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6:19-23절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그 태생부터가 샤머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샤머니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입니다
왜 인생들이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성경의 문자와 같이 행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샤머니즘이 되고 있지만 인생들로서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있던 영화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선지자들로 감동을 하게 하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 바로 우리가 보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인생들이 성경을 본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에는 샤머니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는 우리 인생의 언어로 거짓과 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사는 우리 인생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역시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을 코스모스를 안다고 해 보아야 지극히 일부부분의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가지고 안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지구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코스모스를 안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짐승이 아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이 이성이 있고 철학이 있고 상상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샤머니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인생들이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도 우리가 수 십 년 전에 과학을 생각을 하면 앞으로 발전하는 과학 역시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보고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미 창조를 하신 일을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내가 성경을 안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샤머니즘에 빠지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봅니까?
정말 무지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으로 나타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경입니다
우리 인생이 성경을 본다고 하는 것이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서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안다고 하고 있고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는 일이 바로 샤머니즘이 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자기가 진리에 있어서 소경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말씀을 몇 번씩은 설교로 들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의 내용 자체가 거의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고 자기도 맹목적인 믿음이 있으면 사자의 굴에서도 건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서를 보면서 마치 그런 일이 이 시대도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은 이제 다 이루어졌고 우리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벨론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사에 의해서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고 있고 그 바사에서 다니엘이 총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당시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고 있고 그런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변개치 아니하는 법을 만들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네 나라입니다
바베론입니다. 그리고 바사입니다. 헬라입니다. 그리고 로마입니다. 그 나라들은 다 이 세상 철학을 대표로 하고 있고 종교를 대표로 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는 율법주의를 대표로 하고 있고 그 나라들이 그래서 율법을 강하게 정해서 지키고 있고 변치 않는 법을 정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 그 사건을 보고 아는 것으로 성경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을 고소를 하고 사자 굴에 넣는 것은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그것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19,“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바사의 왕입니다
다니엘을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법에 의해서 고소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소를 한 것은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그리고 기도입니다. 세상의 법과 그러니까 종교의 법과 다니엘의 기도가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자 하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다니엘서에서 말씀을 하는 네 나라는 종교를 대표로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에서는 법이 있고 그 법을 지키기 않으면 죽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들의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입니다
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다니엘을 고소를 하고 있고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의 금령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래서 그 신하들이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4절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을 어기면 죽는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리오 왕이 세운 법을 어기면 사자 굴에 들어가 죽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고소를 하고 있고 그 신하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법을 어기지 않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법을 어기면 죽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실제 다리오 왕 때에 법의 금령과 규례를 만들어서 그것을 어기는 사람은 사자의 굴에 넣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아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주장을 하고 있고 실제 메데와 바사의 금령과 규례를 어기면 사자의 굴에 넣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세상의 철학과는 전혀 반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더라도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입니다
주일입니다. 절기입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에 인생들은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종교의 교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요구를 하고 있고 그것은 마치 다리오 왕 때에 세운 금령과 규례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입니다
그 법을 무서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가 사자의 굴에 들어가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니엘은 도리어 세 번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알고 있는 당시 사람들이 고소를 해서 실제 다니엘은 사자의 굴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입니다.
그 신하들이 다니엘을 시기를 해서 그를 고소를 하기 위해서 금령과 규례를 만들어서 반포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다니엘을 구하려고 하지만 자기가 이미 어인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5장;8절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이 시대 종교인들이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자기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고 그 기도는 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우리 성도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왜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 기도를 했는가 하면 율법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유입니다
그 기도의 결과가 사자의 굴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다니엘이 자기 육체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다니엘은 자기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했고 그가 사자에게서 생명을 구한 것은 보이는 그 사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의 육입니다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단지 자기를 위해서 자기 육체를 위해서 기도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다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자 굴입니다.
마귀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에서 말씀을 하는 사자는 다니엘을 죽이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쁜 의미의 사자고 그것은 마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그가 비록 사자의 굴에 들어갔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육체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사자의 밥이 되는 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은 구원을 해 주시고 초기 교회에 성도들은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십니까? 다니엘서는 비유와 예표이고 그것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그 육체가 사자의 밥이 되었지만 그들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것을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20,“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리오 왕입니다
그는 다니엘이 모함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변개치 아니하는 법령과 규례에 따라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 넣었지만 그 역시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하지도 않는 일입니다
그가 아무리 유대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자의 굴에 살아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서 그 역시도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고 새벽에 일어나 사자 굴로 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16절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하나님의 종입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다니엘을 그렇게 불렀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면 왜 다리오 왕이 왜 다니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누구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일로 인하여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서 사자의 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선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법에 대해서 자유 합니다. 이 시대 누가 법에 대해서 자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사자의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지옥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법에 대해서 자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 베드로가 그 말씀을 하고 있고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니엘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보고 다리오 왕이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묻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다니엘과 같이 법에서 자유하고 있습니다. 그 자유 하는 것으로 우리는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법에 대해서 자유 하는데 그 자유로 악으로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이 없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남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를 한다고 해서 그 자유를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법에 대해서 자유하지를 못하고 있고 사자에게서 죽을 까봐서 무서워하다가 결국에는 사자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절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보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행하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율법을 그 문자로 보고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22:21절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사자의 입입니다
마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이 사자 굴 앞에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 인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해서 우리 역시 마귀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그를 사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실제 사자에게서 구원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일이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초기 교회에 성도들은 사자에게 그 육체는 죽을 찌라도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21,“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비유입니다
다리오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마귀에게서 죽는 것과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다니엘이 왕에서 고하는 것과 같이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자유 함으로 해서 그가 왕의 법령과 규례를 어겼을지라도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은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한 다니엘이 사자의 굴에서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육체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의 일입니다. 이 영의 일을 깨달았기 때문에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자기들의 육체가 실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믿음이 역사를 해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 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다니엘의 육체입니다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그것을 같은 육체의 일로 보았다면 그들이 죽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다니엘의 육체의 일이 영의 일을 비유로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우리가 믿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그렇게 믿고 사자의 밥이 되면서까지 죽을 수 있었습니다.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육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샤머니즘에 빠져 마치 지금도 이런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물론 다니엘이 말을 하는 사자는 실제 사자입니다. 그러나 그 사자는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고 마귀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사자의 입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 성도가 마귀에게서 구원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35:4절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문자입니다
히브리어에 집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히브리어를 조금 안다고 해서 이 말씀을 인용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해도 그들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상해치 아니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니엘서에서는 육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상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 생명을 상해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육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무죄함입니다.
왕이 세운 법령과 규례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가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오해를 하는 일입니다. 누가 무죄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무죄합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무죄합니까?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다니엘이 왕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이 무죄해서 사자의 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말씀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3,“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누가 무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뭐가 무죄한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 사람이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무죄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뢰함의 단어의 뜻이 믿음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일을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그가 다리오 왕의 법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보고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기도를 한 것은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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