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00-1,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윤주만목사 2025. 2. 26. 08:15

로마서10:11절을 보겠습니다. (253)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자기 마음으로 믿고 있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허망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허망한 말인가를 모르고 그저 믿으라는 말에 미혹이 되어 있습니다. 실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로 허망한 것을 하고 있으면서도 믿는다고 굳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을 믿지 못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을 보고 믿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습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추상적인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하나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막연합니다.

그리고 허망한 말이 교회 안에 난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 허망한 일에 마음을 다 빼앗겨서 예수 그리스도를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 허망한 것이 사람의 이성에 너무 좋게 보이니까 굳이 성경에서 지혜를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의에 이르려면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합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정도로 끝이 나면 안 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제사 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의 말씀만 보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대제사장이 하는 일을 알아야 그 예표를 보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하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마음으로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 일을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 가셔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사해졌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로운 이스라엘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의입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것이 의입니다.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님을 다시 볼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저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의에 이르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믿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자기가 의에 이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하늘에서 살 수 있는 의로운 생명이 있어야 의에 이른 것이 될 수 있는데 이것도 모르면서 마음으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의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책망하시는 말씀도 모르고 있고 어떻게 의에 이를 수 있는가도 모르고 교회 안에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는가를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심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이제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의에 이르러 우리 안에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습니다. 그 생명으로는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장사가 되어 죽은 생명으로 어떻게 주님을 다시 볼 수 있습니까? 이제 그 생명이 아니라 의로운 생명이 주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이 일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른다는 것을 시인함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백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 일에 대해서 시인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시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고백입니다

그리고 시인을 합니다. 거의 비슷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고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어떻게 고백합니까? 고백이라는 단어는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백은 자기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어떤 일이기 때문에 자기의 것이 아니라도 시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면 이 말씀은 시인이라는 단어가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시인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도 모르는 그들이 시인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것이 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시인합니까?

사실을 알아야 시인할 것 아닙니까?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시인할 수 있습니까? 영의 일에 대한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무엇을 시인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너무도 막연하게 자기들이 시인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가지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 구원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분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이 본분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은 이 본분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은 믿음이 있는 자가 아니라 행위를 함으로 해서 부딪칠 돌에 부딪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지만 이 믿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구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서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전제 조건이 자기의 의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의를 세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의 의를 세우면서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15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곳에서 우리나라만 해도 천만 명이 넘는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만 하면 영생이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믿는다는 의미를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압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안다고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만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하면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사실 게임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더 잘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종교적인 믿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들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어디서 봐야 합니까? 성경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아들에 관하여 보고 알아서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에서 아들에 관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관하여 보고 있고 그것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어서 교인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주님이 하신 일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전혀 믿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의 생각대로는 너무 잘 믿고 있어서 도리어 탈이 되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로마서10장에서 시작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누가 힘써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단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전제 조건이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의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의가 하나라도 세워지는 순간 그는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얼마나 많이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자기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하고 있는 그 모든 행위가 다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 것이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를 믿는 데는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를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니면 그는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니면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똑같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이스라엘이 지키면 그것이 율법이 되고 자기들이 지키면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단이 지키면 그것이 율법이 되고 자기들이 지키면 그것이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기준도 없이 그저 자기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옳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든 이단이 지켰든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지켰든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삼가 지키는 것을 자기 육체로 행했다면 그는 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결론적으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전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교회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들과 교제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식사를 할 때 손을 씻고 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식사 기도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자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그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진심이라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6:14-15절을 보겠습니다. (29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믿는 자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보고도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은 믿는 자이고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이미 초대 교회에 벌써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믿지 않는 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이제 막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가 되어 있는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사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믿는 자가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주님이 오실 때 까지가 2000년 정도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2000년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어떠했는가를 보면 이 시대가 어떠한가를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가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들은 믿는 자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끼리 멍에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지 그 안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는 100명도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저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믿는가 믿지 않은가에 대한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율법 모릅니까?

