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3:1-7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성경입니다
이제는 다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었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던 그 사상과 지금 이 시대의 사상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보는 인생들의 철학적 한계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기초가 되어 있지 않는 인생들의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늘 종교성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성이 아직까지 인생의 철학적 사상으로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보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어느 시대인가를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잘 알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포로가 되어 갔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 역시 바벨론에 의해서 1차로 포로가 되어 갔고 그 중에 에스겔 선지자도 있고 남 유다가 아직까지는 완전히 멸망을 당하지 않은 때입니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1차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스라엘에게는 얼마나 많은 예언자들이 있었는가를 제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인생들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전쟁이나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서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인생들은 그 종교성에 의해서 그들을 말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예언자들이 많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서로 다르게 예언을 하는 것을 우리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종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입니다
인생의 삶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삶도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을 하고 있고 전쟁이 있는 이 시대도 그런 예언가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
세상의 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예언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예언이라는 단어도 마치 인생들의 삶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시편에서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티끌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티끌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관여를 하신다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삶을 관여를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단어를 인생의 철학에 따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예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을 하실 때 이미 세상은 그러니까 코스모스는 다 창조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어야 합니다.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창조를 미완성으로 하셨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굳이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도 완전하게 하시지 못하는 신을 무엇 하러 믿고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가는 하나님 나라는 더욱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창조를 하신 일을 믿고 있고 그분은 완전하게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조를 하실 때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된 세상에 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에게 영생이 있음을 이 성경을 통해서 알게 하고 있고 그것을 알게 하는 예언이 바로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미완성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일을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외에 인생의 삶이나 종교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예언을 하지 않고 있고 그런 예언을 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전쟁입니다
바벨론의 1차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너무나 강대하기만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인생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예언을 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쟁이 있는 지역에서는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온갖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예언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예언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예언들은 다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그러니까 자기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닫고 있는 우리 성도는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까?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믿었다면 지금 남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오해를 합니다.
자기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스겔 선지자의 시대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를 보아도 역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자라고 하고 있고 삼위일체라고 해도 우리 성도는 그분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삼년 반 동안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시고 또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이제 그 육체를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음에 근심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고 또 주님의 제자로서 이제까지 함께 했기 때문에 당연히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런 종교성을 가지고 믿는 것을 주님께서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제자들이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유아적인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요한복음14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 다음 절부터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인생들의 철학이고 이 시대 종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면서 반어법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우리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인생의 철학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종교 안에서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영생을 주시는 줄을 기초조차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입니다
그 문자의 텍스트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들을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왜 초등학문 아래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으로 그리고 대제사장으로 또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는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번역을 하기도 인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고 신약 성경에서도 주님을 인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교회라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남 유다는 그 자체로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지금 이스라엘은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들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스겔 선지자의 시대는 당시 시대 상황을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고 이 예언이라는 단어는 그런 무당과 같은 예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는 인생이 하는 모든 말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당입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도 정말 무당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정세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설교로 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역시 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5: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도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왜 성령을 보내주시는가를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영생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가 하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을 사도 요한은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에 대해서 다음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내가 욥과 같이 삽니까? 아니 사도 바울과 같이 삽니까? 예수님처럼 삽니까? 성경에서 우리에게 언제 그렇게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욥도 그리고 사도 바울도 회개를 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삶입니까?
그리고 종교인으로 사는 일입니까? 다 무엇입니까?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성이 너무도 강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이 세상 철학이라고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원문보다 그리고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성경에서 그 의미를 깨닫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있는 것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성령이 오신 성도들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본 것이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아는 것과 믿는 일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히 이르고 있습니다.
우매한 선지자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우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는 한 부자를 대표로 해서 그가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3절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매자입니다
어리석다는 뜻도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는 이 단어가 거의 같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 안에서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신약에 와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우매합니다. 누가 그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그 종교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을 해도 저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를 이제 4장에서는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이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그러니까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날입니다
안식일도 날입니다.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도 날입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도 절기입니다. 그리고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도 절기입니다. 해를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이방의 종교인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을 드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 있고 그것이 다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해도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매한 선지자입니다
그것이 에스겔 선지자 시대만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단이니 정통이니 할 것 없이 이방의 종교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경계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4.“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이스라엘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누가 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여우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존재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포도원은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입니다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다는 말씀은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복음을 전해서 영생을 얻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다는 말씀은 그들이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있고 그래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도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지만 실상은 거짓 선지자에게 다 속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5.“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의 육의 일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하듯이 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실제 육체로 전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이 성경을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나 많은 폐해가 있었는가를 우리는 유럽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벨론입니다
그것은 종교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바벨론에 1차 포로로 간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육체를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정말 많이 보고 있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입니다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선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앞에서도 계속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비유로 해서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라고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시대의 일이 아니라 그때를 비유로 해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어떻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1:14절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허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도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믿음에 따르는 행위라는 정말 성경과는 반대가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2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교회입니다
속이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을 속이는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게 만들고 있고 그것을 속이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자유하게 온전한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고 그들에게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무엇이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하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그래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7.“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십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주님께 율법에서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고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까?
우리 성도는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비유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간음을 하지 않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그렇게 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속이면서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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