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14:1-2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율법입니다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명기의 이 율법은 시민법에 해당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종교는 분리를 해서 말을 하고 있고 그들의 교리를 보면 제사법과 시민법은 폐하여졌다고 하고 있고 그리고 도덕법은 하나님의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그렇게 분리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율법 전체를 하나의 율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그 교리부터가 이미 성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하나를 말씀을 할 때도 율법이고 전체를 말씀할 때도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따로 떼어서 말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를 주장을 하고 있고 그 종교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율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자체부터가 이미 율법을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저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대한 종교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성경을 보는 것도 그들의 교리에 따라 맹목적으로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 율법의 행위를 말씀을 하면서 제사법과 시민법을 제외를 하고 율법의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책입니다
이방인들이 보는 율법 책은 제사법과 시민법을 분리를 해서 도덕법만을 새로 편집을 해서 율법 책으로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 책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모세 오경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에서 제사법과 시민법은 제외를 하고 있지를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 자체로 이미 율법을 모르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자들의 철학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변질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그것을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을 하면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참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참으로 보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으로 나누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보는 성경 전체가 비유와 예표로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이 성문법입니까? 모세의 율법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문법이니 불문법이니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율법을 반포를 하게 하셨는가에 대해서 그 기초부터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문법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문서로 작성이 되어 있는 율법을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언어로 작성이 되어 있는 모세의 율법을 성경에서는 의문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문의 율법은 이제 폐하여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문의 직분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일군입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의문의 일군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의 일을 깨달아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를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이 율법에 대해서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성문법이라고 하면서 문서로 작성이 되어 있는 법을 보고 그것에 순종을 하는 것을 그러니까 그것을 지키는 것을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성도들에게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의문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종교인들이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이 다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문법으로 보고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그대로 지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순종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하나를 지켜도 그리고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도 역시 율법이라는 것에 순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런 의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인생들은 다 성문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전이 없어지고 문명이 발달을 하다 보니까 종교는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어느 것은 지켜야 하고 어느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의 철학의 한계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집사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성문법이 아니라 생명의 도에 대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은 율법주의 본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모세의 율법을 성문법으로 보면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종교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성문법이 아니라 생명의 도라고 하면 스데반 집사와 같이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시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종교는 자기들의 힘이 강해지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우리가 이 시대도 중동에 있는 이슬람을 통해서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드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만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종교는 제사법과 시민법은 폐하여 졌다고 하고 있고 도덕법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법을 지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문법으로 보고 있는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도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1.“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시민법입니다
아니 성경에서는 시민법이라고 규정을 하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시민법이라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신 생명의 도에 대한 말씀을 폐하여졌다고 하는 무지함의 극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본래 모세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반포를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모세가 율법을 반포를 하니까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의 피로 맹세를 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성경을 마치면서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교리로 정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앵무새와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생명을 얻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4-5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사도 바울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우리는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사는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제사법이라고 하고 있고 시민법이라고 하고 있고 도덕법이라고 하면서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문법과 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그 날에 온갖 종교의 의식에 따라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종교적 의식에 따르는 행위지 믿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성문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어리석음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입니다
그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그가 아브라함이라고 해도 그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녀를 사도 바울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들입니다
그 아들들이 언제 있었습니까? 창세 전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 후에 있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다윗도 그렇고 우리 이방의 사도라고 하는 사도 바울 역시 창조 후에 있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언제 났는가 하면 창세 전에 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들로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입니다.
우리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죽으니까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그렇게 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요한일서를 시작하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의 도를 모르니까 인생들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기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8:2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우리 인생입니다
창조에서 보면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에 따라 진화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그저 창조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 제자 중에 하나가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을 알고 아버지를 장사 하고 나서 주님을 좇겠다고 하자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들은 창조에서 보면 다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지금 나를 보고 살아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정의를 해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는 죽은 자이고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보고 지금 신명기에서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우리 육체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신명기의 말씀을 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30:1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
우리 성도입니다
육체를 보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먼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입니다. 그 죽은 자를 위해서 살을 베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에 몸에 상처를 내거나 앞머리를 밀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몸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가 죽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창세 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가졌던 영화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을 통해서 지금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율법을 보고 시민법을 도덕법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문법으로 보고 있는 율법은 폐하여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성경에서 생명의 도를 깨달아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은 자입니다
누가 죽은 자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에서 보면 다 죽은 자입니다. 제가 우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쉽게 말을 해서 안드로메다은하에서 보면 지금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억 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에스겔 선지자는 우리 인생을 무덤에 있는 자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 일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죽은 것을 보고 상처를 낸다는 것은 마치 그 인생이 의로운 인생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문입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모세의 율법은 생명의 도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에서 보면 죽은 인생들인데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죽은 자인데 그 죽은 자를 위해서 살을 베고 고통을 감내 한다는 것은 그 죽은 자가 마치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죽게 하신 것과 같이 생각을 한다는 말씀이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죽은 자입니다
거기서 산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산 자가 있는데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있는데 그가 죽은 것과 같이 상처를 내면서 애도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육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음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아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다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자가 죽은 것을 가지고 그 죽은 자를 위해서 그러니까 육체가 죽는 것을 보고 상처를 내면서까지 애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유교는 삼년상을 치른다고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하면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위해서 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인척이 죽거나 부모가 죽은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를 믿는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1:7절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비유입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고린도전서를 보고 이방의 종교의 어느 종파들은 여자가 머리에 진짜 수건을 쓰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 육체는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이든 아니면 종교 안에서 그저 종교인으로 살았든지 어차피 인생은 다 한번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죽은 자입니다
그를 위해서 머리를 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는 영광을 비유로 하고 있는데 마치 영광이 사라진 것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인생의 육체의 죽음인데 그 육체를 보고 영의 일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마치 영생과 상관이 있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남자와 여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도 역시 영생을 얻은 자를 남자를 비유로 해서 그리고 교회 안에 있지만 아직 영생을 얻지 못한 자를 여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일은 창세 전에 있던 영화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창세 전에 주님과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인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입니다
육체를 보고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와 하나님의 자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마치 육체의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애도를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종교인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가 죽은 것을 보고 그 육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데 그 육체가 죽은 것을 보고 마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창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성도가 육체의 죽은 자를 보고 그 육체를 위해서 마치 진짜 죽은 것과 같이 그렇게 애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태초에 있는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 인생인 창조에서 보면 죽은 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새번역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주님께서 땅 위에 있는 많은 백성 가운데서 당신들을 선택하여, 자기의 귀중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거룩한 백성입니다
우리 육체를 보고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 육체를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육체에 대해서는 창조에서는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에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민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는 이미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라는 의미에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육체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보고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함을 입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서1:17-1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자기 기업의 백성입니다
서도의 부르심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게 하십니다.
너희 하나님의 성민입니다. 그 일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생명에 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선언을 해 주시는 말씀이고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고 죽은 자를 분별하는 성도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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