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4: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에게는 정말 가슴 벅찬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은 전혀 모르고 그저 인생들의 감성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당하시는 것만을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영화는 인생들의 종교성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입니다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창조조의 생명을 얻어 실상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할 수 없어서 조금 안타깝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솔직히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육체가 간다면 더 좋겠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서 우리 피조물은 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비유의 말씀들만 보아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나라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를 주십니다.
누구에게 주시는가 하면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 그 생명을 얻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사람으로 오셔서 고통을 참으심으로 해서 마치 여자가 해산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을 얻게 하시고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입니다
억압, 압박, 고통, 괴로움, 고난을 의미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면 마치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하는 것과 같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마치 고통을 받는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복음이라고 하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많은 수고를 하면서 연구를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인생의 철학적 근심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고 그것은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성령이 오시는 일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통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억압, 근심, 괴로움, 고난, 환란 등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제자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진리를 전한다는 것이 그 일을 믿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는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고 진화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도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 일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율법주의를 가지고 있는 종교인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극적으로 주님께서 16장을 시작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다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는 다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도 본성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해산하는 일을 비유로 해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복음을 전한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들어온 것을 보고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해서 그들이 듣고 믿는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나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통입니다
그만큼 크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거대한 종교를 보고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마치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산입니다
우리가 어머니가 열 달을 수고를 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낳기 까지는 얼마나 조심을 하고 또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산의 고통이 올 때는 저는 남자라서 잘은 모르지만 그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심입니다
바로 그러한 근심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 종의 아들입니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누가 종이고 누가 아들인지를 전혀 모르고 인생들은 좋은 쪽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켜서 마음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종이라고 말씀을 해도 왜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몰랐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도 율법주의가 들어오니까 이렇게 쉽게 미혹을 당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인생의 철학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로서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지만 모세의 율법을 보는 인생들의 철학이 어떠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율법을 생명의 도로 본다고 해서 우리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자가 해산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고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그들이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중심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마리아를 통해서 오신 육체는 버리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지 못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다시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단지 십자가에서 죽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육체로 오신 그것을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종교인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우리 성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신체가 영으로 변해서 그러니까 전설의 고향과 같이 그리고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와 같이 그렇게 변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고 종교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그렇게 되는 일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입니다
분명히 육체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혈과 정이 있는 인생들에게는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앞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고통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받아들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육체를 버리시겠다고 하는 말씀은 인생들로서는 듣고 믿는다는 것이 마치 해산의 고통보다 더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더 받아들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까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죽어 사라진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이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하나님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누가 듣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는 듣고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을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러니까 인생의 철학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하면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일을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이 시대 종교인들에게 전하면 아마도 이단이라고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잘 아십니다.
인생들이 종교가 된다는 것도 잘 아시고 그들의 철학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창조하신 일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인생들에게는 마치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입니다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고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도리어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이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 일이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과 같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한다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76쪽)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요한복음을 보았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일은 제자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아주 당당하게 유대인들의 영접을 받으면서 들어왔고 주님께서 왕으로 입성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유월절 예비일에 먹으시면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께서 14장에서 시작부터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성령이 오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16장에 와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라고 말씀을 하시고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으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나를 핍박을 한 것과 같이 너희도 핍박을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하면서 제자들을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임을 당할 때 살려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큰가를 다투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아서 통치를 하겠느냐고 서로 다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성령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주님께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 역시 인생들입니다. 아직까지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영의 일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 육의 일로 생각을 했지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깨닫고 있는 제자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보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신다는 실제 있는 표면적인 일은 알고 있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같은 왕을 메시야로 기다렸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으로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다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은 구약 성경만 보고 있고 그들은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령이 오시지가 않으니까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고 또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지도 모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과 같이 삼년 반 동안을 함께 다니면서 유월절을 먹었지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만 생각을 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근심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보고 근심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인생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4:7-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0쪽)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령이 오시기 전입니다
제자들 역시 인생의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근심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입니다
그들이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들은 물론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문자를 보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것 역시 그저 문자를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라고 말씀합니다.
실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이성을 가지고는 도무지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누가 믿습니까?
제자 중에 어느 누가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네 하면서 주님께서 장사 지내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믿습니다. 하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보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근심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인생으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부활절을 아주 성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알고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성령이 오시지도 않은 그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맹목에서 나온 것이지 실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바로 보면 제자들은 전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그저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여자들이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와서 그들의 장례 의식에 따라 주님의 시체가 잘 썩게 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었습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향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제자들이 먼저 와서 주님을 다시 보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영의 일을 믿을 수 없었고 제자들은 낙심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여자들이 향품을 가져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거의 다수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도 문자 그대로 보고 있고 주님께서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고 하면서 그들의 교리서를 배우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왔습니다.
무덤의 문은 열려져 있고 주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다시 보리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의 철학으로는 그것이 허망하게 들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여자들 역시 그 말을 허망하게 들었기 때문에 향품을 가지고 주님을 장사 지낸 무덤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에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계시지 않았고 주님께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천사들이 전해주고 있고 그 말을 듣고 여자들도 기억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여자들이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자기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을 여자들이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역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믿지를 않기 때문에 종교에서 만든 교리를 따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주님이 누구신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세운 종교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고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근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이제 오순절에 성령이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영광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광을 성령이 오시면 알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이제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짐으로 해서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돌감람나무인 우리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인생의 철학에서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철학에 따라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철학보다 더 강하게 역사를 하고 있고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믿음에 든든히 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이 기쁨을 다 빼앗기고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짐승에게 음녀에게 미혹을 당하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성령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알고 믿는 일입니다
그것을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에 의해서 그들의 교리로 포승으로 묶여 사망으로 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열매입니다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이 인생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을 받아야 아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생들은 그저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다는 것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이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주님께서 하나님으로 부활하신 일을 믿음으로 해서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쁨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이 기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들만이 이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이 기쁨을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11절에서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그러니까 종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이 종교의 교리에서 자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입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의 길이라는 것을 믿었고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기쁨입니다.
누가 이 기쁨을 알고 있습니까? 이 기쁨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빼앗고 싶어도 빼앗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느 누구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는 일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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