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1:27절을 보겠습니다. (신 255쪽)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죄에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물론 주님은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전혀 모르면서 그저 교회 안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주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주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그것이 꼭 이스라엘에게만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거의 모두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부자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들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 되었습니까?
율법을 지켜서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마귀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들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들은 주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는 이스라엘과 지금 이 시대 이방인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고 이 시대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다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 역시 진리의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같습니다.
무엇이 같은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같습니다. 그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주일을 지키고 있고 그들이 식사를 할 때 손을 씻고 먹은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기도를 하고 먹고 있습니다.
모두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습니까? 역시 이 시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섬겼다면 이 시대도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졌고 바알을 섬겼어도 자기들은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우리는 뼈 속부터 율법주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율법주의자들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돌감람나무에서 찍어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경건치 않습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는 인생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본성이 무엇인가 하면 정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정욕이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정욕이 있는데 그 정욕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입니다.
사람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돌감람나무에 있는 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돌이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정욕 가운데서 행하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경건치 않은 가운데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있습니다.
정욕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정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어떤 것이 정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으니까 경건한 것이 무엇인지 경건치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경건치 않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행위가 경건치 않은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하면 의롭다 함을 얻어서 내 안에 좋은 열매를 맺어서 그 열매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온 이스라엘이 누군가 하면 경건치 않은데서 돌이킴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을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경건치 않은 것에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데서 돌이키심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온 이스라엘에 속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방의 교회도 이 율법의 정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정욕에 빠져 경건치 않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그들과 나 사이의 언약이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비밀입니다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는 것은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서 이렇게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어도 그것을 비밀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입니다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돌감람나무에 있는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어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가 좋은 열매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이제까지 그 유명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접붙이심을 전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고 거의 다 육체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꺾어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뿌리가 거룩한즉 우리 가지도 거룩함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경건치 않은 것에서 우리를 돌이키셔서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영의 경건한 것을 받아 우리가 영적인 이스라엘이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의 비밀입니다
그렇게 접붙이심으로 해서 우리 경건치 않은 자들이 돌이키심을 받아 경건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경건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육체의 정욕을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죄를 없이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죄가 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보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붙임이 되어서 좋은 열매를 맺어 구원을 받을 때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비유다보니까 이 시대 역시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27:9절을 보겠습니다. (구 997쪽)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의 죄악이 사함을 얻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니, 곧 야곱이 이교 제단의 모든 돌을 헐어 흰 가루로 만들고, 아세라 여신상과 분향단을 다시는 세우지 않을 것이다.”
야곱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는 죄 사함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지은 도덕적인 죄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죄를 말씀할 때는 거의 도덕적인 죄를 이야기를 하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풀리지가 않고 있습니다.
인용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인용도 모르고 있고 그 인용에 대한 비유의 말씀도 모르다보니까 성경이 전혀 풀어지지가 않고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교회가 이 세상의 도덕을 위해서 아니 세상을 도덕적으로 정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전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라도 비슷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결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를 말씀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인용을 해서 저의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같은 말씀이라고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 같은 말씀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없는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인용을 해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언약을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는데 그 저희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야곱의 불의입니다
그리고 그 죄 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저희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죄라는 그 단어만 생각을 하고 있지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그 뒤에 있는 말씀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이방 신상을 섬기지도 않고 있고 아세라와 태양상을 섬기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불의와 죄와 이 시대 죄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와 언약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불의와 죄에서 떠난 결과와 우리의 죄의 없이할 때의 결과는 같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이사야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고 있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지 않으면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말씀을 하나는 결과라고 하고 있고 하나는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없이함의 얻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의 불의를 속하시고 그 죄를 없이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의 첫 번째가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서진 횟돌 같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단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이 제단을 이교 제단이라고 했고 또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라고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의 제단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우상을 섬긴 제단이 가루가 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 우상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육의 일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의 재단이 가루가 되는 것이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대한 결과인가 하면 그것을 보고 야곱의 불의가 속하고 그 죄가 없어진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우상의 제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제단이 가루가 되는 것을 보면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야곱의 불의와 그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고 또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하고 그 죄가 없어짐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모르면 로마서가 도무지 풀릴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가 안 풀리는데 어떻게 로마서가 풀리겠습니까?
성도입니다
구원을 받을 온 이스라엘입니까? 그렇다면 이사야서의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의미도 모르고 로마서만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고 하면서 그 언약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의미를 모르니까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짓고 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하나도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나타나야 그 죄가 없이 할 때 저희에게 이루어질 언약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성경을 전혀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온 이스라엘에 속한 자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의 의미를 모르니까 이사야의 말씀을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게 하지 못하게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와 그림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의 불의가 속하고 그 죄가 없이하심의 결과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세라입니다
이 시대는 아세라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건물의 교회가 아세라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를 아세라라고 하면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깨어 있는 목사들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목회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애써 외면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좋은 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이방의 교회 역시 수많은 아세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물의 교회는 다 아세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건물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할 처소가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그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다락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락방을 교회라고 간판을 내 걸고 세우는 순간에는 아세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아세라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수많은 아세라가 이 시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건물을 지어 놓고서 교회에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는 아세라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시대의 아세라가 이 시대 교회 건물로 그대로 있습니다.
