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6:6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부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그와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세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고 또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정의를 하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 순간 모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모순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정의를 해 놓은 교리들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교리들이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막연하게 나는 부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끔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해 보면 도무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어서 그냥 웃고 넘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면 육체의 일이 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아도 성경이 억지로 해석이 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다 문자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석이 되어도 꾸역꾸역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통할 수 있어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생명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생명을 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으로 새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탄생시킨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전혀 다릅니다.
아담의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두 생명이 연합을 해서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생명은 죽으면 그것으로 썩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습니다.
우리의 혈과 육은 썩어 없어집니다. 썩는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고 하고 있고 그 썩는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썩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하려고 하다가 부자가 되어서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생명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누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천국에 가고 싶어도 이 영의 비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을 듣는다 해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지만 성령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지만 됩니다.
누군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열 사람이 듣는다 해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만 이 영의 일을 받아들을 수 있고 영의 생명이 어떻게 부활을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만 이 말씀이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혈과 육은 썩어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영이 부활한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는 그것이 믿어지지만 세상은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형상으로 부활하는 가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썩지 않는 형상으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그 썩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형상을 보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환상을 보았어도 표현할 수 없어서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부활입니다
우리 신체가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본 형상과 비슷하거나 같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끔 SF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그 영화 속에 어떤 형상은 마치 불사조같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형상은 그보다 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우주에서 왕이 되는 역사입니다. 천사들도 판단을 받을 정도로 변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거나 비슷한 형상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 부활이 없다면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서 말하는 그런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로 변화하는 그런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에게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먼저 돼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반드시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 본받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옛 사람이라고 하니까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 전과 후로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기 전에 세상에서 살던 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 좋아지기 전에 사람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그것 역시 옛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서신을 보냈고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4: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4쪽)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누가 옛 사람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그냥 옛 사람으로 살면서도 자기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옛 사람입니까?
빌립보서4장19절에서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이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니까 무엇이 더러운 것인 줄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런 말씀들이 깨달아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거의 모두가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가지고 더러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진짜 더러운 것을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이성에 따라 막연하게 성경을 보면서 더럽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이것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이 세상 사람과 같이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더 더러운 것에 욕심으로 내서 행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럽습니까?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초보들이나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는 그런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럽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하지 않은 것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대 동성연애의 법안이 세간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의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성연애를 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동성연애를 사람의 이성으로는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을 세상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은 깨끗하고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지함이 자기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더 악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악한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수자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더럽다고 할 만큼 깨끗하게 살았습니까? 내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더 깨끗하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람이라고 하니까 마치 세상의 그런 사람을 말씀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보다 교회 안에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을 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옛 사람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는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어져 가는 옛 사람에 욕심을 내면서 교회 안에서 더러운 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면서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유혹의 욕심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육체의 욕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서 욕심을 내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욕심을 내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무엇이 욕심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이 무엇입니까?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면 됩니다.
육체의 욕심입니다
이 같은 것들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다 문자적으로 보다보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인 줄을 모르고 있고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면서 성령을 좇아 행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육체의 욕심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 하고 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강해할 때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유혹의 욕심에 넘어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혹의 욕심에 다 미혹이 되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에서 우상 숭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를 수 있습니까? 성경을 모르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의 바알이 이 시대 율법의 행위로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도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진심으로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십일조가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율법의 행위는 다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어느 율법을 잘 지키면 그것을 누군가는 간증을 하고 있고 그 간증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도 그와 같이 되고 싶어 합니다. 또 목사들은 그런 설교를 함으로 해서 교인들이 우상과 같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다 유혹의 욕심에 넘어가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망입니다
여러분이 이 옛 사람을 버리지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버렸다고 버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내게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욕심입니다
교회 안에서 욕심을 낼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교회 안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냅니까? 아니면 자기를 더 자랑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고 있습니까? 그 욕심이라는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욕심에 이 시대는 다 유혹을 당해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옛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입니까?
