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99-1,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윤주만목사 2025. 2. 22. 10:36

로마서10:9절을 보겠습니다. (25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성경이 필요로 하고 있고 이 시대는 굳이 성경을 없어도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있어서 더욱 성경을 사람들이 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성경을 보더라도 이미 그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서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성경이 많이 훼손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헌금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명령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것이 명령이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일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명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재능을 우리 인생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자도 이 명령을 지킬 수 있고 고아도 과부도 그리고 나그네도 명령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고 부자만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 명령을 지킬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함으로 해서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명령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을 지키려면 반드시 성경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면서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아주 쉽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믿으면 됩니다. 물론 이 복음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이 복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누군가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그 사람도 역시 성령이 오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하루아침에 이것이 이루어집니까? 그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성경 전체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육체의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이 복음을 듣기를 사모해야 하고 그런 성도만이 믿음이 역사를 해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입니다

이 복음이 내게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힘써 거절하게 만들고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없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과 복음을 함께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복음만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절기에서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시기까지 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믿음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았습니까?

그것이 믿음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 율법에서 복음을 보아야 하고 그 말씀이 믿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그 말씀에서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믿음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질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이 복음을 볼 수 있게 하시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의 문자를 보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 의미를 알 때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누가 믿음의 말씀을 전파했습니까?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믿음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보고 이스라엘이 행위에 의지하다가 부딪칠 돌에 부딪쳤고 이방의 교회 역시 로마서의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보고 전혀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냥 믿어진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말씀을 많이 보면 볼수록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말씀이 안 보이면 그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그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 지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쫓아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행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은 행위가 전혀 포함이 되지 않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을 때 오직 믿음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 믿음의 말씀을 듣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킹제임스번역을 보겠습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는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의 번역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단어의 선택하나가 성경에서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게 하고 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보고 있는 성경 가운데서 한글개역성경과 킹제임스번역만이 시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다른 번역은 다 고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백,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한다고 사전에 되어 있습니다. 시인, 어떤 사실을 옳다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백이라는 단어와 시인이라는 단어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입니다.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은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도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네게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과 신인을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백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을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입니다.

고백을 하든 시인을 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생명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백은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그 사실에 대해서 옳다거나 그러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고백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어느 것이 편하겠습니까? 고백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기 때문에 편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인을 합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고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 자기들이 다 주님이라고 부르니까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0:32절을 보겠습니다. (16)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성경을 아주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그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한 것으로 자기가 시인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입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 시인을 한 것으로 시인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시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하고 자기들끼리 시인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종교가 삶에 전부인 사람입니다. 종교가 하는 일을 국가도 함부로 못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있고 더 강했지만 워낙 종교도 강해서 가능한 국가는 종교가 하는 일에 관여를 하지 않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지금입니다

만약에 누가 우리를 채찍질 한다면 아마 국가가 당장에 그 사람들을 잡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너무 강한 교회는 국가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채찍질 하고 죽이고 할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시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시인하는 것으로 아니 자기들이 고백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시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을 할 때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의 시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는 시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자기 생명을 걸고 주님을 주로 시인하는 그런 상황이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안에서 그들이 하는 것과 같이 시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들끼리의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채찍질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십에 하나 감하는 채찍을 때렸습니다. 거의 반은 죽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채찍을 맞다가 죽는 사람도 간혹 가다가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 생명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시인이라고 합니다. 내 육체의 생명이 죽을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라는 말을 써야하는 것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시인이라는 말은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국가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다수에 속해 있으면서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런 시인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시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인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몸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하는 시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면서 자기들이 시인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22절을 보겠습니다. (16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시인입니다

그것은 법정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시인을 하는 그것으로 어떠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시인하는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유대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유대교인들만 구원을 해 주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 소경은 나면서부터 소경이라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모들이 생각할 때도 자기 아들이 소경으로 났는데 그 눈을 뜨게 해 준 것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셔서 주님의 능력은 믿고 있지만 아직 그들은 육적으로만 주님을 보고 있을 뿐이지 영적인 주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모들은 자기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는 해 주셨지만 그것은 엄연히 육적인 일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서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천국 복음에 대해서 다 전파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주셔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들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설령 자기 아들을 눈을 뜨게 했어도 유대교를 안 믿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인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도 그렇고 지금 이 시대 유대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어도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교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교회를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큰 교회에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사실 다른 교회에 나가도 그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이 교회를 대적해서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는 종교가 삶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내 놓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 부모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법정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가 출교를 당할 수도 있고 그가 그대로 유대교인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면 그는 지역 사회에서 거의 매장이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 부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 부모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막상 이런 처지가 오면 시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부모는 당장 죽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을 자기 영혼이 죽는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인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부모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그것으로 인하여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있었다면 아니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한 것을 믿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록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는 했어도 그리스도로 믿지를 않아서 시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나 시인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시인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시인을 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에 대해서 걸고 물을 때 그것을 시인할 수 있어야 시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모입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을 어떻게 얻는지를 몰랐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몰랐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유대교 안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잘못 알고 있지만 자기 영혼의 구원의 문제가 걸리니까 이 부모는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에서 지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말씀을 하고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았습니까?

자기 아들이 날 때부터 소경이었는데 눈을 뜨는 기적을 보았습니까? 그런 기적을 보고도 시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제 참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까? 그런데도 종교에 묶여 있는 사람은 두려워서 이 참 빛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249)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 부모입니다

왜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유대교를 믿으면서 종의 영의 받았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으로 태어난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지만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무서워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의 영을 받아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안 지키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무서워합니다.

이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했어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종의 영을 받아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면 하면 절대로 그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못 합니다.

시인합니까?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있습니까?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교회에 나가는 것은 바로 이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무서워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혹시라도 전혀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할까봐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아들입니다. 굳이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모는 이렇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아 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의 눈을 뜨게 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주님께서 분명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해도 시인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유대교가 묻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종이 되어 있어서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6절을 보겠습니다. (325)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주입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영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죽어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어 썩어 없어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영을 주셔서 구원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아니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이 시대는 아예 듣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는 초대 교회를 지나자마자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서 더 이상 이 영의 일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흔적조차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으려면 반드시 세상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의 어느 학문을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것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기도 하고 또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것이 그리스도를 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말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이 성경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성경을 보는 것으로 마치 세상 초등학문을 쫓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합니까? 그리고 예수를 주로 받았습니까? 그런 성도는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그 세상 초등학문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그런 그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그것은 거짓에 속는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로 시인을 하고 주로 받으려면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를 쫓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로 받았습니까?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는 세상 초등학문을 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모르다보니까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에 있어서 법적인 용어입니다. 지금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교회에서 다수가 있는 그곳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는 전제 조건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사람입니다.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로 시인을 한다고 하는 그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세상 초등학문을 쫓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을 하려면 반드시 율법이 마침이 되어서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37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찬송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에 나가서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찬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과 노래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없이 감성에 젖어 노래를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송입니다.

누가 찬송을 합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찬송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것은 이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찬송이라는 것은 반드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을 때 찬송할 수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과 구원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모릅니다.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에 대한 기초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압니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히브리어로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복음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자기들이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마치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