처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할 수 있는 그런 처소면 됩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해서도 안 되고 그것은 단지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그런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상이 되는 순간에 그것은 아세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아세라가 되어서 그것을 섬기느라 솔직히 교인들의 뼈골이 빠지고 있습니다. 그 아세라를 짓기 위해서 수많은 헌금을 강요를 받고 있고 또 그 아세라를 가능한 크게 지어 놓고서 그것을 유지하느라 또 그만큼 헌금을 하면서 자기들이 세운 아세라를 섬기는 일로 혼이 빠져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교회는 아카데미 강의에서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설교에서도 교회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다 아세라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아세라 상이 없어지지 않으면 여러분의 죄를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아세라를 세우기를 경쟁을 하고 있고 더 좋은 아세라를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태양상입니다
이 시대 태양상이 없어졌습니까?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이 태양상입니다 태양에 따라 지키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태양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태양상이 그대로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은 날을 정하고 달을 정하고 절기를 정하고 해를 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이방 신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아세라를 세우지 않고 태양상을 세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 안에서 그런 것은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들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라고 한다면 그는 정말로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죄가 없어졌습니까?
이 시대 죄가 없어졌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한 제단의 모든 돌로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된 것이 이루어졌습니까? 그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못 보면 정말 삼천포로 빠져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의 죄가 없어졌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수많은 우상들에 세워지고 있고 서로 경쟁을 하면서 더 크고 웅장한 아세라를 세우고 있고 태양상을 세워 놓고 그것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비유를 모르면 그는 평생을 죄 가운데서 살면서도 마치 자기 죄를 하나님께서 없이 하신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을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의 죄가 없어졌다고 말을 하면서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있고 아세라와 태양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온 이스라엘입니까? 그들은 온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아사야 선지자 때의 야곱과 같습니다. 그들의 제단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고 아세라가 세워져 있고 태양상이 세워져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죄를 사해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 입니다
도덕적인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는 이미 주님께서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죄와 싸우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온 이스라엘에 속해 있다면 우리에게서 반드시 죄가 없어지는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들의 죄를 없이 해 주셨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언약이 이루어져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안 풀리면 로마서의 말씀은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했던 그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서 다시 서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는 언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사야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제단에 우상들을 모르고 있고 아세라상을 모르고 있고 태양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다시 서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없이 하신 것에 대한 언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3:5-6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우리 성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성도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누가 온 이스라엘에게 속한 자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막연하게 보면서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가 없습니다.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그 죄는 우리 죄 뿐 아니라 이 세상 죄까지도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짓고 있는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죄를 가지고 우리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죄를 없이하시려고 나타나신바 되었습니다. 어느 죄입니까? 우리가 도덕적으로 지은 죄를 없이하시려고 나타나셨습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 죄도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신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 입니다
사도 요한이 어떤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의 말씀과 같은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신바 되었는데 어떤 죄인가 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죄 그리고 아세라를 섬기고 태양상을 섬기는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없이 하십니까?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죄가 도덕적인 죄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도덕적인 죄를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범죄를 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그가 죄를 없이 하셨다고 하면서 자기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목사들 중에서 자기가 육체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죄가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가 하면 주님이 오셔서 죄를 없이 하셨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진리를 알지 못해서 모두가 범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범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범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이를 믿는 성도는 범죄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범죄를 하지 않는가 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아세라를 섬기지 않고 태양상을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우상이 되고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세라를 세우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고 아세라를 섬기는 일로 모두가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죄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의 죄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교회 안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는 지혜가 없어서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우상을 섬기지도 않고 있고 아세라를 섬기지도 않고 있고 태양상도 섬기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교회를 세워 놓고 심지어는 그 교회에 이름까지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에 따라 날을 지키고 있고 달을 지키고 있고 절기를 지키고 있고 해를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반드시 죄가 없어져야 합니다. 죄를 지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정말 성경은 이 세상 초등학문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오묘하게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 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그 경륜이 우리의 지혜로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성경의 문자에서 구원을 말씀하면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자를 돌이키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를 믿게 역사를 함으로 해서 그가 믿어서 구원을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주님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다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경건치 않음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경건치 않음에서 돌이켜야 하는데 경건치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니까 돌이키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욥을 돌이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욥을 돌이키시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다가 자기가 지키는 그 율법으로 화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돌이키셔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하시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려고 하는 우리 이성과 대적을 함으로 해서 우리가 경건치 않은데서 돌이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렇게 돌이킴을 받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죄를 없이 하셔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성도인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자기들을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경건하게 하시고 자기들의 죄를 없이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죄를 없이 하신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말로만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결과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이방 신을 섬기지 않고 아세라와 태양상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 죄가 없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게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전혀 이루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이루어져 있지만 의미적으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우상이 얼마나 성행을 하고 있고 아세라와 태양상을 얼마나 많이 섬기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1장까지 계속해서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구원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율법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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