그것이 나를 사망으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그 행위가 육체의 욕심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벗어버리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욕심에 유혹이 되어서 다른 사람까지도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옛 사람입니다
누가 옛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이 옛 사람으로 살다가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옛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러운 것에 욕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 예배 시간에 찬양대에 서서 감동을 주는 찬양을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또 전도를 하고 있고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육체의 욕심이고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리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드려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더럽다고 하는 제가 더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예배를 드리고 나면 마음에 한결 평안함이 오는데 그것을 더럽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더럽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일이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의롭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소경이 되어서 안 보입니다.
옛 사람입니다
그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여러분은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옛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면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골로새서3: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옛 사람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때문입니다.
땅이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느 일부의 사람이 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하고 있습니다.
탐심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우상숭배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로마서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를 벗어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교회는 점점 더 율법주의가 고착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하면 율법이 아닌 것이 되고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거짓말 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누가 거짓말 장이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당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거짓말입니다
바리새인이 거짓말을 했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말로 인하여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거짓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예수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옛 사람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옛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땅이 있는 지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어도 그것이 땅에 있는 지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땅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생각의 전환이 없으면 아니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이런 말씀을 보고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안 죽입니다.
도리어 더 살리고 있습니다. 그 지체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여러 가지 각종 헌금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체가 썩어져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썩어져 가는 지체가 한 행위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칭찬을 받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고상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샤머니즘적인 행위를 하면서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오직 예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만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들의 행위는 전혀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말씀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입니까?
율법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왜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기 위해서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믿는다는 조건이 있습니까? 이 세상 초등학문인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미를 모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왜 그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를 모르고 그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한다고 해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면서 전혀 다르게 교회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증합니다.
누가 가증한 자입니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가증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괘씸하게도 전혀 다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말 따로 행위 따로 입니다.
문자를 알고 있습니까?
사실 성경에서 문자를 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왜 못 박았는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왜 못 박혔습니까?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니까 이 세상 도덕적인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로마서6장을 해석한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주석이나 강해나 설교들을 보면 이 죄를 도적적인 죄로 해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5장부터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도리어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죄를 짓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6장의 죄입니다. 이 세상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율법을 지키는 죄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함께 못 박혔습니다. 왜 못 박혔습니까?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몸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 죄를 생각하고 있어서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이미 5장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면 이 말씀은 도무지 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간혹 가다가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5:5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죄의 몸을 멸해야 합니다.
정말 이런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죄의 종이 되어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몸을 멸하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죄를 짓는 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해석이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5장의 말씀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목사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가르치고 선생이 되어 있어서 그에게 배운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경말씀 하나를 잘못 알게 되면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는 그것으로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누구입니까?
지금 교회 밖에 있는 사람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그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 지방에서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입니다
아비의 아내라고 하니까 아마도 자기 친 어머니는 아니고 새 사람이 들어온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그때는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은 마치 물건과 같이 사고팔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도 부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지방은 그래도 잘 살았던 곳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린도교회 안에 육적으로 실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실제 있었던 일을 비유로 교회 안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이것을 진짜로 생각하고 진짜로 이야기를 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으로라도 이렇게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의 아내입니다
누구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까? 교회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그 아내를 교회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사적으로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세라를 위해서 하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십일조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교회가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하고 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에 있는 십일조를 문자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심지어는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음행을 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를 위해서 어느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아니 사도 바울이 살아 있는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사단에게 내 주었습니다.
왜 내어 주었는가 하면 육체를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 사람이 음행을 했습니까? 복음을 들었지만 자기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죄가 아닙니다.
영적인 죄입니다. 그 죄를 멸하기 위해서 그래서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몸을 멸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로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사망이 왕 노릇하기 때문에 그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몸으로 죄를 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몸을 멸해야 합니다.
어느 것에서 몸을 멸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몸을 멸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 버리면 더 이상 그 몸으로 육체의 구습을 좇아가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것은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죄의 몸을 멸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죄의 몸이 살아 있으니까 아니 말로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니까 그것이 멸해지지가 않아서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를 이 시대 목사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의 몸을 멸하기보다는 그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려면 반드시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해서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누구라도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감성적인 말에 속지 마시고 내가 어떻게 해야 예수의 부활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6장부터의 죄는 이 세상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51-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0) | 2024.09.16 |
---|---|
51-2,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0) | 2024.09.15 |
50-2,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1) | 2024.09.14 |
50-1,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1) | 2024.09.14 |
49-2,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1)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