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3:8-13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구원을 말씀을 하는데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나는 불교를 믿는다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은 인생들이 종교 안에서 믿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는 그것도 역시 인생의 철학적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알고 있습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 인생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동등하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을 그러니까 우리의 형상으로 나타내신 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계신 분을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 기초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를 하셨는가를 그리고 창조를 하시고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이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저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지도 모르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그렇게 된다고 하면서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그 믿음조차도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도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그리고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나쁜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욕입니다
누가 정욕대로 산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자기 정욕대로 살면서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우리 성도를 조롱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인생의 정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우리 성도를 조롱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가 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종교인들이 그러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을 이렇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욕정입니다
인생들은 본성이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우리 성도들을 핍박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종교에 의해서 조롱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믿지를 않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인생의 철학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시간적 개념으로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어떻게 잘 살았는가를 가지고 자기들이 말을 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은 이미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믿고 있고 종교적인 삶이 아니라 성경에서 주님께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입니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그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되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전체 말씀이 그래서 거듭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거듭나는 씨로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그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
종교인들은 진화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그런 그들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그 행위를 하고 있고 그래서 3절에서 그들이 정욕을 좇아 행하면서 우리를 조롱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나타내 보이면서 우리를 조롱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이루시면서 나타내신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와 종교인들이 알고 있는 그 차이는 너무도 크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은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그러니까 종교인으로 얼마나 잘 살았는가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면 종교인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를 조롱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이제 성령을 보내주시는 일을 말씀을 하면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종교 안에서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여러 가지 행위를 하게 되어 있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나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러나 행위를 하지 않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우리 성도들은 그들에 의해서 조롱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7:5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성도의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창세 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가졌던 영화를 이제 주님이 오셔서 나타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주님과 아버지가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가 무엇인가를 이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고 그 일이 우리의 영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서 이 일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당연히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나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조롱을 당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우리가 증명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이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종교는 십만 명이고 우리 성도는 1명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 해도 누구의 말이 옳게 되는가 하면 종교인들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에서 그러니까 종교에 의해서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는 창조가 다 이루어졌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세상이 조롱을 하더라도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의 말씀이라고 뜻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베드로 후서3장의 말씀과 거의 비슷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제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고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행위를 나타내면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고 하면서 조롱을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우리는 성도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종교가 되어 그들의 철학으로 행위를 잘 하는 것을 나타내면서 우리 성도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조롱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말씀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성도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입니다
그들이 조롱을 하더라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영생을 얻는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의미를 우리 인생의 언어로 비유로 해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세상입니다
우리 성도는 종교에 의해서 조롱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자들의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 진리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이 시대도 종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 자가 많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각 시대를 보면 한 시대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를 성경에서 충분히 증거를 받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 시대 복음 안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는 지금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지만 우리 인생은 들의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일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가는 때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모든 자가 아무도 멸망치 않는 것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면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 역시 같은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팔십년입니까?
너무 길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진화론 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성도를 조롱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럴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공동번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창조에 속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하나님 나라로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그 날에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께로서 내려온다고 우리 인생의 언어적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은 우리 성도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는 말씀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우리 성도가 어떠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조금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그러니까 창조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적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롱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종교인으로 산 그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을 하면서 우리 성도의 믿음을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그러니까 사라지고 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인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입니다.
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인생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종교 안에서 그런 행위를 하려고 하다가 더욱 더 악한 일만 하는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행위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 전체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 문장에서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종교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우리 성도를 조롱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말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는 의미에서 너희에게는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새번역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이 믿음에 든든히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이기 때문에 도리어 우리 성도를 조롱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입니다
우리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 나라가 빨리 임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기 교회 안에서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적기 때문에 조롱을 받고 있고 그런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원소들이 다 사라진다는 의미로 번역을 하기도 하고 있고 천체 자체가 다 사라진다는 의미로도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번역이 되든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결국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는 것과 같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는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원소입니다
창조된 세상은 다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종교적인 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정욕을 좇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창조된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소까지도 그러니까 인생의 형체까지도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은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한일서2: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그의 약속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이 시대 종교인들은 그저 자기들의 철학으로 아는 단어를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체의 형상에다가 이 영원한 생명이 결합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알고 있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생명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부활을 하신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 성도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얻어 이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체의 부활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그 신체가 거룩해지려고 신앙인으로 잘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3절에서 정욕을 좇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썩지 아니할 생명을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고 우리 성도가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종교인들의 조롱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그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원한 생명은 그저 인생의 언어로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생명을 얻은 자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 단어를 알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의 약속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의 구원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가졌던 영화를 믿는 성도가 되어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65,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 | 2024.11.30 |
---|---|
1164,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4) | 2024.11.27 |
1162,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 | 2024.11.22 |
1162,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2) | 2024.11.21 |
1161,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0) | 202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