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6: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세례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례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그저 종교적인 의식만 있지 세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례를 반드시 받아야 함에도 세례를 받는 사람이 없고 종교인만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면 우리 역시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말로만 죽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같이 죽지 않은 사람은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세례입니다.
그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서 의식화 되어 시행해온 물세례를 받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세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세례의 의미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례가 맞습니까?
침례가 맞습니까? 이 시대는 정말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침례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침례가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침례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하는 사람들은 안수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세례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아닙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세례를 받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이 시대 둘 다 죽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단에 따라 침례를 받기도 하고 세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것으로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세례입니다
왜 잘못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았으면, 침례를 받았으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죽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더 살아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세례가 왜 잘못 되었는가 하면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세례가 아니라 종교적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반드시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면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세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입니다
세례를 받은 표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죄에서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는 세례를 받은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죄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는 세례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 세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들이 세례의 의미를 아는 것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이 시대는 세례의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에서 죽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 가운데 있어 사망이 왕 노릇하는데서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세례를 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이제는 죄에서 죽고 다시 물에서 나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에서 죽는 것을 모르고 세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죄는 도덕적인 죄입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죄에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죄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죽는 것 뿐 아니라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 그렇게 된 사람만이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이상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로는 율법을 안 지킨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주일을 지키고 있고 십일조를 내고 있고 교회 안에서 종교적인 의식의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서 그런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았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율법의 행위를 보면 압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서 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을 안 지키는 곳이 없습니다. 아니 간혹 가다가 율법을 폐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율법을 폐했다고 하지 실상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로는 우리가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그런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폐했으면 행위가 하나도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세례를 받은 성도만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생명이 있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것으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율법의 행위에서 죽어야 합니다. 죽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성도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것이 세례의 표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에서 죽는 것이 세례라는 것을 모르고 물 세례를 받은 것을 가지고 도덕적인 죄에서 죽었다고 하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었습니다. 무엇에서 죽었는가 하면 죄에서 죽었습니다. 율법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서 보니까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를 지어서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같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곳에서 주님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함께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함께 죽었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함께 죽은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만일 우리가
정말 성경을 볼 때는 국어를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한글개역성경은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만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받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성경이 번역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앞에서 세례를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가정해서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을 연결해서 뒤에 있는 말씀의 결과나 반응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세례는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다음에 있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본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볼 때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스치듯이 내가 국어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지 마시고 반드시 국어사전에서 그 뜻을 한번 찾아보고 확인을 하고 나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이 한글개역성경이 잘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받았습니다.
그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면 우리도 죽어야 합니다. 본받는다고 하는 뜻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데 우리가 죽지 않고 있다면 그는 본받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 말씀은 이미 왜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죽었는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도덕적인 죄를 지어서 죽어야 하는 죄인이 아니라 영적인 죄를 지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아니 이미 죽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으로는 반드시 이미 죽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만 죽어서는 안 되고 우리도 역시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만 죽습니까?
그것은 사도 바울만 구원을 받고 나는 구원을 못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다고 하면 우리 역시 죽어야 합니다. 왜 죽어야 하는가 하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았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성도는 이렇게 사도 바울과 같이 죽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의 죽으심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까?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왜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범한 죄 때문에 함께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범죄를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로는 참 잘하는데 왜 죽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은 참 잘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말은 청산유수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모르고 하고 있습니다.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무엇 때문에 죽으셨는가 하면 율법을 범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본받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갈라디아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의 죽으심을 본받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진짜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 말씀 그대로 진짜 죽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리새인으로 있으면서 흠 없는 율법을 지킬 때는 율법이 가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율법이 가입을 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율법이 가입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야 율법에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성도만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가 아무리 성경에서 이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 자기가 그의 죽으심과 본받아서 죽었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만이 연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율법을 안 지켰습니다. 그가 어떤 율법을 지켰습니까? 아니 우리 성도들에게 어느 것 하나라도 행위에 대해서 가르친 것이 있습니까? 그는 종교적인 행위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고 성화가 되기 위해서 점점 더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죄 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죄입니다. 어떤 죄인가 하면 사망이 왕 노릇하는 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본받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말로는 잘합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폐했다고 큰 소리로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적게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폐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폐했다는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613가지가 있습니다. 612가지를 지키지 않고 거기서 단 한 가지를 지켜도 그는 율법을 폐한 자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반드시 폐해야 합니다. 어느 율법은 폐하고 어느 율법은 지키면서 폐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죽었습니다.
