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53:1-6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분을 삼위일체의 성자 하나님이라고 믿는다고 해도 우리 성도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힘이 든다고 해도 성경이 그렇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성경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하고 있는데도 인생들은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은 삼위일체라는 것을 자기들의 지식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곧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인생들은 종교를 만들기 시작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기들이 믿는 신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정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이제 수천 년이 지나갔지만 종교는 그것을 더욱 더 견고히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 압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이 말씀을 보기도 전에 인생들은 이단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믿음의 대상이고 그 믿음의 대상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인생의 형체로 입고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성경이 바로 그 말씀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이미 창조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있고 그것을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성경의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불행하게도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누구나 보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들은 영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도리어 십자가에서 못박아 죽이는 악을 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몰라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텍스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그렇게 증거를 받은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방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은 그저 종교인들에게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종교인이 되는 것을 싫어하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종교 안에 있으면서도 그저 표면적인 모습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 듣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들만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듣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꺠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 인생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누구에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일입니꺼?
그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역시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저에게 심하게 반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믿음을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고 있지만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성도가 지혜롭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철학에는 어떻게 보이는가를 이사야 선지자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한 순
어리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입니다. 그리고 번역입니다. 저 역시 히브리어의 원어를 확인을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문자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언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도 그렇고 핼라어도 역시 마찬가지고 우리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들 역시 마차나지입니다. 그것을 제가 무조건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주님을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면 인생의 철학으로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게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성경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자기들이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아는 것과는 반대로 행동을 하시는 것을 보고 당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그를 영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27:29절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풍채입니다
다른 말로는 위엄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니 그분이 십자가에서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이제 만왕이 왕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고 있습니다. 그때를 사도 마태가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이라고 하지만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엄입니다
왕의 위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 인생들이 볼 때는 아무 위엄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이것을 유대인들의 만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시는 일을 모세의 율법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주님께서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유대인들이 주님을 대하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와 경계가 되고 거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한 일 그대로 우리 역시 그대로 했다는 것을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2“10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멸시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받는 그런 멸시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왜 멸시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돈으로 그리고 부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는, 율법의 의를 쌓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멸시를 하는가를 사도 베드로 역시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사도 베드로는 더러운 정욕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생명의 도를 반포하셨지만 인생들은 그것을 성문법으로 보고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고 그들이 율법을 흠 없이 지키면서 주님을 멸시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병을 압니다.
주님께서 물론 우리 인생들의 육체의 병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병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지만 그것은 다 영적인 병을 비유로 해서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4:6절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얼굴을 가리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 표현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멸시를 당하는 일을 마태복음에서는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멸시를 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 종교를 보더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얼굴의 의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리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귀히 여기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셔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이 시대 종교는 삼위일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 영생을 포기를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문자를 보고 알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셔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그 말씀은 인생들이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셨다는 말씀입니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공동번역입니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병입니다
인생이 생각을 하는 그런 병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일을 병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을 소경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진리가 전해져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들을 문둥병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인생은 로마 시대에 있었던 사형 제도로 생각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사형 제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형 제도를 통해서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4:1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고난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인생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의미입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믿는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죄가 그쳤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육체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빛의 갑옷을 그러니까 생명의 빛을 얻는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의미를 모르고 있고 그런 그들에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고난을 당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입니다
그 고난으로 우리가 갑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이 주는 의미는 우리가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고 그럼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일 보다는 그 의미를 깨달아서 빛의 갑옷을 입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2000년 전에 있었던 로마의 사형 제도를 아는 것으로 감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십자가의 형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우상과 같이 섬기지를 않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일을 인생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부활절이라는 절기에 그것에 대해서 실제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로마의 군병에게 옆구리를 찔리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찔림이 바로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다 이루셨고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으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허물이 되고 있고 그 허물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찔림을 당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악한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이 바로 우리의 악을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표면적인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사야 선지자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채찍입니다
물론 로마의 사형 제도에 있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실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사형수들은 채찍에 맞고 있습니다. 그 채찍이 얼마나 가혹한가 하면 그의 반은 이미 죽은 상태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 후에 십자가를 달리 때문에 사람들이 하루 이틀 정도면 다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절입니다
그가 찔리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허물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아니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지를 못하고 인생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허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상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상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악한 일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악을 행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인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상함을 입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것을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채찍입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채찍이 의미를 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병에서 나음을 입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들이 이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상은 허물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죄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영적인 병에 들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일이 다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낫게 하시는 영적인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양입니다
우리 인생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은 시력이 나쁩니다. 그리고 목자가 없으면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양을 별로 접할 일이 없지만 근동 지방에서는 양과 염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그 문자를 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을 것 같았으면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안다고 해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 역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9: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 결과를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율법의 문제와 상관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결과가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그저 인생의 언어로 아는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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