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8:19-22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은 이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기초를 든든히 세우지를 않아서 자기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지를 망가를 하면서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가 성경을 본다고 해 보아야 그는 그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에 그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사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에게는 없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가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경계의 말씀도 그저 애써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일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있지만 자기가 이해를 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남에게 하는 말씀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입니다.
누가 그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바로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교인들은 신약 성경을 아예 안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럼 사도 베드로가 하는 말씀은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하면 이 시대 그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바로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입니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인들이 보고 있고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잠언을 보고 있고 그러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그들의 다수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 악한 눈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입니다
내가 악한 눈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우리 인생 전체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28장1절의 말씀을 보면서도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는 말씀을 보면서 자기는 종교 안에서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인과 악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의인이라고 이미 마음에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철학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본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너무도 안일하게 생활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영생도 모르는 그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철학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실제 종교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악인을 대적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말씀할 때는 전체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 율법 그리고 몇 가지 지키는 율법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더구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면 신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는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전체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전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율법은 누가 지키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서도 자기들이 다 지키는 것과 같이 주장을 하는 악인들과 대적을 하셨습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악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는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를 하는 그들을 주님께서는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주장을 하는 그들과 대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오나전케 하신 일을 믿는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주의자들인 악인들과 대적을 하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 역시 율법주의자들과 대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우리 성도는 종교인들과 대적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알고 보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기초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인생들이 종교 안에서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면서 합리화를 시키다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만 외식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마태복음이라는 성경을 아예 안 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이 성경을 안 본다는 것을 모르시고 사도 마태에게 기록하게 하셨다면 우리는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족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것도 모르고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는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잠언 역시 솔로몬이라는 왕이 기록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이 시대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신약과 구약의 모든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유대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신약 성경을 안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분명히 유대교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지도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고 그렇다면 그들 역시 유대교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고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유대교인들이 신약 성경을 안 보는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 신약성경을 누가 보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고 그렇다면 그들 역시 유대교인들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저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아무리 성경을 본다고 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에게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들이 언제 한번 하나님을 믿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한 번도 믿음이 있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고 그런 그들을 사도 바울은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울입니다
그들을 성경에서 보면 우리 이방인들이 보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아도 자기들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거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3: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토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해도 역시 이방인들도 좋은 땅에 씨가 뿌려 지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복음의 씨를 뿌려 주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들이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토지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입니다 이 씨 뿌리는 일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제자들이 다시 묻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어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토지를 경작하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땅이 되어 있는 성도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성경을 보고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를 깨닫는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토지를 경작해서 곡식이 생기면 먹을 것이 많은 것과 같이 좋은 땅이 되면 그러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일을 믿는 성도는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어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9-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교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국문학자들도 이 말씀을 비교법으로 보고 있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방탕이라는 인생의 인어를 아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입니다
방탕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지금 잠언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언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는 성경을 그가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아는 것으로 자기 지식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방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잠언에서 말씀을 하는 방탕을 좇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종교 안에서 육체의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방탕을 좇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종교 안에서 얼마나 육체의 일을 많이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하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육체의 일인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제가 육체의 일이라고 하면 자기들의 믿음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내가 육체로 하는 모든 일이 육체의 일입니다 그것도 이해가 안 된다면 참담하기만 합니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육체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는 제가 아무리 말씀을 해도 자기들이 육체로 종교 안에서 행하는 일이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방탕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 도리어 저에게 화를 내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그 육체의 일에 더욱 더 열심을 내는 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종교는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성경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이 번역이 된 성경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기초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다는 것을 늘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절입니다.
그리고 20절입니다. 성경은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는 성경은 15세기에 편집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때 지금과 같이 장절을 구분을 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보는 성경입니다
19절과 20절은 사실 연결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절이 구분이 되다 보니까 번역도 이렇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장절이 연결이 되어 있다면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방탕을 좇는 것과 같이 스스로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입니다
제가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들을 판단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제가 영생을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 지금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해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100% 옳다고 주장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성경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인생의 편의를 위해서 마음대로 편집하는 것 까지도 저는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절입니다
물론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편리함이 더 많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가끔 성경을 보다보면 이런 말씀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장이 바뀔 때 앞에 장에 있어야 하는 말씀이 다음 장에 있는 것까지도 보고 있고 정말 그 말씀을 해석을 하기 위해서 2-30쪽을 쓰고 지우기를 몇 번을 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19절입니다.
이미 전체 말씀은 해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20절의 말씀은 19절을 이어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방탕함을 좇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새번역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은 빵 한 조각 때문에 그런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요한복음8:15절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성경입니다
때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우리 성도는 영생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기초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토지를 경작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씨 뿌리는 것을 비유로 해서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연결입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은 빵 한 조각 때문에 그런 죄를 지을 수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서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람의 낯을 보고 재판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을 가지고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판단을 하는 것은 마치 배가 고파서 한 조각 떡을 먹기 위해서 그것을 훔치는 것과 같은 일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는 이 여자가 비록 간음을 했다고 하지만 그 육체의 일로는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자기 철학에 따라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사람이 낯을 보고 재판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마치 배가 고파 떡 한 조각을 훔치는 일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는 망각을 하고 있고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배가 고파 떡 한 조각을 훔치는 죄를 지은 것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영생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영생입니다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이 아버지와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를 이 세싱에 오셔서 지금도 아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탕한 자가 되어서 육체의 일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종교가 되어서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6:17절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악한 눈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이 성경을 보는 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다수가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는 악한 자가 되어서 세상 제물을 얻는 것과 같이 율법의 행위로 쌓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입니다
디모데전서 역시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입니다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재물을 얻기에 급합니까? 이 시대 종교는 날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고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부한 자들이라고 그리고 잠언에서는 악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누가 이 성경을 보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 이렇게 악한 눈을 가지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로 재물을 쌓기에 급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5:2절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재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다 재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그 재물을 보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고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지옥에 간다는 저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재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입니다
그 재물은 썩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썩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악인이 되어 이 재물을 모으는 일에 악한 눈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철학은 이 믿음으로 사는 일을 모르니까 자기 재물을 모으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런 행위를 잘 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하는데 주의 형제 야고보가 그런 재물이 썩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사도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안식일이라는 날을 지키면서 그 날에 온갖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으니까 종교에 빠져 소가 푸주로 가는 것과 같이 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31:6-7절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
재물입니다
율법의 행위의 의를 비유로 해서 재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고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장에서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독주입니다
그리고 포도주입니다 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가 되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종교 안에 들어가는 순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와 같이 생명의 떡을 먹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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