내 육체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다 율법입니다. 주일 율법입니다. 그 주일에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 다 율법입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절기 다 율법입니다. 물세례를 주는 것 율법입니다. 성찬식 역시 율법입니다. 제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에서 하나라도 하고 있으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를 사도 바울은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인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를 믿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 시대 안식일 교회와 정통과 그리고 구원파와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이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율법을 지키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안식일 교회입니다

그리고 구원파입니다. 다락방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까?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정통 교회의 목사들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안식일 교회나 구원파나 다락방의 목사들보다 성경적 지식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무슨 차이입니까?

율법을 어느 것을 지키느냐에 따라 정통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율법을 지키면 정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자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하면서 그들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그들을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믿지 않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구원파가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 역시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통이라는 교회는 자기들보다 덜 율법을 지킨다 해서 이들이 방종을 하는 이단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쉽게 말을 해서 다 똥이 묻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서로 너는 똥이 덜 묻었고 너는 똥이 더 많이 묻었다고 하면 덜 묻었으니까 이단이고 많이 묻었으니까 너도 이단이라고 하면서 적당히 묻어야 정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배설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악취가 나고 있는데 그 악취가 조금 더 나고 조금 더 많이 난다고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과 같이 적당히 나야 정통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들 모두가 똥을 묻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율법을 안 지킵니까?

어느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를 믿으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어 그들의 믿음은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의 의로는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부끄러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율법을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힘써 거절을 하는 행위입니다.

이사야28:16절을 보겠습니다. (99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에서 남을 하찮게 여기고 깔보고 있는 치리하는 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교만합니까?

누가 교만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부자가 교만하겠습니까? 율법을 못 지키는 가난한 거지같은 사람이 교만하겠습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을 드려야 합니까? 거지같은 사람이 교만하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만한 자들이 사망이 이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겸손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무리 겸손의 모양을 낼지라도 교만하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그 자체가 교만합니다. 우리는 왜 그가 교만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교만한 자인 경만한 자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고 음부로 내려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합니까?

그는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그는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비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돌입니다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에는 모든 사람이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을지라도 저를 믿는 자는 급절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시온에 한 돌을 두고 기초를 삼았다고 말씀을 하면서 이 돌을 믿는 자는 율법주의자와 같이 급절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이 시대 역시 안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아서 이 돌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믿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역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80년을 살다가 죽습니다. 물론 이 시대는 수명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서 100세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참으로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을 해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아니 죽을 때가 되면 아주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빨리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총명이 있는 젊은 시절을 사람들이 모두가 종교에 빠져 허송세월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보면 맞습니다.

언제 인생의 끝이 올지 모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총기는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도 게으릅니다. 자기 영생에 대해서 너무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열심은 대단하지만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저 멀리 있고 나중에 늙어서 할 일이 없을 때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 곁에만 있다가 나중에 열심을 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팽배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교회에 나오는 나이를 먹은 사람들을 보면 아주 열심을 내고 있고 그들이 구원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자기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기는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리고 인생의 수명도 갑자기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때는 아주 급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죽을 때가 되어서 보니까 자기 영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다급하고 매우 절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진리를 찾으려고 하면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총기입니다

이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나중에 급절하게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지금은 확신이 있는 것 같아도 도무지 성경이 안 풀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젊으니까 나중에 알면 되지 하면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급절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됩니다. 매우 다급하고 절실한 날이 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구원의 확신을 갖겠다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총기가 있을 때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나중에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매우 다급하고 절실한 때에는 진리를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분명히 뭔가 걸리는 것이 있고 찜찜한 것이 있는데도 나중에 알면 되지 하는 막연함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부자가 되고 있는데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나중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문 앞이 저승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앞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도 태평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살기 어렵습니다.

이 시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기가 어렵더라도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 정도 시간이면 진리를 찾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막연하게 기대를 하면서 교회 안에서 아주 편안하게 안주를 하고 있습니다.

급절합니다.

매우 상황이 다급하고 절실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절실한 사람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종교에 세뇌가 되어서 죽을 때가 되어도 절실하지가 않습니다.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도 절실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급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앞뒤가 안 맞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지금도 많은 분량의 설교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루아침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영생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안다고 하는 것도 아주 적은 부분이고 겨우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정도입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말씀을 100가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1.000가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10.000가지를 보았습니다. 누가 더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는 다급하고 절실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믿음의 말씀을 전혀 보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태평하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입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저를 믿는 자라고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면 저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를 믿으려면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알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next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