 해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자면 고도의 컴퓨터가 있고 그 안에 모든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안에 오만가지의 캐릭터들이라고 제가 아는 지식으로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대화가 가능합니까?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AI시대를 살다보니까 이제는 그런 것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인생의 과학적 지식이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초를 모르고 성경을 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감동입니다
이미 앞에서 어느 정도 말씀을 했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감동이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가를 알게 된다면 성경을 대하는 마음부터가 달라지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이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저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이시라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고 그리고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동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딱 한번 사용을 하고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인생의 언어를 안다고 해서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은 창조주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를 해 주셔서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 것이지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습니다.
제가 너무 어렵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냥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믿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말씀을 하느냐고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경을 보고 알 것 같았으면 굳이 이렇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굳이 성령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알아서 믿으려면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아니 이렇게 알기 위해서 힘쓰면서 믿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기초도 모르고 믿는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이 될 수 있는가를 우리는 상고를 해 보아야 하고 또 하나님께 지혜도 구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이 시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에 복음이 전해지던 때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부터 안 믿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그들을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성경을 보았는가 하면 성경의 문자를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아는 그대로 그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고 자기들이 지키려고 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텍스트입니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알고 믿음이라는 단어를 알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인생의 언어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표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임을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는 언어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인생을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고 그 철학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은 그저 문자를 아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일이 주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성경을 안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지만 그들이 영접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7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인생들이 이런 말씀을 이해를 할 수 없으니까 헬라어의 원어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철학으로 이해를 하면서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감동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웨슬레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성경은 성경의 기자들을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간절한 마음의 기도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감동시키며, 초자연적 능력으로 말씀의 이해를 도와준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동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왜 이 단어를 사용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웨슬레와 같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저 감동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아! 하나님께서 감동을 해 주셔서 선지자들이 이 성경을 기록했구나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인생의 철학으로만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리고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을 가지고 성경에 대해서 온갖 미사여구를 써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이해를 해서는 절대로 성경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이렇게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에 대해서 기초조차도 정립이 되어 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 교회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소를 짓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에게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입니다
모세가 성소를 어떻게 지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에게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를 보여 주시고 지으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지시하셨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이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와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 자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초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 교회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하게 하신 일이 바로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소가 무엇인가 하면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세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인생들이 보고 있지만 이제 광야 교회에서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하게 하신 일이 바로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을 하는데 그 성소가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소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소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이해를 하면 웨슬레가 말을 하는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 교회에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성소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소가 그저 감동이라는 단어로 이해를 해서 모세가 성경에 기록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을 우리는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그저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광야 교회에 나온 모세에게 감동을 해서 이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성소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것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감동입니까?
하나님이 그저 모세에게 감동을 하셔서 모세가 감동을 받는 그대로 이 성소를 지었습니까? 기초적인 말씀입니다. 이 성소는 분명히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이 이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성소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볼 수 있게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늘 말씀을 하지만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인생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감동을 해서 이 성소를 지으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을 보여주시고 지시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감동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성소입니다. 이 성소를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이 성전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산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래서 그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성소를 지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데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주셨는데 마치 샤머니즘과 같이 그렇게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이 감동이라는 단어를 보고 거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샤머니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보고 아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니까 웨슬레와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이미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셨는데 그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입니다
창조를 하시기 전에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미래의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인생들은 그렇게 보고 있고 그래서 자기들이 죽으면 신체와 영혼이 재 연합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저 역시 조금도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상은 하나님 나라가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광야 교회로 나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성소가 바로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일이 미리 정하신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을 받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는 분명히 성소를 짓는데 히브리서에서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저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을 선지자들에게 이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창조를 하시기 전에 이미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를 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시고 그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소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임을 깨닫지 못하니까 거기서 종교적인 행위만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단어로 이해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은 절대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도 없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그러니까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일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리고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6쪽)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인생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서도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아도 인생들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성도님들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그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경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기록이 되었는가를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저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감동이라는 단어만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 역시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의 언어를 알기 위해서 수백 번을 읽고 또 읽는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텍스트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된 세상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피조물과 창조주만 생각을 해도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늘 그렇게 성경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얼마나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았는가를 알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그대로 문자 그대로 성경말씀 대로 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행위가 되었다는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의 말씀 역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입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헬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디모데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성경의 텍스트를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은 자 되어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대충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지만 그 감동은 그저 인생의 언어가 아니라 이미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도 없고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입니다. 그 전에 이미 디모데는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들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반어적인 말씀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알았습니다.
마치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는 말씀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알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디모데가 어렸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에는 디모데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씀을 하고 또 히브리서에는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 외조모와 어머니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늘 성경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 역시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고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았습니까?
인생의 언어를 알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마치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바로 이어서 네가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성경을 보고 있고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텍스트를 보고 조금 더 공부를 하는 사람은 히브리어를 그리고 헬라어를 배우고 있고 또 고고학적인 것과 역사적인 사실을 배우면서 그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는 것은 어린 아이가 아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도 바울이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그렇게 디모데가 아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가 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실제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들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했고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을 증거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성경의 텍스트를 다 알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그 텍스트에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할 수 있습니다.
듣지를 못 했습니다.
종교 안에서는 아직까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는 말씀을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성도는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아직 신약 성경은 다 기록이 되지 않았고 디모데가 본 성경은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그는 성경을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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