죽은 자가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었다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자기들이 율법을 폐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 말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행한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했으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서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나 주일은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사람들은 다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삼가 지키면 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례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온 것을 보고 지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가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가 더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율법에 대해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은 성도만이 그와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24절을 보겠습니다. (구 3쪽)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연합이라는 사전적인 뜻은 둘 이상의 사람이나 조직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을 했으면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가 되었습니까?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면 우리도 반드시 죽어야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에 의해서 죽으셨는데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연합한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리스도와 하나라고 하는 것은 성립이 안 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으셨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연합한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연합이라는 뜻을 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연합을 하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단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체가 있습니다. 서로 둘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합을 했으면 이전에 있던 모든 규칙은 다 버리고 새로 연합한 것을 해야지 연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있던 규칙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연합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연합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면 우리도 죽어야지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는데 우리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연합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입니다. 이 둘이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 가지의 예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합했습니다.
그렇게 연합을 해야지 한 몸이 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합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연합이 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으면 나도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연합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계속 연결을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로마서를 보고 있지만 1장부터 해서 계속해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는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가입을 했습니다.
가입을 해서 보니까 죄가 더했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범죄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범죄라고 말씀을 하면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율법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그럴 수 없다고 간곡하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제 율법에 대해서 죽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례를 말씀을 하면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았으면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이라는 가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함께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추측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지 못 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통해서 죽은 것으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연합한 자가 된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연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가 하나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아주 쉽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지 않으면 연합한 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죽으심을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누구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연합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5: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도입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어리석음으로 끝이 나면 좋겠지만 교회 안에 들어오는 순간에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축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지만 사람들은 거의 다 저주를 자청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빤히 알고 있기에 우리가 받은 영생이 더욱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자 하는 자에게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 성도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입니다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의 부활로 연합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연합하지 않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셨지만 그에게는 연합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이 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부활절이라고 하면서 성대하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 부활절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부활절만 되면 자기들이 주님과 같이 연합한 자가 되어서 부활을 한다고 믿고 종교적으로 성대하게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을 보면서 교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율법이라고 하면 아마도 저를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부터 이 부활절을 지켰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2000년 가까이 이 부활절을 지켜오다 보니까 그것을 율법이라고 하는 제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의 행위도 범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없는 것을 하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 부활절을 비롯해서 성탄절, 추수감사절 등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절기는 다 세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6장은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죄입니다. 그 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그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죄를 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죄를 모릅니다.
죄를 말씀하면 거의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도 아는 그런 것을 가지고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굳이 성경을 안 보더라도 죄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죄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모든 행위가 다 죄입니다. 우리는 그 죄에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의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부활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가 되어서 연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선한 일을 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입니다
이 시대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있는가 하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악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죄에 대해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선한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대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아 믿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선한 일이라고 하니까 내가 무슨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선한 이의 일을 믿을 수는 있어도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선한 일을 믿는 것이 선한 일을 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선한 일을 믿는 성도는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의 죽으심을 본받지 않고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5장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지 않으면 그는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율법을 지키면서 살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 가운데서 살면 사망이 왕 노릇해서 생명의 부활로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악한 일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한 일입니다. 그 악한 일이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겠느냐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 수 없는 일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사람이 거의 없이 악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결국이 어떠하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부활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몰라서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려면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율법의 모양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외식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종교적인 행위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또 샤머니즘적인 은사를 행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그의 부활에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next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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