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6:2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6쪽)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선지자들이나 사도들 역시 모두가 그렇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있습니다.
말로는 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 피조물들이 그 말씀을 보고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적인 능력이 있는 석학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입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이 우주와는 전혀 다르고 인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표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의 귀결은 하나님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내셨다고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인생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으로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고 또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서 삼년 반 동안 함께 다니면서 모든 표적과 하시는 말씀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의 모든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러면 굳이 창조된 세상까지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까지 모든 영의 일은 비밀입니다. 사실은 우리 인생들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비밀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우리는 그 십자가의 모든 것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있지만 제자들조차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보다 어리석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제자들이 이 모든 영의 일을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체질까지도 아시고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 일을 말씀을 하시면서 그들이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 알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의 육체는 죽은 것이 되고 이제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으신 것과 같이 그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하나님으로 살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제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확실하게 전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주님의 부활이 우리 성도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보여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로는 감동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흘리신 피를 인생의 혈과 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형상을 만들어서 교회에 걸어 놓고 집에도 걸어 놓고 여러 가지로 사용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형상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고 결국에는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그렇게 형상을 섬기다가 사망으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은 정말 인간적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를 하고 다시 자기들이 하던 생업을 하러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당시 주님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실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은 큰 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선지자들를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그 일이 그들에게 구원의 일이 된다는 것을 또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곡하고 애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근심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아 영의 일을 모르고 육체로 보고 근심을 하고 슬퍼하고 있으나 이제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입니다
이 기쁨에 대해서 미리 율법에 정하신 것을 지난 시간에 신명기의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드려지시고 이제 맥추의 절기가 오면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때 성령이 오신 성도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정하셨지만 이 시대는 왜 기쁨이 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종교의 교리에 따라 그들은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기쁨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 세상에서 말을 하는 그런 샤머니즘 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게 하시고 우리가 얻는 생명이 무슨 생명인가를 알게 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일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곳 새 예루살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모든 피조물들은 사라진다는 것을 성경말씀대로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만 이루어지고 그 나라의 생명을 얻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것을 여자가 해산하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해산할 때는 근심을 한다는 것은 왜 그런가 하면 진통이 오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93쪽)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기쁨입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쁨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마치 우리 육체가 누리는 기쁨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그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육체로 느끼는 기쁨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기쁨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입니다.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있어 육체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근심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얻은 성도로서 기쁨을 누린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거의 다 육체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근심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기쁨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그것을 육체의 기쁨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형상을 보이심으로 해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육체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을 보는 것으로 끝이라면 그것은 기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분명히 육체를 보고 근심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주님이 부활을 하신 것을 보고 기쁨이 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의 기쁨보다는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들이 주님께서 성경대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일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실제 일로 보게 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곡하고 애통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종교는 기뻐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것을 육의 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육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21절에서는 그것의 영적인 의미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자가 되고 생명을 얻은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놀라운 일을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의해서 창조가 된 세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분명히 끝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보고 알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환상으로 보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입니다
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이 보고 아는 것은 잠깐이라는 말씀이고 보이지 않은 것이 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참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영으로, 생명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 주심으로 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보여 주심으로 해서 참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기뻐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그대로 헛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실상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 보이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에서 보면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우리는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육체를 보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의 정과 혈과 그리고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죽은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다 보니까 그 육체를 보고 인생들은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제자들에게는 너무도 큰 근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한다고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양들이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육체적으로는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을 하신 것을 보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마치 여자가 해산을 하는 것과 같이 태초의 생명을 얻는 자들이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누리는 기쁨은 크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치 그것을 이 세상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을 하는 것과 같이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 여러 가지 근심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근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 근심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이제까지 육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근심을 하게 되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육체로도 무엇인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인데 전혀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근심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기쁨보다는 근심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을 누가 아무 생각도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종교는 쉽게 들어갈 수 있어도 복음을 듣는 일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한 가지 문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러운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종교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사실 그렇게 근심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신앙생활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 안에서 육체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로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헌금을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나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이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근심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다 말씀을 하고 난 후에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너희가 근심을 함으로 해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불법과 어두움의 일에서 회개를 하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들음으로 해서 인간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근심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심이 아무 해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복음을 들으면 이성적 지식으로 인하여 근심을 하게 되지만 그것이 곧 기쁨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도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관심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자기들이 이제까지 해 오던 행위들이 다 불법이 되고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니까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보여 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기뻐하는 것과 같이 기쁨이 되고 다시는 그 고통을 기억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육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양들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치 여자가 해산을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양들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여자가 마치 아이를 낳은 것으로 기뻐해서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않은 것과 같이 양들이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고통을 기억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제자들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이 그저 막연하게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이 아니라 창조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증거를 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비밀이라는 것을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우리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자기 지식으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이 본성에 따라 종교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근심합니다.
그러나 이 근심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근심이라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저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안에서 제자들이 근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근심을 함으로 해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회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한다고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16:11절을 보겠습니다. (구 812쪽)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더라도 성경을 보고 창조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창조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성령이 오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마치 여자가 해산을 하는 것과 같이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일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해산의 근심입니다
실제 여자는 고통이 오기 때문에 근심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여자는 해산할 때 고통이 오기 때문에 근심을 하지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일은 그와 같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인생들은 성경을 너무도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일은 누구나 다 당하는 일이라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수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면 비록 고통이 있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무도 적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좁습니다.
그리고 협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요한복음16장에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면서 아이를 낳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여자가 아이를 낳는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도 역시 비유의 말씀이라서 인생으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를 쉽게 보고 있고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생명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아는 사람이 없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도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히브리어의 원어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헬라어의 원어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문으로 지식을 자랑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귀결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이 피조물들은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남는 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우리 피조물들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우리 피조물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종교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자기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고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도 모르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누가 받는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종교는 거기서 더 나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 중에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고 하면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셨다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맹목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3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우리 피조물의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육체는 죽고 장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도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죽은 자이고 그 죽은 자에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한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양들이 얻은 생명으로 주님께서 가신 것과 같이 그대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그리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창조주의 생명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양들도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입니다.
성경은 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다윗의 시가 맞지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고 그가 하는 말씀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이 시편의 말씀을 보면서도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히브리어의 원어의 뜻을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이 생명이 주님이 영으로 부활을 하시는 그 생명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입니까?
물론 그것도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가지고는 주의 앞에서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생명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인생은 죽으면 흙이기 때문에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셨고 그 생명이 바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의 기쁨입니다.
육체의 생명을 보고 기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진토이기 때문에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종교의 교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대교인도 아니고 이방의 종교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종교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를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두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일을 증거를 받고 그 일이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시고 있고 우리 성도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습니다.
마치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성령이 오셔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거듭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의 표현으로 거듭남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두 번 나는 일을 모르고 이 거듭남도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를 하시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과로 우리 성도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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