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54쪽)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은혜입니다
성경에 이 은혜라는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아주 쉽게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 줄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자기 백성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교회에는 매주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이 그렇게 하다보니까 작은 교회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종교의 상술에 거의 모두가 속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되려면 영생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 나온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사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를 교회 안으로 전도한 사람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있습니까?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의 사기에 모두가 속고 있습니다. 종교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지식이 아니라 끊임이 없이 그들의 혼을 세뇌를 시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이 시대는 종교라는 그물이 사방에 펼쳐 있습니다. 강에 어부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 촘촘히 그물을 쳐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강은 빠져 나갈 수 있는 고기가 많이 있지만 종교가 쳐놓은 그물에 사람이 빠져 나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고기를 잡는 그물보다 더 촘촘히 쳐 있어서 종교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거기를 피해서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자는 피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부자는 절대로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행위들로 인하여 부자가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부자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자를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면서 교인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는가 하면 부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하고 있는 그들의 행위가 무엇입니까? 다 부자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옳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스스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은혜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은혜로 되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부자는 은혜가 무엇이라는 것 자체를 모릅니다. 아니 누군가 은혜를 준다고 해도 도리어 기분 나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자기에게 무엇을 거저 준다 해도 그것을 감사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분 나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어떻습니까?
아니 자기는 도저히 그것을 가질 수 없는데 주었다면 그는 그것이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누군가 필요에 의해서 꾸어 준다면 아니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꾸어 준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되기보다는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원은 반드시 은혜로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몰라서 은혜로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율법의 의가 있으면 안 됩니다. 아니 종교적인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는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같이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있습니다.
은혜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말씀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만약에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게 되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를 하게 되면 은혜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그가 행위를 하는 순간부터는 은혜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단 한 가지라도 나타나는 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닙니다. 엘리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바알의 선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행위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은 바알이라는 풍요의 신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실상은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무슨 결과가 생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무슨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 입니까? 11장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 어떠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두가 바알을 섬겼다고 하면서 엘리야가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되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면서 만일 행위를 하게 되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떠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을 섬김으로 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 해서 부자가 되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영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세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은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모두가 내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종교가 없다 해도 사람이 죽으면 좋은 데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하게 살아야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기 때문에 의롭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성경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외에 어느 것이더라도 이 세상에서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 그들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바알에 귀속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바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도 바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랐고 이 시대 역시 바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역시 이방인들도 바알에게 귀속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바알에게서 구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에게서 구하는 것을 얻는 성도는 절대로 바알에게서 구하지를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는지 또 바알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구하기보다는 바알이 주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이 지구까지도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에덴을 창설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담은 사단과의 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짐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지구를 주셨지만 그것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생명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 지구도 빼앗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창조주하나님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이 지구입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제 사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을 때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난 후에 사단이 시험을 하면서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 주면서 내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단이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님께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지구는 사단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구 안에서 있는 모든 영광입니다.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면 사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구 안에 있습니까? 지구 밖에 있습니까? 정말 이 정도로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나타내고 있는 그 모든 행위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구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함께 주시지 않습니다. 이 지구의 것도 주시고 하늘의 것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의 것입니다
이미 그것은 각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분복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실 수 없습니다. 왜 주실 수 없는가 하면 그것은 이미 사단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 할지라도 남의 것을 마음대로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사단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우리 신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입니다.
신체가 아닙니다.
우리 아담의 씨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영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신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담의 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를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누가 받습니까? 가난한 자가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 하면 행위에 열심을 내서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아닌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받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다른 것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받지 못했는가 하면 모두가 바알에게 귀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에게 어떻게 귀속이 되었는가 하면 그들은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는 부자가 되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했습니다.
경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와 경계입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을 왜 받지 못했는가를 알아야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하고 자기들은 교회 안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과 똑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배가 부르실 정도로 제사를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을 배부르시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알고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하는 것을 얻은 택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행위가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은 행위를 했고 자기들은 진심으로 믿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완악하여 져서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자는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부자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방의 교회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가 자기들을 완악하게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시편4:2절을 보겠습니다. (구 806쪽)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셀라)”
고린도후서1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97쪽)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했습니까? 그것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역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육적인 이스라엘을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허사를 좋아합니다.
허사, 소용이 없는 일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을 허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 하면 바알의 사상에 빠져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에 대해서 허사가 무엇인가 하면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에 있어서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인데 사람들은 그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그리고 일부의 사람의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허사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허사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해 아래서 하는 수고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헛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부자가 하는 모든 행위는 허사가 되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교회도 성경을 보면서 역시 자기들이 하는 행위만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새벽예배에 나가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세례를 받고 있습니까?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는 그러한 모든 행위가 다 허사가 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그런 일을 더 굳게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허사입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허사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허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허사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모든 행위가 허사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허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궤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를 말씀을 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궤휼을 구하는 것은 다른 복음을 용납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말씀을 했습니다. 복음은 내가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면 다른 복음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고 그것을 시편에서는 우리 인생들이 궤휼을 구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좇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를 강해를 하면서 이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라도 하면 그것이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왜 율법의 한 행위가 다른 복음이 되는가 하면 율법을 하나 지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고 그것을 못 지키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다른 복음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고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은혜로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허사가 되고 궤휼을 구하는 것이 되어서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 해도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 은혜가 허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까? 이방의 교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미리 자기 백성을 아신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누군가 하면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아서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거지와 같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4:3-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4쪽)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입니다
왜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누군가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꾸어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시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행위로 부자가 되어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왜 나왔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하는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아 천국가세요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천국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하고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기를 당한다고 생각을 합니까? 자기 마음에서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복음도 듣지도 않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듣는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까?
그것의 문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지옥으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저를 비난하고 반대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텍스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는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문자적으로 지켰던 그 율법의 행위를 예수님께서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알고 그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를 하였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 했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 했습니다
왜 구하여도 받지 못했는가 하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어느 것을 정욕으로 쓰려고 구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욕에 빠져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구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야고보서를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 유명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해석을 해서 더욱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욕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정욕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한 것은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잘하기를 위해서 구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고 싶다고 하면서 정욕에 빠져서 율법의 행위를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 인에서 이렇게 정욕을 위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정욕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정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정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욕이라고 하니까 나쁜 의미의 단어만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은 구하는 것을 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해서 받지를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누가 간음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여자들이 간음을 하고 있습니까? 문자적이라면 남자는 간음을 하지 않고 여자만 간음을 합니까? 문자를 고집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라는 이 말씀이 남자는 간음하는 사람이 없고 여자만 있어서 주의 형제 야고보가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간음을 하려면 남자도 같이 간음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간음하는 여자들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간음하는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정욕에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율법의 행위를 잘 하기를 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국가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은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간음하는 여자들에게 세상과 벗이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세상과 벗이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입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있는 무엇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문자를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육체로 행하면 그것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욕에 빠져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원수 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에게 구하는 것을 주겠습니까? 더구나 그 원수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입니다. 이 원수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이 율법과 벗이 되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습니까? 이 시대는 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율법주의를 기본 교리로 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세상과 벗이 되지 않으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얻고자 정말 희생을 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맹목적으로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next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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